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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풍기는 성적 냄새

냄새를 지배하는 자 인간의 마음도 지배한다.

코는 생존의 측면에서 눈과 귀 못지 않게 중요하다. 코를 막으면 우선 호흡이 곤란해진다. 호흡은 일생에 두번, 태어날 때와 죽을 때를 빼놓고는 공기의 입출로 이루어진다. 태어날 때 처음으로 숨을 들이쉬고 죽을 때 마지막으로 숨을 내쉰다.

사람은 1만가지 냄새 맡아

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냄새를 맡는다. 우리는 냄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돌이나 유리처럼 상온에서 증발하지 않는 물체는 냄새를 맡을 수 없지만, 공기 중에 미립자를 흩뿌릴 수 있을 정도의 휘발성 물질은 모두 냄새를 풍긴다. 무중력 상태에서는 분자가 증발하지 못하므로 냄새를 맡기에 충분한 분자가 코에 다다를 수 없다. 우주비행사들이 무중력 때문에 우주에서 후각을 상실하는 이유이다.

사람의 코는 약 1만가지의 냄새를 구별할 수 있다. 숨을 들이쉬면 공기 중에 떠있는 냄새분자가 콧구멍을 통해 비강(鼻腔) 안으로 흘러들어간다(그림). 냄새를 최초로 탐지하는 후각계통은 양쪽 비강의 위쪽에 자리한 황갈색의 점막이다. 점액, 즉 콧물 덕분에 축축한 얇은 막은 후각상피이다. 후각상피의 면적은 약 2.5cm²에 불과하지만 냄새를 감지하는 뉴런 (신경세포)이 5백만개 있다. 후각이 예민한 개는 2억2천만개로 인간보다 44배나 많다.

이러한 후각세포는 뇌를 구성하는 뉴런과 유형이 같다. 그러나 뇌의 뉴런은 평생동안 교체되지 않는 반면에 코의 뉴런은 1-2개월마다 재생된다. 후각세포가 매일 들이마시는 공기와 낯선 물질로 손상되기 때문에 이를 교체하는 메커니즘이 진화된 것으로 보인다.

후각뉴런의 한 끝은 비강쪽으로 나와 있고, 다른 끝은 뇌로 연결된다. 비강쪽으로 나온 끝에는 섬모라 불리는 솜털이 달려 있는데, 이 섬모의 표면에는 냄새수용기가 들어 있다. 사람은 1천개의 상이한 냄새수용기를 갖고 있다. 공기와 직접 접촉하는 수용기 세포는 냄새자극이 포착되면 전기신호로 바꾼다. 전기신호는 후각뉴런의 다른 끝을 통해 후구(嗅球)로 전달된다. 코의 바로 위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후구는 뇌에서 후각정보가 지나가는 최초의 중계소이다. 후구는 변연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위이다. 변연계는 성적 충동, 공포, 분노 따위의 정서반응과 관련된 여러 부위로 구성된다. 후구는 변연계로 가는 신경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냄새신호는 변연계를 이루는 여러 부위로 들어간다. 변연계를 거친 신호는 후각피질로 퍼지게 되며 사람은 비로소 냄새를 지각하게 된다.

페로몬으로 의사소통

후각은 여느 감각보다 수억년 앞서 35억년 전에 나타난 것으로 짐작된다. 주화성(chemotaxis)이라 불리는 박테리아의 기능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생물이 특정한 화학물질의 농도에 반응하여 이동하는 성질을 주화성이라 한다. 박테리아는 영양물질에는 다가가지만 해로운 물질로부터 멀리 움직이려는 주화성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동물에게 후각은 생존에 필수적인 본능으로 진화되었다. 가장 예민한 후각을 가진 동물은 개나 다람쥐처럼 냄새분자가 가라앉은 땅에 코를 바짝 댄 채 기어다니는 짐승이다. 경찰견은 사람이 몇시간 전에 다녀간 방에서 그 사람의 체취를 맡는다. 다람쥐는 몇달 전에 묻어둔 도토리를 찾아낸다.

곤충 역시 냄새를 잘 맡는다. 뇌 세포의 절반이 후각에 동원될 정도이다. 모기는 잠든 사람이 내뿜는 탄산가스를 감지하여 흡혈대상을 발견한다. 수나비는 몇마일 떨어진 암나비의 냄새를 따라 집에 도착한다. 물고기도 후각능력을 필요로 한다. 연어는 부화를 위해 가야 할 그 먼 곳의 물냄새를 맡볼 수 있다.

동물은 또한 교묘한 방식으로 자신의 독특한 냄새를 남긴다. 들쥐는 발바닥에 오줌을 뿌려 영토를 거닐 때 그 냄새가 흙에 섞이도록 한다. 족제비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항문을 땅에 끌면서 다닌다. 열대우림에서 개미들은 선발대가 남긴 냄새를 따라 일렬로 행진한다. 외출에서 돌아온 어미 박쥐가 동굴 안에서 새끼를 찾는 방법은 제 새끼가 지나간 길의 냄새 밖에 없다. 암캐가 발정하여 암내를 풍기면 이웃의 수캐들이 몰려온다. 이와 같이 냄새는 동물이 짝을 유인하는 번식행동에서부터 새끼를 확인하거나 영토를 표시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의 신호로 사용된다. 같은 종의 다른 개체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동물의 몸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을 통틀어 페로몬(phero-mone)이라 한다.

페로몬이라는 용어는 1959년에 만들어졌지만 페로몬에 해당되는 최초의 화학신호가 확인된 것은 1930년대이다. 독일 화학자인 아돌프 부테난트는 20여년간 누에나방의 암컷이 분비하는 유인물질을 연구하여 그 구조를 발견했다. 암나방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은 극소량일지라도 몇마일 밖의 수컷들이 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달려오도록 유혹할 정도로 강력한 성 페로몬이다. 부테난트는 공로가 인정되어 36살되는 1939년 노벨상을 받았다.

페로몬 연구에 기여한 또다른 인물은 오스트리아 동물학자인 칼 폰 프리쉬(1886-1982)이다. 1973년 노벨상을 받았으며 꿀벌 연구로 유명하다. 꿀벌, 개미, 장수말벌 등의 사회성 곤충은 페로몬을 사용하여 복잡한 분업을 수행한다.
 

(그림)후각기관의 구조^공기 중의 냄새분자는 비강을 통해 들어와 후각상피를 자극한다. 이곳의 신경세포가 냄새자극을 전기신호로 바꿔 뇌에 전달함으로써 사람은 냄새를 지각하게 된다. 최근에는 사람 코에 '제2의 후각계동'인 서골비기관(VNO)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성 페로몬을 탐지한다고 알려진 기관이다.


제6의 감각은 존재하는가

페로몬이 번식행동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코 속에 서골비(鋤骨鼻)기관(vomeronasal organ, VNO)이라 불리는 제2의 후각계통을 갖고 있는 동물에서 확인된다. VNO는 서골 위에 위치한 한쌍의 움푹 팬 곳인데, 양서류, 파충류, 대부분의 포유류에서 발견된다. 뱀을 보면 혀를 빈번히 날름거려 주변의 화학신호를 포착한 다음에 VNO로 식별한다. VNO는 성 페로몬을 탐지하는데 사용되므로 성적인 코(sexual nose)라 불린다. 코 안에 VNO라는 성적 기관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포유류의 경우, 생쥐 수컷의 VNO를 수술로 제거하면 암컷 위로 올라타기는 커녕 암컷의 생식기에서 나는 냄새조차 맡으려 하지 않는다. 새끼를 밴 생쥐가 뱃속 새끼의 애비가 아닌 수컷의 오줌냄새를 맡을라치면 즉시 유산을 한다. 암퇘지는 수퇘지의 타액에서 페로몬의 냄새를 맡으면 조건반사적으로 등을 둥그렇게 만들고 엉덩이를 단단하게 하면서 음부를 내놓고 교미자세를 취한다. 발정한 암퇘지의 질에서 쏟아지는 점액을 모조품에 발라두면 수돼지가 그 위로 올라타기도 한다.

사람의 코에 VNO가 없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학계의 정설이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VNO의 존재를 끈질기게 주장하였다. 사람의 VNO는 2백90여년 전에 처음으로 학계에 소개되었다. 1703년 네델란드 군의관이 얼굴을 다친 병사로부터 VNO 구조를 발견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1891년 프랑스 의사는 환자 2백명 가운데 25%에서 VNO를 보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1930년대에 한 해부학자가 VNO는 태아에서 발견되지만 출생하면 곧 사라진다고 주장한 뒤부터 해부학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현대의학은 VNO가 인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퇴화기관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VNO의 탐지 대상인 페로몬이 사람에게 있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1986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두명의 미국 학자가 사람의 콧구멍으로부터 약 1cm 뒤에서 VNO로 보이는 0.1mm 가량의 구멍을 두개 발견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VNO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면, 그것이 함축한 의미는 실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VNO는 사람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는 화학신호, 이를테면 성적 행동에 개입하는 페로몬을 탐지할 터이므로 성적 기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 다시 말해서 페로몬은 보거나 듣거나 맛보거나 느끼거나 맡을 수 없는 화학신호이므로 페로몬을 탐지하는 VNO의 존재로 인간은 5감에 이어 제6의 감각을 갖게 되는 셈이다.

사람이 분비하는 페로몬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페로몬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되는 사례는 몇차례 관찰되었다.

같은 기숙사에 동거하는 여자 대학생들이나 한 집에 사는 모녀 또는 자매는 같은 기간에 생리를 하는 경우가 흔하다. 미국의 마다 맥클린톡은 여성들의 월경기간을 일치시키는데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연구했는데, 식사, 나이, 생활방식, 정신적 긴장상태 따위로는 설명이 불가능했으며 그들이 함께 보낸 시간의 양이 유일한 요인임을 밝혀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가깝게 지낸 사이일수록 생리기간이 일치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던 것이다. 1971년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맥클린톡은 여자끼리 주고 받는 페로몬이 여자의 생리를 조절했을 것으로 유추했다.
 

어두운 동굴에서 냄새로 새끼를 찾는 박쥐 무리.


겨드랑이 땀의 화학물질

1986년 맥클린톡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여자 열명의 코에 다른 여자의 겨드랑이에서 나온 땀을 규칙적인 간격으로 발라주었는데, 석달만에 열명의 여자들이 땀의 주인과 같은 시기에 월경을 시작했다. 그러나 땀 대신에 알코올을 코에 발라준 여자들은 생리주기에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땀에 들어있는 화학물질이 생리기간을 일치시키는데 영향을 미쳤음에 분명하다.

이 실험에서 겨드랑이의 땀을 사용한 까닭은 페로몬의 효과를 가진 화학신호를 분비할 장소로 아포크린(apocrine)샘이 가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강한 체취를 지니고 있다. 체취는 털이 많은 피부 안에 있는 피지선(皮脂腺)과 아포크린샘에서 분비되는 땀에서 비롯된다. 겨드랑이와 불두덩 주변에서 칙칙하게 자라는 털은 냄새를 퍼뜨리는 심지 노릇을 한다. 눈썹이나 젖꼭지를 중심으로 전신에 걸쳐 넓게 퍼져있는 피지선에서는 냄새가 자극적인 지방질의 화합물을 분비한다. 아포크린샘은 피지선과는 달리 특정한 부위, 이를테면 털이 특별히 집중된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위치한다. 아포크린샘의 분비물은 처음에 별다른 악취가 없지만 피부의 박테리아가 작용하면 몇시간 뒤에 오줌 냄새를 풍기게 된다.

어쨌거나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냄새는 연인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나폴레옹은 그의 연인인 조세핀에게 “내일 저녁 파리에 도착할테니 목욕을 하지 마오”라고 전갈을 보냈다. 여자의 옆구리에서 나는 냄새가 남자 안의 동물을 사로잡은 것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는 연인들이 이른바 사랑의 사과를 교환했는데, 부인들은 껍질을 벗긴 사과를 겨드랑이에 끼어두었다가 땀에 흠뻑 젖으면 꺼내서 애인에게 주어 그 냄새를 맡도록 했다. 오늘날 발칸 반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축제 동안에 남자들이 겨드랑이에 손수건을 넣고 다니다가 춤을 추는 상대에게 건네주는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키스를 연인들이 체취를 교환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 있다. 화학신호를 주고 받기 위해 키스가 진화되었을는지 모른다는 뜻이다. 키스를 할 때 상대의 얼굴 냄새를 맡고 애무하면서 쾌감을 맛보게 마련이다.
 

모녀지간과 같이 오랫동안 가깝게 지낸 사이일수록 생리기간이 일치한다는 가설이 제기됐다. 한 실험에 따르면, 겨드랑이 땀의 화학물질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최고의 향수 사향

사람은 고등 영장류 중에서 가장 냄새가 많이 난다. 역겨운 땀 냄새는 물론이고 하루에 2백75cc의 방귀를 뀐다. 체취를 없애기 위해 목욕을 하고 털이 자라나지 못하게 면도하거나 향수를 바른다.

향수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다. 신에게 제물로 바친 동물을 태울 때 나는 냄새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향을 사용한 것이 그 시초이다. 향수에 대한 인류의 집착은 그 역사가 꽤 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종교의식에서 많은 양의 향수와 향을 아낌없이 사용했고, 특히 클레오파트라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향수를 뿌렸다. 고대 로마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향수로 목욕했는데 신체의 부위별로 다른 향을 발랐다. 고대 일본에서 기생은 향수 사용량에 따라 화대를 받았다. 조세핀은 제비꽃 향의 향수를 종종 뿌렸는데, 그녀가 죽었을 때 나폴레옹은 무덤에 제비꽃을 심었다.

향수의 원료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사향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수풀에 사는 사향노루 수컷의 배꼽 근처에 있는 향낭에서 채취하는 사향과 이디오피아에 사는 사향고양이 수컷의 사타구니에서 분비되는 사향이 유명하다. 사향은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너무 흡사해서 여성의 성욕을 자극한다. 사향냄새를 맡은 여자들은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서 월경주기가 짧아지고 배란이 잦아지면서 임신의 확률이 높아진다.

실험실에서 여러 가지의 향을 혼합하여 제조한 최초의 향수는 1922년 선보인 샤넬 NO.5이다. 현재 상품화되어 있는 향료는 세계적으로 천연향은 1천5백여종, 인공합성향은 3천-6천여종에 이른다. 특히 VNO의 존재를 확신하는 사람들은 합성 페로몬이 포함되었다는 향수를 만들어 큰 돈벌이를 기대하고 있다.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1949- )의 소설 ‘향수’(1985)의 주인공은 조향사이다. 아무런 체취를 타고 나지 않았지만 아주 예민한 후각을 가진 주인공은 최고의 향수를 만들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스물 다섯 명의 어린 소녀들을 차례로 살해한다. 이 소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인간의 가슴 속으로 들어간 냄새는 그 곳에서 관심과 무시, 혐오와 애착, 사랑과 증오의 범주에 따라 분류된다. 냄새를 지배하는 자, 바로 그가 인간의 마음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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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이인식 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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