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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물리학 혁명의 출발점 X선


1895년 결혼식을 올린 후 퀴리 부부의 모습.


1901년 최초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뢴트겐은 X선을 발견하기 전만해도 이렇다할 연구성과를 내지 못한 평범한 과학자였다. 독일 라인란트에서 직물상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조국인 네덜란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물리학자인 쿤트를 만나 전공을 물리학으로 바꿨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의 물리학교수로 재직하던 1895년 11월 8일이었다. 당시 물리학계를 이끌어가던 J.J톰슨과 같은 학자들이 크룩스 방전관의 음극선을 이용해 형광 실험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는, 이를 확인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진공유리관으로부터 상당하게 떨어져 있던 백금시안화바륨 스크린에 이상한 섬광이 나타났다. 음극선에서 방출되는 형광으로 보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다. 뢴트겐은 여러 차례 반복실험한 결과 그 원인이 크룩스관에서 흘러나온 X선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X선이란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후일 방사선의 일종으로 판명됐다.


1896년 미국 콜럼비아대학에서 촬영한 X선 사진. 사냥중에 산탄총에 맞은 모습으로 사진의 점은 작은 총알들이다.


뢴트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X선이 대단한 투과력을 지녔음을 알아냈다. 그래서 아내의 손에다 X선을 투과시켜 최초의 X선 사진(뼈와 반지만 보이는 사진)을 찍어 뷔르츠부르크 의학물리협회에 보냈다.

X선이 세상에 알려지자 물리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과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뢴트겐 실험을 되풀이 했고, 의학계에서는 X선을 이용해 환자의 몸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뢴트겐은 X선 발생장치로 특허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돈에 별로 욕심이 없어 모든 기술을 공개했다. X선 장치들이 급속하게 실용화된 것은 이 때문이다.

당시 뢴트겐이 발견했던 현상을 미리 목격하고도 행운을 잡지 못했던 사람이 여럿 있었다. 옥스퍼드대학에서 크룩스 방전관으로 연구를 하고 있던 스미스 교수는 방전관 근처의 서랍에 넣어두었던 사진건판이 자꾸 흐려지는 것을 보고 불평만 했을 뿐 그 원인을 알아보지 않았다. 또 뢴트겐을 자문했던 레나르트(1862-1947)도 방전관 주위의 발광현상을 목격했지만 주의깊게 보지 않았다. 당시 음극선 연구의 대가는 레나르트였다. 그는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후보로 올랐지만 X선을 발견한 뢴트겐에게 6대 16으로 밀리고 말았다. X선 발견은 그만큼 의미가 컸던 것이다.


1896년 미국 라이프지에 실린 X선 사진.


X선에 남다른 호기심이 발동했던 사람은 프랑스 물리학자 베크렐(1852-1908)이었다. 그는 X선과 형광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다. 또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우라늄 역시 빛에 노출시키면 형광을 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X선이 발견된 지 석달 후인 1896년 2월 24일, 베크렐은 자신의 의문을 풀어보기로 했다. 사진건판을 검은 종이로 싼 다음 밖에다 우라늄광석을 놓고 빛을 쬔 것이 실험의 전부였다. 그런데 몇시간 뒤 놀라운 결과가 생겼다. 사진건판이 검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뭔가 종이를 투과하는 빛이 우라늄 속에서 나왔다는 증거다. 사람들은 그 빛을 베크렐선이라고 불렀다.

베크렐은 새로운 방사선의 발견으로 1903년 퀴리 부부와 더불어 노벨물리학상을 탔다. 퀴리 부부는 1898년 우라늄뿐 아니라 자신들이 발견한 폴로늄과 라듐에서도 방사선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방사선 원소들은 계속 발견됐다.

그런데 대체 X선과 베크렐선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당시의 물리학자들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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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홍대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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