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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동물들의 잠버릇

악어는 잠들어도 꿈꾸지 않는다

포식동물들은 자신을 공격할 적이 없기 때문에 늘어지게 잠을 잘 수 있다. 그러나 얼룩말 등 초식동물들은 항상 주변을 경계하며 선잠을 자야 위험에 처하지 않을 수 있다. 약육강식의 동물세계에서 펼쳐지는 잠의 백태를 알아본다.

동물은 왜 자게 됐을까 - 돌고래는 좌우뇌가 교대로 잠을 잔다

잠을 많이 자는 잠꾸러기 동물들이 모두 맹수인 것만은 아니다.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피식동물들 중에도 잠을 많이 자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동물들은 대개 아주 안전한 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사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열세줄 땅다람쥐나 햄스터는 너무나 안전한 곳에 둥지나 땅굴을 만들기 때문에 잠을 줄여가며 주위를 경계할 필요가 없다. 안전한 동굴에서 사는 박쥐 또한 잠을 하루에 20시간씩이나 잔다. 반면에 박쥐와 비슷한 몸집을 가지고 유사한 신진대사율을 보이는 뾰족뒤쥐는 안전한 서식처가 없기 때문에 거의 잠을 자지 않으며 쉴새 없이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아시아의 마카쿠원숭이는 몸이 날래고 체중이 가벼워서 포식동물들이 접근해 올 수 없는, 높고 작 은 나뭇가지에서 잠을 자는데, 렘수면과 비렘수면이 번갈아 나타나는 인간의 수면과 거의 같은 패턴을 보인다. 반면에 아프리카산 개코원숭이는 마카쿠원숭이보다 크고 강하지만 단속적으로 잠을 자며 렘수면을 별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개코원숭이의 적인 표범이 나무를 잘 타는 데다가 밤에 활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주로 사는 나무는 잎이 적어서 적의 눈에 쉽게 띄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같은 포유류라도 자신이 사는 환경에 따라 아주 다른 방식으로 잠을 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좋은 예가 파키스탄 인더스강 어귀의 흙탕물에 사는 인더스 돌고래다. 이들은 끊임없이 헤엄쳐 다니는데, 강의 흐름이 사나운 데다가 몬순계절에는 많은 부유물이 떠내려오기 때문에 오랜 시간 잠을 자다가는 부상을 입기가 쉽다. 따라서 이 돌고래들은 강물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 한번에 4-60초씩 선잠을 자는 식으로 하루에 약 7시간 잠을 잔다. 또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잠을 자는 동물이 주먹코 돌고래와 참돌고래인데, 이 돌고래들은 양 대뇌반구가 교대 로 잠을 잔다. 즉 이들의 양 대뇌반구에서 뇌파를 기록해 본 결과, 오른쪽 뇌가 잠을 잘 때는 왼쪽 뇌가 깨어 있고, 왼쪽 뇌가 잠을 잘 때는 오른쪽 뇌가 깨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럼으로써 적어도 대뇌반구 한쪽은 항상 경계상태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침팬치는 아무도 근접하지 못할 높은 나뭇가지에서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
 

어느 동물이 잠을 많이 잘까? - 최고 잠꾸러기는 사자

일반적으로 몸집이 작은 동물이 큰 동물보다 많이 잔다고 할 수 있지만, 수면의 양은 신체의 크기에만 좌우되는게 아니다. 예를 들면, 박쥐는 뾰족뒤쥐와 비슷한 크기이지만 그보다 10배는 더 많이 잔다. 따라서 수면의 양은 신체의 크기뿐 아니라 진화상의 연령, 뇌의 성숙 정도, 포식동물인가 피식동물인가 등의 여러 가지 요인들에 따라 달라진다.

잠을 자지 않는 동물은 없을까? 어항 속에서 가끔씩 꼼짝하지 않고 있는 금붕어들은 잠을 자는 것 일까? 또 파리도 잠을 잘까? 짚신벌레, 게, 가재, 오징어, 문어, 파리, 나비 등의 동물들은 움직임이 있는 활동기와 움직임이 없는 휴식기를 번갈아 나타낸다. 그렇지만 그런 휴식기를 곧 수면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수면이라고 단정짓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없는 상태뿐 아니라 감각자극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고 체온이 유지되는 데다가, 특히 특정한 모양의 뇌파가 나타나는 것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동물들을 비롯해 어류나 양서류의 경우에도 움직임 이 없는 휴식기가 있지만, 그 이외의 수면의 기준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은 잠을 전혀 자지 않는 동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들의 휴식기가 수면이 아니라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곤충을 예로 들면, 이들은 자신 의 체온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온도가 내려가는 밤에는 포유류처럼 체온을 유지하지 못하고 주변 공기와 같은 온도로 체온이 떨어져서 단순히 불활동 상태(dormancy)에 들어간다. 밤 동안에 얼어죽지만 않는다면 해가 솟아오르고 몸에 내려앉은 이슬이 마를 때쯤 곤충들은 다시 정상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옛날 같으면 모기들이 가을이 되면서 사라지고 없었지만, 요즈음엔 초겨울까지 아 파트에서 왱왱거리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먹이를 배불리 먹고 배를 드러내고 잠을 자는 사자.
 

얼룩말이 잠이 적은 이유

엄격한 의미의 수면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은 바다에서 살던 동물들이 육지로 올라와서 적응하게 된 파충류에 와서다. 그래서 카멜레온, 도마뱀, 거북이, 악어 등은 모두 잠을 잔다. 또한 포유류와 는 아주 먼 옛날에 파충류로부터 갈라져 나와서 진화해 온 조류도 잠을 잔다. 그런데 이들의 잠은 렘수면과 비렘수면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잠을 자는 포유류의 수면과는 다르다. 파충류에게서는 렘 수면이 거의 발견되지 않고, 조류의 경우에도 출생 직후에만 주로 렘수면이 나타난다. 이런 사실은 수면 중에서도 렘수면은 동물들이 진화해 오면서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수면형태라는 것을 보여주 는 동시에, 고등동물의 인지적 능력과 렘수면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임을 암시해 준다.

그러면 가장 잠을 많이 자는 동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연 백수의 왕이라 불리는 사자다. 사자들은 사냥감을 잡아 1시간 정도 배불리 먹고 나서는 무려 2-3일을, 가끔씩 깨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잔다. 이들은 먹고 먹히는 생존 경쟁의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두려워할 필요 없이 대낮에 넓은 초원에서 배를 하늘로 향하고 포만감을 즐기며 자유스럽게 잘 수가 있다.

대개 사자 같은 맹수들은 한번 사냥을 나가면 쉽게 먹잇감을 잡으리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평균 세번에 한번 꼴이라고 한다. 사자들도 열심히 '일'을 해야 먹을 수 있는 것 이다. 따라서 한번 식사를 하고 나서는 가능한 한 덜 움직이며 쉬는 것이 에너지를 아끼는 길일 것이고, 자주 사냥을 할 때보다 상처를 입을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사자와 반대로, 맹수에게 잡 아먹히는 영양이나 얼룩말 등은 오래 잠잘 여유가 없다. 이들은 항상 경계 상태를 유지하면서 맹수가 나타나면 재빨리 달아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도 꿈을 꿀까 - 쥐 잡는 꿈 꾸는 고양이

곤충 같은 무척추 동물이나 어류는 앞서서 본 바와 같이 아예 수면을 취하지 않기 때문에 금붕어 나 나비가 꿈을 꾸는지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겠다. 그러면 악어는 꿈을 꿀까? 사람은 대개 렘수면 동안에 꿈을 꾼다. 물론 비렘수면 동안에도 꿈을 꾸는 경우가 있지만 렘수면에 비하면 아주 드물 다. 파충류나 조류는 렘수면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악어는 아마도 꿈을 꾸지 않는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면 사람처럼 렘수면을 하는 다른 동물들은 꿈을 꿀까? 우리가 기르는 애완용 개나 고양이, 또는 햄스터 같은 동물들은 모두 렘수면을 하는데, 이들도 과연 꿈을 꿀까? 렘수면을 하는 다른 동물들이 사람처럼 꿈을 꾸지 말아야 할 이유는 별로 없는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 동물도 꿈 을 꾼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구가 있다.

렘수면의 한 가지 특징은 뇌의 활동은 활발하면서도 신체의 근육은 거의 마비상태에 가까울 정도 로 이완돼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잠자면서 눈을 감은 채로 꿈의 내용을 신체가 그대로 실행에 옮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뇌 속에는 렘수면 동안에 신체를 이완시키는 명령을 내리는 신경 회로가 있는데, 이 신경회로가 손상된 사람이 럭비공을 가지고 돌진하는 꿈의 내용을 잠자면서 실 행에 옮기는 바람에 방안의 유리가 다 깨지고 가구가 뒤집히고 몸에 큰 상처를 입은 일도 있다. 사람의 경우와 비슷하게, 고양이에게서 그런 신경회로를 손상시키면, 잠자던 고양이가 일어나서 보 이지도 않는 적을 공격하기도 하고, 있지도 않은 쥐를 가지고 놀거나, 펄쩍 뛰어오르기도 하는 등 의 행동을 보이게 된다. 이런 결과를 보면 아마도 고양이도 꿈을 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잠은 왜 잘까 - 에너지 소비 줄이는 길

포유류는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특히 몸집이 작은 동물들의 경우에 문제가 생긴 다. 작은 동물들은 큰 동물들보다 몸무게에 비해 신체 표면적이 넓어서 열을 더 쉽게 빼앗기기 때 문에 그만큼 더 많은 열을 생산하기 위해 신진대사율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에너지를 더 많이 필 요로 하게 되고 따라서 많은 양의 먹이를 먹거나, 아니면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후자의 목적을 달성하는 한 방법이 곧 잠을 많이 자는 것이다.

에너지를 아끼는 목적을 가진 특수한 형태의 잠으로 두가지가 있다. 첫째는 피그미 생쥐나 벌새 같은 작은 포유류와 조류들에서 나타나는 얕은 휴면 상태이다. 이 얕은 휴면 상태에서는 체온이 매일 주기적으로 37℃에서 8℃(때에 따라 거의 0℃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있음)까지 떨어지며, 신진 대사율 또한 평소의 2% 수준까지 떨어진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는 평소에 필요한 칼로리의 50 분의 1만 있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다. 이런 얕은 휴면 상태는 덥고 건조한 여름철에 나타나 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를 하면(夏眠, estivation)이라고 부른다.

둘째는 깊은 휴면 상태, 즉 동면이다. 이는 얕은 휴면 상태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된다. 주로 겨울 에 체온이 0℃까지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마못 같은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 는 체온이 37℃에서 25℃로 떨어지며 렘수면이 줄어든다. 체온이 25℃ 아래로 떨어지면 뇌파가 더 이상 기록할 수 없을 만큼 감소해서 수면의 단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만 깊은 동면 상 태에서조차 뇌가 완전히 활동을 정지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뇌가 주기적으로 활동을 하면서 이 동면 상태를 능동적으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잠을 자던 동물은 때가 되면 깨어 날 수 있다. 뇌의 활동에 의해 체온이 조절된다는 이 점이 바로 포유류나 조류가 곤충과 다른 점 이다. 곤충들은 앞서도 본 바와 같이 자신의 체온을 조절할 수 없어서 체온이 내려가면 불활동 상 태에 들어갔다가 외부 세계의 온도가 올라가야 다시 활동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

한편 겨울잠을 자지는 않지만 에너지를 보존하는 잠의 기능을 십분 활용하는 동물이 바다코끼리이다. 이들이 잠자는 동안의 신진대사율은 너무나 낮아서 숨을 쉴 필요조차 없어진다. 따라서 바다코끼리들은 수면 도중에는 아예 숨을 멈추는 수면성 무호흡증을 보인다. 이런 수면성 무호흡증이 인간에게 일어날 때엔 일종의 질병으로 취급되지만, 바다코끼리에게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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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문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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