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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한양의 위도에 맞춘 천체관측기기

우리 조상들은 망원경이 없던 전통시대에도 1년에 50초밖에 변하지 않는 세차운도의 값을 정확히 측정할 만큼 정밀한 천문관측을 했다.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적도의식 관측장치인 간의였다.세종 때 우리나라의 위도에 맞에 만들어진 간의로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여주의 세종대왕릉에 복원된 간의.


15세기에 우리 조상들은 당시 세계적인 역법인 ‘칠정산’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은 천체운동에 대한 정확한 관측값을 기초로 한 것이다. 망원경이 없던 시절에 어떻게 그토록 정확한 관측값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한가지 대답은 바로 간의라는 관측기구에서 얻을 수 있다. 간의를 사용하면 천체가 1시간 전보다 좌우로 몇도 움직였으며, 어제의 위치보다 몇도 위로 올라갔는지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태양의 고도변화와 별의 남중시각을 알아내고 정확한 시각도 측정할 수 있었다.

세종의 비밀 프로젝트

1431년 세종은 우리나라의 위치에 맞는 독자적인 역법(曆法)을 만들기 위해 중국에 학자를 보내 역법과 천문관측 기기를 배워오도록 했다. 그 이듬해인 세종 14년(1432년)에 세종은 중국이 알지 못하게 비밀로 역법을 연구하고, 천체를 관측하며,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는 사업을 진행시켰다. 역법은 중국 황제가 제정해서 주변 국가에 나누어주는 것이었으므로, 중국에서는 조선이 자국의 역법을 독자적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 기준을 둔 역법은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오차가 있었다. 때문에 세종은 우리나라의 서울(한양)을 기준으로 한 정확한 역법을 만들기 위해 종합 천문대인 간의대(簡儀臺)를 세우고 다양한 천문관측 기구를 만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관측기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의였다.

원래 간의는 1276년 중국 원나라의 천문학자 곽수경(郭守敬)이 처음 만든 천문기구다. 5행성과 별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에서는 중국으로부터 간의 관측법과 제작법을 배워와 세종14년(1432년)에 한양(서울)의 북극고도(위도)를 정확히 측정한 후 청동으로 간의를 제작했다.

적도의식 망원경과 같은 원리

간의는 현대천문학에서 망원경을 올려놓는 적도의식 장치와 똑같은 원리로 천체의 위치를 측정한다.천체의 위치는 두가지 방법으로 나타낼 수 있다.방위각과 고도를 쓰는 지평좌표계와 적경과 적위를 쓰는 적도좌표계이다.지평좌표계는 관측자의 위도에 상관없이 천체가 지평선의 기준점으로부터 좌우로 몇도(동양에서는 24방위로 표시),상하로 몇도(고도)떨어져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반면 적도좌표계는 천구상의 황도와 적도의 교차점인 춘분점을 기준으로 적도면을 따라 경도(적경)를 재고 다시 자오선을 따라 위도(적위)를 재는 방식을 쓴다.지평좌표계는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므로 지구상의 어떤 위치에서나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좌표가 될수 없는 반면,적도좌표계는 어느 위치에서나 같은 좌표로 나타낼 수 있다.때문에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천체목록이나 위치표는 적경과 적위로 표시한다.

하지만 동양천문학에서는 적경과 적위를 나타내는 방식은 서양과 약간 다르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적위를 적도면으로부터 위로 재지 않고 북극점으로부터 아래(남쪽)로 쟀다. 이를 ‘극점으로부터의 떨어진 각거리’란 뜻으로 ‘거극도’라고 한다. 물론 적위는 ‘90-거극도’와 같으므로 의미는 같다. 또한 적경은 춘분점으로부터 재지 않고 적도면 주변에 있는 28개의 별자리(28수)의 각 기준 별로부터 떨어진 거리로 나타냈다. 이를 ‘기준 별에서 떨어진 거리’란 뜻으로 ‘입수도분’이라고 한다.


(그림1)사유쌍환과 적도환^천체가 북극에서 떨어진 각도(거극도)를 재고,특정 별자리에서 떨어진 각도(입수도분)을 재는 장치다.규형을 움직여 천체에 조준하고 각도를 읽으면 된다.오늘날의 적위와 적경을 재는 방식과 동일하다.


입수도분과 거극도, 적경과 적위

적도의식으로 관측을 하기 위해 간의에는 지구의 자전축 방향과 일치하는 극축이 있고 이 축을 중심으로 상하의 거극도(적위)를 잴 수 있는 둥근 환인 사유쌍환이 있다. 그리고 극축에 수직한 적도면을 기준으로 둥근 적도환이 회전하며 입수도분(적경)을 잴 수 있다. 또한 적도환 둘레에 있는 백각환을 사용해 시각을 측정할 수도 있다.

간의는 적도좌표계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적도에 수직방향인 극축은 지구의 자전축과 정확히 일치하도록 조정해서 설치해야 한다. 때문에 세종은 청동으로 된 간의 완제품을 만들기 전 나무로 간의를 만들어 한양의 북극고도(위도)를 정확히 측정했다. 간의는 제작 때부터 미리 측정된 정확한 수평과 극축을 맞추어 제작됐지만 오차가 생길 경우 극축을 조정할 수 있다. 적경판에 해당하는 적도환에서 적위판인 사유쌍환을 지나 그 위쪽에 부착된 후극환 내부에 있는 또다른 작은 환인 정극환 중심의 작은 구멍을 통해 당시 북극성이 보이게 조절하면 된다. 말하자면 일직선상의 원들을 시선방향으로 일치시키면서 북극이 중심원 안에 들어오도록 조절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작은곰자리 알파별(α UMi)을 북극성으로 보지만, 당시에는 그 옆의 작은 별인 천추성을 북극으로 보았다.

거극도(적위)는 사유환을 이용해서 잰다. 사유환은 쌍으로 이루어져 있는 둥근 환이며 극축(지구자전축) 둘레를 회전할 수 있어 어느 방향으로나 쉽게 돌려 방향을 맞출 수 있다. 그리고 그림 에서 보듯이 사유쌍환 측면에 천체를 조준할 수 있는 긴 막대기인 규형이 있다. 이것 또한 환의 중심을 회전할 수 있어서 자유로이 천체에 조준한 후 북극에서부터 돌아간 각도로 거극도(적위)를 측정할 수 있다. 북극 부분의 일부를 제외한 천구상의 어떠한 부분까지도 관측이 가능하다. 또한 규형의 양끝에는 직사각형의 지시표가 있는데 구멍 안에 정확히 천체를 맞출 수 있는 십자선이 있다. 규형의 양끝을 뾰족하게 해 정확히 조준한 천체의 눈금 각도를 읽을 수 있다.

입수도분(적경)은 극축에 수직으로 설치된 적도환(천구의 적도에 해당)의 눈금을 읽으면 된다. 적도환의 눈금은 28개의 별자리를 기준으로 표시돼 있다. 한 별자리의 기준별인 수거성과 다음 수거성까지의 거리는 서로 다른 간격이다. 천체의 위치는 수거성이 있는 기준점으로부터 각거리(각도)로 나타낸다. 이는 마치 임의의 기준점으로부터 10도 선분 안에 두 개의 별자리가 4.0과 8.0위치에 있다면, 기준점 0도부터 각도가 4.5도와 8.3도의 별은 각각 ‘4도 별에서 0.5도’ ‘8도 별에서 0.3도 떨어져 있다’는 식으로 나타내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6월 15일 밤 10시에 혜성은 ‘우’자리에서 3도(적경) 떨어져 있고, 북극에서 40(적위)도 떨어져 있을 때, 입수도분은 ‘우3도’ 거극도는 ‘40도’라고 나타낸다.

하루 사이에도 별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적도환도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회전한다. 그러므로 적도환을 회전시켜 하늘의 기준별과 일치시킨 다음 사유환과 규형을 움직여 관측하고자 하는 임의의 천체를 측정하면 그 기준별로부터 천체까지의 각도가 나온다. 이때 적도환 위의 눈금으로 읽으면 입수도분을 알 수 있다.

또한 간의에는 지평좌표계로 방위와 고도를 측정할 수 있도록 보조장치도 설치돼 있다. 간의의 북쪽 바닥에 수직과 수평으로 놓여있는 두개의 환이 바로 이것이다. 수직으로 놓여있는 입운환이 좌우로 회전할 때 규형으로 천체를 조준해 지평고도를 측정할 수 있다. 평평하게 놓여있는 아래의 지평환은 천체의 24방위를 측정하는데 사용한다. 지평좌표계에서 천체의 위치는 기준점의 수평이 잘 맞아야 한다. 때문에 간의에서는 수평에 대한 오차를 없애기 위해 지평환의 가운데에 수평을 잡을 수 있는 물 홈이 파여 있다. 여기에 물을 채워 물이 흐르지 않으면 수평이 맞은 것이다.
 

세종 당시의 북극성인 천추성(화살표).현재의 북극성은 작은곰자리 알파별이지만 세종 당시의 북극성은 천추성이었다.


실 끼워 시각 측정

적도환을 싸고 있는 백각환을 사용하면 시각을 측정할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의 시각법을 알아야 한다. 조선의 시각법은 효종4년(1653)의 시헌력법에서부터 12시를 96각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12시를 100각으로 나타내는 방법을 썼다. 12시 96각법은 96이 12의 배수이므로 1시간에 8분으로 1시간당 8각을 배분해 등간격의 시각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12시 100각법은 100이 12시로 나누어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1시간당 8.3333각의 시간을 배분해야 한다. 이렇게 정확히 나누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1시간 안에 등간격의 시간을 줄 수가 없어 특이한 시각법이 생겨났다. 일단 매시는 ‘초’와 ‘정’으로 2등분한다. 또한 초와 정은 각각 5개의 각(刻)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여기서 앞의 4개의 각은 등간격이지만 마지막 각은 1/6각에 해당한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1각을 6등분(이를 60분으로 함)하면 매 시각의 초와 정은 각각 4각 하고 1/6각(10분)이므로 당시의 1시(時)는 8각 20분이고 된다. 하루는 12시이므로 8각×12시+20분×12시= 96각 + 240분(4각)으로 12시 100각이 된다. 예를 들어 자시 초3각은 60분이지만 자시 초4각은 총 10분밖에 되지 않고 다시 자시 정초각으로 바뀌게 된다. 초3각과 초4각은 시간이 등간격이 아닌 것이다.

적도환을 둘러싸는 백각환의 둘레에는 이와 같은 눈금이 새겨진 시각선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 보조 장치를 통해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고 시각자의 눈금을 읽으면 시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시각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닥의 실을 끼워 시침을 만들어야 한다. 적도환과 백각환 위쪽에는 계형이라는 막대가 돌아간다. 이 계형의 양끝 조금 안쪽에는 그림과 같이 북극축으로부터 내려오는 가는 실을 연결하기 위해 작은 구멍이 뚫려 있고 양끝은 적도환의 눈금을 읽기에 알맞도록 뾰족하게 돼있다. 계형의 머리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실을 통과시키면서 북극축으로 끌어올린다. 계형에서 올라온 두개의 긴 선은 작은 원을 통과하고 4개의 선 끝은 각기 2개의 계형 양끝에 있는 구멍을 뚫고 나와 고정된다.

이제 백각환은 시각눈금이 되고 계형으로 연결된 실은 시침이 된다. 계형을 돌려 태양의 방향을 맞추면 계형의 앞쪽 실의 그림자가 바로 뒤쪽 실의 그림자와 겹쳐진다. 즉 두개의 실과 태양을 일치시켜 규형의 끝이 백각환에서 지시하는 곳이 바로 태양의 위치이며 이때 백각환 위에는 12시와 100각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태양의 위치에 맞는 시각을 읽을 수 있다. 밤에는 각 계절에 정해진 시각에 남중하는 별(중성)을 측정하면 시각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간의의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간의는 실제로 복원해서 조작해볼 때 그 과학성과 편리성이 더 잘 드러난다. 경기도 여주의 세종대왕릉에는 필자의 설계로 지난 1997년에 복원된 간의가 설치돼 있다. 그리고 2000년 5월에 한국천문연구원에 제 2호 간의가 복원됐다. 과학문화재를 복원하면서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과 선조들의 과학적 창의성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간의를 통해 천체들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하고 그 운동을 정확히 기술해낼 수 있었다. 태양의 운동(지구의 공전운동)이 여름에는 얼마나 느리고 겨울에는 얼마나 빠른지, 목성의 겉보기 운동이 천구상에서 몇 도 움직이며, 또 아주 미세하게 오차를 만드는 세차운동으로 인해 별의 위치가 10년에 몇 분이나 움직이는지를 알아냈던 것이다. 간의를 이용한 정밀한 관측을 바탕으로 천체운동의 정밀한 수치가 나올 수 있었고, 또 이를 바탕으로 우리 조상들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역법을 만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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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진행

    강선욱
  • 이용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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