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닮은 신발,로켓을 닮은 신발 뒤축,첨단신발의 디자인은 매우 파격적이다.하지만 스포츠화는 과학과 신소재가 결합돼 모양뿐만 아니라 기능도 한층 업그레이드된 측면이 있다.
지난 9월에 개최된 시드니올림픽 육상경기에서도 어김없이 첨단신발이 등장했다. 모리스 그린의 깃털 운동화, 마이클 존슨의 황금신발, 매리언 존스의 뒤축없는 스파이크 신발 등이 그것이다. 0.01초의 기록이라도 단축하기 위해 신발의 무게를 줄이고 순간스피드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것이다.
최근 미국의 대표적인 신발제조업체 나이키에서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화를 내놓았다. 그 이름은 ‘나이키 쇽스’. 로켓 부스터(추진 엔진)를 닮은 뒤축은 마치 스프링을 달아놓은 듯한 낯선 모습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반발력을 강화한다고 나이키 코리아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나이키에만 이런 첨단신발이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과학이 숨쉬는 첨단신발은 미국의 나이키 이외에 독일의 아디다스, 일본의 아식스, 우리나라의 프로스펙스와 르까프, 영국의 리복 등에서도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전력을 다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첨단스포츠화에 숨어있는 과학의 원리와 신소재를 만나보자.
에어백에서 실리콘소재까지
각종 스포츠에서 신발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를 파악하기 위해 스포츠에 나타나는 모든 동작의 기본인 달리기를 살펴보자. 달릴 때 발의 동작을 유심히 보면 크게 세동작으로 나눠볼 수 있다. 발이 지면에 닿기 시작하는 착지단계, 발 전체가 지면에 닿아 있는 기립단계, 발이 다시 지면에서 떨어지는 발진단계가 그것이다.
착지단계에서 발이 땅에 맨처음 닿기 시작하는 부위는 발뒤꿈치다. 달리기를 할 때 발뒤꿈치에서부터 아킬레스건, 무릎, 엉덩이, 등, 머리에 이르기까지 신체가 지면으로부터 받는 힘(반력)은 체중의 2-3배에 달한다. 지면반력은 달리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증가하고 점프한 후 착지동작에서는 체중의 8배까지 커진다. 그래서 이를 지탱하기 위해 보통 성인의 경우 발뒤꿈치 부분의 살 부위 두께는 13-21mm로 발의 다른 부분보다 훨씬 더 두껍다. 물론 이때 신발의 중요한 역할은 효과적으로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이다.
여러 신발업체의 스포츠화에는 지면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독특한 방법이 도입되고 있다. 주로 발뒤꿈치를 받치는 신발 뒤축에 특수장치를 하는 방식인데, 크게 둘로 나누면 공기를 이용한 방법과 소재를 이용한 방법이 있다.
공기를 이용한 방법의 대표적인 제품은 미국의 농구영웅 마이클 조던이 사용했던 나이키 에어. 이것은 신발 뒤축의 중간에 질소화합물의 일종인 SF6 가스를 주입한 후 에어 쿠션을 이용해 지면반력에 대해 완충작용을 한다. 하지만 원래 모양으로 복원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린다. 물론 이런 점을 보완한 에어의 변형제품이 여럿 나왔다. 프로스펙스의 헬리오스 시스템과 리복의 DMX 시스템도 에어를 이용한 제품이지만 공기순환을 활용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DMX가 공기의 흐름만을 이용하는 반면 헬리오스는 공기순환과 함께 뒤축에 교각 모양의 폴리우레탄 기둥을 사용한다.
충격을 흡수하는 소재로 잘 알려진 것은 아식스 젤과 아디다스의 아디프렌이다. 아식스 젤은 실리콘을 기본으로 한 소재로, 30mm 두께인 경우 10m 높이에서 생계란을 떨어뜨릴 때 깨지지 않을 정도라고 아식스 코리아측에서는 밝혔다. 단점은 고가 소재이기 때문에 많은 양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판되는 제품의 경우 비닐 캡슐에 4mm 정도의 아식스 젤이 담겨 있다.
아디다스의 아디프렌도 과거에 주로 쓰이던 에틸렌비닐아세테이트(EVA)보다 월등한 견고성과 안정성을 가지면서 충격흡수 효과가 뛰어나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된 나이키 쇽스의 뒤축에 있는 여러 기둥에도 충격흡수를 위해 경주용 자동차의 범퍼에 사용되는 고밀도 우레탄 소재가 사용됐다. 하지만 쇽스의 우레탄 기둥은 지면반력에 대해 완충기능을 하는 동시에 마치 스프링처럼 원래형태로 복원될 때 흡수된 에너지를 탄성에너지로 바꿔준다고 나이키 코리아측은 주장했다. 뒤꿈치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이는 동시에 힘들지 않게 지면을 치고 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뒤축 안쪽이 더 단단한 이유
달리기를 할 때 발뒤꿈치부터 착지한 후 발바닥 전체가 지면에 닿는 순간이 생긴다. 이런 순간이 기립단계다. 기립단계에서 중요한 요소는 발목의 접히는 정도와 방향이다. 똑바로 달리거나 발목이 바깥쪽으로 접히는 사람이 드문 반면 대부분의 경우 발목이 안쪽으로 접힌다. 문제는 발목이 과도하게 안쪽으로 접히는 경우(오버프로네이션)에 발생한다. 이때 신발의 역할은 발목이 과도하게 접히거나 뒤틀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런 기능은 방향을 빠르게 바꾸거나 미끄러지는 경우에 특히 중요하다.
이를 위해 아디다스에서는 신발의 중앙에 토션 시스템을 적용해서 발의 앞쪽부분과 뒤꿈치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발의 움직임에 안정성을 높였다. 아식스의 트러스 시스템처럼 타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도입했다. 또한 대부분의 신발제조업체에서 오버프로네이션 방지를 위해 뒤축의 양쪽 모서리 부분에 들어가는 재질의 경도를 다르게 제작하고 있다. 즉 안쪽의 경도를 크게 해 발목이 안쪽으로 접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달리는 동작이 기립단계를 지나면 발바닥의 앞부분에 의해 추진력을 받아 다시 앞으로 나가는 발진단계에 이른다. 이것은 점프를 하는 동작에서도 나타난다. 이때 아디다스의 아디프렌 플러스와 같이 탄성이 뛰어난 소재를 중창(midsole) 앞쪽에 사용하면 발진단계에서 더 큰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아식스 스포츠화에서는 기존의 EVA보다 반발력이 큰 SPEVA를 앞쪽 바닥에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스포츠화의 밑창 외에도 발등을 덮고 있는 갑피(upper)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선 발을 효과적으로 감싸는 일이다. 신발 내에서 발이 불필요하게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다음은 습기가 많지 않도록 해야 하고 통풍이 잘 돼야 한다. 스포츠 활동중에 신발 내부는 온도가 체온보다 높은 45℃를 넘기도 해 땀이 많이 차게 된다. 아식스의 에어-메쉬 구조는 보통 신발보다 3배나 통풍이 좋다고 한다. 신발등에 위치한 그물구조는 통풍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갑피의 재질이 합성섬유인 경우 비가 오거나 젖은 땅에서 습기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고 양, 캥거루, 송아지 등의 천연가죽인 경우는 발 전체에 잘 맞고 내구성이 크며 통풍성이 좋다.
마라톤화 10g 가벼워지면 기록 1분 단축
스포츠화는 경기종목에 따른 특정기능을 강화하도록 설계된다. 이를 위해 스포츠화 제작은 개발단계부터 특정경기의 우수선수와 협의하면서 진행된다. 아예 특정선수에 맞춘 스포츠화가 제조되기도 한다.
단거리나 마라톤과 같은 육상경기의 경우 신발의 무게가 기록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42.195km의 풀코스를 뛰어야 하는 마라토너들에겐 더욱 그렇다. 마라톤신발은 잠자리 날개처럼 가벼우면서도 스펀지처럼 발바닥 충격을 잘 흡수해주는 것이 최상이다. 신발 무게가 10g이 더 무거우면 마라톤 기록은 최고 1분이 늦어진다는 조사도 있다. 무게가 1백50g대인 코오롱의 카오스 신발은 1998년 로테르담마라톤에서 이봉주선수가 한국신기록을 작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황영조 선수가 가볍게 제작된 아식스 마라톤화를 신고 우승하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미국의 여자육상선수 매리언 존스만을 위한 신발이 등장했다. 존스가 달리는 모습을 5백분의 1초 단위로 정밀하게 분석하자 뒤꿈치가 땅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로부터 필요없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뒤축을 잘라냈고 소재 또한 가벼운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신발모양은 발에 맞췄으며 순간스피드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스파이크를 박았다. 이렇게 탄생한 매리언 존스의 나이키사 신발 무게는 겨우 1백g. 또한 모리스 그린의 깃털 운동화나 마이클 존슨의 황금신발도 기록단축을 위해 무게를 줄인 경우다.
축구화로 유명한 독일의 아디다스가 올해 중반 프랑스의 스트라이커 지네딘 지단과 협력해 첨단축구화를 선보였다. 이른바 ‘이큐티 프레더터 프리시즌’. 갑피가 호주산 캥거루 가죽으로 된 이 신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닥에 부착된 징이다. 징은 최초로 마그네슘 합금을 사용해 가볍고 쉽게 닳지 않으며, 축구장의 사정에 따라서 13mm 또는 16mm 길이로 교환이 가능하다. 신발등의 고무돌기는 축구공에 강한 회전을 줄 수 있고 반발력이 커 공의 속도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축구화는 유로 2000 축구대회에 등장해 위력을 발휘했다.
한편 최근 아디다스에서는 미국의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의 의견을 수렴해 ‘더 코비’라는 농구화를 개발했다. 이 농구화는 기능도 기능이지만 디자인에서 나이키 쇽스처럼 파격적이다. 디자인에는 독일의 유명 자동차회사인 아우디가 참여했는데, 신발의 앞부분은 자동차의 앞부분을 닮았고 신발의 옆면은 차체의 곡선과 유사하다.
여러 스포츠화 제작업체는 자신들의 연구소에서 개발단계부터 제작단계에 이르기까지 많은 테스트를 한다. 나이키 쇽스의 경우 1984년 개발에 착수한 뒤부터 발의 움직임, 근육, 압력 등을 테스트하는 생체역학적 실험, 충격 반응, 강도 등을 테스트하는 역학적 실험, 선수나 소비자의 반응,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필드 실험이 이뤄졌다고 한다.
단순하게 보이는 신발,특히 스포츠화는 스포츠과학과 신소재가 어우러진 첨단제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