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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통같은 방어진 구축한 인체

삶이란 투쟁이다. 생물의 세계를 잘 들여다보면 처절한 생존 경쟁은 물론이고 다툼에서 살아 남기 위한 자기방어 장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이러스와 세균은 물론 사람까지도 모두가 복잡한 방어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가 자신을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의 몸도 몇 겹의 튼튼한 방어 전선을 펴고 있으니 조물주의 조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피부 보호막, 때
 


피부 보호막, 때


샤워를 할 때는 비누를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또 목욕이나 샤워를 자주 하는 것은 피부에 큰 해가 된다. 유익한 세균을 모두 씻어버려 유해한 것들의 침입을 받는다는 말이다. 하물며 목욕을 할 때 수건으로 때를 벗기는 것은 자살 행위로 피부의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다. 때도 세균의 양분이 되는 것이며, 어느 세균이나 모두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자는 것이다. 비타민B나 K의 흡수를 돕는 대장균은 상처가 났을 때 혈액이 잘 응고되도록 돕기도 한다.

천연 물파스, 침
 


천연 물파스, 침


다음은 입으로 들어온 병원균(세균, 곰팡이, 원생생물)에 우리 몸이 어떻게 대처하는가 보자. 앞에서 말한 침에 끄떡없는 것들이 있으나 이것들은 위의 염산이 태워 죽인다. 위산은 pH₂에 가까운 강산이라 여간한 것들은 모두 박살난다. 위를 지나온 산에 강한 것들도 알칼리성인 창자액을 통과하면서 죽는다. 그러나 지독한 놈들인 콜레라균이나 이질균은 살아 남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이 체내의 다른 세균을 누르고 창궐하는 경우에는 전신에 비상이 걸린다.
 


기침 재채기 콧물의 정체


기침 재채기 콧물의 정체

허파의 폐포에는 두 종류의 백혈구가 이물(異物)을 처리한다. 한 종류(TH₁)는 바이러스, 세균 등을 직접 공격해 죽이고, 다른 하나(TH₂)는 해가 적은 먼지나 꽃가루, 비듬 같은 것에 대항해 일종의 면역반응인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이물이 들어오면 TH₂세포가 비대세포(mast cell)나 호염기성백혈구에 신호를 보내 이것들이 자신의 세포를 터뜨리게 한다. 그러면 그 안에 많이 들어있던 히스타민이나 류코트리엔스가 분비되면서 혈관을 확장시키고 염증을 예방한다. 이때 기관이 수축하고 혈관에서 조직으로 혈장이 스며 나오므로 기침, 재채기가 나고 콧물이 나온다.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이다. 흔히 꽃가루나 진드기가 많으면 이런 반응이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피부, 허파, 위에서 어떻게 병균을 막아내고 있는가를 훑어봤는데, 이제는 몸이 상처를 받았을 때나 병원균이 들어 왔을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보자.

세포가 상처를 받으면 앞에서 설명한 기관에서처럼 비대세포나 백혈구가 자폭하면서 히스타민, 키닌, 류코트리엔스 등을 분비하기 때문에 모세혈관이 확대되고 상처 부위에 피의 흐름이 증가하기 때문에 색이 붉어지고 온도가 올라간다. 벌이나 모기에 쏘였거나 물렸을 때도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상처 부위가 붉어지는 것은 피가 빨리 돌기 때문이다. 이처럼 혈액의 빠른 이동은 백혈구의 일종인 식세포(食細胞)와 영양물질, 항체 등을 재빠르게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열나면 철 공급 차단

상처부위에는 히스타민 등의 물질 때문에 핏속의 혈장이 조직으로 스며나와 아프고, 가려우며 부어오른다. 이 또한 항체가 감염 부위에 쉽게 공급될 수가 있도록 돕는 자연적인 방어수단이다.

상처가 나면 항체보다도 제일 먼저 알고 달려오는 것이 식세포다(실은 피를 타고 돌던 것이 상처 부위를 알아차리고 그곳에 달라붙는다). 보통 식세포는 세균 20마리 정도를 잡아먹고 수명을 마치지만 대식세포는 1백개까지 먹어서 녹인다. 이들 세포는 아메바처럼 기어가 병균을 덮쳐서 잡아먹는데 이를 식균작용이라 한다. 이들은 가수분해 효소를 갖는 리소솜이 결합한 식포를 가지고 있어 세균을 삼킨 다음 식포를 터뜨려 가수분해시켜 버린다. 그런데 결핵균 같은 것은 세포벽이 워낙 튼튼해 식세포의 효소로 녹이지 못해 항생제를 쓴다.

마지막 안전한 면역반응

다음은 생체 방어 수단의 마지막 단계인 면역 반응을 보자. 영어로 면역을 이뮤니티(immunity)라고 하는데 여기서 이뮨(immune)이란 라틴어로 ‘안전’이란 뜻이라고 하니 항체는 분명히 몸의 안전판이라 하겠다. 이것이 무너지면 몸은 거덜나서 생명을 잃는다. 면역을 나눠 보면 세포성면역과 항체성면역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흉선에서 만들어지는 T세포가 관여하는 것으로 직접 항체를 만들지 않고(항체를 만드는 것을 돕기는 한다) 병원균이 칩입하면 저장돼 있던 림프절을 떠나 감염 조직으로 달려가서 감염 세포의 표면과 결합해 세포를 파괴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킬러세포라고 한다.

항체성면역은 지라에서 만들어지는 B세포가 담당한다. B세포는 이종(異種)단백질인 항원과 만나면 활성화돼 표면에 항체가 생긴다. 항체를 갖는 세포가 많이 분열돼 B세포에서 떨어져나가면 이들이 항원인 병원균을 무력화시키거나 파괴하며 식세포를 유인해 죽여버린다. 없던 새로운 항체가 만들어지려면 며칠이 걸린다.

T, B세포는 일종의 백혈구인데, 이 두 면역세포를 공격하는 대표적인 것이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즉 사람의 면역을 무너뜨리는 에이즈 바이러스다.

아직도 HIV에 대한 예방접종인 백신(항체)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방어체계가 무너져서 속수무책으로 지금까지 4천여만명이 죽었다하니 이 두 세포가 생체방어에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가 알 수 있다. 아무튼 T세포는 항원에 따라 수백만 가지가 있고(세포벽의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B세포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1조 종류가 넘는 세포를 가지고 있다. 우리 몸이 얼마나 많은 병원균에 대비하고 있는가를 짐작케 한다.

B세포의 일부는 기억세포로 바뀌어서 똑같은 병원균이 재침입하면 단방에 그것을 알아내 강하게 반응한다. 이 성질을 이용한 것이 백신인데 한번 생성되면 평생 기억하는 홍역 같은 영구면역이 있는가 하면 몇 달밖에 가지 못하는 유행성 감기 같은 일시적 면역이 있다. 다시 말하면 기억세포는 계속 항체를 만드는데 항원의 종류에 따라 작용하는 기간이 다르다는 것이다. T세포는 병원균 말고도 조직을 이식할 때도 이식된 세포를 공격하는데 이것이 이식거부반응이다.

여기까지 우리 몸이 자기방어를 어떻게 하는가를 큰 줄기만 나열해봤다. 이것은 알려진 것 중에서도 일부에 불과하다. 다른 생물체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도 생존하기 위해서 엄청난 방어 장치를 겹겹이 해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어지간한 병원균은 우리 몸에 들어와도 옴싹날싹 못하게 돼 있으니 내 몸의 자연 치유 능력을 믿고 약을 남용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약은 몸이라는 생체계를 간섭하는 물질로 특히 항생제에 대한 저항 세균이 자꾸 생겨난 학자들의 걱정이 태산같다. 독이 아닌 약이 없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 몸의 얼개는 간단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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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권오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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