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차가운 물이 먼저 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겨울철 뜨거운 물이 빨리 어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남은 방학 동안 아침마다 채욱은 아버지의 차를 깨끗이 닦아드리기로 했다. 회사 일로 부쩍 흰머리가 늘어난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다.
갑자기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고 바람도 많이 불어 귀찮기는 했지만, 양동이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 아파트 주차장으로 갔다. 올 겨울 유난히 많이 내리는 눈 때문인지 아버지의 차는 꽤 더러워 보였다.
먼저 앞유리에 물을 한 바가지 쭉 뿌리고 걸레로 닦아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금방 얇게 얼음이 얼었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을 더 부어서 녹이려고 했지만 곧 얼어붙어 미끌미끌해져 버린다. 한참 얼음과 실랑이하다가 어머니께로 가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너무 뜨거운 물을 쓰지 말고 미지근한 물로 하는 거야”라고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하기로 했다. 과연! 생활의 지혜는 놀라왔다. 한결 세차하기가 편했다. 물이 덜 어는 것이다.
비밀의 실마리/뜨거운 물에서는 김이 많이 난다
단순히 생각하면 뜨거운 물이 식어서 미지근해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시간만큼 미지근한 물이 빨리 식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뜨거운 물에서는 증발이 매우 활발히 일어난다. 이 때문에 뜨거운 물이 미지근한 물보다 빨리 식어서 먼저 언다.
증발은 물이 수증기로 되는 현상인데 끓음과 달리 액체 표면에서만 일어난다. 물분자 중에는 평균 운동속도보다 빠른 것이 있고 느린 것도 있다. 일부 물분자는 끓는점인 1백℃ 이하의 온도에서도 기체가 되기에 충분한 속력을 가져서 공기 중으로 달아난다. 그러면 남은 물분자들의 평균 운동속도는 줄어든다. 이것은 곧 물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뜨거운 국을 먹을 때 ‘후후’ 부는 이유도 증발이 활발히 일어나도록 돕기 위해서다.
0℃의 물 1g을 1백℃까지 데우는데 1백cal가 필요하다. 반면 1백℃의 물 1g이 수증기가 되기 위해선 5백40cal가 필요하다. 5.4배나 많은 열이 쓰인다. 예를 들어 1백℃의 물 1g이 증발하면 주변에 있던 3g의 물을 얼게할 수 있다. g당 1백cal씩 3백cal는 물의 온도를 1백℃에서 0℃까지 내리고, 나머지 2백40cal는 g당 80cal씩 물을 얼음으로 변하게 하는데 사용된다.
한 실험결과에 따르면 물의 온도가 1백℃에서 0℃로 떨어지는 동안 질량의 16%가 증발된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뜨거운 물이 미지근한 물보다 더 빨리 식어서 먼저 어는점에 도달한다.
뜨거운 물을 더 빨리 얼게 하려면
물이 식을 때는 주위로 직접 열이 전달되는 전도현상과 증발현상이 함께 일어난다. 전도에 비해 증발이 더 활발하게 일어날 때 뜨거운 물이 먼저 언다. 전도와 증발 중 어느 것이 더 활발히 일어나는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물의 온도와 물이 담긴 그릇의 재질을 들 수 있다.
충분히 뜨거운 물을 사용할 때 증발량이 많아진다. 대체로 물의 온도가 80℃ 이상일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또 그릇의 옆벽으로 열이 잘 새 나가지 않는, 열전도율이 작은 재질로 된 그릇이 효과가 크다. 스테인리스 그릇보다는 열전도율이 작은 종이컵이나 컵라면 그릇에서 증발현상은 더 잘 보인다. 또한 증발은 물의 표면에서만 일어나므로 그릇 위가 넓은 것에서 증발이 잘 일어난다.
베드윈족이 검은 옷을 입는 이유
시나이 사막에 사는 베드윈족은 검은 천으로 된 헐렁한 옷을 입고 산다. 햇빛을 받으면 검은 물체가 흰 물체보다 더 뜨거워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흰 천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베드윈족은 검은 옷을 입어 땀이 빨리 마르게 한다. 수분이 증발하면서 열을 빼앗아가면 더 상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검은 옷을 입으면 흰옷을 입을 때에 비해서 옷 안의 온도가 6℃ 정도 더 높아진다고 한다. 이렇게 데워진 공기는 상승해 헐렁한 옷의 윗부분으로 빠져나가고 외부의 공기가 아래의 터진 곳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몸 주위로 언제나 바람이 불게 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땀의 증발이 활발해진다. 첫째 몸 주위의 수분이 많은 공기를 날려버리고 다시 건조한 공기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째 공기가 물분자와 충돌해 증발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바람이 분다고 해서 기온이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땀의 증발이 활발해지기 때문에 그 기화열로 인해 시원하게 느끼는 것이다. 바람이 부는 날 체감온도가 낮아져서 실제 기온보다 더 춥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편 인디언 사냥꾼은 사슴이 눈치채지 않도록 맞바람을 맞으면서 살금살금 접근한다. 사슴이 사냥꾼의 냄새를 맡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어느 쪽에서 바람이 부는지 알아내기 어려울 정도로 약한 바람이 불 때는 엄지손가락을 빨아 침을 묻혀서 들어본다.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는 것을 인디언 사냥꾼은 안 것이다.
증발은 체온조절의 원리
물의 증발현상은 사람이 체온을 조절하는 주된 원리가 된다. 바로 땀의 배출이 그것이다. 피부에 있는 땀샘에서는 땀이 끊임없이 배출되는데 체온에 따라 그 양이 조절된다. 배출되는 땀이 매순간 기화해 열을 빼앗아가면 우리 몸은 상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배출되는 양이 너무나 많거나 공기 중에 습기가 꽉 차서 증발이 잘 일어나지 않으면 체온 조절이 원활하지 않아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 더 불쾌감을 느낀다.
반면 땀샘이 없는 동물들은 다른 방법으로 체온을 조절한다. 예를 들어 개는 발가락 사이에만 땀샘이 있다.그래서 날씨가 더워지면 혀를 쑥 내밀고 할딱거려서 수분을 증발시킨다. 또 돼지도 땀샘이 없기 때문에 진흙탕에 뒹굴어 증발효과를 노린다.
언제 뜨거운 물이 빨리 어나
■학교ㆍ학년/서울 영신고 2학년
■우리들/이혁, 전상연, 윤미연, 강민아
"뜨거운 물과 찬물 중 어느 쪽이 빨리 얼까"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찬물이 빨리 얼겠지만 분위기를 보니 뜨거운 물이 빨리 언다는 것이 답일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다. 우리들이 누군가? 11년 동안 선택형 시험에 실력을 갈고 닦은 몸인데. 선생님께서는 "아주 날씨가 추우면 뜨거운 물이 찬물보다 빨리 얼 때도 있다"며 의심나면 직접 확인해보라고 하셨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떨 일을 생각하면 끔찍했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실험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실험1-64℃물과 6℃물의 비교
실험방법: 뜨거운 물과 찬물을 비커에 담고 계속 물의 온도를 재면서 어느 쪽이 빨리 어는지 살펴보았다.
실험결과
1)시간에 따른 온도변화(표1)
2)뜨거운 물이 빨리 식었지만, 찬물이 먼저 어느점 0℃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온도가 -1℃인데도 물이 얼지 않았으며 또 물이 얼면서 온도가 약간 높아졌다는 것이다. 이 결과를 들고 선생님께 찾아가 실험이 잘 되지 않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물이 아주 뜨거워야 잘된다면서 시범을 보여주셨다.
실험2-95℃물과 10℃물의 비교
실험방법: 뜨거운 물과 찬물을 각각 종이컵의 바닥만 덮일정도로 조금 붓고 창틀 밖에 두어서 어느 쪽이 먼저 어는지 살펴보았다.
외부온도:-7℃
뜨거운 물의 온도:95℃(종이 컵에 붓기 전)
찬물의 온도:10℃
실험결과
물을 바깥에 내놓는 순간 뜨거운 물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15분 정도 지났을 때 과연 뜨거운 물을 담았던 종이컵에서 먼저 살얼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뜨거운 물이 빨리 어는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뜨거운 물에서는 증발이 활발하게 일어나 많은 양의 열을 주위로부터 가져가기 때문에 빨리 식어서 더 먼저 언다는 것이다. 따라서 뜨거운 물이 빨리 어는 것을 보려면 증발이 아주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해야한다고 하셨다. 또 아주 뜨거운 물과 미지근한 물을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해진다는 것도 일러주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냉장고의 냉동실을 이용해서 뜨거운 물, 찬물, 미지근한 물을 얼려보았다.
실험3-냉동실 실험
실험방법: 뜨거운 물, 찬물, 미지근한 물을 냉동실에 넣고 매1분마다 문을 열어 상태를 살펴보았다. 뜨거운 물을 냉동실에 넣기 직전 종이컵 안쪽에 미리 표시해 놓은 눈금까지 따랐다.
냉동실의 온도:-18℃
종이컵 A:찬물 30mL(11℃)
종이컵 B:뜨거운 물 15mL(92℃)
종이컵 C:뜨거운 물 15mL(92℃)
종이컵 D:미지근한 물 30mL(55℃)
실험결과
3분 정도 지났을 때 종이컵 C에서 먼저 살얼음이 겼다. 5분 후 A와B에서 거의 동시에 살얼음이 생겼다 .이때 종이컵 C의 물은 벌써 얼어버렸으나 아직까지 D의 물에서는 별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7분 후 종이컵 B의 물이 먼저 완전히 얼었으며, 종이컵A의 물도 꽤 많이 얼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종이컵 D에서는 그때서야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결론/상황에 따라 냉각속도 달라
이제 다시 선생님께서 "찬물과 더운 물 중 어느 쪽이 빨리 어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할 것이다. 보통은 찬물이 빨리 얼지만, 물이 아주 뜨겁고 날씨가 매우 추워 증발이 활발히 일어나면 뜨거운 물이 빨리 얼 수도 있을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바람이 부는 날 이런 현상을 더 잘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번 탐구를 통해 물이 증발할 때 아주 많은 열이 주위로부터 빼앗긴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