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은 과거 생물들의 타임캡슐.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억년 전의 일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누구나 쉽게 화석을 찾을 수 있는 '돌멩이 반 화석 반'의 고장 태백을 소개한다.
'화석'하면 보통 외국의 책이나 전시장에서 보는 크고 화려한 것을 떠올리고.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것이 없을까"하고 의문을 가지기 십상이다. 특히 거대한 공룡뼈 화석을 완벽하게 복원해 놓은 것을 보면 "역시 화석은 미국이 최고야"하며 감탄하게 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공룡뼈 화석이 발견되긴 했지만, 골격을 완전하게 복원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화석은 옛날 지질시대에 살았던 생명체가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돌로 바뀐 것이다. 생명체는 물론, 공룡이나 새의 발자국, 물이 흘렀던 자국, 빗방울을 맞았던 흔적들도 모두 화석이다. 이런 화석들은 '생흔화석'이라고 한다.
화석이 된 생명체는 거대한 공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좁쌀만한 것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래서 크고 화려하고 완벽한 화석만 떠올려서는 안된다. 또 보존상태가 완벽한 것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화석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화석을 찾아본다면, 그게 비록 완전하지 않은 쪼가리일지라도 쉽게 감동받을 수 있다. 화석이 만들어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데, 내 눈에 발견됐으니 말이다. 쪼가리나 선명하지 않은 화석에 감동받을 정도라면 전체가 완전하고 선명한 것을 찾았을 때는 감동을 넘어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화석왕국'이라고 할 만큼 많은 화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산지는 강원도 영월·태백, 충북 단양, 충남 보령, 인천 옹진군 소청도, 경기 김포, 경북 의성·포항·영천·경주, 대구 ,경남 창녕·함안·진주·고성, 전남 해남, 화순, 제주 서귀포 등지다. 이를 보면 거의 전국적으로 화석이 발견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화석이 많이 나오는 강원도 태백지역으로 화석여행을 떠나보자.
돌멩이 반 삼엽충 반
태백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탄광지대다. 80년대 이전만 해도 연탄이 우리나라의 주연료였기 때문에 태백은 전국에서 모여든 광부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요즘은 연탄 사용량이 급격히 줄어 곳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석탄만이 한때 탄광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광부들이 태백의 땅 속에서 캤던 것은 바로 석탄. 이는 주로 고생대 석탄기에 살았던 식물들이 땅 속에 묻혀 지열과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가연성 퇴적암이다. 따라서 태백지역은 대부분 고생대의 지층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중생대가 공룡시대였다면 고생대는 삼엽충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삼엽충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약 5억4천만년 전)에 출현해 약 1억년 동안 바닷속을 주름잡던 동물이었다. 실루리아기 후기에 들어 줄어들기 시작해 페름기(약 2억5천만년 전) 말에 지구상에 완전히 사라져 고생대의 표준화석으로 사용되고 있다.
태백지역은 고생대 캄브리아기와 오르도비스기 지층이 잘 보존된 곳이다. 그만큼 당시 살았던 동물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특히 삼엽충화석은 ‘돌멩이 반 삼엽충 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이 난다.
그렇다면 태백지역에는 어떻게 바다에서 살았던 삼엽충화석이 많은 것일까? 바다에서만 살다 보니 답답해서 태백산 관광이라도 나왔다가 ‘불의의 사고’로 화석이 되었나. 물론 아니다. 고원지대인 태백에 삼엽충화석이 나온다는 것은 고생대에 태백지역이 바다였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석탄박물관
태백산도립공원 내 소도동에는 동양 최대의 석탄박물관(전화 : 0395-552-7720)이 있다. 이곳에서는 태백의 주요산업이었던 석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지구의 탄생부터 석탄의 발견, 탐사·채굴·채탄 과정, 광산 사고의 유형 및 구조활동, 석탄산업 정책의 변화, 광산촌의 주거 형태, 태백의 문화·유물, 체험 갱도까지 8개의 전시실이 있다. 또한 야외에는 대형 광산 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지구의 탄생을 주제로 한 제1전시실인 ‘지질관’은 암석, 광물, 화석 등이 성인(만들어지는 방법)별, 시대별로 전시돼 있어 보는 이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폐광에서 만나는 식물화석
태백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광산에서 캐낸 거무스름한 돌들이 쌓여 있는 곳을 흔히 볼 수 있다. 한번쯤 관심을 가지고 돌을 헤쳐 보면 의외로 쉽게 화석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곳에서 찾을 수 있는 화석은 벼나 갈대의 잎사귀처럼 생긴 식물화석이다. 대부분은 잎사귀들이 한개 또는 두개 정도 찍혀 있지만, 여러개가 어지럽게 찍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전체의 잎을 제대로 갖춘 것은 찾기 어렵다.
운이 좋으면 고사리류의 화석을 발견할 수 있다. 고사리류는 양치식물이기 때문에 잎이 양의 이빨처럼 오밀조밀하게 박혀 있다. 물론 박물관에서 보는 멋진 식물화석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돌덩이를 망치로 두들겨 식물화석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석밭 구문소
태백에서 삼엽충화석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동점동 구문소, 나팔고개 산비탈, 그리고 장성동 직운산 일대다. 직운산 일대의 삼엽충 군락지는 일반인들의 무분별한 채취를 막기 위해 1986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이곳은 철책으로 둘러놓아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없다. 삼엽충이 많이 발견되는 지층은 바닷속에 쌓인 점토가 굳어서 된 셰일층이다.
삼엽충은 몸이 머리, 몸체, 꼬리 등 세부분으로 이뤄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족보를 따진다면 곤충, 새우, 가재와 같은 절지동물에 속한다. 화석을 찾다 보면 머리, 몸체, 꼬리가 완전하게 붙어 있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 따로따로 떨어져 있다. 그 중 두 부분이라도 붙어 있으면 큰 행운이다.
구문소 위쪽 개천에는 물이 불지 않는 한 바위에서 수많은 삼엽충화석을 볼 수 있다. 요즘에는 화석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숫자를 표시해 놓아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무런 표시가 안된 삼엽충을 찾는 것도 짜릿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학자들도 못찾은 삼엽충화석을 자신이 직접 찾았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흐뭇할까.
구문소 일대에서는 삼엽충뿐 아니라 두족류와 필석류 화석도 많이 볼 수 있다. 두족류는 현생 오징어의 조상격이라 할 수 있는 연체동물이다. 현생 오징어는 딱딱한 껍데기가 없지만 두족류에는 단단한 껍데기가 있었다고 한다. 필석류는 연필처럼 길쭉하게 생긴 연체동물이다. 그러나 구문소에서는 정말 연필처럼 긴 것은 없지만 작은 것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구문소는 그 자체로 훌륭한 관광지이지만 그 일대는 훌륭한 지질학습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지역 일대의 바위 표면에서는 건열 구조 , 물결흔, 동물들이 기어다닌 흔적화석, 습곡 등을 찾아낼 수 있다.
고생대로의 시간여행
태백시는 우리 민족의 영산이라 부르는 1천5백67m의 태백산 기슭에 있는 가장 높은 고원지대이다. 한때 우리나라 최고의 광산지대였지만 이제는 고원 관광휴양도시로 바뀌었다. 백두대간의 허리인 태백산의 정기를 한껏 받아들이면서 한번쯤 고생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난다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태백 여행은 석탄박물관에서 시작한다. 박물관에서 화석을 만나본 다음, 구문소를 찾아가보자. 구문소에서 삼엽충화석을 본 후에는 철암역 쪽으로 향한다. 철암역 부근 나팔고개를 가보면 고개 너머 터널 입구의 산비탈에서 삼엽충화석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삼엽충화석을 찾았다고 해서 집으로 가져오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집에 갖다 놓고 늘 볼 수 있어 좋겠지만, 생물이나 무생물들은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린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슬쩍 집어오는 일은 없도록 하자.
시간을 좀더 투자할 수 있다면 나팔고개에서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 통리역 부근의 통리협곡과 미인폭포에 들러보자. 통리협곡은 한국판 그랜드캐니언이라고 할 정도로 침식과 퇴적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 장엄함과 시간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층으로 강물에 의해 침식돼 2백70m 깊이로 패여 있는 거대한 협곡이다.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오십천 상류 미인폭포에서 시작되는 통리협곡 바닥에는 수많은 자갈들이 굳어 만들어진 역암을 많이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보통의 바위절벽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자갈로 된 역암, 모래가 굳어진 사암, 고운 진흙이 굳어진 이암이 겹겹이 쌓여 있어 떡시루를 연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