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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의 묘약, 냄새와 호르몬

스스로의 향기를 잘 유지하고 사랑의 묘약인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생활을 한다면 우리들의 삶이 보다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사랑의 묘약


사랑을 구할 때나 속삭일 때는 어떤 감각이 가장 중요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일차적인 이유가 외모인 것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인간은 대뇌가 발달했기 때문에 시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한다. 사랑과 후각이 동일시되는 동물들과는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인간도 상대를 선택하는데 있어 냄새, 즉 후각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사람에게도 페로몬이 있다는 말일까. 동물의 짝짓기에서 나비 수컷은 암컷이 체외로 방출한 극미량의 페로몬을 감지해 10km 떨어진 곳에서도 정확히 암컷에게로 날아갈 수 있다. 이외에도 개나 사슴 등의 포유동물 대부분은 짝짓기를 하기 전에 상대 생식기 부분의 냄새, 즉 페로몬을 맡고 성적 자극을 받는다.

사람의 경우에도 페로몬이 방출되고 그 냄새는 마치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를 가능성이 높은 ‘나만의 향기’이다. 장기 이식에서 문제가 되는 조직 적합성 항원이 향기의 유형을 결정하는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또는 좁은 실내에서 접하는 여러 인간의 냄새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좌우된 경험은 없는지 가만히 생각해 볼 일이다.

안방 마님의 사향

몇해 전 프랑스에서는 용모나 체격 수준이 비슷한 건강한 남성들을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시킨 후 셔츠를 벗게 했다. 여러 여성들에게 이 셔츠의 냄새를 맡게 한 후 호감도를 조사했다. 그런 다음 실제 남성들을 차례로 보게 하고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호감을 갖는 냄새의 셔츠 주인이 역시 선호됐다. 외모는 별로인데 호감이 가고 편안한 애인을 갖고 있거나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있다면 그 경우는 대개 ‘향기’가 개입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페로몬도 다른 동물들처럼 지방이나 스테로이드 계통의 성분으로 방향성과 휘발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남성 페로몬에는 16-안드로스텐(16-androstene)이 있는데, 이는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것이 만들어지지 않는 17세 소년의 경우 성염색체는 XY이면서도 2차 성징이 없는 외형상 여성인 사례가 보고됐다. 불행히도 현대인들은 스스로의 향기를 목욕으로 씻어내고 향수로 덮어 감춰버린다. 사랑이 식거나 깨지는 경우 후각은 무시하고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의존해 짝을 맺기 때문은 아닐까. 짝사랑으로 고민할 필요없이 그 대상이 좋아하는 향기를 알아내 이를 사용하면 사랑을 쉽게 쟁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선조 사대부 가문의 여인들을 가장 기쁘게 한 선물은 사향이었다. 사향은 흔히 노루 배꼽이라고 불리는데, 번식기의 암컷 사향에서 방출되는 향은 수컷들을 자극해 힘겨루기를 유도한다. 첩들과 경쟁을 하면서도 투기를 해서는 안되는 마님들은 이를 몸에 은밀히 지니면서 서방님의 사랑을 기대해 보았을 것이다. 지금도 널리 쓰이는 면도 후에 사용하는 로션이나 남성용 향수에 사용되는 무스크향이 바로 사향의 향이다. 과거 여인들의 지혜를 볼 때 이 무스크향은 남성보다는 여성들이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또 나르시시즘에 빠진 경우가 아니라면 향수나 샴푸는 다른 사람, 특히 애인이 좋아하는 것을 사용하는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전통적인 생식호르몬 GnRH

체취가 몸밖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징표라면 몸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징표는 호르몬이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호르몬이 있다. 이 호르몬 중에 특히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들을 고르라면, GnRH, 스테로이드 호르몬, 옥시토신, 그리고 내인성 오피오이드를 들 수 있다.

포유동물의 생식 현상 조절은 암수 모두 뇌의 바닥 부분에 있는 시상하부와 이에 연결된 뇌하수체, 그리고 정소와 난소로 구성된 시스템에 의해 조절된다. 시상하부에서는 GnRH라 불리는 아미노산 10개로 이루어진 펩타이드 호르몬이 분비된다. GnRH는 뇌하수체의 여포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FSH)과 황체형성호르몬(LH) 분비를 자극하는데, FSH는 생식소의 발육을 촉진시키고 LH는 특히 암컷의 배란을 유도한다. FSH와 LH에 의해 생식소에서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정자와 난자는 성숙한다.

GnRH는 진화적으로 매우 오래된 물질로 하등한 동물에서부터 번식에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트(효모)가 정상적인 경우에는 이분법(무성생식)으로 증식을 하지만, 먹이가 없거나 환경이 나빠지면 두 개체가 합쳐지면서 유전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유성생식)을 택한다. 이에 관여하는 것(α-mating factor)이 GnRH와 유사한 아미노산 서열을 갖고 있다.

포유동물의 성체에서 GnRH를 분비하는 신경세포는 뇌의 시상하부와 그 좌우의 후엽에서 발견되는데, 이 신경세포들은 본래 태아기에 후각상피, 즉 코가 될 부분에 위치하던 것이 뇌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따라서 생식과 관련된 GnRH의 경우 후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개연성이 있다. 칼만신드롬(Kallmann syndrome)을 보이는 남성에게 비교적 빈번하게 발견되는 X염색체 연관 유전자 이상 증후군이 있다. 이때의 증상은 후각상실과 외부 생식기 왜소현상, 그리고 불임 등이 나타난다. 특히 2차성징이 나타나지 않아 계속 어린이 모습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오르가슴은 남녀 모두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에 의해 조절된다. 한마디로 중독 걱정이 없는 안전한 성적흥분제라고 할 수 있다.


옥시토신은 성적흥분제

생식에 있어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정상적인 생식기능의 조절과 유지 외에도 매우 다양한 역할을 한다. 여성에게도 남성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일부 합성되는데 이는 여성의 체모 발달 등에 관여하며 성행위시의 쾌감 증진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 여성용 ‘비아그라’라는 이름으로 개발중인 약의 주성분이 바로 남성 스테로이드로, 남성용 비아그라가 갖는 발기촉진과 유지기능과는 기본적으로 거리가 멀다.

오르가슴이라 불리는 성적 극치감은 남녀 모두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옥시토신에 의해 조절된다. 많은 동물실험에서 옥시토신이 짝짓기, 성적 흥분, 오르가슴, 둥지 만들기, 출산이나 산란, 젖먹이기 등의 모성행동을 유도한다는 것이 알려졌다. 인간의 경우에는 자궁수축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고, 출산에 앞서 분비되면 자궁근육의 수축을 유도해 아기의 출산을 쉽게 하고(분만을 유도하는 주사 성분이 바로 이것), 아기가 젖을 빨거나 울 때 산모의 젖을 분비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은 물론 남성의 경우에도 오르가슴을 느낄 때 옥시토신이 다량 분비돼 음경의 해면근과 항문 괄약근의 활성을 조절해 성행위시의 분비물 분비와 사정, 가벼운 경련 그리고 성적 만족감이 일어난다. 옥시토신 분비가 왕성한 여성의 경우 오르가슴을 여러 번 반복해서 느낀다는 보고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옥시토신은 중독될 염려가 없는 안전한 성적 흥분제가 될 수 있다. 흥분제 또는 최음제로 오용되는 필로폰, 코카인, 마리화나 같은 마약성분들은 모두 중독성이 있다. 성기능장애와 불임은 물론 조직 괴사, 각종 감염 증가, 성격 파탄, 행동 조절의 실패 등 돌이킬 수 없이 심각하므로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


격렬한 운동을 하면 엔도르핀이 지나치게 많이 생성돼 여성의 경우에는 가슴발육 부진이, 남성은 발기부전이 나타날 수 있다.


엔도르핀의 두 얼굴

우리 몸에서는 마약과 유사하지만 중독성이 없는 물질이 만들어진다. 이를 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타이드라고 한다. 그 가운데 엔도르핀과 엔케팔린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통증을 억제하기 위해 몸에서 만들어내는 일종의 모르핀과 유사한 성분인데, 생식과 관련해서는 주로 억제 성분으로 작용한다. 쉽게 말해 성적인 면에서 GnRH는 양이고 엔도르핀은 음이 된다.

한때 유행했던 건강법에서 소개된 바와 같이 엔도르핀은 유쾌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많이 분비돼 면역기능을 높혀주고 통증을 완화해 주지만 생식에는 악영향을 준다. 하루라도 조깅을 쉴 수 없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드시 달리는 조깅중독자, 하루에 4시간 이상 격렬하게 연습하는 발레리나와 운동 선수들의 혈중 엔도르핀 농도는 ‘정상적인 수준’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보다 훨씬 높다. 엔도르핀 농도가 높을 경우 여성은 생리이상과 이에 따른 불임 증상도 훨씬 높아지고 남성의 경우 발기부전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운동량이 많은 종목의 여자 선수들 가운데 가슴(유방)이 발달하지 못한 경우도 따지고 보면 엔도르핀이 지나치게 많이 생성됐기 때문이다.

체내 엔도르핀 분비를 높이는 방법으로 채식과 늘 기쁜 마음으로 생활할 것을 권한다. 이것은 신부, 수녀 그리고 승려 같은 종교가들이 실천하는 바다. 원칙적으로 생식 행위가 필요 없거나 금욕생활을 해야하는 그들에게 엔도르핀은 꼭 필요한 물질일 것이다.

생리학적인 관점에서 ‘사랑’은 적당한 때가 되면 냄새로부터 시작돼 체내에서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들에 의해 조절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과거 동물 수준의 생활 방식들을 점차 잃어가면서 여러 감각 중에서 특히 시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졌다. 따라서 잡지, TV, 컴퓨터 등의 대중 매체를 통해 성적 매력이 획일화, 상품화되는 경향이 있다. 냄새에 대한 취향 등 생물학적인 궁합은 고려하지 않고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배우자 선택 방식 때문에 파경이 증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세월이 지나면 가장 먼저 시각적인 아름다움이, 다음 후각적인 매력이 사라진다. 독서와 생활에서의 경험으로 다듬어진 지성미나 교양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이 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덜 안타까워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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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성호 교수
  • 사진

    GAMMA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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