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3. 유전공학으로 탄생할 21세기 신한국인

엇비슷한 용모 갖춘 슈퍼맨

현재보다 머리가 좋고 외모도 뛰어난 신한국인이 21세기에 탄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 하지만 유전자가 변형된 채 태어난 인간이 생리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83년 충북 청원군의 한 동굴에서 흥미로운 뼈화석이 발견됐다. 약 4만년 전 구석기 시대에 살았다고 추정되는 5살짜리 어린아이의 유골이었다. 처음 발견한 광산 직원(김흥수)의 이름을 따 ‘흥수아이’라고 불리는 유골의 주인공은 어떤 모습일까. 4만년이나 지난 현재 한국 어린아이의 모습과 많이 다를까.

그렇지 않다. 1997년 충북대학교 고고미술학과 이융조 교수가 복원한 흥수아이의 청동상은 1백20cm 정도의 키에 좁고 긴 계란형의 머리 모양을 한 ‘평범한’ 외모를 갖췄다. 단지 뒤통수가 유난히 튀어나온 짱구라는 점, 그리고 아래턱이 상당히 발달했다는 점 정도의 특징이 발견된다. 물론 고고학자의 관점에서는 중요한 차이겠지만 일반인에게는 별종으로 보일만한 특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스티븐 호킹의 예언

하지만 4만년 후 미래의 한국인이 현재 우리의 외모를 알게 된다면 크게 놀랄지 모른다. 그들의 눈에는 현재의 한국인 대다수가 체격이 왜소하고 병에 잘 걸리는 ‘열등한’ 사람들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해 지능과 건강, 그리고 외모 모두 뛰어난 형질을 갖춘 ‘슈퍼맨’이 한국에 주류를 이룬다는 전제 아래에서 말이다. 그런데 21세기가 지나기 전 우수한 형질로 무장된 ‘신한국인’이 실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미래 한국인의 모습을 점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재까지 키나 몸무게, 그리고 얼굴의 골격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예측할 뿐이다. 물론 ‘현재까지의 추세대로 간다’는 전제 아래에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다.

하지만 커다란 변수가 있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유전자를 변화시킨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고고학자들은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시점을 대략 4백50만년 전으로 파악한다. 이 긴 시간 동안 인간의 유전자는 지구에서 생존하는데 가장 적합한 형태로 ‘천천히’ 적응돼 왔다. 한 집단에서 이따금씩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예를 들어 키가 유난히 큰 사람이 등장하면 상황에 따라 두가지 일이 벌어진다. 그 사람이 자연적으로 선택돼 몇세대 후 키 집단 구성원이 모두 큰 사람들로 바뀌거나, 반대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돼 사라지는 일이다.

그런데 현대 유전공학은 이 자연적인 흐름에 종지부를 찍을지 모른다. 인간이 직접 유전자를 조작해 형질 자체를 변형시킨다면, 그리고 이 유전 형질이 다음 세대로 계속 전해진다면 자연적인 진화는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인간이 진화의 속도와 방향을 통제하는 시대가 열린다는 말이다. 그리고 현대 유전공학은 이 일을 실현시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영국의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다음 세기에 유전적으로 변형된 새로운 인간이 탄생할 것”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호킹은 “경제적 이유로 허용된 동식물에 대한 유전자 조작이 인간에게도 확대될 것이며,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 인간을 개조하고 개선하는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몇세기 뒤의 인간은 지금과 다른 외모를 갖게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최근에는 미국 조지메이슨대의 정책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비슷한 견해를 밝혀 관심을 끌었다. 그는 ‘국가 이해’라는 외교전문 계간지에 기고한 논문에서 “미래 생명공학의 가장 큰 성과는 인간의 본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잠재력를 갖췄다는 점이다” 라고 말하고 “변화된 본성이 자손에게 전달돼 결국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탄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유방암이나 알츠하이머 치매와 같은 난치성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물론 공격성과 같은 인간의 나쁜 성격을 결정짓는 유전자를 제거하면 새로운 체질과 성격을 갖춘 인간이 탄생한다는 말이다.


세계 모델 대회에 참가한 미녀들. 미래에는 머리 색깔이나 옷맵시만 다를 뿐 얼굴, 몸매, 그리고 신장이 거의 동일한 미남 미녀가 대거 출현할지도 모른다.


한쪽이 발달하면 다른쪽은 기형

후쿠야마 교수는 현재 정보기술의 범람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생명공학의 기술을 반대하거나 그 발전 속도를 늦추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 국가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우수한 인간을 배출하기 시작할 것이고, 여기에 자극을 받은 다른 나라들도 경쟁적으로 같은 일에 뛰어드는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사실 호킹과 후쿠야마의 얘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몸에 필요한 특정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 환자에게 정상 유전자를 삽입하는 ‘유전자 치료법’이 이미 1990년부터 성공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아예 수정란 단계부터 발병유전자를 찾아내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이런 시술을 받고 태어난 아기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온 고질적인 유전병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뿐더러, 더이상 자손에게 병을 물려주는 일이 멈춰진다.

문제는 단순히 질병 치료 차원을 넘어 ‘우수한’ 형질을 주입하려는 시도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홍욱희 소장(세민환경연구소)은 “내 아이가 나보다 뛰어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제하고 “예를 들어 운동을 잘하고 근육질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망이 이제 현실화될 수 있는 날이 가까워졌다”고 설명한다. 인간 유전자의 구조를 낱낱이 파헤치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애초보다 2년 빠른 2003년에 완성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근육 형성 유전자이든 운동신경 유전자이든 원하는대로 인간의 형질을 찾아 바꿀 수 있는 ‘설계도’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만일 이런 일들이 실현된다면 미래 인간은 어떤 외모를 갖추게 될까. 홍욱희 소장은 "현재보다 비슷비슷한 사람이 많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델은 대략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멋진 탤런트의 외형을 좇으려는 인간의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탓이다. 오똑한 코와 짙은 눈썹을 만드는 유전자를 기존의 유전자와 대체시키면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렇다면 영화 '슈퍼맨'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현실에서 대거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형질이 우수해진다고 해서 행복감이 증가한다는 보장은 없다. 한 예로 우수한 사람이 많아지면 그 사이에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인간 사이의 따뜻한 유대감이 줄고, 상대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감이 더욱 강해질지 모른다. 치열한 경쟁의 현장인 도시에서 학교를 다닌 아이들에 비해 지방 학교 출신 아이들의 인간관계가 더 끈끈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제아무리 유전공학이 발달해도 질병 치료 정도에 그칠 뿐이지 우수한 형질을 갖춘 ‘신인류’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물학과)는 “몸에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유전자를 제거하는 일은 몰라도 새로운 유전자가 삽입돼 형질이 뛰어나게 변한 인간이 과연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지능을 뛰어나게 만들기 위해 현재보다 뇌를 10% 크게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뇌는 몸이 섭취한 산소의 대부분을 사용하는 장소다. 따라서 크기가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산소를 섭취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허파로서는 그 기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최재천 교수는 인체가 제대로 작동하는데 필요한 예산(에너지)이 일정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일 한쪽 기능이 너무 발달하면 이를 감당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예산이 투여되기 때문에 다른 어딘가에서는 예산 부족으로 인해 ‘적신호’가 울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체 각 부위의 기능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이 이 숨겨진 메커니즘을 알아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돼 개개 유전자의 기능이 밝혀진다 해도, 유전자 간의 상호 관계를 밝힐 수 있다고 장담하는 과학자는 현재로서는 없다.

한국에서 처음 등장?

한편 ‘신인류’가 탄생하기 어려운 또다른 이유가 있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회적으로 강한 ‘거부’ 의사가 형성되면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 1997년 복제양이 태어난 이후 일각에서 끊임없이 ‘인간복제’를 시도하려 하지만 윤리적인 거부감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홍욱희 소장은 “현재의 추세라면 미래에 인체 유전자 조작 기술이 활발하게 적용되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닌 한국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한다. 그는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유전공학의 산물에 대한 법적 견제 장치가 연방정부, 주정부, 연구소 등 다양한 수준에서 마련돼 있지만 한국의 경우 아무런 대비책이 없다”고 말한다. 만일 지능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발견돼 인간의 수정란에 삽입시키는 실험이 진행된다면 한국에서는 이를 검토하고 평가할만한 법이나 제도가 없다. 비근한 예로 지난 8월 20일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인간복제 서비스 회사 ‘클로나이드’가 한국에서 인간복제를 성사시킬 파트너를 ‘공개모집’해도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그렇다면 21세기가 끝날 무렵 누구보다 우수한 두뇌와 뛰어난 신체를 지닌 ‘신인류’는 어쩌면 한국에서 최초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신한국인’의 출현이 우리에게 달갑게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훈기 기자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철학·윤리학
  • 법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