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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속임수?이해가능한 과학적 연기!

현대 마술의 본질은 '과학'이다. 과학의 뒷받침없이 구성할 수 있는 마술공연은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마술가들은 더 나은 마술을 위해 끈임없이 과학을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장치를 고안한다.

마술이란 단어는 한문으로 귀신 마(魔)자에 꾀 술(術)자를 쓴다. 이 말을 그대로 풀이하자면 ‘귀신같이 꾀를 쓰는 술수’라고 할 수 있는데,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방법은 전혀 알 길이 없고 현상만을 볼 뿐이니, 이같은 해석은 일견 타당할 수도 있다. 더구나 마술은 대부분이 외국에서 들어온 것인데다가, 마술의 저변 확대가 되어있지 않은 국내 현실에서는 일반인들에게 그저 재미있는 공연물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같은 사전식 풀이와 인식은 마술가의 입장에서 흔쾌히 수긍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마술은 단순한 잔꾀나 술수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마술이 ‘그저 그럴 듯한 거짓’에 불과하다면 공연장과 텔레비전 앞에 모여 열광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마술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조건만 갖추어지면 언제라도 재현이 가능하다. 이는 마술이 명실상부한 학문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기본 조건이다.

마술의 역사는 문명의 발상과 같은 궤적을 가지고 있다. 영어권에서 마술을 이르는 단어 매직(magic)이 고대 페르시아의 승려를 뜻하는 마기(magi)에서 유래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문명 초기의 마술은 마술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관객들에게 주술적 요소가 강하게 전달됐다.

그러나 근세 들어 폭발한 과학기술의 놀라운 진보는 마술가들에게 창조적 재능을 발휘하는데 필요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특히 19세기에는 과학을 이용한 화려하고도 신비한 대규모의 무대 장치 마술 등이 고안돼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사람의 몸을 허공에 띄워올리는 이른바 ‘인체부양’ 등이 처음 무대에 선보인 것도 이즈음이다. 요즘 구미에서는 ‘매직’ 대신 ‘컨저링’(conjuring)이란 용어를 사용해 주술적 마술과 현대의 과학적 마술을 구분하기도 한다.

관객과의 두뇌싸움

우리는 현대의 마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한마디로 표현하지면 마술은 ‘이해 가능한 과학적 연기’다. 이것이 현대 마술의 본질이다. 마술사는 관중을 공공연하게 ‘속이기 위해서’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특수한 장비를 고안하고, 고도의 기술을 동원해 한치의 오차없이 무대를 장악한다. 이를 통해 마술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허를 찌르며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현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마술 연기는 관중과 마술사 사이에 벌어지는 두뇌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관중들은 마술가의 동작 하나 하나를 관찰하면서 비밀을 풀고자 하고, 마술가는 관중들의 속마음을 시시 각각 관찰하고 평가해 자신의 움직임을 이어간다. 도구 등을 다루는 솜씨와 함께 상대방의 주의를 다른 방향으로 유도한다든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객들에게 심리적 트릭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문 마술가들은 상당한 수준의 심리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보는 마술은 대부분 그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술가들은 행해지는 공연의 규모에 따라 ‘대마술’과 ‘소마술’로 나눈다. 사람을 몇 등분 낸 다음 다시 원상태로 복귀시키는 몸자르기나 사람을 허공에 띄우는 인체부양술 등이 대마술이라면, 허공에서 비둘기를 나타나게 한다든가 사라지게 하는 것, 물에 적신 종이를 눈처럼 날리는 것 등은 소마술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같은 구분보다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몇 개의 범위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탈출마술

수갑을 차거나 쇠사슬에 꽁꽁 묶인 상태에서 몸을 풀어내 위기 일발의 순간을 벗어나는 탈출마술은 지금도 자주 공연되는 단골 프로그램이다. 탈출마술은 사람의 몸을 무엇인가로 부자연스럽게 구속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 동원되는 도구로는 쇠사슬이나 수갑, 또는 굵은 등산용 로프가 사용된다. 그러나 이 마술을 구사하는 마술가에게는 어떤 구속장치도 무용지물이다. 마술가들은 단단히 잠겨진 수갑이라면 5cm 정도 길이의 철사나 머리핀을 가지고도 풀 수 있으며, 쇠사슬이나 로프는 아예 아무 장치가 없어도 풀어버릴 수 있다.

공연장에서 행해지는 탈출마술은 좀 더 빠른 탈출을 위해 특수 고안된 수갑을 사용한다. 그러나 특수하게 고안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얼마만큼의 시간만 주어지면 구속도구의 허점을 즉시 찾아내고 만다.

탈출마술에서 구속도구를 누가 묶었는가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안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생각을 철저히 믿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스스로 묶었다는데에 대해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마술가는 어느 누군가가 자신을 묶으려 하는 순간에 이미 마술적 심리 트릭을 사용해 상대방과 도구의 허점을 파악해낸다.

그러나 이 마술은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탈출마술을 익히기 위해 마술가들은 온 몸에 피멍이 들 정도로 연습을 한다. 수많은 반복 연습만이 짧은 시간 안에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시키기 때문이고, 또 혹 있을지 모를 실수에 대해 100%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다.

탈출마술의 1인자로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마술가 후디니를 꼽을 수 있다. 전문가들에 의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술가’로 추앙받는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끓는 기름솥에서 탈출하다가 기름에 미끄러져서 유명을 달리했다고 전해진다. 밧줄에 묶인 채 나이애가라 폭포로 떨어지기 직전 밧줄을 풀고 폭포를 헤엄쳐 나온 그의 마술은 훗날 카퍼필드에 의해 재연된 바 있다.
 

우리가 마술을 보면서 즐거움과 놀라움을 느끼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소실, 출현마술

눈 앞에 보이는 물건을 사라지게 했다가 다시 나타나게 하는 마술 역시 탈출마술 못지 않게 오랜 사랑을 받아왔다. 아무 것도 없던 빈손에서 비둘기가 나오는 것, 또는 빈손에서 돈이나 카드를 계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등이 있는데, 요즘도 마술가들은 대상물의 종류와 크기를 바꾸어 가며 계속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카퍼필드가 행한 ‘자유의 여신상 사라지기’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 분야의 대표작으로, 현대과학과 마술이 결합한 극치라 할 수 있다. 약 91m의 높이, 46만t의 무게에 이르는 자유의 여신상은 카퍼필드에 의해 눈 깜짝할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 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유의 여신상이 어디로 사라졌던 것이 아니고, 마술에 의해 보이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 거대한 조형물은 그 자리에 선 이래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일이 없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30초간 사라지게 하기 위해 3억5천만원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이 비용의 대부분은 헬기를 동원하고 조명을 설치하고 장막을 치는 등 각종 기자재를 동원하는데 든 것이다. ‘카메라나 비디오의 트릭 없이 진행되는’ 그의 마술은 현대 첨단 과학을 바탕으로 결국 돈과 인력이 해결해준 것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무대에 나타났다 사라진 카퍼필드. 이 마술은 기본적으로 비둘기를 사라지게 하는 마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간 이동 마술

카퍼필드가 무대 위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라지는 공연을 본 관객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사실 이 마술은 비둘기를 이쪽 상자에서 저쪽 상자로 옮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비둘기에서 오토바이와 사람으로 소재만 바뀌었을 뿐이다. 방법에 차이가 있겠지만 사실 마술가에게는 비둘기를 옮기는 것보다는 사람이 이동하는 것이 더 편하고 쉽다. 다만 비둘기는 작기 때문에 어디든 숨기기가 쉽지만 오토바이나 사람은 숨기기가 용이하지 않다.

마술은 있는 것을 나타나게 하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환상’이기 때문에 카퍼필드와 오토바이가 공간이동을 하는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그 비용은 오토바이 2대를 구입하는데 사용할 것이며, 한 대의 오토바이를 이동할 장소에 미리 숨겨두는데 쓸 것이다. 오토바이를 숨기는데는 적어도 사방 1m의 장소가 필요하지만, 비둘기를 숨기는데는 그다지 넓은 장소가 필요하지 않다. 한 마리의 비둘기를 자유자재로 숨겼다 나타나게 하는 것쯤은 마술가에게 있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사람이 무대 위에서 객석의 가장 뒷자리로 이동하기에는 아무리 빨라도 눈깜짝할 사이의 시간으로는 불가능하다. 결국 사라지는 사람 따로, 나타나는 사람 따로, 이렇게 준비한다고 설명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처럼 큰 도구(오토바이, 헬기 등)를 사용하는 공연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마술을 관람할 순수 관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간단하게 마술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궁금증에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하지만 마술가는 같은 자리에세 동일한 마술을 한 번 이상 하지 않으며, 전수 목적이 아니라면 절대 제 3자에게 마술기법을 노출하지 않는다. 이것이 마술가의 행동강령이자 직업윤리다.

더구나 우리가 마술을 관람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신비함을 느끼고 즐기기 위해서다. 그 뒷면에 감추어진 모든 것을 알고 나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작은 행복'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과연 이 행복을 포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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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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