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를 물고 담장을 훌쩍
호랑이를 비롯한 대형 고양이과 동물은 지질연대상, 신생대 올리고세(Oligocene 3천만년전)에 등장해 플리오세(Pliocene 5백만년전)에 분화 발달했다는 학설이 가장 유력시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호랑이는 총 8개의 아종이 있다. 동북아 호랑이(시베리아 호랑이)는 바이칼호에서 연해주 일대, 만주, 한국과 중국 동북부 및 한반도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한국 호랑이, 백두산 호랑이 등으로 불린다. 중국 호랑이는 중국의 사천성 등지에 분포하며, 벵갈 호랑이는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등지에 서식하고 있다. 그 외 인도차이나 호랑이, 수마트라 호랑이, 자바 호랑이, 발리 호랑이, 카스피 호랑이가 있다.
강한 이빨로 단숨에 중추골 부숴
호랑이의 몸무게는 대개 2백75-3백kg 정도며, 북방에 사는 개체일수록 체형이 크고 털도 길다. 호랑이의 몸은 황색 바탕에 특유의 검은 줄무늬가 있다. 이 무늬는 울창한 숲 속에서 효과적으로 은신하는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랑이의 이빨은 총 30개로 위턱(upper jaw)의 제1 앞어금니(first premolar)가 매우 작거나 없고, 송곳니(canine)가 잘 발달돼 있다. 앞발이 특히 강대한 모습으로 발달돼 있고, 다섯 발가락 모두에도 강대하고 예리한 발톱이 자리잡고 있다.
발톱은 안으로 깊이 끌어들여 감출 수 있는 형태(retractile type)를 하고 있다. 먹이를 사냥할 때는 은신접근, 매복, 일순공격의 패턴을 구사한다. 대형 초식동물을 공격할 때는 온몸을 던져 덮치거나 강대한 앞발을 사용해 강타하고 매달린 후, 주로 목 부위를 물어 기도를 절단하거나 중추골을 단번에 부숴 제압한다.
잡은 먹이 가운데 워낙 큰 것은 서늘한 곳에 옮겨 놓고 여러 날에 걸쳐서 먹기도 한다. 한 번에 많은 먹이를 먹고 나면 일주일 가까이 먹지 않고 굶는 일도 많다.
호랑이는 새끼를 돌보는 암컷을 제외하고는 주로 단독 생활을 한다. 일몰부터 일출까지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 동물이다. 일주야 동안 행동반경은 약 20여km로 한마리가 최소 약 4백km² 정도의 서식면적을 요구하는데, 수컷 호랑이의 경우는 행동범위가 더욱 넓다.
거대한 체구 날렵한 몸매
호랑이는 거대한 체구에 비해 매우 날렵한 몸매를 가지고 있다. 머리와 앞다리가 크고 강한 골격과 근육으로 무장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차례 점프로 보통 4-5m까지 몸을 날린다. 뒷몸과 엉덩이 부분은 납작한 형태의 엉덩이뼈로 돼 있어, 마치 뱀처럼 은밀하게 먹이에 접근하거나 밀림 사이를 비집고 다니기에 적합하다.
호랑이를 잡아 본 포수들은 사람이 호랑이와 격투해 이겼다는 등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잘라 말한다. 머리와 앞다리의 무게만으로도 호랑이는 웬만한 장정을 쉽게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랑이는 주로 멧돼지, 노루, 사슴 등 몸집이 큰 초식 또는 잡식동물을 먹이로 하는데 덩치가 큰 먹이를 물고도 먼 거리를 단숨에 달릴 만큼 목과 어깨의 힘도 대단하다.
어떤 목격자는 호랑이가 인가에 내려와 황소를 물고 울타리를 뛰어 넘어가면서도 황소가 땅에 닿거나 끌리지 않았다고 말한다.
호랑이의 교미기간은 12-1월의 겨울인데, 수컷은 이 때가 되면 짝을 찾아 먼길을 다니며 잦은 포효를 한다. 호랑이의 포효 소리는 낮은 음이지만 매우 멀리까지 들려 가까운 곳의 다른 수컷을 위협하고 암컷에게 위치를 알리는데 유리하다.
임신기간은 약 1백일로 한 배에 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수유기간은 약 6개월 정도지만, 새끼는 3년 이상 어미와 함께 생활하고, 생후 4-5년이 경과한 뒤에야 스스로 독립해 번식의 기회를 갖는다. 다 큰 호랑이 암컷은 매년 번식하는 것이 아니고 한 마리가 평생에 4-5차례만 번식해 4-15마리의 새끼를 기를 뿐이다.
대범한 최후 택하는 영물
예전에 함경북도 지방에서는 '벼락틀'이라는 덫을 써서 호랑이를 많이 잡았다고 한다. 벼락틀은 호랑이뿐만 아니라 곰, 표범, 삵, 너구리, 여우 등 육식동물을 잡는데 많이 이용됐다.
벼락틀은 나뭇가지를 뗏목처럼 엮어 그 위에 커다란 바위를 묶어 올린 형태다. 그 밑에는 매끄러운 돌판 위에 짐승의 고기를 얹은 후 나무 기둥을 기대어 두고 호랑이를 유인한다.
마치 소쿠리를 써서 참새를 잡는 방법과 비슷하다. 호랑이가 다가와서 기둥 아래 깔린 먹이를 잡아당기는 순간, 무거운 바위가 내려앉아 짓누르게 된다.
대개의 동물은 벼락틀이 넘어지는 순간 미처 도망하지 못하고 온몸이 바위로 눌리게 되는데 비해 호랑이만은 언제나 몸이 반 이상 빠져나가다 엉덩이 끝이나 꼬리만 눌리게 되는 게 보통이라고 한다. 그만큼 호랑이는 재빨라서 일순간 몸을 돌려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멧돼지와 같은 동물은 덫에 걸리면 자신의 몸을 물어뜯어서라도 기어이 탈출하고 마는데, 호랑이는 뒷발의 끝이나 꼬리 등 몸의 어느 한 끝이 짓눌리면 쉽게 탈출을 포기하고 그 자리에 남아 있곤 한다. 사람들은 호랑이의 이런 태도를 보고 호랑이를 구차한 삶을 택하기보다 대범한 최후를 받아들이는 영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사라진 우리 호랑이
과거 동북아 호랑이의 분포권은 한반도 전역과, 중국 동북부 대흥안령산맥으로부터 흑룡강 유역,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 시호테알렌 산맥을 잇는 광범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또한 호랑이와 함께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포유동물 적색목록(IUCN 1974)에 등재된 동북아 표범(Panthera pardus orientalis)의 산지이기도 하다.
많은 먹이와 에너지를 요구하는 대형 육식동물들의 주산지였던 이 일대는, 그만큼 서식환경의 자연도(naturality)와 생산력(productivity)이 높았다. 20세기초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 북부 삼림지대는 끊임없이 이어진 광활한 원시림이었다. 당시 이곳에서 적지 않은 호랑이가 출몰했던 것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호랑이 출몰기록은 15세기 초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조선조 5백년간 매우 많았다. 이 때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호랑이가 살았는데, 이 때문에 곳곳에서 호환이 잦아 1402년에는 남동부 경상도지역에서만 사상자가 1백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남한에서 호랑이 공식기록은 1922년의 경상북도 경주군 대덕산에서 한 마리가 사살된 이래 아직 없다. 북한에서는 1945년 전후까지 북부 산악 산림지대에서 호랑이가 몇 차례 포획된 기록이 있지만, 그나마 1946년의 이후에는 더 이상 기록이 없다.
현재는 다만 중국과 접경지역인 고산 삼림에 몇 마리가 남아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과거 50년 이상, 남한에서는 단 한 차례도 믿을만한 호랑이 목격담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남한에서 호랑이는 이미 멸종된 것이 확실하다.
현존하는 야생 동북아 호랑이는 많아야 2백50마리 정도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수가 매년 10-13%씩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비교적 잘 알려진 러시아의 시호테알렌 생물권 보존구역과 라조 보존구역 등을 포함한 연해주 산간 보호구역 내에는 현재 약 20마리가 생존하고 있고, 연해주 전체에 2백마리 미만, 중국과 만주에는 20여 마리, 그리고 북한에 5-10마리가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5백여 마리의 동북아 호랑이가 세계 각국의 1백60여 동물원 등에서 사육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밀렵으로 죽어 가는 호랑이들
현재 자생지에 사는 야생 호랑이의 수는 격감일로에 있다. 호랑이 수가 줄어드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 중 주요한 것은 밀렵과 불법교역, 그리고 서식지의 훼손으로 인한 먹이동물의 감소다.
밀렵은 특히 아시아권 국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인해 국제적인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호랑이 밀렵꾼들은 돈을 벌려는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호랑이와 같은 포식동물이 생태계에서 갖는 중요성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현재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교역에 관한 협약(CITES) 등에서 동북아 호랑이에 대한 대책이 협의되고, 또 국제적인 통상압력까지 동원돼 호랑이 뼈와 기타 신체 부위를 약재로 소비하는 국가들에게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지만 밀렵은 쉽게 근절되지 않고 있다.
동북아 호랑이가 감소하는 또다른 원인은 서식지가 계속 축소, 격리,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북아권의 도시화로 인해 천연림이 대규모로 훼손되고, 삼림개발을 위해 접근로가 개설되면서 호랑이의 서식환경이 극도로 나빠지고 있다.
그 결과 먹이가 부족해 살아남는 호랑이가 줄고, 적응력이 떨어진 어린 호랑이들이 낯선 환경에 내몰리고 있다. 개체수가 줄어들면 궁극적으로 유전적인 다양성이 줄어들어 습성이 변하고, 내성이 저하되는 등 급속히 멸종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다.
첨단기술 동원 서식지 활동 파악해야
야생 호랑이의 보존을 위해서는 우선 천연생태인 자생 서식지를 보전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이를 위한 한가지 기술적 방안으로 자생 개체의 원격탐사기술과 지리정보체계(Geographic Information System)를 접목시켜 활용하는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첨단 기술을 동원해 개체들의 서식지 지도를 만들어 서식지에서의 활동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 야생 호랑이들의 생활사 및 생존에 관한 폭넓은 기초연구를 기대할 수 있다.
호랑이의 생태환경을 조성해주고 개체군 감소에 대한 방지책이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는 국제적 상황에 비추어보면 우리나라에서의 노력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최근 산림청에서는 호랑이 생태 복원을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호랑이를 자연상태에 적응시키는 적응훈련장을 마련하는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동북아 호랑이 2마리가 계획에 들어있을뿐 개체군을 복원하고 유전다양성을 확보하는 단계까지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호랑이가 우리 문화에서 차지하는 상징적 가치에서 보더라도 국가적 의지와 투자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