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의 자동차가 등장할 때는 기본적으로 자동차라는 기계장치에 독특하고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다. 이처럼 포스트PC도 PC라는 현재의 개인용컴퓨터 시스템에 획기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실리콘 바퀴벌레’(silicon cockroach)라고 부른다. 부엌 찬장에서 냉장고, 세탁기, 옷장, 심지어 옷에까지 파고들기 때문이다. 실리콘 바퀴벌레는 그렇게 파고들어 우리를 이 세상의 온갖 정보와 연결시켜 준다.
그러나 이 별명은 어쩐지 징그럽다. 그 실감은 덜하지만 ‘정보 단말기’(information appliances)라는 표현이 더 온건하고 설득력 있게 들린다.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언제, 어디에서나,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는 이 개념은 ‘스며드는’(pervasive) 컴퓨팅이나 ‘편재형’(ubiquitous) 컴퓨팅이라는 표현을 낳았고, 마이크로소프트 진영에는 ‘PC 플러스’로, 반(反) 마이크로소프트 진영에는 ‘포스트PC’(Post-PC)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GPS(인공위성 자동위치측정 시스템)를 통해 낯선 길도 손쉽게 운전할 수 있는 세상, 따로 장을 보지 않아도 냉장고가 알아서 가까운 슈퍼마켓에 식료품을 주문할 수 있는 세상, 춤출 줄 모르는 사람도 몸에 붙인 센서를 이용해 최신 유행의 댄스를 능숙하게 출 수 있는 세상, 곧 포스트PC가 만들어갈 세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던 이 ‘멋진 신세계’가 갑자기 불과 2-3년 뒤의 현실로 바짝 다가오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시사주간지 ‘아시아위크’는 포스트PC 시대를 가능케 한 배경으로 다음 3가지 신기술을 들었다.
데이터 저장의 신개념 플래시메모리
애플컴퓨터는 신제품 아이맥에서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없애버렸다. 앞으로 모든 파일 교환은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질 것이라는 다소 ‘급진적인’ 전망에 따른 결정이다. 플로피디스크의 효용성이 거의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1.44MB의 용량에 담을 수 있는 파일은 거의 없다. 심지어 문서 파일조차 이미지 몇개만 첨부하면 이 용량을 넘어선다.
그러나 애플컴퓨터의 판단은 너무 성급했다. 플로피는 끝났을지 몰라도 여기에 깃든 아이디어인 임시 저장매체라는 개념은 결코 죽지 않았다. 플래시메모리 카드가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1백원짜리 동전 두개만한 두께에 우표만한 크기의 이 카드는 디지털카메라의 필름, MP3 플레이어의 음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용량도 4-2백56MB로 다양하다. 요즘 주로 쓰이는 것은 32MB, 64MB 두가지다.
플래시메모리 카드가 플로피디스크와 다른 점은 크기나 용량만이 아니다. 플로피는 PC에서 PC로 밖에 데이터를 옮길 수 없다. 이에 비해 플래시메모리 카드는 모든 유형의 정보 단말기에서 활용할 수 있다. PC에서 디지털카메라로, 또는 MP3플레이어로 데이터를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예컨대 메모리에 저장된 그래픽 정보를 보여주는 소니의 사이버프레임(cyberframe)은 일종의 디지털 사진첩이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뒤, 그 파일이 담긴 플래시메모리 카드만 사이버프레임에 꽂으면 그럴듯한 사진첩이 완성된다.
문제는 이 카드에 대한 표준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러 업체들이 제각각 다른 포맷방식을 추진하고 있다. 가령 소니는 여느 플래시메모리 카드와 조금 다른 모양의 ‘메모리스틱’(memory stick)으로 새로운 저장매체의 표준을 꿈꾼다.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데스크톱PC, 사이버프레임, MP3 플레이어 등 소니에서 만든 모든 제품들에는 이 메모리스틱을 꽂을 수 있는 슬롯이 달려 있다.
파나소닉과 도시바는 ‘SD카드’로 승부를 걸고 있다. 여기에서 SD는 ‘Secure Digital’의 약자다. 안전하고 안정적이라는 뜻을 강조한 이름이다. 올림퍼스와 후지필름의 디지털카메라가 채택한 스마트미디어(smartmedia), 코닥·니콘·캐논 등이 선호하는 콤팩트플래시(compactflash) 등도 표준 경쟁에 뛰어든 소형 저장매체다.
지금으로서는 승자를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파나소닉, 마이크로소프트, 컴팩 등 71개 전자업체가 합의한 SD카드 쪽에 좀더 승산이 있어 보인다.
초고속 무선 환경 실현
지난 12월 6일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제조사인 노키아는 2002년 상반기에 전세계 휴대전화 이용자가 10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2002년이면 웹과 연결된 휴대용 제품(핸드셋)의 보급 대수가 PC수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무선전화 가입자수가 일반전화보다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한 전망이다.
현재 웹을 쓸 수 있는 휴대전화는 두 종류. WAP(무선응용프로토콜)을 지원하는 것과, 일본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NTT도코모의 아이모드(i-mode)다. 아이모드는 전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인 기세로 무선인터넷 인구를 늘려나가고 있다. 1999년 2월 첫선을 보인 이래 지난 8월 가입자 1천만명을 돌파, 이미 일본내 유선인터넷 인구를 앞질렀다.
아이모드 이용자를 포함한 일본의 무선 인터넷 인구는 올해 11월 현재 2천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그에 비해 WAP은 에릭슨, 모토롤라, 노키아 등 5백여 기업들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느린 전송속도, 콘텐츠 추가와 접속의 어려움, 불편한 이용 환경 등으로 인해 일반인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모드와 WAP 모두는 1-2년 안에 실현될 ‘3세대’(3G) 이동통신 기술의 ‘맛보기’에 불과하다. 3G 이동통신 기술 또한 표준을 정해야 한다는 걸림돌이 남아 있지만 유선인터넷과 같이 ‘패킷’(packet)전송방식을 쓴다는 것, 현재 전화모뎀의 최고속도인 56kbps의 36배에 해당하는 최고 2Mbps의 전송속도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점 등은 분명하다. 9.6kbps나 14.4kbps 같은 거북이 전송속도를 훌쩍 뛰어넘은 광대역(broadband) 무선 송·수신 기술이 등장함으로써 ‘PC 그 이상’의 세상이 훨씬 더 앞당겨질 수 있게 된 것이다.
3G 이동통신 기술에 채택된 몇가지 주요 방식은 이미 쓰이고 있는 네트워크 기술을 일정 부분 업그레이드한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3G 이동통신 기술의 핵심에 속하는 EDGE와 GPRS는 유럽 무선전화 시장에서 사실상의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는 GSM을 염두에 둔 것이며, WCDMA는 CDMA 방식을 채택한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을 배려한 것이다.
데이터 전송을 가능케 한 블루투스
블루투스는 이름과 달리 이빨(tooth)과는 무관하다. 10세기경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통일시킨 덴마크의 하랄드 블라탄드(Harald Blatand) 왕의 별명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무선 이동통신의 핵심으로 떠오른 첨단기술 프로젝트를 지칭한다. 1998년 에릭슨, IBM, 인텔, 노키아, 도시바 등이 블루투스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1천5백여 업체가 블루투스 지원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블루투스는 약 10m 이내의 거리에서 두개 이상의 이동기기들을 무선으로 조정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술이다. 전송속도는 1Mbps. 이 네트워크 하나로 8개의 기기를 원격 제어할 수 있으며, 네트워크 수를 늘리면 그 10배까지도 제어할 수 있다. 각 가전제품이나 전자기기들끼리 무선으로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해 각 장비들간의 데이터 전송이 쉬워진다. 예를 들면 노트북에서 프린터로 출력을 하려면 프린터와 유선으로 연결해야 하는데 블루투스를 이용하면 무선으로 바로 인쇄할 수 있다. 컴퓨터끼리, 노트북과 데스크탑 PC 간의 데이터 교류도 디스켓으로 옮길 필요없이 무선으로 교류가 가능하다.
적외선(IrDA)이나 LAN에 비해 전송속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사용 주파수가 2.4GHz대로 따로 국가의 전파관리를 따로 받지 않아도 되는 면허가 불필요한 대역이라는 점, 하드웨어 구성이 간단하다는 점, 휴대전화 업체와 PC, PDA 업체 등의 폭넓은 지지를 받는다는 점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인 IDC는 2004년까지 4억5천만여개의 블루투스 단말기가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블루투스의 장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무선기술 전문지인 엠커머스타임스는 블루투스의 걸림돌로 다음 세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20달러대의 비싼 칩 가격. 최소 5달러까지 떨어져야 한다. 둘째 취약한 보안. 블루투스로 교환하는 개인정보는 마치 채팅방에서 주민등록번호를 띄우는 것과 같다는 단점을 극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높은 배터리 소모율을 낮춰야 휴대용 배터리를 사용하는 무선기기에 적용시키는데 무리가 없다.
그러나 이런 걸림돌은 블루투스에 대한 업체들의 관심, 개발노력 등에 견주면 사소하게 여겨진다. 인터넷비즈니스 전문지인‘레드헤링’도 2001년에 각광받을 기술 흐름으로 블루투스를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