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제출 전날 늦은 밤에 열심히 워드작업을 해서 거의 마무리단계에 이르렀을 때, 발로 책상 아래의 전원코드를 잘못 건드려 컴퓨터 전원이 꺼져버린 적이 있다. 꼭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혹시 자동저장기능을 해놓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컴퓨터를 켠다.
그런데 그 기대마저 허사로 돌아가 버린 것을 확인한 후에는 컴퓨터 전원이 나가기 전 상태 그대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씁쓸한 경험을 해본 사람은 이후 워드 프로그램의 저장버튼을 수시로 누르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여러 반도체 메모리의 장점 보유
현재 컴퓨터에서 쓰이는 메모리는 여러 작업을 동시에 빠른 속도로 해낼 수 있지만, 전원이 끊기면 진행중이던 모든 정보가 사라져버리는 휘발성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매 작업이 끝나면 영구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에 작업내용을 담아둬야 한다.
그러나 머지 않아 저장버튼이 사라질 것 같다. 강유전체 물질을 사용한 F램 메모리가 등장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F램은 D램과 S램의 장점인 여러 작업에 대한 빠른 처리 속도, 그리고 MP3 플레이어에서 주로 이용되는 플래시 메모리의 장점인 정보가 오랜 시간 저장되는 비휘발성을 합친 꿈의 반도체다. F램 기술이 발달하면 이들 메모리는 F램으로 대체될 것이다. 그러면 컴퓨터가 갑자기 꺼져도 다시 켜면 끄기 전 상태 그대로이기 때문에 현재 컴퓨터 기술로 인한 문제거리가 줄어들게 된다. 국내는 세계 최고의 F램 기술을 자랑한다. 삼성전자가 작년 세계 최고 용량 4메가 비트 F램 개발에 성공했다.
성균관대학교 금속재료공학부 이재찬교수는 삼성전자와 함께 F램의 상용화를 위한 신뢰성 문제를 연구중이다. 컴퓨터 메모리에 쓰고 읽는 작업을 반복하면 메모리가 나중에 0과 1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즉 수명을 다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메모리가 상용화되기 위한 수명기준으로는 읽고 쓰는 반복작업 사이클이 1012-101 3정도 돼야 한다. 현재 개발된 F램은 이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신뢰성 문제다.
이교수가 F램의 신뢰성 문제를 연구한 역사는 깊다. 1990년대 초 박사과정 때부터다. 그는 F램의 신뢰성 문제 중 하나인 반도체 내의 전하량이 줄어드는 ‘피로현상’을 세라믹 절연체를 이용해 개선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해냈다.
이후 벨 통신 연구원에서 또다른 신뢰성 문제인 ‘비대칭성’을 선구적으로 연구했다. 비대칭성 문제는 메모리에 0과 1이 쓰여질 확률이 50%인 것이 정상인데, 어는 한쪽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이교수의 최근 최대 연구업적은 작년 10월 신문 1면을 장식했던 F램 제조에 사용되는 기존 소재의 대체 신물질인 BLT(비스무트란탄티타늄 산화물) 개발에 서울대 물리학부 노태원 교수와 함께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 물질이 국내에서 상용화되면 산업체가 그동안 반도체 메모리에 필요한 재료에 대한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할 필요가 없어진다.
하드디스크 대체할 나노저장장치
외에도 이교수는 21세기 기술인 나노과학을 채용한 전자부품의 미세화와 고밀도화를 위한 미세전자기계소자(microelectromechanical system, MEMS) 연구도 진행중이다. 미세전자기계소자에서도 F램과 마찬가지로 강유전체 물질이 이용된다. 이 물질은 가해준 전기장에 따라 누르는 힘이 달라지는 압전성질을 가지는데, 이 특성이 나노 크기의 미세한 변위소자를 제작하는데 응용된다. 이교수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지금의 정보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를 대체할 고밀도 정보저장기기인 나노저장장치의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이 연구실의 구성원은 이교수, 김용성 연구교수, 박사과정 2명, 그리고 석사과정 5명으로 이뤄져있다. 졸업생들은 삼성, LG와 같은 우수 기업체 연구소로 진출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