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미국 국립보건원은 2000년을 목표로 개발을 추진중인 완전이식형 인공심장의 가격을 미리 발표했다. 1개에 10만달러. 미국에서 잘팔리는 자동차 벤츠 시세의 두대값이다.
만일 우리나라가 벤츠를 능가하는 자동차를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려 한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기술적으로 따라가려면 족히 몇십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대신 완전이식형 인공심장을 미국보다 먼저 개발해 수출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이 경쟁이 전혀 승산없는 것이 아니라면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볼만하다.
인공장기 분야는 의학적인 면 외에 경제적인 이유로도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다. 적은 재원을 가지고도 아이디어를 잘 떠올려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면 이에 대한 세계적인 수요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인공장기 분야를 21세기를 주도할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입을 모은다.
외국 제품의 횡포
인공심장의 경우 현재 남아있는 과제는 몸에 완전히 들어가는 완전심장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미국, 일본, 독일, 그리고 우리나라가 모델 개발을 두고 마지막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단지 좋은 임상실험 결과를 누가 먼저 내놓느냐가 관건이다. 국내 여건상 동물을 상대로 마음대로 실험하기 어렵고 정부의 지원이 미국의 2백분의 1 수준이지만, 아이디어와 의욕만 있어도 한번 도전해볼만하다는 것이 관련 연구자들의 생각이다.
인공심장 외에 외국과 나란히 경쟁을 벌이는 장기가 또 있다. 심폐기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인공심폐기는 외국에서 다른 나라 제품들과 비슷한 가격(약 6백달러)으로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인공장기의 대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외국 회사들이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으로 제품을 팔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 비교할만한 제품이 없다보니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심폐기의 경우 국내에서 개발하기 이전 처음 수입했을 때 한 세트의 가격은 1천달러였다. 당시 국제적인 시세는 3백-5백달러. 실제보다 2-3배 비싼 값이었다. 그러다 국산 제품이 개발되기 시작하자 외국 상인들은 가격을 정상화하기 시작했다.
다른 인공장기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인공신장의 경우 1회 사용하는 장치가 1985년에 50달러였다. 환자 1명이 1년에 장치를 사용하는 횟수가 1백-1백50회 정도이고, 인공신장을 이용하던 환자수는 약 4-5천명이었다. 1년에 최소한 40만개 이상의 장치가 사용되던 시절이었다. 러나 당시 국제적인 가격은 절반인 25달러였다. 국내에서 인공신장이 개발되자 외국제품의 가격은 10달러까지 떨어졌다.
현재 인공관절과 인공혈관, 그리고 인공판막의 경우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 제대로 자료를 통계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국내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지만, 관련 연구자들은 1년간 소요되는 시장 규모를 대략 8백-1천억원(인공관절), 50억원(인공혈관), 40-60억원(인공판막)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국산 제품이 개발된다면 현재의 가격이 어떻게 떨어질지 모를 일이다. 인공장기의 ‘소비자’인 환자들은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하는 심정에서 가격을 따지기 어렵다. ‘가격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인공장기 개발을 서둘러야 할 필요가 있다.
짧은 역사인만큼 잠재력 커
한편 최근 세계 각국에서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있는 조직공학 분야는 다른 분야에 비해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만하다. 세계적으로 연구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약 10년 전부터 이 분야의 잠재력에 대한 인식이 시작됐고, 1988년 공식적으로 조직공학이라는 연구분야가 학문적으로 확립됐다.
아직 획기적인 제품이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점칠 수는 없지만 가격 면에서 다른 장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외국의 엔지니어링회사가 세포를 한번 배양해주는데 요구하는 비용만 해도 평균 5백만원 선이라고 한다. 배양 이후 직접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가가치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현재 연구가 가장 활발한 나라는 미국이다. 약 30개의 기업체와 20여개의 대학에서 연구를 수행중이다. 다른 분야에 비하면 이제 초기단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결코 불리한 상황이 아니다. 국내외적으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수가 어느 정도 확보돼 있다. 선진국과 비슷하게 출발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힘을 모은다면 의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훨씬 유리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정부와 기업의 활발한 관심과 투자가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