바닷속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깊이의 영역 심해,그동안 심해는 극한조건 때문에 연구는 커녕 접근조차 어려웠다.그런데 최근 심해잠수정이 개발되면서 그 비밀이 밝혀지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바닷속에 펼쳐진 놀라운 세계 심해를 탐험해보자.
지구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생태권은 바로 해양이다. ‘해양’ 하면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바다 표면만을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해양의 대부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바다, 즉 심해로 이뤄져 있다. 해양 표면층과 대륙붕 지역을 제외하면 모두 심해라 할 수 있는데, 해양 총 면적의 약 85%, 부피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심해가 지구에서 생물의 가장 큰 서식처이긴 하지만, 접근이 어려운 극한조건이기 때문에 그동안 심해에 대한 연구는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인간의 발길을 거부했던 심해도 유인·무인 잠수정을 이용해 부분적인 연구가 가능하게 됐다. 이를 통해 흥미롭고 새로운 세계가 차츰 알려지고 있다.
식물은 없고 산소 풍부
미국의 해양미생물학자인 조벨은 심해를 ‘세계 해양의 평균 깊이인 3천8백m보다 깊은 지역’으로 정의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심해라 하면 햇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지역을 말한다. 즉 수직적으로 표층과 수온약층(thermocline)의 아래 부분에 해당한다.
그런데 심해의 깊이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열대지방에서는 햇빛이 전혀 없는 무광대층은 수심 약 6백m 이하이고, 온대지방은 수심 1백m 정도에 형성된다. 열대지방의 심해가 온대지방보다 더 깊은 이유는 태양의 고도가 수직에 가까워 더 강한 강도로 햇빛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한편 온대지방의 경우 플랑크톤이 많이 발생하는 계절인 봄과 가을에 무광대 수심이 얕아진다. 플랑크톤이 많아져 물이 혼탁해지면 햇빛이 도달하는 깊이가 얕아지기 때문이다.
심해는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다. 따라서 심해 생물은 동물과 미생물로만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식물과 빛이 없기 때문에 광합성에 의한 유기물질(탄소를 함유한 생물의 에너지원이 되는 물질) 생성은 전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방법을 통해서 심해에 유기물질이 유입되기도 한다. 하나는 상층부에서 생성된 입자가 무게 때문에 가라앉는 방법이다. 또다른 방법으로 해수에 녹은 유기물질이 유동과 확산에 의해 전달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기물질의 양은 대륙붕 지역(연간 2-6g/m2) 보다 매우 적은 0.02-0.8g/m2에 불과하다.
심해는 유기물질의 양이 적기 때문에 생물이 유기물질을 흡수하는 양 자체가 적다. 따라서 생물의 몸속에서 유기물질을 산소와 결합시켜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과정 자체가 적게 일어난다. 생물이 산소를 거의 소모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대부분의 심해는 숨막힐 정도로 산소가 희박하리라는 우리의 상상과 달리 산소가 풍부하게 존재한다.
산과 골짜기, 평원이 장관
일반적으로 해양의 수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층수에 한정된 얘기다. 심해의 경우 계절이나 위도에 상관없이 수온이 0℃ 내외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는 점이 특징이다.
관심을 끄는 심해의 또다른 특징은 높은 수압이다. 물리적으로 바다속으로 10m 깊이를 내려갈 때마다 약 1기압(해수면 높이에서 받는 대기의 평균 압력)의 압력이 상승한다. 세계에서 제일 깊은 곳인 태평양의 마리아나 해구에 있는 챌린저 해연은 수심이 약 1만1천m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곳의 수압은 약 1천1백 기압 정도에 이른다.
이와 같은 수압이 얼마나 높은 것인가를 이해하기는 수십m 수심의 압력을 견딜 수 없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챌린저 해연에 만일 드럼통을 집어넣었다 다시 꺼낸다면 콜라캔으로 바뀌어서 올라올 정도의 가공할 만한 힘이다.
한편 육상과 달리 심해는 단순한 지형으로 돼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심해도 육상과 마찬가지로 산과 골짜기, 평원이 어우러져 복잡한 지형을 이룬다. 심해평원은 경사가 없는 평지를 말하고, 높이 수백m 언덕이 몇겹으로 이어진 지형을 심해구역이라 한다. 또 1천m 이상 우뚝 속아 있는 해산과 길게 뻗어있는 산맥인 해령이 장관을 이룬다.
바다의 오아시스 발견
오랫동안 심해는 깜깜하고, 춥고, 고압인 상태로 아무 생물체도 존재하지 않는 ‘사막’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1977년 심해 생물학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대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의 과학자들이 심해잠수정 앨빈호로 남태평양의 갈라파고스섬 북동방향 3백20km 지역을 탐사하는 중 수심 2천7백m 심해바닥에서 수백℃에 이르는 열수를 뿜어내는 분출구를 발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주위에는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심해미생물이 바닥에 매트처럼 펼쳐 있었다. 그리고 이를 먹으며 자라는 조개류, 관벌레, 갑각류와 같은 다양한 심해동물이 다량으로 서식하고 있음을 관찰했다.
연구진은 해저열수구 주위에서 발견되는 동물이 대부분 새로운 종이고, 기존의 종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라도 크기가 매우 크다는 점에 더욱 흥분했다. 더욱이 생물의 오아시스는 분출구 주위 약 50m 내외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제한된 지역이었다.
개체크기가 크거나 개체수가 많이 분포돼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심해지역에 적응할 수 있는 포식자의 개체수가 적다. 날렵하게 도망다닐 수 있도록 작은 몸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또한 생물에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몸집과 개체수를 점차 키워온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심해 탐사의 전초병, 잠수정
인간이 직접 해양에 들어갈 수 있는 한계는 50여m 정도에 불과하고, 특수잠수를 한다 해도 2백50m 이상은 불가능하다. 앨빈호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심해세계 탐사에는 잠수정이 필수적이란 얘기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유인 또는 무인 잠수정을 개발해 과학탐사 목적 이외에도 해저 케이블 매설·유지 그리고 해저석유 시추산업 분야에서 작업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조사와 인양, 군사용 등 다양한 용도로 잠수정이 활용되고 있다.
심해잠수정을 설계·제작하는데는 많은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예를 들면 고압에서 견딜 수 있는 소재분야, 장시간 심해에서 잠수할 수 있는 에너지 확보와 관련된 전기전자분야, 광학기술 등이 종합적으로 응용돼 제작된 것이다. 특히 유인잠수정의 경우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문제점도 있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심해잠수정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그 국가의 과학기술 수준, 즉 국력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선진국의 심해잠수정은 전세계 해양 대부분을 탐사할 수 있는 깊이인 6천96m 이상 잠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제 대부분의 무인잠수정이 6천m 내외로 잠수할 수 있으며 사람이 이 깊이까지 잠수해 작업이 가능한 유인잠수정도 여럿 있다.
일본이 최근 개발한 잠수정 ‘신카이 6500’은 6천5백m까지 잠수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현재 최심해 유인잠수정인 셈이다. 그 외에 1만1천m까지 잠수 가능한 무인잠수정 ‘가이꼬’(Kaiko)도 활약하고 있다. 현재 전 심해저를 육안으로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는 국가는 일본뿐이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6년 러시아 기술을 도입, 무인잠수정 ‘옥포6000’을 개발했으나 작업용 로봇 팔이 없고 수중 체류시간이 짧아 수중탐사에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2005년에는 수심 6천m까지 잠수해 작업이 가능한 무인잠수정을 개발할 전망이다.
주인 없는 생물자원의 보고
심해생물자원의 중요성을 국내에서도 인식하고 최근 정부에서는 심해자원 탐사를 21세기 프론티어사업으로 선정해 본격적인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해양수산부는 본 사업의 기반구축을 위해 국내에서 최초로 ‘심해 생물자원 확보 및 이용에 관한 연구사업’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본 연구사업에서는 다양한 심해생물을 분리·배양하며 유전체를 확보해 신소재개발에 이용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며,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본, 미국 등과 공동연구를 수행할 예정이다. 따라서 우리도 선진국과 어깨를 겨루며 심해에 관한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먼 미래가 아니다.
심해는 주인이 정해진 육상과는 달리 준비된 자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자는 누구나 새로운 것을 발견해 인류를 위해 공헌할 수 있다. 이제 우리도 자원이 점점 고갈돼 가는 육지만 보고 한숨쉴게 아니라 눈을 해양으로 돌려 준비하고 능력을 키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