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는 지구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원소 중의 하나다. 생명체는 말할 것도 없고 무생물도 탄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산소와 같이 탄소는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식량에서부터 화장품, 의복, 연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분에 포함돼 있는 탄소는 우리들에게 매우 특별한 원소다.
근래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여겨지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때문에 대부분의 탄소가 이산화탄소로만 인식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공기 중에 존재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지구 전체가 가진 탄소의 총량에 비하면 미미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탄소의 대부분은 탄산칼슘(CaCO3)의 형태로 석회석에 들어 있다. 또 상당히 많은 양이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의 형태로 저장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에 녹고 산호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만약 이산화탄소양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바닷물에 녹아 산호에 흡수되는 속도가 유입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어 문제가 된다.
정복할 수 없는 다이아몬드
우리 생활에서 흥미롭고 중요한 기능을 맡아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는 탄소의 기본적인 형태를 알아보자. 탄소로만 돼 있으면서 다른 성질을 보이는 물질을 동소체(同素體)라고 한다. 탄소의 동소체는 전통적으로 다이아몬드와 흑연이라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근래에 새 로 발견되는 물질들도 있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그 구조가 다를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물리적 성질이 매우 다르다.
다이아몬드(Diamond)라는 말은 그리스어인 아다마스(Adamas)에서 유래됐다. 이는 A와 Damas의 합성어로 A는 부정을 의미하고 Damas는 정복을 의미해, 다이아몬드는 '정복할 수 없는 것'이란 뜻이다. 다이아몬드는 모든 광물 중 가장 단단하고 아름다운 휘광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좋아하는 보석이다.
다이아몬드는 한 개의 탄소원자가 4개의 탄소원자에 결합된 형태를 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가장 큰 특징은 단단하다는 점. 때문에 다이아몬드는 착암기나 유리칼로 사용된다. 질화탄소가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다이아몬드의 단단함을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다른 특징은 부도체로 전기를 통하지는 않지만 열은 잘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도체 제조과정에 사용할 수 있다면 반도체 소자가 작동할 때 생기는 열을 방출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다.
만약 고체의 표면에 다이아몬드를 얇게 입힐 수 있다면 재료를 마모되지 않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다이아몬드를 고체 표면에 얇게 입힌 것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디오플레이어의 다이아몬드 헤드가 그것. 이것은 헤드에 다이아몬드구조를 한 탄소결정체 막을 입힌 것으로 비디오플레이어 헤드와 비디오 테이프를 함께 보호할 수 있다.
이것은 탄소를 포함한 화합물을 헤드와 함께 높은 온도로 가열해 분해시킴으로써 헤드 표면에 막을 입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붕소를 넣어서 처리하면 붕소가 불순물로 포함된 다이아몬드의 막이 생기는 데 이 막은 다이아몬드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면서 전기를 상당히 잘 통하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다. 특히 이 막은 액정화면이나 브라운관을 대치할 수 있는 새로운 표시소자로의 가능성 때문에 전자회사와 학계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개발 초기의 시제품은 이미 나와 있다.
2천℃ 열에도 끄떡없는 흑연
연필심에 사용되는 흑연은 다이아몬드와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1기압 하에서 안정적인 결정구조를 갖는 흑연은 6개의 탄소 원자가 6각형으로 배열돼 있다. 이 6각형을 벤젠고리라 하고 이 고리들을 규칙적으로 깔아 층을 쌓았기 때문에 층층이 잘 분리된다. 면내의 탄소와 탄소 원자 사이의 거리는 1.4Å(1Å=${10}^{-10}$m)이지만 면 사이의 거리는 3.35Å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다.
면내의 원자 결합이 강하고 면과 면과의 결합은 약해 쉽게 미끄러져 떨어진다. 바로 이 성질을 이용한 것이 연필심이다. 또 흑연은 판 내에서는 전기를 잘 통하지만 판과 판 사이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흑연의 가장 뛰어난 점은 열에 강하다는 것이다. 2천℃로 가열해도 강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 단지 공기 중에서 가열하면 7백℃에서 타기 시작하기 때문에 진공 중이나 알코올 속에서 사용하는 고강도 재료로 쓰인다. 예를 들어 3천℃ 이상으로 가열하는 도가니나 히터에 사용된다.
흑연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전기제강법에 쓰이는 전극봉이다. 철의 산화물인 철광석을 제철용 코크스와 가열하면 철은 산소와의 결합력이 약화되면서 분리된다. 그러나 많은 탄소성분이 포함돼 있어 이것을 고온에 녹여 탄소 성분을 제거하거나 소량의 금속을 첨가함으로써 다양한 특성의 철제품을 만든다. 이 때 이용되는 것이 흑연 전극봉. 탄소가 포함된 철에 흑연 전극봉을 꽂은 후 고압의 전류를 통하면 전극봉을 용융시켜 순수한 철을 얻는다. 이 때의 온도가 보통 1천7백50℃ 전후이므로 흑연이 아니고서는 견디기 어려운 조건이다. 이처럼 고온에서도 안정한 흑연의 성질은 반도체용 실리콘 결정을 만들 때나 핵융합로의 내벽재로 쓰이 고 있다. 또 흑연은 중성자를 흡수하는 능력이 있어 원자로의 감속재로도 이용된다.
나노세계의 프론티어 풀러렌
다이아몬드와 흑연같이 자연에 존재하는 탄소의 동소체 외에 인위적으로 합성한 새로운 형태의 동소체로 풀러렌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양은 적지만 풀러렌이 암석 중에서도 발견된다는 사실이 아리조나 대학교의 화학교수인 호프만에 의해 밝혀지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풀러렌은 진공장치 속에서 강력한 레이저를 흑연에 쪼일 때 탄소들이 흑연 표면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결합을 이루며 만들어진다. 이 물질은 결합구조가 흑연과 같은 전자결합을 하나 6각형만으로 이뤄지지 않고 일부가 5각형의 구조를 가지면서 구면을 형성한다는 특징이 있다. 풀러렌은 탄소원자 60개로 만들어진 분자가 대표적(C60)이다. 이 분자는 스몰리와 크로토가 처음으로 실험 조건에서 발견한 후 호프만이 대량으로 생산했다. 이 공로로 스몰리와 크로토는 199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풀러렌분자의 모양은 탄소가 결합해 만드는 6각형과 5각형으로 돼 있다. 전체적인 모양은 축구공처럼 생겼다. 풀러렌 부류는 C60이외에 C62, C64, C66,등의 가족들이 많지만 생산되는 상대적인 양들은 다르다. C60이 가장 많고 C70이 그 다음이고 적은 양이지만 C76, C84 등도 생산된다.
대부분은 생산량이 너무 적어서 겨우 존재만 확인 가능한 것들이다. 이들은 모두 탄소의 수가 짝수로 되어 있다는 점이 또한 흥미롭다. 이는 자연계에서 탄소가 존재할 때는 대개 짝을 이뤄 존재한다는 것과 우주 공간에서도 그러리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C60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지만 C70만 해도 상당히 비싸다. 그나마 무척 고생을 해서 소량을 얻을 수 있는 것도 몇 가지밖에 없다. 나머지는 생산량이 너무 적어서 현실적으로 얻기가 불가능하다. 또 한가지 분자를 얻었다고 해도 6각형과 5각형 고리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대칭성과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나타나는 성질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러나 풀러렌들은 그 모양이 독특해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전기적, 광학적 성질이 흥미를 배가시켰다. 특히 빛을 흡수하고 전자를 잘 받는 성질이 있는 C60으로 이루어진 결정에 알칼리 금속을 적절히 결합시키면 초전도체가 된다는 보고가 있은 후에는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물론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베어링으로의 가치도 인정받았다.
근래에는 탄소원자를 다른 원소로 바꾼, 예를 들면 C59N과 같은 새로운 물질이 연구되고 있다. 왜냐하면 질소는 탄소보다 전자를 하나 더 가지고 있기 때문에 C59N이 C60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여분의 전자로 인한 화학적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무튼 새로운 물질과 그것의 성질을 연구하는 화학자들에게 풀러렌은 좋은 연구대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바늘
최근에는 6각형의 탄소 고리로 만들어진 관(nanotube)에 대한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이 관들은 지름이 수십 Å밖에 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가는 바늘인 셈이다. 1991년 일본전기(NEC)의 이지마 박사가 풀러렌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우연히 가늘고 긴 대롱 모양의 탄소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탄소 나노튜브의 시작. 탄소나노튜브는 한 겹으로 된 관이지만, 관의 길이, 지름, 관의 겹 수 등이 다른 많은 종류가 있다. 하지만 전기전도도의 관점에서 보면 2-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것들도 모두 탄소로만 된 화합물이기 때문에 탄소의 동소체라고 볼 수 있다.
탄소나노튜브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1996년 스몰리교수가 합성한 다발형태의 탄소나노튜브가 반도체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원래는 전기적으로 도체인 나노튜브가 다발을 이룰 때, 이 밧줄형태의 튜브는 일부러 도핑을 하지 않아도 튜브와 튜브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전기적 성질이 도체에서 반도체로 변한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자들이 꿈꾸는 단일전자 트랜지스터에 한 발 다가선 것이다.
물론 전자수준까지는 안되지만 나노(10-9m) 수준까지 접근한 것이다. 그 결과 실리콘 반도체보다 집적도가 1만배 이상 되는 새로운 반도체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서울대 임지순 교수의 연구 성과이기도 하다.
(단일전자 트랜지스터: 전자 한 개의 움직임을 조정해 작동하는 논리회로나 전자 한 개를 잡아두었다가 놓아주는 것으로 기억의 한 단위(bit)를 삼는 소자)
탄소나노튜브는 속이 비어 있어서 가볍고, 전기는 구리만큼 잘 통하고, 열전도도 다이아몬드만큼 좋으며, 인장력도 철강만큼이나 우수하다. 탄소원자 사이의 결합은 현재 반도체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실리콘보다 강하다. 따라서 실내온도의 공기 중에서 화학적으로 안정되고 강하다. 전자회로 외에도 초강력 섬유나 열, 마찰에 잘 견디는 표면재료로 쓸 수 있다. 또 열전도도가 실리콘보다 훨씬 높아 열을 잘 방출하므로 반도체 소자가 작동하면서 뜨거워지는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구들을 제안하는 사람들이 있다. 탄소나노튜브를 옆으로 끊고 그 위에 적당한 돌기를 만들어서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는 기어를 제안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기어의 지름은 10 Å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또 탄소나노튜브는 인간의 두뇌 구조와 같은 논리회로를 연구해온 신경망 학자들에게도 희망으로 다가간다.
더 기막힌 상상은 이 관을 실린더로 삼고 C60분자를 피스톤으로 하는 작은 기구를 제안한 것이다. 피스톤으로 사용된 C60분자의 움직임에 따라 그 앞뒤에 있는 헬륨분자들이 실린더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자. 이런 그림들이 단순히 상상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실현 가능한 모습일까? 이 관을 실천해내는 사람들은 나노세계의 프론티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