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능을 수행하는 초경량의 컴퓨터를 말 그대로 '입고,쓰고,걸치고' 다닐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활용할 수 있다.입는 컴퓨터의 개념과 변화 양상을 살펴보면서 디지털 시대에 몰아칠 또하나의 컴퓨터혁명을 경험해 보자.
휴대전화가 삽입된 옷깃을 올려 전화를 건다. 옷소매 단추를 돌려 라디오 소리를 조절한다. MP3가 내장된 재킷은 주인의 음성만으로 작동한다. 안경에 달린 카메라로 필요한 정보를 촬영하며, 손목에 착용한 시계형 키보드로 필기구 없이도 언제 어디서나 쉽고 편하게 기록한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들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해온 컴퓨터가 이제 ‘입는 컴퓨터’(wearable computer)를 통한 또하나의 혁명을 예고한다. 인간은 컴퓨터와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책상에 놓인 모니터나 키보드가 아닌, 스스로의 몸을 커뮤니케이션의 장소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전화할 수 있는 시계, 노래 흘러나오는 재킷
월스트리트 저널은 2000년 8월 전자업체인 필립스와 청바지업체인 리바이스가 첨단 컴퓨터 기술을 옷 속에 내장한 재킷 ‘ICD 플러스’(왼쪽사진)를 공동 개발해 유럽 지역에 곧 시판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 재킷에는 휴대폰이 내장돼 있으며, MP3와 헤드폰, 소형 리모콘이 장착돼 있다. 무게는 약 1백45g. 보통 청재킷과 비슷해 입고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다. 사용 방법도 간단하다. 영화에서와 같이 옷깃을 올려 전화를 걸고, 리모콘 하나로 옷에 장착된 전자제품을 작동할 수 있다.
입는 컴퓨터의 개념은 간단하다. 각각의 독립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구성 단위인 모듈별로 컴퓨터를 분해해 마치 안경이나 의복을 착용하는 것처럼 신체에 편하게 부착해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얼굴에는 모니터가 내장된 안경, 등에는 배낭 형태의 소형 컴퓨터, 허리에는 벨트 전지, 머리에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 머리에 쓰고 화면을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 손목에 터치패드 또는 키보드, 그리고 어깨에 무선통신 모듈 등 온 몸이 컴퓨팅 시스템으로 무장된다. 배낭 형태의 소형 컴퓨터는 컴퓨터의 본체인 CPU 또는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휴대형 정보단말기)와 같은 휴대형 컴퓨터를 상상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넓은 의미를 지닌 입는 컴퓨터의 모습이다.
하지만 꼭 CPU를 등에 질 필요는 없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MP3 플레이어도 CPU 역할을 하는 칩이 내장돼 있기 때문에 ‘입을 수 있게’ 몸에 부착된다면 입는 컴퓨터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이동형 컴퓨터를 거쳐 인간의 몸에 완전히 부착시켜버리려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입는 컴퓨터를 탄생시킨 것이다.
입는 컴퓨터의 효시는 1968년 이반 서더랜드가 장식했다. 그는 입는 컴퓨터의 필수 장비로 알려진 HMD를 설계해 착용자가 가상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즉 헬멧 모양으로 생긴 HMD를 머리에 쓰고, 눈 앞에 보이도록 한 작은 크기의 화면을 통해 3차원 게임이나 오락을 즐긴다.
이후 본격적인 연구를 착수한 사람은 스티브 만. 입는 컴퓨터의 개념조차 희박했던 1980년부터 개발에 참여해 1990년대 후반까지 입는 컴퓨터의 역사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초창기에 전지기반의 컴퓨터와 헬멧에 부착된 일종의 모니터인 CRT, 카메라, 램프 등을 제어하기 위한 장치를 개발했다. 또 컴퓨터의 모듈화와 무선 연결이 가능해지면서 외형상으로 컴퓨터가 부착돼 있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작품’까지 탄생시켰다.
스티브 만에 따르면 입는 컴퓨터는 1, 2, 3세대로 나뉜다. 제1세대 입는 컴퓨터 1호는 1970년대 개발된 WearComp0로, 컴퓨터라기 보다 카메라 기능이 우선된 제품이었다. 이후 1981년 개발된 Wear Comp2는 금속 틀 내부에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장착돼 있고, 납-산 전지로 전원을 공급받는 시스템이었다. 1세대와 2세대를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컴퓨터 모듈의 분리’. 2세대 입는 컴퓨터는 분산된 컴퓨터 모듈을 선으로 연결했으며, 사용된 선은 의복에 넣고 꿰매 자연스러움을 유도했다.
이들에 비해 3세대 입는 컴퓨터의 목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게’로 정의할 수 있다. 완전한 인간 친화적 제품으로 시각적으로는 물론, 착용감에도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특히 선진국에서는 입는 컴퓨터를 이용한 첨단 연구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필립스와 리바이스의 ‘ICD 플러스’는 3세대 입는 컴퓨터를 지향하는 대표적 제품이다. 초창기에는 부피가 컸던 각종 컴퓨터의 구성요소를 몸에 붙여 착용자의 모습이 다소 어색하고 둔탁했지만, 일종의 컴퓨터 역할을 하는 각종 전자제품이 소형화되고 착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화되면서 입는 컴퓨터의 개념도 점차 발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입는 컴퓨터를 구성하는 기술이 각 분야에 맞게 적용돼야 한다.
걸프전에 동원된 랜드워리어
입는 컴퓨터의 응용 범위는 무척 다양하다. 간단한 오락과 장애인을 위한 시스템은 물론, 의료나 군사, 패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에서 효과를 발휘한다. 가정과 공장에서 입는 컴퓨터를 사용할 경우를 상상해보자. 아내의 활동이 불편해 시장에 직접 나서야 하는 남편이라면 어떤 야채가 더 신선한지, 어떤 생선이 더 좋은지 판단하기가 막막하다. 이럴 때 카메라가 설치된 안경을 끼고 시장에 나가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남편은 시장 모습을 촬영해 실시간으로 아내에게 보내고, 아내는 가정에서 HMD를 통해 원하는 물건을 골라 남편에게 알려주면 골치아픈 장보기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누구보다 입는 컴퓨터를 반기는 사람들은 장애인이다. 만일 한쪽 손이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이 음성이나 특별한 제스처를 인식하는 컴퓨터를 착용한다면 큰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 경우라도 일종의 방향 지시 카메라나 지도 등이 내장된 특수 안경을 끼면 시력 회복에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이 안경은 실제 생물학적 구조와 유사한 집적회로인 인공망막칩의 원리로 작동한다. 안경에 달린 소형 카메라에 영상신호가 잡히면 전기신호로 바뀌고, 이 전기신호는 안테나를 통해 눈 안쪽에 이식된 인공망막칩에 전달된다. 실제로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에서는 맹인의 눈에 인공망막칩을 이식해 시력을 회복시키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렇게 특수 목적으로 인간의 몸 내부에 아예 이식하는 컴퓨터 장치를 ‘웨트웨어’(wetware)라고 부르며, 입는 컴퓨터와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복잡한 기계를 수리하는 작업장에서는 어떨까. 허리에 컴퓨터를 내장한 벨트를 착용하면 ‘만사 OK’. 사용자는 기존에 사용됐던 관련 자료뿐만 아니라 자세한 수리 교본, 온라인 매뉴얼까지 제공받아 활용할 수 있다.
의료분야에서도 입는 컴퓨터의 효과는 단연 앞선다. 환자에게 센서를 부착하면 의사는 원격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즉각적인 상담이나 환자에 대한 원거리 진료가 가능하다.
군사분야에서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헬멧에 부착된 마이크와 라디오 장치로 원거리 통신을 할 수 있으며, 한쪽 눈앞에 장착된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주변 지형과 동료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헬멧에 장착된 비디오 카메라로 주위 상황을 본부에 보고하며, 의복에 부착된 센서로는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실제로 ‘랜드워리어’(Land Warrier)라는 입는 컴퓨터는 미 육군 보병을 위해 설계된 전투 시스템으로, 걸프전 당시 병사 개개인에게 지급된 21세기형 장비로 유명하다.
화려한 패션과의 만남
이렇듯 입는 컴퓨터는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와 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지만 컴퓨터가 하나의 의복으로 통합되지 않은 이상 착용과 사용에 있어서 불편함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입는 컴퓨터와 패션을 통합시키려는 노력은 어찌보면 당연한 추세다.
입는 컴퓨터와 패션을 접목시킨 최초의 시도는 1997년 시작된 MIT 미디어랩 알렉스 펜틀랜드 교수의 ‘Beauty & the Bits’ 프로젝트다. 그는 3주 동안 1백여가지 입는 컴퓨터 설계안을 도출했다. 그가 창조한 ‘테크놀로지 패션’은 모자나 신발, 보석, 의류 등에 입·출력 장치, 센서, 연결 장비 기능을 부여한 것으로, 미래 패션을 설계하는 기회로 평가받는다. 이후 1998년에는 ‘웨어러블 심포지엄 2010’을 개최해 기존에 MIT와 공동으로 제작했던 입는 컴퓨터 22벌과 새로운 작품 25벌을 선보였다. 의상의 형태는 장애인을 위해 편리한 기능을 첨가한 것과 신체의 능력을 확장·보완해 주는 것, 재미를 맛볼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의상 등 다양했다.
일본에서도 1998년 ‘Wearables Tokyo[20]’이라는 명칭으로 입는 컴퓨터 심포지엄과 패션쇼를 개최한 바 있다. 또한 1999년에는 스포츠용품업체인 아디다스, 청바지업체인 리바이스, 패션디자이너 브랜드인 쿠레주, 섬유업체인 베킨텍스, 컴퓨터업체인 바소 데이터 시큐리티, 전자업체인 렉시텔 등 7개 업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는 컴퓨터 개발에 착수했다. 프랑스 최대 통신회사인 프랑스 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향후 5년 내에 입는 컴퓨터의 기능을 내장한 패션 제품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와 다양한 산업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입는 컴퓨터가 다양한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견된 만큼 안고 있는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유해성 전자파의 차단이다. 각종 전자장치를 몸과 밀접하게 부착시키기 때문에 전자파에 대한 논란이 무엇보다 거세다.
다음으로는 배터리의 용량과 안전성 문제다. 인간의 몸에 부착하므로 배터리 폭발의 위험성을 배제해야 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항상 전원이 켜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안전하면서도 고성능을 갖춘 배터리가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발을 내딪을 때마다 가해지는 충격을 에너지원으로 전환해 배터리로 활용하는 신발이 있다면 배터리의 용량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위험 요소도 간단히 없앨 수 있다. 실제로 MIT 미디어랩 연구실에서는 자체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신발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또한 각각 분리돼 있는 컴퓨터 모듈을 선으로 연결하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선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도 문제다. 선이 내장된 의복에 대한 방수 처리나 옷에 부착된 장비가 떨어져 나갈 위험도 고려 대상이 된다.
입는 컴퓨터기술 개발업체인 ‘칼라집’(colorzip)의 이남규 이사는 “최근에는 적외선이나 블루투스(Bluetooth, 무선 데이터통신 규격의 개발코드명)와 같은 통신 모듈을 이용해 선 없이도 각 모듈을 연결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있다”면서 “극복해야 할 과제를 하나 하나 해결해야 입는 컴퓨터의 제대로 된 효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보캅을 현실에서 본다
최근 세계적인 시장조사 기관인 가트너 그룹은 유망 정보기술 빅 10을 발표하는 ‘정보기술 전망 보고서’에 입는 컴퓨터를 포함시켰다. 입는 컴퓨터가 차세대를 주도할 ‘미래 컴퓨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컴퓨터 분야뿐만 아니라 물리학, 심리학, 의학, 군사학, 그리고 의류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연계돼야 한다.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한탁돈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들조차 입는 컴퓨터 산업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 산업의 관점으로만 한정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입는 컴퓨터와 관련된 심포지엄도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또한 그는 “입는 컴퓨터는 컴퓨터 기술이라기 보다 다양한 산업이 모아져 새로운 형태의 산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입는 컴퓨터가 현실과 사이버의 원할한 교통을 위한 다리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만일 입는 컴퓨터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하나씩 풀어나간다면 조만간 ‘로보캅’과 같은 기능을 발휘하는 경찰을 도처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 입는 컴퓨터 구성도▲
귀걸이 : 액세서리로 자연스럽게 착용하는 '입는 컴퓨터'. 심장박동에 맞춰 반짝여서 혈압상태를 측정할 수 있다.
안경형 디스플레이 : 한쪽 렌즈에 액정화면을 내장했다.
스피커부착 옷깃 : 옷깃에 스피커가 내장돼 있어 이동통신이나 MP3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전도성 섬유옷 : 소매에 전도성 광섬유가 내장돼 있고, 휴대용 키보드로 작동할 수 있다.
휴대용 키보드 : 한 손으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으며, 이미 상품화됐다.
신발 : 발을 내딛는 충격을 이용해 자동적으로 전류를 만드는 기능을 연구중이다.
▽컴퓨터 소형화 추세▽
1940년대
에니악(ENIAC) : 세계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 덩치가 무려 30t. 전선 길이가 1백30km다. 1946년 펜실베니아대의 모클리와 에커트가 만들었으며, 무어학교의 전기공학과에서 가동된 이후 9년간 사용됐다.
1970년대
데스크톱 PC : 1970년대 첫 모습을 드러낸 에스크톱 PC는 점차 소형화되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의 시초를 어느 기종으로 잡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차가 있다.
1980년대
노트북 PC : 랩톱(무릎위에 올려놓고 쓸 수 있을 정도의 크기)으로부터 발달된 휴대형 PC는 노트북, 팜톱, PDA로 이어지면서 휴대하기 쉽고, 사용하기 간편한 시스템으로 개발되고 있다.
1990년대
팜톱 : 손바닥만한 크기의 팜톱. 대형 컴퓨터에서 쓸 수 있었던 다양한 기능이 극소형 컴퓨터에서도 구현된다.
PDA : PDA라는 용어는 1992년 5월 애플컴퓨터가 '뉴턴'이라는 제품을 발표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정보검색과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한 PDA는 컴퓨터 회사와 가전 회사의 공동작품으로 불린다.
▲ 입는 컴퓨터 관련 사이트 ▲
http://lcs.www.media.mit.edu/projects/wearables
http://www.cs.cmu.edu/afs/cs.cmu.edu/project/vuman/www/home.html
http://comsci.yonsei.ac.kr/~wc/index.htm
http://www.sbccom.army.mil/programs/lw
http://www.media.mit.edu/resenv/powe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