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맛있고 영양가 높은 양질의 고기와 우유를 만드는 일은 축산업자들의 오랜 꿈이다.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축사에서 우수한 혈통을 골라내서 보존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들을 서로 교배시키거나 우수한 정자와 난자를 인공적으로 수정시키는 방식이다.
또 수정란을 초저온 상태에서 냉동해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하는 방법이 개발됐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다르다. 평범한 가축이라도 유전자를‘약간만’ 변형시키면 우수한 품종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돼지 + 산양
1997년 10월 국내 농업진흥청 축산기술연구소에서 특이한 돼지가 태어났다. 같은 양의 사료를 먹어도 보통의 돼지에 비해 20% 정도 더 잘 자라는 우량종이었다. 또 체내 지방 성분이 정상에 비해 적은 ‘고품질’ 돼지다.
그렇다면 축산 농가의 수입을 대폭 향상시키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비결은 유전자의 변형에 있었다. 돼지가 더욱 무럭무럭 자라도록 수정란에 산양의 성장유전자를 이식한 것이다. 이처럼 한 개체의 수정란에 다른 종의 유전자를 이식함으로써 새로운 형질을 갖춘 생명체를 만드는 기술을 형질전환기술 또는 유전자생체이식기술이라 부른다.
이 실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됐을까. 먼저 시험관에서 돼지의 정자와 난자를 인공적으로 결합시켜 수정란을 얻는다. 여기에 산양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유전자를 미세한 주사바늘을 통해 주입한다.
이때 성장유전자를 주입하는 시간을 잘 정해야 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났을 때 정자의 핵과 난자의 핵은 서로 결합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선다. 그런데 성장유전자는 이 핵들이 결합하기 이전 상태, 즉 두 핵 가운데 어느 하나에 주입해야 한다.
두 핵이 결합하면 수정란은 곧바로 2개의 세포로 분열하기 시작한다. 이때 핵 안의 유전자 역시 2배로 늘어난 후 양쪽 세포로 똑같이 나뉘어 들어간다. 만일 수정란의 두 핵이 결합한 상태에서 성장유전자를 넣는다면 성장유전자는 분열되는 2개 세포 가운데 어느 한쪽으로만 몰려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수정란이 점차 분열을 거듭할수록 성장유전자는 돼지 전체 세포의 절반 정도에만 포함될 뿐이다.
이에 비해 수정란의 정자핵이나 난자핵 어느 한쪽에 성장유전자를 넣는다면 문제가 없다. 수정란이 분열되기 이전의 ‘원본’ 자체가 성장유전자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처럼 수정란 안에서 결합이 이뤄지기 전단계의 핵에 외래 유전자를 주입하기 때문에 이 기술을‘전핵(前核) 주입법’이라고 부른다. 1980년대 초 쥐에서 시도된 후 1985년 미국 농무부가 최초로 양과 돼지에서 성공을 거둔 기술이다.
하지만 전핵 주입법은 커다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성공률이 3-5%로 너무 낮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백개의 돼지 수정란에 산양유전자를 넣는다면 겨우 3-5마리의 돼지에서 그 유전자의 기능이 발휘된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가장 큰 난관은 산양유전자가 기존의 유전자 안에 무사히 끼어들어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또 기존 유전자의 어느 부위에 삽입될지, 몇개나 끼어들 수 있을지 모른다. 단지 산양유전자 수백개를 핵에 밀어넣고 실험의 성공을 바랄 뿐이다.
설사 무사히 삽입됐다 해도 그 유전자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지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1996년 뉴질랜드에서는 양에게 털이 잘 자라게 하는 성분(IGF I) 유전자를 주입한 결과 보통의 양에 비해 17% 정도 털이 많이 자란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1998년 한번 털을 깍은 이후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털이 정상에 비해 더이상 자라지 않았다. 또 이 양의 새끼는 외래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지만 털이 정상에 비해 더 자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형질전환동물들에서 몇 세대가 지나면 주입한 외래유전자가 점차 소실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미숙한 정자에 주입
1997년 10월 건국대 축산학과의 연구팀은‘전핵 주입법’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동물의 고환 안에 존재하는 미성숙한 정자에 외래 유전자를 넣는 방식이다. 이 미성숙한 정자는 끊임없이 분열을 거듭하며 성숙한 정자로 발달한다. 만일 성숙한 정자 가운데 외래 유전자를 무사히 보유하고 있는 것만 골라내 수정시키면 기존의‘전핵 주입법’에 비해 형질전환 동물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실제로 건국대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기존의 방법에 비해 훨씬 높은 성공률을 보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까지 가축에 대한 실험에서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방법이 실용화되기까지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