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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온에서 초전도체를 얻으려고 할까

오래 통화해도 열 나지 않는 휴대폰

초전도 현상이 발견된지 90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다가오지 않은 듯하다. 지금까지 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론도 완성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휴대폰으로 오래 통화를 하다보면 열이 무척 많이 난다. 무릎에 얹어 놓고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다보면, 뜨거운 열이 무릎에 전달돼 온다. 이뿐 아니라 텔레비전, 비디오 등 열을 낼 필요가 없는 가전제품에서도 상당한 열이 발생한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전기에너지의 일부가 열에너지로 전환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전제품의 효율을 높이려면 열의 발생량을 줄여야 한다. 그런데 만약 열로 인한 손실 없이 전류가 흐를 수 있는 물체를 개발한다면?

액체 헬륨이 가져온 성과

바로 이것이 20세기 초반부터 많은 과학자들이 매달려온 연구대상인 초전도체다. 그러나 그 시작은 아주 우연한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90년 전인 1911년 네덜란드 과학자 오네스에 의해서다. 그는 액체 헬륨을 만든 과학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오네스는 절대온도 4K(절대온도 0K는 -2백73℃이다), 무려 -2백69℃라는 극저온까지 끌어내리는데 성공했다는 말이다.

그가 이렇게까지 온도를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전류가 흐를 때 열을 발생시키는 원인인 도체의 저항을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도체는 일정한 간격으로 원자핵을 포함하는 양이온이 놓여 있는 결정 격자 구조를 갖는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전하를 운반하는 자유 전자가 이동해서 전류가 흐른다. 그런데 만약 이온이 정확히 주기적으로 박혀 있다면, 격자 구조가 완벽해 자유 전자가 도체 내에서 아무런 충돌로 겪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도체 내에는 불순물, 결함, 그리고 이온들의 진동으로 격자 구조가 완벽하지 못해 전자가 충돌을 하게 되고 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네스는 도체의 온도를 상당 수준으로 낮추면 이온들의 진동 폭이 줄어들어 급기야 저항이 불순물과 결함만으로 결정되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헬륨이 액체상태가 되는 극저온에서 금속 수은의 저항을 측정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4.2K에서 저항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오네스가 발견한 수은의 초전도 현상이다. 이 업적으로 그는 1913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초전도 현상은 과학자들에게 매력적인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전기저항이 0이라는 전기적 성질만이 과학자를 초전도 연구에 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초전도 현상과 관련된 내용에서 자주 등장하는 공중부양. 내부 자기장이 완전히 0인 반자성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 에 발생한다. 이런 성질을‘마이스너 효과’라고 부른다.


공중부양이 가능한 이유

만약 누군가에게 초전도 현상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작은 영구 자석이 초전도 시료 위에 떠있는 장면을 말할 것이다. 교과서나 다른 초전도 관련 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933년 마이스너와 오첸펠트가 발견한 초전도체의 자기적 성질이다. 이들은 납을 약한 자기장 내에 놓고, 초전도성을 갖는 온도까지 끌어내렸다. 그러자 초전도 납이 자기장을 완벽하게 밀쳐내는 것이었다.

이것은 보통의 도체에서도 나타나는 전자기유도 현상과 비슷해보인다. 코일에 자석을 가까이 가져가면 코일에는 유도 전류가 생겨 자석의 자기장과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만들어내 자석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체의 전자기유도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초전도체의 내부 자기장은 완전히 0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완벽한 ‘반자성’을 띤다고 말하며,‘마이스너 효과’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런 성질의 초전도체를 과학자들은 어디에 응용하고자 할까. 오네스는 센 자기장을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보통 영구자석을 통해 만들 수 있는 자기장의 세기는 2T(테슬라) 이하로 제한돼 있다. 그래서 코일에 큰 전류를 흘려 자기장을 생성하는 전자석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는 심각하다. 도체에서 발생하는 열의 양은 전류의 제곱과 저항에 비례한다. 따라서 무조건 전류를 세게 할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전자석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완벽한 해법이 아니다. 큰 전자석을 만든다 하더라도 저항의 세기가 코일 길이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리코일 대신 초전도 코일을 사용한다면 전기저항이 0이기 때문에 열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바로 이것이 오네스의 생각이다.

이런 오네스의 초전도 코일이 이용된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차세대 교통수단인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다. 레일에는 전자석이, 열차 바닥에는 초전도 코일이 들어있다. 초전도 코일을 통해 강한 자기장을 얻어 레일과 열차 바닥이 서로 밀어내거나 끌어당겨 시속 5백km이상으로 공중에 떠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속도는 비행기와 맞먹을 정도다. 그러나 운행에 필요한 에너지는 비행기의 절반 수준.

무도회장의 전문 무희 같은 쿠퍼쌍

현재 이 분야의 연구는 일본이 가장 앞서있다. 1962년부터 연구를 시작해 다양한 시범열차를 만들어 실험중이다. 그러나 아직 언제쯤 실용화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마술같은 초전도 현상이 우리 생활에 도입되지 못하고 21세기 들어서까지도 과학자들을 애먹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현상이 극지방에서조차도 상상하기 어려운 낮은온도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야의 과학자들은 실제 지구 환경과 비슷한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유지하는 물질을 개발하고자 한다.

그러나 초전도 현상이 처음으로 명쾌하게 설명된 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1957년 미국의 물리학자 바딘, 쿠퍼, 그리고 슈리퍼는 자신들의 이름 첫자를 딴 BCS 이론을 발표한다. 절대온도 0K 부근에서 아무런 외부 자기장이 없고 전류도 흐르지 않은 상태에서 모든 전자들은 쌍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자유전자가 격자 구조를 이루는 두개의 양이온 사이를 통과하면, 양이온을 전자 쪽으로 끌어당긴다. 즉 양이온 격자 구조에 약간의 찌그러짐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찌그러짐이 음파 형태로 전달돼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자유전자를 끌리게 한다. 이렇게 처음 자유전자의 이동으로 다른 자유전자가 이끌리게 돼 이루는 쌍을 ‘쿠퍼쌍’이라고 부른다. 마치 무도회장에서 잘 안무 받은 무희의 쌍처럼 자유전자들은 둘씩 서로 짝을 이뤄 스텝을 밟는다. 그러나 보통 도체의 경우 자유전자를 붐비는 무도회장에서 춤추는 아마추어 무희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은 무작위적으로 운동하기 때문에 서로 간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BCS 이론에 따르면 초전도 현상은 금속이나 그 합금에서만 나타나며, 절대온도 25K를 넘어설 수 없다. 온도가 높아지면 쿠퍼쌍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 결과는 더이상 과학자들에게 초전도 현상에 대해 꿈을 가지지 말라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그러나 1986년 새로운 돌파구가 된 실험결과가 발표됐다. 스위스에 위치한 IBM 연구소의 뮐러와 베드노르즈는 잘 부서지는 세라믹 합성물이 당시로서는 가장 높은 온도인 절대온도 30K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절연체가 초전도체의 후보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이들이 합성한 물질은 란타늄, 바륨, 구리, 그리고 산소로 이뤄져 있었다.


1986년 30K의 온도에서 세라믹 합성물이 초전 도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 확인됐다. BCS이론으로 사라진 초전도체에 대한 꿈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칵테일값에서 우유값으로 ‘가격 인하’

1987년 미국 알라바마 대학 연구팀은 뮐러와 베드노르즈의 합성물에서 란타늄을 이트리움으로 대체해 절대온도 92K에서 초전도 현상을 보았다. 뮐러와 베드노르즈가 달성한 30K의 온도는 BCS 이론이 제시하는 25K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아, 많은 과학자들은 30K에서의 초전도체는 BCS 이론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여전히 BCS 이론이 확고하고 명쾌한 이론일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92K에서의 초전도 현상은 과학자들이 더이상 눈 가리고 아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새롭게 초전도 현상을 바라봐야만 했다. 동시에 과학자들은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성을 띠는 물질을 발견하는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절대온도 92K는 보통 냉각제로 쓰이는 액체 질소로도 얻을 수 있는 온도다. 고급 바에서 칵테일 값을 지불하는 정도에서, 이제는 일반 슈퍼마켓에서 우유나 맥주를 사는 돈으로도 실현이 가능해진 셈이다.

이 당시 92K라는 기록적인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을 실현시킨 알라바마 대학의 우 교수에게 어떤 기자가 언제쯤 초전도체가 광범위하게 활용될 것인가를 물었다. 이때 그는 “향후 1-2년이면 충분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 교수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고온 초전도체는 새로운 장애물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BCS 이론으로는 더이상 고온 초전도체를 설명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어떻게든지 BCS 이론을 보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예 전혀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다.
1987년 이후 초전도 현상을 나타내는 온도가 점점 올라가 현재에는 1백38K(-1백35℃)에서도 가능해졌다. 점점 그 온도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초전도체가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 온도에서도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 또 무엇이 초전도성을 띠게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어떤 물질이 초전도성을 보이는지를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초전도 현상이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실온에서도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 아직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있는 수준인 셈이다.

성공적인 응용분야는 의학

그렇다면 아직까지 상당수준 미개척 분야인 초전도 연구는 성공적으로 적용된 예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꼭 모든 것을 알아야만 응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온 초전도체의 가능성이 열리기도 전인 1962년에 초전도체가 현재 가장 성공적으로 응용될 수 있게 해준 이론이 발표됐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대학원생이던 조셉슨은 두개의 초전도 물질 사이에 전기가 흐르지 않는 유전체를 끼어 넣어도 쿠퍼쌍이 이동함으로써 초전류가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것은 일종의 양자 터널 현상인데 쿠퍼쌍은 두개의 전자로 구성되므로, 각 쌍은 전자 전하의 두배를 운반한다. 이 현상을 ‘조셉슨 효과’라고 하고 이러한 장치를 ‘조셉슨 접합’이라 한다.

조셉슨 접합의 특징은 아주 작은 자기장도 감지할 수 있다는 것. 지구 자기장의 약 1천억분의 1에 해당하는 10-15T의 자기장도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단위의 자기장을 측정할 수 있다는 성질이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바로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다. 자기공명영상, 영문으로 보통 MRI라고 불리는 장치가 조셉슨 효과를 이용해 인간 내부를 조사하는데 쓰인다.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인체의 대부분은 물이다. 물은 원자로 구성돼 있는데, 원자 하나하나는 미세한 자기적 성질을 가진다. 실제로 MRI는 물 성분 중 수소가 가지는 자기적 성질을 이용한다. 그래서 인체 내 조직 상태에 따라 변화되는 물분자의 자기적 성질과 그 농도를 측정해 영상으로 표현해준다.

MRI는 1973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핵자기공명영상(NMR) 연구실에 있던 로테버에 의해서다. 그가 보인 MRI는 기존의 X선을 이용한 장치가 가지는 방사능 노출의 위험이 없을 뿐 아니라, 인체 내 어떤 연한 부위 조직도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해주었다. MRI는 어떤 질병의 원인이 되는 뇌 부위가 어디인지 등 인간의 건강을 위해 쓰이고 있다. 초전도체가 의학에서 먼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초전도체가 성공적으로 응용된 것은 자기공명영상장치 MRI


컴퓨터, 전력수송 분야로의 응용

그러나 자기부상열차나 MRI와 같은 교통, 의학 분야에서 보여주는 초전도체의 가능성은 일부일 뿐이다. 조셉슨 효과를 적용한 미세 자기장 측정 장치는 지질 탐사나 항공기 구조물의 균열을 검사할 수 있는 비파괴 검사에서도 이용되고 있다.

컴퓨터 소자에서도 초전도체가 사용될 전망이다. 반도체 기술은 지난 30여년 동안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돼 왔다. 그리고 꾸준히 개선돼 앞으로 15년 후에는 현재보다 약 1천배의 집적도를 갖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집적도에서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소자의 높은 전력소모로 인해 약 1.1GHz(기가헤르츠 = 109Hz) 이상의 속도를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도체 소자에서 빠른 속도를 원할 경우 전력 소모 또한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체를 초전도체로 대체하면 열에 의한 소모가 없기 때문에 아주 적은 전력을 소모하며 수백 GHz 이상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초전도의 초고속성과 저전력성을 이용한 전자회로의 개발은 일찍이 1970년대부터 미국과 일본에서 시도돼 왔다.

그러나 아직 상업화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기술로는 수 GHz를 넘지 못하며, 반도체 기술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주도로 일본과 유럽에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기술에 비해 초전도 기술은 약 1백배의 속도를 갖고 발전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전력 수송 분야에서도 초전도체가 연구되고 있다. 고온 초전도 물질로 전선을 만들면 더 많은 전류를 나를 수 있어서 전력수송의 효율이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전류수송 기기가 더욱 작아질 수 있다. 도체의 저항이 단면적에 반비례한다. 만약 구리 전선대신 초전도선으로 대체되면 전선은 20배 이상 가늘어질 수 있다.

과학자들은 초전도 현상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어떤 새로운 물질이 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성을 띠게 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만약 상온에서 가능한 초전도체가 개발된다면 20세기에 불었던 반도체 혁명을 능가하는 세상으로 뒤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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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기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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