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생활을 하는 동물 중에는 나름대로 독특한 성격의 지도자격 우두머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늑대처럼 잔인하리 만큼 엄격한 규율을 통해 무리를 통제하는 우두머리도 있고, 코끼리와 같이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민주적인 질서를 원만히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포유동물 가운데 카리스마적 입지를 갖는 우두머리를 모시는 경우가 많다. 늑대, 사자, 하이에나, 아프리카들개, 바다코끼리, 바다사자 등이다.
바다코끼리나 바다사자는 수컷 우두머리 한마리가 암컷 여러마리를 거느리고 사는 ‘하렘’이라는 사회구조를 이룬다. 번식기에 이르면 수컷들 간에 암컷에 대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이 우두머리 싸움은 강인한 개체가 자신의 강인한 자손을 일방적으로 보다 많이 퍼뜨리기 위해 발생한다. 우두머리가 되는 개체는 체격이 크고 ‘포악하다’ 할 정도로 사나우며, 가장 질이 좋은 서식지를 차지한다.
드러누워 네발 뻗으면 복종 표시
노루나, 사슴, 산양의 경우에도 유사한 형태의 우두머리 싸움이 벌어진다. 각축전에 돌입하기 전 언제나 상대방의 수준을 알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싸울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을 미리 가리는데는 직감을 포함하는 많은 감각이 복합적으로 사용된다. 싸움에 앞서 서로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가 하면, 앞다리로 땅을 긁기도 하고, 땅에 구르기도 하며, 독특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포유류에게는 시각, 후각, 그리고 얼마간의 음성신호가, 새들의 경우는 시각과 청각 신호가 상대방의 수준을 알아채는데 주로 사용된다.
늑대의 사회구조는 매우 조직적이며 엄격하다. 팩(pack)이라고 불리는 늑대사회 조직에서 우두머리로 존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보통 늑대무리는 10-30마리에 이르는 개체군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의 주된 먹이는 자신의 몸집보다 훨씬 큰 큰사슴이나 순록과 같은 초식동물들이다.
늑대의 우두머리는 여러 마리의 젊고 힘센 행동대원들을 기용해 조직적으로 먹이를 교란하며 사냥에 돌입한다. 행동대원들의 사냥기술이 잘 연마되기까지는 자신이 앞장을 서고 먼저 공격해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성공적으로 먹이를 거꾸러뜨리면 우두머리가 유유히 다가가 배를 채우기까지 많은 무리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질서가 유지되기까지 늑대는 평소부터 잦은 서열 싸움을 겪는다.
우두머리 수컷을 보통 알파수컷(α-male)이라 하고, 그의 짝을 알파암컷(α-female)이라 부른다. 이들 알파에 대해 다른 개체들이 명확한 복종의 표시를 나타내지 않으면 서열 확인을 위한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알파 주변에서는 보통 ‘꼬리를 내리는 것’이 첫번째 복종의 표시다. 그렇지 않으면 알파 수컷은 송곳니를 드러내고 입가에 힘을 주어 깊은 주름을 드러낸다. 경고 표시다. 만일 우두머리가 머리를 한껏 낮추고 서서히 다가서면 이는 도전에 대한 응징을 뜻한다. 이와 같은 경고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늘을 향해 누워서 네발을 모두 뻗어 복종의 뜻을 확실히 해야만 한다.
늑대사회 질서가 잔인할 만큼 엄격한 것은 번식습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오로지 알파만이 팩 안에서 번식할 수 있다. 젊고 싱싱한 개체들이라 할지라도 다른 개체들은 짝짓기를 할 수 없도록 통제된다. 왜 그럴까.
침팬지 대장의 근엄한 표정
늑대 암컷은 한번에 여러마리의 새끼를 밴다. 이에 비해 먹이인 사슴과(科) 동물은 대체로 한두마리 정도의 새끼를 임신한다. 만일 늑대의 번식이 증가해 수가 늘어나면 늑대는 먹이가 모자라 결국 죽게 될 것이다. 따라서 먹이보다 더 많은 수가 되지 않도록 알파를 제외한 개체들의 번식이 엄격히 통제되는 것이다. 이런 입장이 영 못마땅한 젊은 수컷이 있다면, 이 개체는 따로 독립하거나 알파를 대적해 새로운 무리를 거느릴 만한 능력을 키워야 한다.
우두머리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얼굴의 표정과 제스처를 다양하게 구사하는 동물로는 사람에 가까운 유인원을 따를 자가 없다. 이들의 자기 의사 표현은 집단에서 대를 이어 전해지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침팬지의 사회행동 연구에 몸을 바친 제인 구달 여사는 “우리에 갇힌 한마리의 침팬지는 침팬지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했다.
비비원숭이나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는 종마다 고유하면서 다양한 제스처를 구사한다. 하지만 사람의 눈에는 잘못 판단되기 쉬운 점이 많다.
비비원숭이 집단은 보기와 달리 매우 사나운 짐승의 무리다. 우두머리가 성난 자세를 취하면 일시에 모든 개체들이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비비 원숭이의 성난 모습은 다소 하품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눈을 반쯤 감은 채 입을 얼굴만큼 길게 정면으로 벌린다. 이때 날카로운 송곳니가 정면을 향하고 눈은 하늘쪽을 향한다. 아래 몸은 다리를 벌려 쭈그려 앉은 자세에 윗몸은 곧게 세우고 앞발은 얌전히 앞으로 모은 모습이다.
만일 침팬지가 늑대처럼 입을 벌려 송곳니를 드러내고 입가에 주름을 만든다면, 이는 오히려 두려움을 뜻하는 것이다.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 역시 두려움을 나타낸다. 정말로 위협을 나타내는 침팬지는 입을 굳게 다물고 눈을 부릅뜨는 게 보통이다. 우두머리 침팬지가 항시 근엄한 표정을 짓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침팬지 젊은 수컷이 종종 우두머리에게 다가가 장난을 거는 듯 하다가는, 엉덩이를 들고 도망치는 모습을 반복하는 경우가 있다. 발정한 암컷이 보이는 구애행동과 매우 비슷하다. 그리고 우두머리는 도망치려는 젊은 놈을 붙잡아, 짝짓기를 시도하는 것처럼 아래 몸으로 눌러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동은 바로 우두머리에 대한 중대한 도전, 그리고 이 행동에 대한 응징의 모습이다.
사람 버금가는 현명함
고릴라가 침입자나 도전자에 대해 성난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데, 사람의 경우와 비슷한 점이 많다. 가장 흔한 표현이 자신의 앞가슴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몸을 날려 돌진할 자세를 취한다. 성이 많이 나면 땅을 두드리기도 하고, 눈앞의 나뭇가지를 꺾거나 눈에 띄는 무엇이든 집어던진다.
하지만 고릴라는 사실 매우 가족적이며 평화스런 동물이다. 몇몇 가족들이 이웃하며 살면서 공동으로 적을 방어하거나 구성원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때때로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나이와 경험이 많은 우두머리가 모습을 나타내는데, 이때 여러 구성원이 힘을 모아 함께 행동한다. 어쩌면 단지 육체적 힘에 의해서만 이들 사회가 통솔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아프리카에서 동물연구를 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많은 동물들을 이해하면 할수록 사람과도 비길 만큼 어떤 ‘생각’에 바탕을 두고 행동하는 것을 느꼈다는 얘기다. 특히 코끼리를 가까이 관찰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거대한 동물의 ‘현명함‘에 많은 감탄과 찬사를 보낸다.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고 알려진 여러 부류의 동물들은 종마다 무리를 짓고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다. 코끼리의 경우도 군데군데 크고 작은 숲이 있고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사바나지역에서 무리를 지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코끼리 무리는 대체로 여러 ‘가족’으로 구성된 집단을 이룬다. 새끼를 가진 부모들은 새끼를 돌보는데 전력을 다하며 매우 헌신적이다. 어느 한 우두머리에 의해 지배받지 않으며, 가족 나름으로 커다란 서식지 안에 흩어져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이런 코끼리의 가족공동체는 하나의 민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과 크게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코끼리 사회에 ‘어른’의 존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이와 경험이 많고, 보통은 체격도 매우 큰 수컷 한마리가 이른바 ‘촌장’ 노릇을 한다. 그러면 이 촌장의 임무는 무엇일까?
평소에는 촌장의 임무가 두드러지지 않지만, 어떤 위기상황이 닥치면 촌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진다. 말하자면 촌장의 중요한 임무는 ‘위기관리’에 있는 것 같다. 워낙 체격이 크고 육중해 이렇다 할 천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가족의 새끼에게 위험이 닥치면 촌장은 적극적으로 이 가족의 어미를 돕는다. 늪지에 빠진 새끼를 끌어내기도 하고, 굶주린 사자와 같은 맹수가 접근하면 몸으로 막아 방패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촌장 코끼리는 여느 가족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기에 충분할 수밖에 없다.
뼈아픈 이별 재촉도
코끼리 집단에게는 또다른 두가지의 위기상황이 있다. 하나는 예기치 않았던 가뭄으로 서식지 내 먹이와 물이 부족해지는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코끼리의 상아를 노리는 사람, 즉 밀렵꾼의 침입이다. 이럴 때도 촌장 코끼리의 영도력은 전체 집단의 안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마치 종족의 미래가 그 한 몸에 달려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다.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 촌장 코끼리는 이곳 저곳을 다니며 큰 나무를 쓰러뜨려 키 작은 코끼리들이 먹이를 얻을 수 있게 돕는다. 여러 어미들과 힘을 합쳐 마른 샘을 파서 깊은 곳에 남아 있는 물을 얻어내기도 한다. 그래도 물과 먹이가 부족하면, 다른 서식지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날 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도 촌장의 임무다.
흔히 코끼리에게는 무덤자리가 따로 있어서 나이든 코끼리가 그 곳에 홀로 가서 삶을 마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무덤자리가 따로 있다기보다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여행하던 무리 가운데 목적지에 미처 도달하지 못하고 굶어죽은 가족의 잔해가 쌓인 것이 무덤자리로 오인되고 있다.
이처럼 먼 여행을 결정해 한 곳을 떠나면 많은 희생이 따를 수 있다. 실제로 여행 중에 지쳐서 죽고 마는 개체들이 많다. 특히 어린 새끼들이 먼저 주저앉게 되면, 그 어미는 곁에 남을 것인지 무리를 따라 떠날 것인지 망설이는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물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촌장 코끼리 역시 그들을 남겨두고 ‘자, 이젠 가야만 한다’라고 다른 개체들을 재촉해야 할지 모른다. 이와 같은 이별이 있을 때 모든 코끼리들의 눈빛이 평소와는 전혀 다르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행 중 지난 몇해 전 죽어간 가족의 잔해를 지나기도 한다. 이때 모든 코끼리는 촌장을 중심으로 흩어진 뼈 무덤 주위에 둘러선다. 그리고는 저마다 긴 코를 써서 남은 뼈들을 한참동안 어루만지는 일종의 제사를 지낸 뒤에 다시 길을 떠난다고 한다.
밀렵꾼에게 몸 던져
나이 든 촌장의 몸에는 벌써 밀렵꾼의 총알이 여러발 박혀있을지 모른다. 그에게는 오로지 자연재해와 사람만이 천적인 셈이다. 마치 밀렵꾼이 총을 들고 다가오는 이유가 자신의 커다란 상아 때문인 것을 알기라도 하는 듯, 밀렵꾼을 향해 돌진해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신의 몸을 바쳐 후손들의 안전과 평화를 빌기라도 하는 듯.
코끼리에게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매우 낮은 음의 소리가 있어서, 멀리까지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능력이 있다. 총탄에 쓰러져 죽어 가는 촌장 코끼리의 유언이 뒤에 남은 모두에게 늘 이렇게 전해져 왔을지 모를 일이다. 이처럼 코끼리의 지도자는, 때로는 자신의 몸으로, 때로는 낮은 소리로 남에 대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동족의 숭앙을 한껏 받을 수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