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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팔 뒤꿈치나 발목을 모서리에 부딪치면 순간적으로 느끼는 통증이 대단하다. 이 때 우리는 ‘몸에 전기가 흐른다’는 말을 한다. 물론 다른 물체와의 충격이 전기를 발생시킨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은 몸속에도 전기가 만들어져 흐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섭취한 음식이 분해되면서 만들어진 화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뀌면서 우리 몸의 그 무엇인가를 조절하고 있다면 이런 과정에서 전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몸속에도 전지가 있는 것일까. 물론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건전지 같은 것이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경세포의 신호전달과 같은 과정은 생명체의 세포가 전지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전기뱀장어나 전기가오리가 만들어 내는 전기도 몸속의 전지를 이용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동물들이 몸에서 전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있어 왔다. 실제로 파라오의 무덤 벽화에 그려진 낚시하는 그림에는 나일강에 사는 전기메기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여기에 그려진 전기메기는 4백50V가 넘는 전기 충격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물고기들이 어떻게 전기를 만들어내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오징어와 노벨상

동물이 전류를 만들고 또 전파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은 1939년에 영국의 신경생리학자인 호지킨과 헉슬리에 의해 밝혀졌다. 그들은 대서양에 사는 오징어를 이용해 실험했는데 그 결과 1963년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나라 울릉도 근해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바다에 살고 있는 연체동물인 오징어는 사람의 신경축색(지름 약 2 ㎛)보다 수백 배나 굵은 거대 신경축색(지름 약 1 mm)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축색 안으로 전극을 꽂으면 신경세포막 안팎의 전위차를 잴 수 있다.

신경세포가 휴지상태에 있을 때, 즉 신경 충격을 전달하지 않을 때는 신경막의 안쪽은 전기적으로 음성을 띠고 바깥쪽은 양성을 띤다. 왜냐하면 신경막 안쪽에는 음이온을 띠는 유기물 분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분극됐다고 하며, 이 때의 전위를 휴지전위라고 부른다. 신경세포나 근육세포와 같은 흥분성 세포에서는 전위차가 보통 60-90 mV(mV:1천분의 1볼트) 정도로 측정된다. 신경세포들 사이에 이뤄지는 모든 신호전달은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휴지전위가 변하면서 생긴다.

순간적인 이온 이동으로 흥분 전달

신경세포에서 전위차를 생성시키는 요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경세포막의 안팎에 존재하는 이온의 농도 차이다. 둘째는 신경세포막이 각 이온에 대해 선택적인 투과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신경세포막의 안쪽은 바깥쪽에 비해 칼륨이온(K+)농도가 상대적으로 높고 나트륨이온(Na+)의 농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휴지 상태의 신경세포가 역치 이상의 자극을 받으면 자극을 받은 부분의 세포막에 있는 Na+의 통로가 열려서 세포 바깥에 높은 농도로 존재하던 Na+이 재빠르게 세포 안으로 들어가 순간적으로 세포막 안팎의 전위가 뒤바뀐다. 이런 현상을 탈분극됐다고 한다. 탈분극이 돼 세포막 안쪽이 전기적으로 양성이 되면 축색의 끝 쪽으로 양전하가 이동해 가면서 전류가 전달된다. 열려진 Na+ 통로는 곧 닫히게 되며 이와 동시에 K+ 통로가 열려 세포 안쪽에 높은 농도로 존재하던 K+가 세포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렇게 되면 세포 안쪽은 다시 전기적으로 음성을 띠며 원래의 휴지전위와 같은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이 현상을 재분극이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신경 충격 또는 흥분의 전도이다. 이처럼 휴지전위에 있던 신경세포막이 흥분에 의해탈분극됐다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재분극될 때까지 나타나는 전위의 변화를 활동전위라고 부른다. 오징어의 거대 축색의 경우에 활동전위는 약 1 ms (ms:1천분의 1초) 정도 지속된다. 즉 이 짧은 순간 동안 일시적인 전지가 만들어진다고 보면 된다.

가오리와 뱀장어의 전기만들기

전기를 일으키는 물고기로는 바다에 사는 전기가오리와 민물에 사는 전기뱀장어가 잘 알려져 있다. 이 물고기들은 모두 전기를 만들어내는 기관을 가지고 있다. 전기기관은 헤엄쳐 나가는 데 필요한 신호를 만들어 내거나 먹이를 실신시키는 데 이용한다.

전기가오리에서 전기를 일으키는 기관은 넓적한 양쪽 날개에 자리잡고 있다. 전기기관의 조직은 세포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다. 마치 동전을 여러 개 쌓아 놓은 것처럼 길다란 기둥 모양을 이루는 것이 여러 개가 병렬로 배열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일렉트로플락스라고 불리는 이 납작한 모양을 지닌 각각의 세포들의 한쪽 면에는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방출하는 신경돌기가 닿아있다. 일렉트로플락스는 활동전위를 만들지 않으므로, 신경돌기가 닿아있는 일종의 시냅스후막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세포 기둥은 아주 촘촘히 배열돼 있어서 세포 밖의 전류가 일렉트로플락스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흐를 수가 없다. 즉 일렉트로플락스의 양편에 있는 체액은 전기적으로 서로 격리돼 있는 셈이다. 전기기관에 연결된 신경돌기들이 동시에 자극을 받으면 신경돌기가 닿아있는 일렉트로플락스의 면들은 탈분극을 일으킨다. 세포의 안쪽은 등전위이기 때문에 일렉트로플락스의 양편에 있는 체액 사이에만 전위차가 생긴다. 즉 세포 하나 하나는 각각 같은 전압을 지닌 건전지와 같다. 세포 기둥에 있는 수많은 세포들 사이에 생기는 전위차는 마치 건전지를 직렬로 연결해 놓은 것처럼 전부 더해지면서 엄청난 양의 전기를 방출한다. 실제로 전기뱀장어의 경우에 수백 V의 전기를 일으킨다.

전기는 발생과 성장에 필수?

전기가오리나 전기뱀장어의 전기기관에서 뿐만 아니라 발생 중인 동물에서도 전위차가 만들어진다. 1974년에 재피와 누치텔리는 정교한 진동탐침을 개발해 살아있는 올챙이의 조직을 둘러싸고 있는 용액에서 미세한 전위차를 측정해냈다. 두 과학자는 이 탐침을 이용해 발아 중인 식물이나 척추동물의 배아, 그리고 재생 중인 다리와 같이 발생 과정에 있는 생물체에서 만들어지는 1-1백㎂/㎠ 정도의 일정한 전류를 발견했다.

베츠는 근섬유의 주변에서 생기는 전기장을 측정했다. 이러한 전기장은 국부적으로 존재하는 이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특정 이온이 누출되는 주변 지역과 어우러져서 이뤄진다. 이런 경우에는 수 mV나 0.1 V 혹은 그 이상의 전위차가 측정되기도 한다.

이러한 전기장은 발생 중인 동물에서 신경세포의 성장과 신경회로망을 형성하는 과정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신경세포를 배양하면 축색이나 신경돌기가 매우 활발하게 성장한다. 전기장은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신경돌기의 성장 속도나 성장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재피와 푸는 1979년에 신경돌기는 양극보다는 음극 쪽을 향해서 더 빨리 자라게 되며, 자라는 방향도 점차 음극 쪽을 향하게 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러한 음극의 영향은 전위차가 7 mV/mm 만큼 작은 경우에도 나타났다.

또 두 과학자는 아세틸콜린 수용체 같은 막 단백질이 전기장의 영향을 받아 엄청나게 이동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현상의 발견은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성장하고 있는 축색의 말단에 위치하는 어떤 단백질에 전류를 흐르게 하면 간단히 축색의 성장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발생 중인 생물에서 신경회로망의 구성은 큰 어려움 없이 변경될 수도 있다.

사람에게 신경세포는 매우 중요하다. 태어날 때 한 번 만들어지면 일생 동안 다시 만들어지지 않는 신경세포는 모든 정보 교환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경세포만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신경세포는 그 자체보다 적절한 회로망을 구축해야 비로소 그 가치가 발현된다. 만약 신경세포들이 회로망을 구성하지 않는다면 정보는 전달될 수 없다.

신경세포가 회로망을 구성하는데는 전기의 역할과 함께 화학적인 자극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회로망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는 정보 전달 시간과도 관련돼 있다. 손끝이 가시에 찔려서 아프다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10분이 소요되는 신경회로망과 0.01초가 소요되는 회로망이 있다면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인가는 자명하다. 이렇듯 회로망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것이 전기적인 자극이다. 이 자극을 만드는 것이 세포 안팎의 이온 분포 등으로 만들어지는 전위차다. 즉 일시적인 전지다. 미래에는 전기를 이용해 신경세포의 회로망 구성을 조절함으로써 우리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정보 전달을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오징어


갈바니의 ‘동물전기’

세포내 전위차를 발견한 것은 아니지만 살아있는 세포 조직이 전기에 대해 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해부학 교수였던 루이지 갈바니가 처음 관찰했다. 갈바니는 헌신적이고 학구적인 의사로 특이하고도 무형적인 전기와 생명력을 연결시키려는 데 관심을 두었다. 어느 날 갈바니는 발코니 난간에 매달아 놓은 개구리의 다리가 바람에 흔들려 철봉에 닿을 때마다 팔딱거리는 것을 관찰했다.

같은 시기에 그의 아내인 루시아는 실험실 한쪽 편의 전기 기구가 작동해 스파크를 내는 순간 우연히도 조수가 외과용 수술 칼로 개구리의 신경을 건드렸을 때, 개구리 다리의 근육이 수축한다는 것을 관찰했다. 갈바니는 금속의 난간과 수술 칼이 신경 속에 숨어있던 전기를 끄집어낸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에 알려진 유일한 형태의 전기는 정전기로서 여러 가지 물질의 마찰로 생기는 스파크가 전형적인 사례였다. 사실은 스파크에 의해 발생된 전자파가 수술 칼에 순간적인 전류를 일으켜 근육을 자극한 것이다.

1794년에 갈바니는 개구리의 한쪽 다리 근육을 잘라 신경을 꺼낸 후 다른 쪽 다리의 근육에 대었다. 이 때 다른 쪽 다리가 팔딱거리는 것을 관찰한다. 이로써 갈바니는 번개의 전기와 비슷한 어떤 것이 신경에 들어있다고 생각하고 이것을 ‘동물전기’라고 불렀다. 갈바니는 몸 안에 돌아다니는 전기가 만들어지는 곳은 두뇌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전기력은 나중에 몸 전체로 배분될 때까지 신경 안에 저장돼 있다고 믿었다. 그의 생각은 ‘전기란 흘러다니는, 형태가 확실하지 않은 액체’라는 당시의 믿음과 통하는 것이었다.

두뇌에 약한 전류가 흐른다는 것은 1820년대에 이르러 최초의 검류계가 발명된 후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경 충격의 전달 속도는 단순한 전자의 흐름이나 신경 섬유 속을 흐르는 전류라고 하기에는 너무 느렸다. 1900년대 초에 독일의 베른스타인은 신경 충격이란 신경세포막 안팎에 불균등하게 퍼져있는 이온의 이동을 포함하는 하나의 전기화학적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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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윤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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