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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유전자 인공적으로 합성

복제가능, 활용은 미지수

'양 복제 사건'에 이어 사람의 염색체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기사가 보도돼 또한번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인공염색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기술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고 인공염색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1970년대 유전공학자들은 세포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하고 이를 실생활에 응용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후 분자생물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유전자를 조작하는 단계에서 한걸음 나가 염색체 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려는 시도가 진행돼 왔다.인공염색체는 1980년대 초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미생물인 효모의 인공염색체(yeast artificial chromosome, YAC)였다. 하지만 사람의 인공염색체가 만들어진 것은 바로 얼마 전에야 이루어졌다. 지난 4월 초 미국의 윌라드박사가 ‘네이처 제너틱스’란 학술지에 사람의 인공염색체를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윌라드박사는 이를 ‘제1세대 인간 인공염색체’라고 불렀다.

인공염색체란 무엇일까. 윌라드박사가 만든 염색체는 실제 염색체와 어느 정도 비슷한 기능을 발휘할까. 또 인공염색체는 어떤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을까.

복제 담당 3총사

생물의 유전정보는 염색체에 존재한다. 염색체는 DNA(deoxyribonucleic acid)와 히스톤(histone)이라는 단백질이 결합돼 응축된 물질이다. DNA는 실처럼 길게 연결된 가닥 2개가 나선 모양을 이루며 꼬인 이중나선구조로 이뤄진다. 각 가닥의 안쪽에는 4개의 염기(아데닌, 구아닌, 시토신, 티민)가 무수히 배열돼 있다.

DNA의 대표적인 기능은 자신과 똑같은 DNA를 만들어내는 일, 즉 ‘복제’다. 세포가 증식하기 위해서는 세포가 계속 분열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분열된 세포에는 원래의 세포와 같은 양의 DNA가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세포가 둘로 분열하기 전 염색체는 2배로 늘어나야 한다. 이 과정을 DNA 복제라고 한다. 염색체는 복제가 끝나 DNA가 2배로 늘어난 상태를 나타낸다. DNA의 복제가 이루어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3총사가 있다. 복제시작점(origin of replication), 중심부위(centromere), 그리고 말단부위(telomere)다.

복제는 DNA의 특정한 염기 부위(복제시작점)에서 시작된다. 사람의 경우 복제시작점의 위치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복제를 모두 마친 염색체는 세포가 분열할 때 절반으로 나눠져 각각 2개의 세포에 할당된다. 이때 서로 붙어있는 염색체가 어떻게 둘로 나눠질 수 있을까.

염색체를 보면 가운데에 잘록하게 안으로 들어간 부위가 눈에 띄는데, 이를 ‘중심부위’라고 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 중심부위의 동원체(kinetochore)라는 부분에 미세한 관들이 붙어 염색체를 양쪽으로 잡아당긴다. 그 결과 염색체는 정확히 절반으로 나뉘어 각각 2개의 세포로 끌려간다.

중심부위의 구조는 단순하다. 짧은 길이의 염기배열을 갖춘 DNA 조각이 반복적으로 나열돼 있는 형태다. 그래서 사람을 비롯한 여러 생물체에서 중심부위의 구조가 잘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염색체의 양 끝에 ‘말단부위’가 존재한다. 몇년 전 밝혀진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부위가 없는 염색체의 경우 길이가 점차 줄어든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염색체가 끝부분부터 파괴돼 나간다는 말이다. 따라서 말단부위는 복제과정에서 DNA 길이가 줄어드는 것을 방지해준다. 말단부위는 중심부위처럼 짧은 길이의 DNA 조각이 반복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림1)염색체의 구조^이중나선구조를 이루는 DNA가닥이 단백질인 히스톤과 결합한 형태(뉴킄ㄹ레오솜)가 염색체의 기본 구조다.


사람 유전자 사람 세포에서 자라야

인공염색체가 자연염색체와 똑같이 행동하려면, 즉 성공적으로 복제기능을 수행하려면 이 3가지 부위, 즉 복제시작점, 중심부위, 그리고 말단부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우리가 연구하거나 활용하고자 하는 어떤 유전자를 연결시키면 정확한 의미의 ‘인공염색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1979년 스탠포드대학의 스툴박사는 처음으로 효모의 염색체에서 복제시작점이 포함된 DNA 조각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그 후 1980년 캘리포니아대학의 클라크와 카본 박사는 효모의 중심부위를 분리했다. 마지막으로 1982년 조스탁과 블랙범 박사는 말단부위를 분리함으로써 효모 인공염색체(YAC)를 만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효모 염색체는 사람의 것에 비해 크기가 작고 복제되는 시간이 짧다. 따라서 효모에서 염색체를 분리해 동물의 특정 DNA를 삽입하고 이를 다시 효모에 넣어 복제시키면,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양의 특정 DNA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당뇨병 치료제인 인슐린 유전자를 이런 복제 과정을 거쳐 대량으로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YAC의 등장으로 DNA 복제 실험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효모에서 염색체를 일일이 분리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사람의 염색체 전체를 많은 조각으로 절단해 YAC에 삽입한 후 대량으로 증폭시켜 사람 염색체 지도를 만드는데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양이 늘었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즉 YAC에 삽입된 사람 유전자가 효모에서 복제된다 해도, 그것이 단백질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정상적인 유전자로 작용할지 장담할 수 없다. 사람 유전자는 사람 세포에서 자라나야 제기능을 가장 정확하게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공염색체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림2)염색체 복제 3총사^복제가 이뤄지는데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중심부위, 말단부위, 복제시작점. 염색체 가운데 잘록한 곳이 중심부위인데, 이곳에 있는 동원체(붉은 색)에 미세관이 결합해 염색체를 양쪽으로 끌고 간다. 말단부위는 염색체가 파괴되는 것을 막는다. 사람의 복제시작점은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다.


작지만 기능은 정상

사람 염색체는 효모에 비해 1백배 이상 크고, 복제시작점, 중심부위, 말단부위 모두가 훨씬 복잡하기 때문에 만들기가 무척 어렵다. 그렇다면 윌라드박사는 어떤 방법으로 사람의 염색체를 만들었을까.

사람 염색체의 중심부위와 말단부위의 염기서열은 이미 밝혀져 있다. 이들은 모두 짧은 염기배열로 이루어진 조그만 가닥이 반복적으로 연결된 형태를 띠고 있다.

윌라드박사는 짧은 염기배열 한 단위를 일단 시험관에서 합성시킨 후 이를 ‘중합효소연쇄반응’(PCR)이라는 과정을 통해 대량으로 증폭켰다. 그리고 특정 효소를 이용해 이 짧은 가닥들을 길게 연결시켰다. 남은 것은 복제시작점이었다. 만일 복제시작점의 염기서열만 알아낸다면 효모의 경우처럼 완벽한 인공염색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윌라드박사는 복제시작점을 합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인공 중심부위·말단부위를 사람의 정상적인 염색체와 섞는 방법을 택했다. 사람 염색체에는 당연히 복제시작점이 존재한다. 합성된 중심부위와 말단부위가 정상 염색체의 복제시작점과 결합되고, 이 결합물이 스스로 복제하는 능력이 있다면 불완전하나마 사람의 인공염색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세포에 주입된 인공 중심부위·말단부위가 세포에 원래 존재하던 중심부위·말단부위와 교체됐다. 이들이 교체된 이유는 동종재결합 현상, 즉 비슷한 구조를 가진 DNA끼리 공존할 때 서로 위치가 바뀌는 현상 때문이다.

이 염색체의 크기는 원래 세포에 존재하는 염색체보다 5분의 1 정도 작았다. 윌라드박사는 이를 미니염색체(microchromosome)라고 불렀다. 왜 크기가 줄었을까.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중심부위·말단부위가 세포에서 서로 교체될 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부위들의 일부가 어떤 원인에 의해 잘려나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크기야 어쨌든 이 실험에서 중요한 점은 과연 이 염색체가 무사히 복제를 마칠 수 있을까의 문제였다. 윌라드박사는 세포분열 과정에서 이 미니염색체의 DNA가 정확히 2배로 복제되고 다시 둘로 나뉘어져 각 세포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제1세대 인간 인공염색체’가 만들어진 순간이었다.

윌라드박사는 인공적으로 합성한 중심부위와 말단부위가 세포분열 과정에서 정상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처음으로 밝혔다. 특히 중심부위의 어느 부위가 정확하게 분리에 관여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세포의 분열에서 중심부위가 어떤 구조를 갖고 역할을 수행하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밝혀지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림3)인공 효모염색체와 사람 염색체와 결합^인공효모염색체를 절단한 뒤 사람의 염색체 일부를 인공효모염색체에 삽입시키는 과정이다. 인공효모염색체에 복제에 필요한 중심부위(ORI). 말단부위(TEL), 복제시작점(CEN)이 있기 때문에, 사람 염색체가 인공효모염색체와 함께 많은 양으로 복제될 수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

하지만 연구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제1세대 인공염색체는 이미 존재하는 염색체에 중심부위와 말단부위가 삽입된 형태다. 따라서 원래의 유전자는 커다란 손상을 입은 셈이다. 이 유전자가 과연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연구는 유전자치료법을 개발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치료란 몸에 병이 생긴 부위에 ‘건강한’ 유전자를 주입시켜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이다. 만일 제1세대를 뛰어넘어 복제시작점까지 포함한 완벽한 인공염색체가 만들어진다면 시험관에서 ‘건강한’ 유전자가 삽입된 인공염색체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유전자가 세포에 들어가서 치료를 한다 해도 이 유전자는 세포의 입장에서 볼 때 ‘여분’의 존재일 뿐이다. 이것이 세포에 어떤 다른 영향을 줄지 아무도 단언하기 어렵다.

윌라드박사의 연구가 발표되자 많은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사람염색체까지 만들면 신의 섭리를 어기는 것이 아니냐"하고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과학자들이 생명의 기본이 되는 염색체를 만들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일은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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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안용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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