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
지구상에 살고있는 생물체들과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물(인간을 포함해서)들은 거의 모두 대칭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대칭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균형 잡힌 대칭구조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끼는지 모른다. 이러한 생물의 대칭성은 틀림없는 진화의 산물이다. 그들이 처하고 있는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형성된 것이다.
생명은 원시바다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바다 속은 육지와는 달리 태양의 강한 자외선이 닿지 않으며 비열이 크기 때문에 급격한 온도변화도 없다. 이러한 바다 속에서 원시적인 단세포 생물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부유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든 방향으로 대칭성을 가지고 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은 구대칭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보는 이유다.
바다와 민물에 살고 있는 다양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규조류들은 방사대칭 또는 좌우대칭을 하고 있다. 좀더 진화한 생물들은 바다 밑이나 육지에 정착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뚜렷한 상하 축이 만들어졌다.
전후좌우 구분 없는 식물
어느 식물이든 땅 속에 박고 있는 뿌리 끝과 하늘로 솟아오르는 줄기 끝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그러나 바다에 사는 식물이든 땅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이든 앞뒤나 좌우의 차이는 거의 없다. 그것은 대개의 식물이 대체로 원뿔과 비슷한 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수직 방향의 대칭면은 무한히 많지만 수평 방향의 대칭면은 없다. 일례로 나무는 분명히 아래위를 분간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나무의 앞인지 뒤인지 또는 좌우인지 구별할 방법은 없다.
꽃만을 두고 보면 이들은 대체적으로 방사대칭을 이루고 있다. 원시형의 꽃은 방사대칭이나 진화된 꽃에서는 종종 좌우 대칭을 보이는데, 좌우 대칭형의 꽃은 마치 열쇠와 자물쇠의 관계처럼 수분매개자와 잘 걸맞으며 특별히 제한된 동물만을 수분매개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과일 중에는 구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더러 있다. 오렌지, 배, 코코넛 등이 그런 종류이다. 포도나 수박과 같은 과일은 원통대칭(하나의 공통 축을 지나는 무수한 대칭면과 이 축에 수직 방향으로 전체를 이등분하는 하나의 대칭면을 가지는 대칭)이다. 바나나는 좌우 대칭의 예이다.
나선 구조는 비대칭
식물의 세계에서 비대칭을 이루고 있는 가장 좋은 예는 그 일부가 나선 구조를 가지고 있는 식물이다. 나선형은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오른 나사와 왼 나사이다. 왼 나사는 오른 나사의 거울상이다. 나선형은 식물의 세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줄기, 대, 덩굴손의 모양뿐만 아니라 씨, 꽃, 솔방울과 같은 구과(毬果), 잎 등의 구조, 그리고 잎이 줄기에 붙어 있는 모양에 이르기까지 나선은 식물 전반에 걸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선형의 가장 일반적인 모습은 다른 식물을 감고 올라가는 덩굴식물에서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덩굴식물이 막대기나 나무 또는 다른 식물을 감고 올라갈 때 대부분은 오른쪽 감기이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종류도 수천 가지나 된다. 어떤 종(種)은 양쪽감기를 모두 가지기도 하지만 대개 한 종은 일정한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습성을 가진다. 예를 들면 인동과(忍冬科)에 속하는 덩굴은 언제나 왼쪽 감기이다. 또한 메꽃과(나팔꽃도 여기에 속한다)에 속하는 식물들은 항상 오른쪽 감기를 한다. 같은 방향의 감기를 하는 두 식물이 서로 얽히면 깨끗한 이중 나선을 만들지만, 서로 다른 방향의 감기를 하는 식물들은 형편없이 뒤엉키고 만다.
움직임으로 앞뒤를 구별
말미잘처럼 혼자 힘으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다른 생물에 달라붙어 고착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대부분의 식물과 마찬가지로 대개 원추 모양의 방사대칭을 이루고 있다. 느릿느릿 약하게 움직이는 극피동물(불가사리, 해삼, 성게 등)이나 해파리류도 원추대칭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동물들은 바닷물 속에서 부유하거나 바다 밑바닥에 붙어서 생활하기 때문에 어떤 방향에서도 동일한 비율로 위험이 닥쳐온다.
그러나 어떤 동물이 일단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힘을 가지게 되면 필연적으로 앞 뒤 구별이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바다 생물의 경우, 먹이를 찾아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동물들은 고착생활을 하거나 느린 속도로 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동물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이 경우 입이 뒤쪽보다는 몸의 앞쪽에 붙어 있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입이 앞에 붙어 있다면 물고기는 먹이를 향해 곧장 나아갈 수 있어 다른 동물들이 가로채기 전에 먹을 수 있게 된다. 입의 위치라는 한 가지 특징만으로도 충분히 물고기의 앞뒤를 구분할 수 있다. 눈과 같은 다른 기관도 뒤보다는 앞쪽의 눈 근처에 위치하는 편이 나은 것은 분명하다. 물고기는 이미 자기 몸이 지나친 곳보다는 다가가고 있는 곳을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물 속을 헤엄쳐 다닌다는 단순한 사실 덕택에 물고기는 앞뒤를 구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됐고 다른 바다 생물과 구분됐다.
등과 배 구분은 중력 효과
이동력을 가진다는 특징은 앞뒤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중력의 힘으로 인해 동물의 상하구별, 즉 등 부분과 배 부분의 구별을 만들어 주었다. 사람의 경우처럼 동물이 직립하게 되면 등과 배는 앞뒤가 되고 머리와 다리가 아래위를 이루게 된다. 바다처럼 물에 둘러싸인 환경에서는 좌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물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앞뒤는 매우 중요하다. 앞쪽은 물고기가 헤엄쳐 가는 방향이고 뒤쪽은 지나온 곳이기 때문이다. 위로 헤엄쳐 올라가면 해수면에 다다르고 아래로 헤엄치면 바다 밑에 닿는다. 왼쪽을 둘러봐도 오른쪽을 봐도 그저 바다일 뿐이니, 왼쪽이나 오른 쪽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또한 바다 속에는 중력처럼 한쪽 방향으로만 수평으로 작용하는 힘이 없다. 물고기의 지느러미나 눈이 좌우 방향으로 거의 동일하게 발달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파충류가 육지 위로 기어올라가 조류와 포유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좌우 대칭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서도 좌우 대칭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만한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아래위의 차이는 동물의 구조에 훨씬 더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땅 위에서 이동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부속기관들이 필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앞뒤의 차이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 속과 마찬가지로 땅 위나 공중에서도 좌우는 중요한 차이를 가지지 않는다. 하늘을 나는 새나 정글에 사는 동물은 좌우가 크게 다를 바 없다. 육상동물이나 새가 파충류 시절과 같이 여전히 좌우 대칭을 하고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구와 지구에 미치는 힘들이 대체적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동물의 신체가 가지는 근본적인 좌우대칭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런 동물에게 아무리 사소한 부분에서라도 좌우 균형이 깨진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오른쪽 눈을 잃어 애꾸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보이지 않는 오른쪽에서 다른 동물의 공격을 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동물이든 조금이라도 좌우 균형을 잃게 되면 살아남는 데 큰 지장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겉모습은 대칭 내부는 비대칭
우리들이 균형이 잘 잡힌 누드를 보면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옷을 벗은 사람의 몸이 거의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비대칭을 이루는 경우가 아주 드무나 남성은 기묘하게도 대개 왼쪽 고환이 오른쪽보다 낮게 쳐져서 비대칭을 이룬다. 이외에도 사소한 부분에서 여러 가지 비대칭을 찾아 볼 수 있다. 한쪽 어깨가 조금 올라갔다든가 한쪽 가슴이 큰 사람도 있다. 왼쪽 가슴이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른쪽 가슴이 큰 사람이 있는 것처럼, 이러한 편차는 몸의 어느 쪽에 집중되기보다는 같은 비율로 나타난다.
신체의 근육이나 골격도 좌우 대칭이 유지된다. 그러나 내장기관들은 대개 비대칭적으로 위치해있다. 심장과 위, 지라는 왼쪽, 간과 맹장은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다. 또한 오른쪽 폐는 왼쪽보다 크다. 장이 감겨있는 모양과 방향은 완전히 비대칭이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행동이나 습관 중에는 두드러지게 비대칭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른손잡이이다. 오른 손은 왼쪽 뇌의 지배를 받는다. 즉 일종의 좌뇌현상인 셈이다. 한때는 이러한 현상이 선천적 경향을 가지지 않으며 방향이 결정되는 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양육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했듯이 우리의 손은 천성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인 것은 유전적 경향이며 이러한 증거는 오랜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발견할 수 있다. 한가지 예로 사람의 옆얼굴을 그린 그림의 경우 오른손잡이라면 왼쪽을 향하고 있는 얼굴을 그리는 편이 쉽다. 선사시대의 도구나 무기의 생김새, 그림에 나오는 일하는 사람이나 싸우는 사람의 모습 등이 그런 단서를 제공해준다.
오른 손을 더 좋아하는 인류
왜 모든 인류가 오른 손을 더 좋아하는 선천적인 경향을 가지게 됐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한다. 진화단계에서 인류와 가장 가까운 원숭이와 유인원은 양손을 모두 사용한다. 개체로서는 어느 한쪽 손이나 발을 더 선호할 수 있겠지만, 종 전체를 놓고 볼 때 오른쪽 방향과 왼쪽 방향이 대개 같은 비율로 나뉜다.
아주 오랜 옛날에 사람이 사람과 원숭이의 공동조상으로부터 진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작용으로 인해 이 비대칭적 습관이 형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원시인이 적과 싸울 때 창이나 칼을 오른 손에 쥐는 편이 상대의 심장을 찌르는데 유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오른쪽을 더 선호하는 돌연변이나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을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내용으로 볼 때 생물체의 대칭성은 일차적으로 생물분류에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몸의 대칭성을 보는 것은 그것이 제시하는 진화과정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생물체의 구조는 기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존전략을 알려준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과정에서 나타나는 비대칭성이다. 열린계인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생명과정에서 환경에 의해 초래되는 대칭성의 파괴는 생물체의 대사기능에 대해 비대칭적인 간섭효과를 나타내며, 이는 생명현상에서 흐름과 힘의 관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생명현상은 완결된 무엇이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