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선수 던졌습니다. 스트라익! 헛스윙입니다. 낙차 큰 커브볼에 꼼짝없이 속고 마는 메이저리그 강타자들입니다.” 박찬호의 경기를 중계하는 스포츠캐스터의 흥분된 목소리다. 과연 무엇이 어떻기에 커브볼은 이상한 궤적을 그리며 타자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가. 그리고 축구의 바나나킥의 원리는? 골프공이 곰보인 이유는? 서로 다른 공들에 무슨 비밀이 숨어 있기에 경기마다 요술이 일어날까.
공기의 흐름 재현하는 풍동
KAIST 항공우주공학과 박승오 교수의 연구실에 가면 그 비밀을 알 수 있다. “비밀은 바로 공이 공기 속을 움직인다는 점이지요.” 박교수의 말이다. 공기 속을 날아가는 공이 공기의 힘으로 커브가 되고 바나나킥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을 알 수 있을까. 물체가 움직일 때 주변 공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치가 바로 풍동 장치다. 풍동(風洞)은 말 그대로 바람이 일어나는 동굴이다. 물론 여기에는 축구공과 야구공이 아닌 모형비행기가 있다. 비행기가 날아갈 때의 환경을 지상에서 재연해 기체 주변의 공기의 흐름을 측정하는 것이다.
축소한 비행기 모델을 시험부에 넣고, 바람을 불어넣어 실제 비행과 똑같은 조건을 만들어준다. 각 부위의 바람의 속도는 레이저를 쏘아 돌아오는 레이저를 분석해서 얻는다. 실험 데이터들을 모으면 어느 속도에서는 어떤 모양의 비행기가 돼야하고 날개는 어떤 모양이 가장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
공기역학은 비단 비행기뿐만 아니라 모든 유체의 흐름을 다루는 과학이다. 부채의 바람, 종이비행기의 원리, 담배연기가 흩어지는 모양, 분필가루가 날리는 모습 등이 모두 공기역학의 탐구대상이다. 또한 공기역학은 골프공이 왜 곰보여야 하는지, 커브볼은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생활과 가장 밀접한 과학이기도 하다.
우주과학의 큰 기둥
우주선도 공기를 가르며 난다는 점에서 공기역학의 탐구대상이다. 마하 5(음속의 5배) 이상의 극초음속으로 움직이는 우주왕복선에는 단열재가 붙어있는데, 이것도 공기역학적인 설계 때문이다. 우주선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므로 운동 중에 공기와의 마찰로 열이 발생한다. 우주왕복선이 고도 72km에서 마하 22의 속도로 대기권에 진입하면 우주선 표면 온도는 무려 4천K에 이른다. 우주선의 표면온도가 1천K 이상이면 보통의 물질은 견디지 못한다. 우주왕복선에 단열재료가 필요한 이유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은 풍동에서 재현할 수 없으므로 박교수의 연구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수치적인 계산을 통해 상황을 재현하고 계산해낸다. 그러나 이렇게 고온상태의 공기역학은 매우 복잡한 요소들이 개입돼 수치계산 자체가 매우 어렵다. 그들이 밤마다 컴퓨터와 씨름하는 것이 이 복잡한 계산을 단순화하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우주개발의 성패가 로켓제조 기술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실제 겪지 않고는 상상하기 힘든 상황을 수치해석으로 풀어내는 공기역학이 있기에 우주인들의 무사귀환이 가능하다는 자부심이 오늘도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준다. 박승오 교수의 공기역학 연구실에서는 현재 12명의 석·박사과정생들이 풍동실험과 수치해석에 매달리며 우리나라 항공공학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