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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생명 현상의 통일장 이론 세포 자동자

 

세포 자동차


생명의 신비는 인간들에게 항상 그와 비슷한 것을 창조하도록 유혹해왔다. 수많은 설화와 전설 속의 신은 인간이 상상력만으로 고안한 최초의 인공생명체였다. 인공 생명체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는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싹트기 시작한 산업혁명 초기부터 본격화됐다.

주목할 예로 1735년 프랑스인 보깡숑이 만들어 공개한 정교한 기계오리는 이 오리쇼를 관람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이란 복잡한 기계장치의 일종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생명이 무엇인지를 알려는 노력은 먼저 그것을 모조리 분해해 그 생명을 담고 있는 하드웨어 그릇 안을 샅샅이 살펴보는 일부터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과학이 행한 환원주의적인 분석에 의해 밝힌 생명에 관한 최초의 결과는 생명이란 '복잡한 물리장치'(complicated physics)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이 단순한 외형적 관찰로부터 유추되는 생명에 관한 정의는 도리어 과학이 발달할수록 많은 도전을 받게 됐다. 현대과학의 진보로 말미암아 생명체와 전통적인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활동물질'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생명은 보다 넓은 정의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수백 년이 지난 뒤에도 싹을 틔우는 하나의 작은 씨앗이나, 괴상한 특성의 바이러스는 살아 움직이는 활동만으로 생명을 규정할 수 없는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생명에 대한 기본 가정인 '탄소우월주의'(Carbon Chauvinism)에서 한발 멀어질 필요가 있다.

새롭게 확장된 생명의 본질이란 내부의 물리적인 구성이 아니라 논리적인 기능이다. 생명에 대한 정의를 논리적인 구조로 확장시킨다면 지금까지의 개별화된 생명에 대한 정의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추상화시킬 수 있다.
 

호박 속에 갇힌 벌의 유전자를 찾아내 복원시키려는 시도는 생명이 정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될 수 있다.


붕어빵에는 코드가 없다

생명의 논리적 구조를 간파하고 그것을 물질적인 구성에서 분리 독립시킨 최초의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과학자인 폰 노이만이다. 노이만은 자신이 정의한 자동기계(automaton)가 실제 탄소와 산소로 구성된 물렁물렁한 생명체와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차이가 없음을 일찍이 간파했다.

물론 노이만의 자기증식 이론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이론 체계는 앨런 튜링(Alan Turing)에 의해서 제기된 것이다. 튜링은 '튜링기계'라는 가상적인 연산기계를 제안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신의 슈퍼컴퓨터도 아직은 이 간단한 튜링기계의 능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기계는 자기 자신의 행동을 기록한 제어 프로그램을 그대로 복제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기 재생산성이 이론적으로 제시된 튜링기계에서 자극을 받은 노이만은 이 보다 더 실제적인 모델에 가까운 이론적인 자동장치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이 장치는 다음 5가지의 기본요소로 구성돼 있다.

1. 조작요소: 기계의 계산부분에서 명령을 받는 장치
2. 절단요소: 컴퓨터의 명령이 출력될 때 두 가지 요소를 분리시킬 수 있는 장치
3. 결합요소: 두 부분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장치
4. 감각요소: 출력된 결과값을 인식해 다시 컴퓨터에 전달하는 장치
5. 거더(girder) : 기계장치의 겉 구조물과 정보저장장치를 이루는 부분

이러한 장치가 이전의 장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자신의 제조에 관한 정보를 자신의 생산물에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유전 메커니즘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출산이 붕어빵 기계에서 빵을 찍어내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후손에게 또 다시 자신과 같은 생물체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같이 넣어서 만들어낸다는데 있다. 이와 달리 붕어빵에는 속을 아무리 헤집어 보더라도, 붕어도 없고 생산에 관련된 지령코드도 없다.

폰 노이만은 자기 재생산의 논리구조를 완벽히 수식화하는데 성공했다. 비록 그 당시의 기계기술로 노이만이 제시한 장치를 실제적으로 만들지 못했지만 이런 충격적인 개념은 여러 사람을 고무시켰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증식과정은 노이만의 생명체이론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 노이만의 컴퓨터 구조는 이미 컴퓨터 바이러스의 출현을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으며, 컴퓨터 바이러스야말로 현존하는 프로그램 중에서 노이만의 업적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 연구는 이후 인공지능으로 확대됐다.
 

크리스 랭턴의 세포자동차.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재생산을 계속해낸다. 이같은 성질은 창발적으로 일어나며, 이는 인공생명의 핵심적인 특징이다.


우주를 가득 채우는 무인공장

노이만의 제안에 처음으로 응답한 발상은 에드워드 무어의 '살아있는 공장'이다. 이 공장에서는 거대한 기계가 주위의 원료를 선택해 부품을 생산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모습과 같은 자식공장을 조립한다.

또 그들에게 다시 복제 프로그램을 심어줌으로써 영원히 번성하게 한다는 것이다. 1950년에는 "만일 주위에 충분한 에너지만 있다면 이러한 공장은 번식에 번식을 거듭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제시됐다.

냉전시대의 우주경쟁이 시작될 무렵 '스스로 번식할 수 있는 공장'은 많은 관료와 행정가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했다. 우주개발이 더욱 치열해진 1980년대 나사, 즉 미국 항공우주국에서는 '자기 재생산계 설계팀'라는 팀을 조직해 전 우주에 무인공장을 뿌리기 위한 계획도 시도됐다.
동네 하천에 황소개구리 퍼지듯이 전 행성에 무인공장이 번창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백금이나 귀금속이 풍부한 행성에서 이것을 '먹이'로 증식을 계속한 공장들이 이윽고 모두 지구로 날아온다면 그야말로 엄청나게 수지맞는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고, 몇 광년이나 되는 행성간의 여행에 버틸만한 비행체를 만들어낼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일은 당분간 폐기됐다.

불행히도 노이만은 자동자 이론을 완결짓지 못하고 생을 마쳤지만, 생명의 논리적 구조를 탄소유기물로부터 해방시킨 노이만의 덕택으로 이제는 보다 다양한 구조들이 생명으로 불리게 됐다.

예를 들어 지금의 컴퓨터 바이러스는 이제 우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위협하는 분명한 '실리콘 생물'이다. 사람이 광합성에 기생해 살아가듯이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컴퓨터라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복제하는 완벽한 구조의 생명체다.
 

20세기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헝가리 태생의 폰 노이만. 그의 자동차이론은 인공생명연구를 통해 다음 세기로 이어지고 있다.


생명은 탄소가 아니라 논리다

1960년대부터는 수학자 콘웨이를 중심으로 세포 자동자(cellular automata)라는 형태의 인공생명체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생명 게임'(life game)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것은 바둑판 같은 격자 위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가상적 변화다.

어떤 한 칸의 상태는 그 주위 인접한 4개, 또는 8개 칸의 상태에 따라서 정해진다. 예를 들어 한 세포는 자신을 둘러싼 주위의 셀이 지나치게 많거나 적으면 다음 상태에서 죽는다. 그리고 주위의 셀이 적당하면 그 자리에 생명이 생기거나 생명을 유지한다.

이 실험에서 살아있는 세포의 위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했으며, 놀랍게도 어떤 다세포체는 자신의 초기모습과 같은 개체를 사방으로 복제시켰다.
 

(표) 각 개체의 논리적 구조


크리스토퍼 랭턴에 이르러 인공생명은 보다 많은 과학자들과 산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랭턴은 단순한 몇 개의 규칙을 가진 생명체를 컴퓨터에 프로그램으로 구성한 뒤 이들의 행동이 마치 살아있는 개미나 새떼와 같은 행동함을 보임으로써 인공생명을 단순한 컴퓨터 장난으로 보아온 보수학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때부터 노이만의 선구적인 노력은 랭턴의 덕택으로 세상에 나타날 수 있었다.

인공생명이 새로운 과학의 도구로 주목받는 것은 바로 다양한 복잡계의 일반적 성질을 포괄적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이만의 생명체 이론은 현대에 와서 생명을 계산에 응용하고자 하는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기 시작했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유전 알고리즘은 인공생명을 계산에 직접 응용한 좋은 예다. 이는 생명체들 사이의 무자비한 경쟁을 이용해 가장 최적의 답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풀려고 하는 문제를 각 생명체들에게 나누어 풀게 한 뒤 그 결과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나은 결과를 가진 개체만 살려두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버린다.

이렇게 살아남은 소수의 생명체들을 다시 임의로 교배해 번식시킨 뒤 다시 모두를 또 경쟁하게 한다. 이 작업을 원하는 수준의 결과값이 나오거나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까지 반복한다.
 

인공생명연구의 산파인 크리스 랭턴.


물론 전체 과정이 컴퓨터 내에서 수행되므로 경쟁에 참가하는 개체의 수는 매우 많으며 진화도 매우 빠르다. 이 방법은 단순한 기능의 생명체가 환경에 살아남으면서 점점 고도의 기능을 가지게 되는 적자생존의 과정을 본딴 것이다.

이와 반대로 외부적인 힘의 선택과는 관계없이 환경에 맞게 스스로 조직하는(Self-organizing) 능력의 인공생명체에 대한 연구도 진행중이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백신 프로그램 연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2000년까지 약 1만여종의 컴퓨터 바이러스 변종이 창궐할 것이므로 지금의 방식이라면 앞으로 PC를 한번 켤 때마다 그 검사에 수십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한다. 또 자주 백신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이 불편을 개선하기 위해서 MIT연구진이 1995년부터 제안한 방식은 바이러스에 한번 감염된 프로그램이 '면역체계'를 가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제 네트워크를 돌아다니며 바이러스를 박멸하고 스스로 살균력을 강화시키는 백신 프로그램도 가능할 것이다. 미래의 네트워크는 세균과 백혈구가 살아 숨쉬는 완전한 생태계가 될 것이 분명하다.

노이만으로부터 시작된 인공생명의 목표는 복잡한 생명현상 일반에 관한 '통일장 이론'을 세우는 것이다. 이제 인공지능, 유전자 알고리즘, 인공신경망, 자기증식자, 컴퓨터 바이러스 등은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히 생명체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됐다. 나아가 이제는 다마곳치의 죽음에도 눈물을 흘리는 어이없는 장면도 생겨나고 있다.

여하간 생명의 신비는 21세기 최고의, 최후의 연구 테마가 될 것이며, 인공생명은 이 일에 가장 확실한 실험도구를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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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조환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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