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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딜레마

기막힌 신세계인가, 인간을 얽어매는 사슬인가

컴퓨터의 발전은 가상공간, 즉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인간들에게 선사했다.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인터넷. 하지만 인터넷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영화를 통해 인터넷 세상을 바라봤다.

우리는 지금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다. 정보의 가치가 날로 중요해지면서 빠르게 발전하는 컴퓨터가 지구촌을 하나의 인터넷으로 연결해 놓았다. 이제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주식 시세를 알아 보고, 피자를 주문하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들과 몇 시간씩 얘기를 나눌 수 있다. 또 전화선을 통해 컴퓨터로 연결된 곳이면 세계 어디든 접속해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가 대개 그러하듯, 인터넷에도 그 편리함 속엔 가공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보호받아야 할 정보가 노출되는가 하면 중요한 시스템에 침입해 그 시스템을 '작동불능' 으로 만들 수도 있다. 세상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놓았다는 것은 세계를 한번에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지배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되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컴퓨터 안에…"
 

영화 '해커들'(hackers). '워 게임'이라는 영화 성공 이 후 아예 '해커들'이라는 영화도 나왔다.


영화 '네트'(Net)는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우리의 불안과 피해망상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 안젤라 베넷, 그녀는 현실공간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삶이 더 지배적인, 이 시대의 전형적인 네티즌(netizen)이다(그러기에 그녀의 이름 Be-n-nett(넷트안에 있다)도 어쩐지 심상치 않다). 그녀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만들어 낸 상용프로그램의 성능을 미리 시험하는 베타 테스트(beta test)를 해주면서 살아간다. 저녁 식사도 컴퓨터를 통해 주문하고, 대화방에서 채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들과 일한다. 컴퓨터만이 그녀의 유일한 친구다.

그런 그녀에게 악몽이 시작된다.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관리하는 게이트 키퍼 프로그램(Gate keeping security program)을 자신이 짠 프로그램으로 승인받아 국가 전체를 지배하려는 해커에게 걸려든 것이다. 해커는 자신이 짠 프로그램을 승인하길 거부하는 정치인의 개인기록을 조작해 에이즈에 걸린 것으로 만들고, 정치인을 자살하게 만든다. 그런데 안젤라 베넷이 이 비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게 된다. 그녀는 해커가 짠 게이트 키퍼 프로그램에 의해 매춘과 마약을 일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조작되어 쫓기는 몸이 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의 공포가 그녀를 엄습해 온다.

그러나 죽이려는 음모보다 그녀를 더 괴롭히는 것은 누구도 그녀를 안젤라 베넷으로 증명해 주지 못한다는데 있다. 누구와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컴퓨터 앞에서 인생을 살았던 그녀를 누가 알겠는가! 그녀의 엄마마저 치매에 걸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극한 상황에 이르자 그녀는 절규한다. "온 세상이 컴퓨터 안에 다 들어있다구요!"

영화 '네트' 는 '컴퓨터 시대에 개인의 정체성' 이라는 문제를 악몽처럼 다루면서 익명성과 완전 노출이라는 인터넷의 이중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대화방에서 로긴 네임(login name)을 사용하기 때문에 익명성을 보장받는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더욱 솔직할 수 있고, 비열한 속셈을 감출 수도 있다. 베넷은 채팅(chatting)을 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스레 공개한다. 고향, 좋아하는 술, 담배, 영화, 음식, 심지어 이상형까지도. 덕분에(?) 비열한 속셈을 감춘 자들이 그녀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우리의 컴퓨터에 깔려 있는 넷스케이프(netscape)나 유닉스(UNIX) 운용 프로그램에, 그 프로그램을 짠 사람만이 알고 있는 비밀 코드가 있어서 마음대로 시스템을 작동시킬 수 있다면 세계는 어떻게 될까? 만약 빌 게이츠가 장난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짠 모든 프로그램을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지워버린다면 우리의 PC는 어떻게 될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네트' 는 바로 이런 섬뜩한 가정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관리하는 게이트 키퍼 프로그램을 장악해 국가 전체를 지배하려는 해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네트'는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과 불안 심리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베넷을 통해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섬뜩한 우리의 모습을 본다. 만약 동사무소의 컴퓨터가 잘못돼서 내가 얼굴도 모르는 타인으로 기록이 바뀐다면, 과연 나는 내가 '나' 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영화는 컴퓨터에 의해 규정된 현대인의 자아를 피해망상적으로 그려내면서, 이 악몽을 탈출(Esc)하기 위해서는 모든 프로그램을 지워야만 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꽃'(자연)을 가꾸는 베넷의 삶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모든 것이 서로 통하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한데 얽어 맨 그물이기도 한 인터넷의 딜레마를 우리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인터넷 : 세계 최대 컴퓨터 통신망이면서 상호작용의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디지털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뉴미디어. 세계 각 지역들의 크고 작은 네트워크들이 공동의 전송조절 프로토콜과 인터넷 프로토콜(TCP/IP)을 통해서 연결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 컴퓨터로 제어되고 만들어지는 가상세계.
네티즌(netizen) : 통신 시민을 뜻하는 전자통신시대의 세계인.
게이트 키퍼 프로그램(gate keeping security program) : 언론사의 데스크처럼 기사나 보도내용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개인 혹은 집단의 위치를 뜻하는 게이트 키퍼(gate keeper)라는 매스미디어 용어에서 유래. 시스템을 관리, 제어하고 최종 승인하는 프로그램.

인터넷 로빈후드, 해커
 

초보적인 수준의 해킹을 보여줬던 영화 '미션 임파서블'.


인터넷의 또 하나의 딜레마는 '정보' 에 있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는 힘이고, 권력이면서 동시에 돈이다. 그래서 컴퓨터만 있으면 언제든지 접근(access)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인터넷에는, 타인의 귀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기쁨과 나의 귀중한 정보를 누군가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함께 공존한다. 이익을 눈앞에 둔 기업들에게, 정치적 패권을 거머쥐려는 적대국들 간에, 또 정보와 기술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빅 브라더'(Big Brother)의 꿈을 가진 이들에게, 인터넷은 또 하나의 전쟁터다.

이 전쟁터의 전사는 단연 해커들과 크래커들이다. 해커(hacker)들은 '정보의 공유화' 라는 거창한 모토로, 접속을 거부하는 모든 시스템 프로그램에 침입해 정보를 모든 사람들에게 낱낱이 공개하려는 정보 도둑들이다. 해커는 '정보시대의 로빈후드' 같은 의적이길 꿈꾸기 때문이다. 해커와는 달리 크래커(cracker)는 다른 컴퓨터에 침입해 자료를 망가뜨리거나 빼낸 정보를 이용,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이다. 그러기에 해커들은 자신들이 크래커들과 구분되길 원한다.

영화 속에서 '해커의 등장' 은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사이버펑크의 고전이 된 영화 '워 게임'(War game)은 한 고등학교 학생이 비디오 게임을 훔치려다가 잘못해서 미국 방위사령부의 컴퓨터에 들어가게 되어, 하마터면 핵 전쟁이 일어날 뻔한 위기 상황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가 크게 성공하자, 해커로 자처하는 청소년들이 통신망을 뚫고 불법으로 다른 컴퓨터에 침입하여 사고를 저지르는 일이 잦아졌다고 한다. 영화 개봉 후 해커의 침입으로 인해 뉴욕 암연구센터에서는 환자 6천명에 대한 자료가 파괴되는 사고가 벌어졌다고 하니, 영화가 해킹을 부추긴 셈이 돼버렸다.

해커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영화는 단연 '스니커즈'(Snea-kers)다. 스니커즈는 컴퓨터 조작이나 도청 등을 통해 극비리에 시스템의 안전 장치를 확인해 주는 요원들을 부르는 말이다. 예전에 명성을 떨치던 해커들이 함께 모여 스니커즈로 일하면서, 미국 정부의 암호 해독기를 훔쳐 미국을 지배하려는 악당들과의 두뇌 게임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영화는 암호 해독기라는 정보와 기술을 가지려는 악당들의 야욕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치밀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해커와 크래커의 문제는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현대인의 가장 큰 문제인 '고독' 을 안고 있다는데 있다. TV가 외롭고 갈 곳 없는 할머니들에게 재미난 친구이자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 되었듯이,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방안에서도 세계 어느 곳과 통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도 사람의 얼굴을 대하지 않고 가상의 공동체에서만 살 수도 있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른바 네티즌인 것이다.

또 이런 현상은 옛날, 위대한 예술가들이 평생동안 외딴 마을에 살면서, 전세계와 편지만을 주고 받으며 가상의 공동체를 만들었던 것에 비유할 수 있다. 19세기 문학과 철학 분야에서 탁월한 저술과 서정시를 남겼던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 1798 - 1837)는 병약했고, 곱추였으며, 사람들을 기피했던 불운한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그 시대의 많은 지식인들과 편지로 교류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칸트도 그런 식으로 살았던 여러 지식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레오파르디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어디까지나 가상의 공동체일 뿐이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고립돼 살아가는 것. 이런 '대면적 관계의 절대적인 결핍'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큰 질병이다. 대부분의 해커들은 그런 의미에서 병적인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수동적으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은행의 컴퓨터나 미국 국무부의 컴퓨터에 침투하면서 그들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빅 브라더(big brother) :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기술과 정보를 통한 파시즘적 체제의 군주이자 권력을 지칭하는 이름. 기술과 정보를 통한 통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자주 쓰인다.

컴퓨터, 거부할 수 없는 동반자

컴퓨터는 자동차나 TV처럼 편리한 도구이면서, 동시에 위험한 도구다. 자동차 사고로 하루에 수백 명이 죽는다고 해서 모든 자동차를 부술 수는 없다. 컴퓨터가 가지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네트'식의 해결은 우리에게 어떠한 대안도 되지 못한다. 컴퓨터는 이제 우리의 거부할 수 없는 동반자임을 인정해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최근에 출간한 저서 '허구의 숲으로의 여섯 번의 산책'에 나오는 일종의 가상 체험은 컴퓨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위안을 넘어 어떤 희망을 준다.

"몇 달 전에 나는 갈라시아에 있는 라 코루나의 과학박물관을 방문했다. 방문이 끝날 즈음에 큐레이터는 나에게 놀라운 것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나를 천체투영기가 있는 방으로 데리고 갔다.

갑자기 방이 완전히 어두워지면서 팔라의 자장가가 들려왔다. 천천히 내 머리 위의 하늘은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의 출생지인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 1932년 1월 5일 자정에 나타났던 하늘이었다.

나는 내 생애의 첫 밤을 경험한 것이다. 나는 나의 첫 밤을 보지 않았으니 그것을 처음 경험한 셈이었다. 아마도 나의 어머니조차 나를 낳느라 지쳐서 그것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아버지는 보았을지도 모른다. (중략)

나는 행복했다. 나는 그런 때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전 생애를 통하여 가장 아름다운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던 허구의 숲이었다. 그러나 삶은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잔인한 것이어서,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요즘 컴퓨터를 다루는 법을 한창 배우고 있다.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전화를 걸고 TV를 켜듯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릴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선 안되는지를 배워야 한다.

내가 태어난 날 밤의 하늘을 다시 띄울 수 있는 이 시대. 인터넷에 뒤얽히고 컴퓨터가 우리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이 시대에도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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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정재승 물리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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