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오스왈드 에이버리가 DNA(디옥시리보핵산)가 유전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일,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이 생명 복제의 신비를 간직한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일은 유전 연구에 있어서 대단한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 혁명은 알고 보면 불씨에 불과했다.
인간의 경우 DNA는 23쌍(한쌍은 X, Y의 성염색체)의 염색체로 이뤄졌다. 이를 연결하면 폭 1천억분의 5cm, 길이 1백52cm가 된다. 이 안에는 30억개의 염기쌍이 들어 있다. 염기는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4종류가 있으며, 이들은 AT, TA, GC, CG 등 4가지 염기쌍을 통해 유전암호를 만든다. 그렇다면 DNA 안에 있는 염기쌍들은 어떤 순서로 이뤄졌으며, 각각의 유전자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DNA가 유전에 관여한다는 것뿐 그 이상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줄 첫번째 열쇠는 1958년에 발견됐다. 미국의 생화학자 아서 콘버그(1918-)와 스페인 출신의 세베로 오초아(1905-1993)가 박테리아로부터 DNA를 복제하는 효소를 찾아낸 것이다. 이 효소는 DNA와 단백질을 공급하면 DNA를 주형(鑄型)으로 삼고 단백질을 재료로 사용해 똑같은 DNA를 만들어냈다. 콘버그와 오초아는 이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중반 마셜 니런버그(1927-), 로버트 홀리(1922-1993), 고빈드 코라나(1922-) 등은 DNA의 유전정보를 이용해 아미노산이 어떻게 단백질로 합성되는지를 밝혀 유전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세사람은 196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1960년대 말 DNA 안에 어떤 유전자가 들어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유전자 가위가 발견됐다. 제한효소라고 불리는 유전자 가위는 DNA 분자를 정확한 위치에서 잘라줄 뿐 아니라 특정한 유전자를 찾아 다른 유전자들과 분리시켜 주기도 한다. 제한효소의 발견으로 DNA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를 발견한 스위스의 분자생물학자 베르너 아르버(1929-), 미국의 대니얼 네이선스(1928-)와 해밀턴 스미스(1931-) 등은 197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한편 제한효소의 발견은 인간과 생물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를 ‘판도라의 상자’를 하나 안겨주었다. DNA 재조합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DNA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어디든 옮겨 다닐 수 있다. 박테리아의 DNA를 식물에 넣을 수도 있고, 인간의 DNA 조각을 동물의 DNA에 붙일 수도 있다. 제한효소를 이용하면 모든 생물의 DNA를 마음대로 자를 수 있기 때문에 DNA를 붙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1969년 캘리포니아대학(LA)의 허버트 보이어(1936-)는 제한효소로 DNA를 자르면 그 끝이 계단처럼 드러나 마치 벨크로처럼 접착력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사실을 들은 스탠리 코언(1922-)은 1973년 두가지 박테리아의 DNA를 붙이는데 성공했다. 그는 처음으로 DNA가 이종간에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과, 이를 통해 클로닝(cloning)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클로닝이란 조직의 일부를 이용해 생명체 전체를 창조한다는 것. 이때부터 클로닝이란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제한효소와 DNA 재조합기술의 발견은 DNA 속에 염기들이 어떻게 배열돼 있으며, 특정한 유전자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영국의 생화학자 프레드릭 생어(1918-)는 1954년 최초로 인슐린의 아미노산 배열을 완전하게 분석했다. 단백질이 아미노산만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 이 공로로 195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연구열은 식을 줄 몰랐다.
그는 1961년 DNA 가닥을 따라 존재하는 뉴클레오티드 세개가 한개의 코돈(codon)을 구성한다는 것과, 이 코돈에는 특정한 순서로 아미노산을 조립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을 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DNA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을 발견한 것이다. 게다가 1978년 처음으로 파이X174 바이러스 DNA 안에 있는 5천3백86개의 염기를 완전하게 배열했다. 이 공로로 1980년 월터 길버트(1932-), 폴 버그(1926-)와 함께 두번째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1982년에는 DNA 재조합기술을 이용해 박테리아에 인간의 인슐린 유전자를 집어넣어 세번째 노벨상을 받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유전학자들은 인간 유전자지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3쌍의 염색체 안에 어떤 유전자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폴 버그는 “모든 인간의 질병은 유전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비록 과장된 말이지만 유전학자들은 많은 병이 유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유전병을 해결하려면 인간 유전자지도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 1981년 학자들은 약 10만개의 인간 유전자 중 5백79개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1985년 캘리포니아대(샌타크루즈)의 로버트 신세이머 교수가 처음으로 인간게놈을 해석해보자는 회의를 소집했다. 게놈(Genome)은 ‘유전자 전체’라는 뜻. 즉 30억개의 염기쌍을 배열하고, 10만개에 이르는 유전자의 위치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학자들의 관심이 큰 만큼 사공도 많았다(특히 이를 상업화하려는 기업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1988년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이 미국 국립보건원의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면서 겨우 가닥이 잡혔다. 그리고 1990년 10월 1일 국립보건원은 30억달러를 들여 2005년까지 인간 유전자지도를 완성하겠다고 발표했다. 1996년 말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유전자 전체의 16%에 해당하는 1만6천3백54개의 위치를 밝혀냈다. 이 안에는 생체시계유전자, 비만 유전자, 골수암 유전자 등이 들어있다.
이를 바탕으로 1999년 9월 2일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전자 치료를 실시했다. 20여년 동안 근육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에게 근육단백질 형성에 필요한 유전자를 주입한 것.
그러나 인간게놈은 잘못 사용하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1997년 11월 11일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제29차 총회에서는 ‘인간 게놈과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186개 회원국 전원의 찬성으로 채택됐다. 이 선언문에는 유전 연구가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