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를 허용할 것인가'. 작년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가 탄생된 이후 끊임없는 논란을 일으킨 이 문제는 올해 초 한 미국 과학자의 '실험 선언'에 의해 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부 과학자가 인간복제 연구에 돌입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험 강행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처음이다. 더욱이 인간복제 반대론에 맞서는 찬성론자의 입장이 만만치 않아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1월 6일 미국의 리차드 시드 박사(69)는 불임 부부에게 아이를 선사하는 인간복제병원을 90일 내에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버드대 물리학 박사 출신인 시드는 1970년대 최초의 시험관아기를 탄생시키는 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묘하게도 그의 성 시드(Seed)는 '씨'라는 의미다. 시드는 2백만달러 정도의 비용과 전문가팀이 갖춰지면 18개월 내에 복제아기를 만들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나이 차 많은 쌍둥이일 뿐
시드 박사가 계획한 복제방법은 돌리의 경우와 유사하다. 부모 중 한명의 체세포로부터 유전자를 분리한 후 이를 다른 여성으로부터 얻은 난자에 이식한다. 이 난자는 이미 유전자가 제거된 상태다.
세포가 배양기에서 50-1백개로 분할될 때 세포의 하나를 자궁에 이식하면 9개월의 임신기를 거쳐 복제된 아기가 탄생한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이뤄지지 않은 채 새로운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과학자들은 복제 기술이 아직 불완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돌 리가 탄생하기까지 2백50여회의 실험이 반복됐다. 많은 미숙아들이 실험실에서 죽어갔다.
이런 불확실한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시킨다면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폐기처분'될까. 또 인공장기를 대체할 살아있는 장기를 얻기 위해, 그리고 신약품의 효능을 테스트할 '실험동물'로 사용하기 위해 복제인간이 이용되지 않을까. 종교계는 사람이 사람을 탄생시키는 일을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보고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반대 여론은 제도적인 규제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행정부는 작년 6월 클린턴 대통령이 요청한 '인간복제 금지법 제정안'이 빨리 의회에서 통과하도록 서두르고 있다. 미국 의회와 7백여개의 학술기관으로 구성된 생명공학산업기구는 인간복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또 1월 12일 유럽의 19개국 대표는 '인간복제 금지 의정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시드 박사의 '결단'에 대해 강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시드 박사가 복제하려는 대상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 부부다(시드는 불임 부부 4쌍이 이미 실험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불임 부부의 체세포로 자식을 만드는 일이 잘못일까.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시험관아기'는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서 인공적으로 수정시킨 생명체인데, 이 아기가 어른 몸에서 떼어낸 세포로 탄생한 아기와 무엇이 다를까. 성인의 체세포는 어차피 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결과물이 아닌가.
찬성론자들은 복제인간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복제인간을 마치 '넋 나간 기계적 냉혈한'으로 연상하는 일이 문제다. 복제인간은 출생과정만 다를 뿐 바로 우리 자신과 같은 인간이다. 9개월간 어머니 몸에서 길러지고, 따뜻한 가족의 품에서 자라난다.
복제아기는 부모 중 한사람과 단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쌍둥이일 뿐이다. 물론 유전자 구조는 같다. 외모도 거의 흡사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격과 능력, 가치관이 동일하지 않다. 일란성 쌍둥이가 자라난 환경에 따라 판이하게 다른 개성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불임 문제 외의 경우는 어떨까. 찬성론자들은 적절한 법적 규제를 통해 부작용을 없앨 수 있다는 낙관론을 편다. 예를 들어 실험실에서 생체 실험용으로 사용하거나 범죄자를 복제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하면 된다.
5년 뒤 정식으로 허용할지도
실제로 그가 70년대에 참여한 시험관아기 실험은 처음에 강한 반대 여론에 부딪혔다. 하지만 불과 몇십년 내에 시험관아기(IVF)라는 말은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오고 있고 정식 의학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에서 탄생한 시험관아기는 3만여명에 이른다.
세계적인 규제 추세 역시 시드 박사의 낙관론이 허황된 것만은 아님을 짐작케 해준다. 미국이 의회에 요청한 법안에는 복제 금지 기간이 5년으로 한정돼 있다. 생명윤리자문위원회가 5년 간 인간복제의 위험성을 평가한다는 의미다. 만일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판단하면 5년 뒤에 인간복제가 정식으로 허용될지 모른다.
한편 유럽의 경우 정작 복제양 돌리를 생산한 영국은 인간복제 반대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자유로운 연구전통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찬반 양론의 수준을 넘어서 보다 현실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복제인간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복제기술은 일부 부유층에게만 이용되지 않을까. 부작용을 해소시킬 제도적 방안은 무엇인가. 단순히 아기를 복제하는 차원을 넘어 유전자 조작을 가해 우량아를 낳으려는 시도는 어떻게 통제해야 할까.
작년 6월 돌리에 이어 탄생한 몰리와 폴리는 사람 혈우병 치료제를 만드는 유전자를 지녔다. 복제기법에 유전자 조작술이 가해진 결과였다. 이런 기술이 사람에게 시도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시드 박사의 발언은 복제인간을 맞을 구체적인 채비를 서둘러 갖추라고 세상에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