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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룩소르 신전

파라오의 영혼이 숨쉬는 곳


거리.


이집트는 흔히 스핑크스와 피라미드의 나라로 알려졌지만, 신전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 중심지는 룩소르(Luxor).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왕들의 계곡 등에는 파라오의 영혼들이 숨쉬고 있다. 투탄카멘의 마스크도 이곳에서 발견됐다.
 

카르나크 시전의 스핑크스^양의 얼굴에 사자의 몸을 하고 있다.


수천년 전 나일강의 유유한 흐름을 따라 이집트는 인류 최초의 문명을 찬란하게 꽃피웠다. 이집트 사람들 역시 모든 인류의 문명이 자신들의 땅에서 시작됐다는 강한 자부심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오늘날 동양과 서양, 그리고 아프리카의 문화가 교차되고 융합된다. 이 때문에 이집트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으면서도 인종이나 문화의 속내를 보면 결코 '검은 대륙'에 속해 있지 않다.

나일강 유역에는 문명을 발전시켰던 옛사람들의 자취와 수많은 신전들이 남아 있다. 모래 벌판에 우뚝 솟은 피라미드는 마치 하늘에 걸쳐 놓은 사다리인 듯하다. 지상에서의 영화를 하늘에서 꽃피우려는 듯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 채 서있는 것이 바로 피라미드다.

이집트라는 나라에 들어서면 마치 서남아시아의 한 국가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은 흑인보다 아랍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문화도 일반적인 아프리카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인들도 클레오파트라의 핏줄을 이어받아서인지 한결같이 미인이라는 인상을 준다.

또한 그들이 남긴 고대의 유적과는 상관없이 알라신에 대한 그들의 신앙심은 대단했다. 물건을 팔다가, 거리를 지나가다가 기도를 알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철저한 이슬람 국가이지만 사회주의와 합쳐져 다른 이슬람국가보다는 부드럽게 느껴졌다.

카이로에서 룩소르로 가기 위해 밤기차를 탔다. 오후 8시에 떠난 기차는 나일강을 따라 밤새 부지런히 달려 다음날 아침 8시에 룩소르에 닿았다.

룩소르는 '신전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신전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일강 동쪽에는 카르나크 신전과 룩소르 신전이, 서쪽에는 왕들의 계곡과 귀족의 묘, 그리고 하트세프수트 신전과 멤논의 거상이 웅장한 모습으로 자랑하고 있었다.

카르나크 신전 입구에는 작은 스핑크스들이 마치 사열이라도 하듯 열지어 서 있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이길을 '스핑크스 로드'라고 부른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기자의 스핑크스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 비해, 이곳의 스핑크스들은 양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신전 정문인 파일론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건축물이다. 높이40m ,폭60m, 그리고 밑바닥 두께는 10m에 달했다. 또 양옆에 서 있는 30m에 이르는 오벨리스크(뾰족한 기둥)의 수문장 석상의 위용은 사람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룩소르 신전 역시 약 20여개의 크고 작은 신전들로 이뤄져 있다.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성곽의 돌은 그 하나의 크기가 높이 1.5m, 폭 3m에 이르렀다. 신전 입구 제 1탑문 앞에 있던 한쌍의 오벨리스크 중 한 개는 현재 파리의 콩코르 광장에 있다. 카르나크 신전은 여러 왕이 세운 건물로 무질서한 미완성의 신전이지만, 룩소르 신전은 훨씬 조화와 균형이 잡힌 신전이다. 두 신전을 보면서 인간의 능력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건축물 앞에서 인간의 왜소함을 느끼는 것은 또 무슨 모순일까.

룩소르에서 나일강을 건너 서쪽에는 고대왕국의 왕들이 매장된 '왕들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피라미드 시대 이후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도굴로 미라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무덤을 암굴 형식으로 바꿨다. 왕들의 계곡은 그래서 생겨난 곳이다.

왕들의 계곡에서는 62기의 왕과 왕족의 묘가 확인됐다고 한다. 이 중에서 투탄카멘의 묘가 가장 유명하다. 투탄카멘은 9세에 돵이 되어 18세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묘는 왕묘로서 매우 작은 규모나, 다른 왕묘들이 대개 도굴된 것과는 달리 거의 원형 그대로 발굴돼 고고학상 불후의 가치를 지니게 됐다. 현재 발굴된 대부분의 유물들은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왕의 미라만 왕묘에 안치돼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을 따라 펼쳐지는 가늘고 긴 녹색지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비옥한 토지 뒤에는 사막과 황량한 바위산들이 단조로운 풍경을 그리며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옛날부터 참을성이 강하고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사용하던 농사 도구나 농사법을 오늘날에도 거의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변화에 익숙치 않다. 그 한 예로 메마른 땅에 물을 대기 위해 옛부터 사용했던 '샤두프'라는 양수 장치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이는 한쪽에 물통을 달고 다른 쪽에 추를 단 길다란 막대기를 균형있게 받침대에 얹어서 물을 도랑으로 퍼붓는 장치다. 고대인들의 즐겨 사용하던 간단한 역학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또 소를 이용해 물레방아에 연결된 나무막대기를 돌려 이쪽 도랑에서 다른 도랑으로 물을 퍼내는 장치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이집트의 젖줄인 나일강.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나일강은 고대의 찬란했던 이집트에서 오늘의 무질서해 보이는 이집트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거느리고 있다. 물론 미래의 이집트 또한 나일강에 걸려 있는 것이다.
 

아기미라^왕비들의 계곡에서 발굴된 생후 6개월된 아기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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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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