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안다만 해안에서는 석유탐사를 위해 파이프를 바다 속으로 내리는 도중 갑자기 심한 요동이 생겨 작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1987년 6월 미국에서는 거대한 공기파가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대륙을 횡단한 사건이 관측됐다.
1991년 벨 연구소는 하나의 회선으로 50만통의 전화를 동시에 전송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일본열도에서는 지금도 지하 2백km 밑에서 액체 마그마가 지면을 뚫고 힘차게 용솟음치고 있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같은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솔리톤이다.
'수수께끼의 파동'이라 불리는 솔리톤이 처음 발견된 것은 1834년이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 선박기술자였던 존 스콧 러셀은 좁은 운하를 지날 때 물의 저항을 적게 받는 배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는 1834년 여름 유니언 운하(에딘버러에서 글래스고를 잇는 운하)에서 작은 배 한척을 두 마리의 말로 끄는 실험을 했다. 그런데 말이 끌던 배가 갑자기 멈추자 커다랗게 솟아오른 파 하나가 뱃머리에서 만들어지더니 빠른 속도로 운하를 따라 진행해가는 것이었다.
그 속도는 거의 시속 14km나 됐다. 러셀이 말을 타고 3km 정도까지 좇아가 보았지만 그 파는 소멸되지 않고 계속 진행됐다. 모양과 속도가 변하지 않고 계속 진행하는 이 파를 그는 '운반파'(wave of translation)라고 불렀다. 이것이 솔리톤에 대한 최초의 보고다.
리톤을 만드는 비선형효과
솔리톤은 입자는 아니지만 고체처럼 잘 부서지지 않는 파동이다. 보통의 파와는 달리 솔리톤은 모양과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 채 진행한다. 두 솔리톤이 충돌한 후에도 충돌 전의 모양으로 계속 진행한다. 솔리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수파의 운동방정식을 연구하던 코르테벡과 드프리스는 1895년 수면에서 만들어지는 솔리톤을 기술하는 방정식을 새롭게 이끌어냈다. 코르테벡·드프리스 방정식에 따르면, 시간이 경과하고 파가 진행함에 따라 파의 모양과 위치가 어떻게 변하는가는 분산효과와 비선형효과에 의해서 결정된다.
솔리톤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파는 여러 주파수 값을 가진 사인파(sine wave)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그런데 주파수가 다른 각 사인파는 대부분의 매질에서 서로 다른 위상속도로 전파한다.
따라서 파가 진행함에 따라 전체 파는 대칭적인 모양은 유지한 채 그 폭이 점점 넓게 퍼지게 된다. 이것을 '분산'이라고 한다. 분산 때문에 대부분의 파는 조금씩 넓게 퍼지다가 에너지를 잃고 소멸한다.
그런데 분산효과에도 불구하고 솔리톤이 일정하게 모양을 유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비선형효과 때문이다. 비선형효과의 의해 파의 속력은 파의 높이(파고)에 따라 달라진다. 즉 수면파가 진행할 때 파고의 높은 부분이 낮은 부분보다 빨리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바닷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크게 솟은 파도가 서핑을 즐기는 사람을 삼킬 듯이 덮치는 이유도 바로 비선형효과 때문이다. 해안가에서 넘실거리는 파도(수면파)는 비선형효과에 의해 파고의 높은 부분이 낮은 부분보다 빨리 진행한다. 처음에는 대칭이었던 파는 파의 머리부분이 아래부분보다 앞서 진행하기 때문에 점점 가파르게 되면서 기울어진다.
파의 머리부분이 크게 진행하다 보면 중력에 의해 다시 흘러내려오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바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도의 모습이다. 이러한 파도를 바닷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비선형효과가 얕은 물을 진행하는 수면파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분산효과는 파를 넓게 퍼지게 만들고, 비선형효과는 파를 가파르게 만든다. 두 효과가 함께 작용해서 균형을 이룬다면 파는 그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솔리톤이 만들어지는 원리다.
'솔리톤'이라는 이름은 노만 J. 자브스키와 마틴 크러스칼가 지었다. 코르테벡·드프리스 방정식을 수치적으로 푸는 일에 몰두했던 이들은 덩어리처럼 뭉친 파가 진행한다는 의미에서 '고립된 파(Solitary wave)의 입자', 즉 '솔리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해일도 솔리톤
바다에서 만들어지는 해일은 대표적인 솔리톤이다. 해저의 지각변동이나 해저화산이 폭발하면 바닷물이 크게 요동해 해일을 만든다. 특히 일본 근해나 칠레, 페루 등지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큰 해일을 만들기로 유명하다.
먼바다에서 파장은 수백km에 이르지만 파고는 1m도 채 안된다. 그러나 해안에 가까워지면 파도의 높이가 급격히 높아져서 큰 파(해일)가 된다. 리아스식 해안인 경우 해안선이 파를 가두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선형효과는 더욱 커져서 해일도 커진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해일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칠레나 페루에 전해진다. 솔리톤인 해일은 도중에 감쇠하거나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해일의 속도는 무려 시속 8백km에 이른다. 신칸센 열차보다도 빠른 셈이다.
솔리톤은 수면뿐 아니라 바다 속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적인 석유회사 엑슨은 1975년에서 1976년에 걸쳐 미얀마 남쪽에 있는 안다만해(수심 1천90m)에서 해저유전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바다 속으로 내려가던 파이프가 갑자기 60m에서 200m의 깊이에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관측됐다. 당시 석유탐사에 참여했던 오스본 박사는 그 원인이 바다 내부에서 만들어진 솔리톤 때문이라고 1980년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바다 속에서 솔리톤이 생기는 것은 염분 농도나 수온이 균일하지 않아서 바닷물의 밀도가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바닷물 표면 가까이에는 염분 농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담수가 많다. 북극이나 남극에서는 빙산의 얼음이 녹아서 염분 농도가 흐려진다.
또 바다 수면은 태양볕으로 인해 수온이 높지만 바다 속은 그렇지 못하다. 수온이 높거나 농도가 낮은 바닷물(담수)은 그렇지 않은 물(해수)과 층을 이룬다. 이 경계면이 심하게 진동을 받으면, 경계면을 따라 파장이 긴 내부파가 형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내부파는 솔리톤이 되어 바다 밑 세계를 위협할 수 있다.
1893년 프람호를 타고 북극을 탐험하던 노르웨이의 탐험가 프리됴프 난센도 이를 경험했다. 북극 바다에서 배가 좀처럼 나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프람호의 속도가 늦어진 것은 스크루 위치가 바로 담수와 해수의 경계면에 있었기 때문이다. 스크루의 추진력이 내부파를 발생하는데 소비돼 배의 전진에는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약 잠수함이 내부파가 발생하기 쉬운 경계면 부근에 있다면 프람호와 같은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게다가 내부파가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인 솔리톤으로 변해 잠수함을 산산조각낼 수 있다.
솔리톤은 어디에서나
솔리톤은 바다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분산효과와 비선형효과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플라스마 내부에서도 솔리톤이 발생할 수 있다.
만약 플라스마 내부에서 이온 입자들의 밀도가 균일하지 못하게 되면, 전기적인 반발력으로 인해 음파처럼 플라스마 속을 진동하며 전파하는 파가 생긴다. 이것을 '이온음파'라고 한다. 이것 역시 분산효과와 비선형효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솔리톤을 형성할 수 있다.
땅속 2백km 아래에 존재하는 마그마가 놀랄만한 힘으로 분화구로 솟아오르는 것도 '마그마 솔리톤' 덕분이다. 마그마가 상승하는 힘과 맨틀과 지각이 마그마에 미치는 힘이 서로 균형을 이루면 솔리톤이 생긴다.
동맥혈관을 따라 흐르는 혈액도 솔리톤의 형태로 흐른다. 동맥혈관은 심장 박동에 의해 수축과 팽창을 되풀이한다. 맥박이 뛰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혈관의 수축과 팽창은 혈관벽을 찌그러뜨리면서 혈관 속에 흐르는 혈액을 솔리톤의 형태로 온몸에 전달한다. 이밖에 제트기류나 DNA의 활동 안에서, 혹은 고체 내부나 블랙홀의 생성 중에도 솔리톤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광통신 분야에서 두각
퍼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진행하는 '신비의 파동' 솔리톤이 가장 각광받는 분야는 뭐니뭐니해도 광통신 분야다. 현재 광통신 방식으로 전송되는 비트의 수는 대략 수십억 비트 정도이고, 최장 중계거리는 수십km이다. 이 정도면 광섬유 하나로 최고 2만5천통의 전화를 동시에 전송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광통신은 광섬유 안에서 진행하는 광펄스가 분산효과로 인해 에너지를 잃기 때문에 조금씩 퍼지는 단점이 있다.
광섬유 안에서 솔리톤을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의 벨연구소에서 일하던 물리학자들이다. 그 중에 한명인 제임스 P. 고든은 우리에게 '메이저'를 발명한 사람으로 잘 알려진 물리학자다. 솔리톤의 형태로 광펄스를 전송할 경우, 6천km 이상을 중계기 없이 전송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또 분산으로 인해 광펄스가 퍼지는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에, 매초 수백 기가비트(기가비트는 10억 비트)의 정보를 전송할 수 있게 된다. 최근 실험에서는 매초 32기가비트의 정보를 전송하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이것은 광섬유 하나로 50만 채널의 전화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솔리톤을 이용한 광통신이 실용화되려면 아직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솔리톤끼리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펄스 모양이 찌그러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위상이 같은 두 솔리톤은 서로 잡아당기고, 위상이 반대인 솔리톤끼리는 서로 미는 힘이 작용한다.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솔리톤 사이의 간격을 줄여야 하는데, 이러한 상호작용이 있으면 간격을 줄이기가 힘들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도전하고 있어서 곧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용어설명
메이저 : 간섭성이 높고 일정한 위상을 가진 마이크로파를 만드는 증폭기로서 레이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스마 : 양전하를 띤 입자 집단과 같은 크기의 음전하를 갖는 입자 집단이 높은 밀도의 기체 형태로 분포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우주는 99%가 플라스마 상태로 돼 있다고 말할 정도로 플라스마가 흔한 상태다. 남극이나 북극에서 발견되는 오로라도 지구 대기권에 존재하는 플라스마의 흐름 때문에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