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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격파괴의 허실-'최고의 기능에 최저의 가격' 가능한가

부품 하나하나를 사다가 직접 교체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예 이미 조립된 완제품을 사기로 결심한 사람도 많다. 그러나 '어디서 어떤 제품을 사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 더욱이 최근 쏟아지고 있는 컴퓨터 '가격 파괴' 광고는 더욱 소비자을 혼란시키고 있는데···.

세진컴퓨터랜드의 등장은 가격파괴 바람을 몰고 왔다.

국내의 개인용 컴퓨터 역사는 87년 국내에 XT기종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89년 AT, 91년 386시대, 93년 486시대를 거쳐 현재 펜티엄시대에 들어선 것으로 구분되고 있다. 국내에 IBM 호환기종이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87년 수입자유화조치가 실시된 이후부터. 80년대말에는 XT컴퓨터를 사용한다면 제법 앞서가는 인텔리그룹에 속했다. 그러나 불과 6-7년만에 XT기종은 완전히 고물로 전락했다. 요즘 컴퓨터를 사용한다면 최소한 486DX2-66이나 펜티엄 쯤은 돼야 하고 멀티미디어 기능은 기본으로 갖춰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올 하반기 들어 클럭주파수 75MHz의 펜티엄이 중앙처리장치의 기본모델로 부상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90MHz의 수요가 이를 대체하면서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일부에서는 조심스럽게 예상한다. 한편에서는 1백MHz시장이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새로 발표된 1백20MHz 1백33MHz기종이 조만간 보급되기 시작하며, 연말에 출시되는 P6가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가 96년말부터는 펜티엄시장을 대체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펜티엄을 알기 전에 P6가 등장하고, 윈도 95를 써보지도 못한 채 윈도96의 출현을 보아야 하는 것이 요즘 소비자들의 처지다. P6가 순조롭게 진행돼 일정대로 등장한다면 펜티엄은 최고의 CPU로는 가장 짧은 수명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컴퓨터는 정말 빨리 변한다. 욕심대로 업그레이드를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백만원을 컴퓨터에 쏟아넣기 예사다. 이런 열렬한 제품구입자들이 있기 때문에 컴퓨터산업이 매년 고속성장을 유지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같이 '난세'에는 "구입은 신속하게, 업그레이드는 최대한 신중하게"하라고 전문가들은 권고한다.

일부에서는 컴퓨터업체의 마케팅 전략대로 따라가는 것은 마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끝없는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이치라고 지적한다. 업그레이드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시장 사이클보다 한 단계씩 늦춰 구입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경우에 따라서 메모리나 하드디스크 주변장치를 바꿈으로써 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포맷 비용은 따로 내시오"

생필품분야의 가격파괴 바람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컴퓨터분야까지 이같은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컴퓨터 노마진세일' '초가격파괴'··· 신문과 TV 광고를 통해 하루도 빠짐없이 볼 수 있는 컴퓨터 관련 홍보 문구다.

비장하기 그지없는 '가격파괴'라는 용어는 당초 원가매장이 확고한 브랜드가 필요없는 중저가 제품의 대량주문을 통해 생산원가를 줄인 뒤 이를 소비자에게 곧바로 판매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저렴한 가격은 소비자들을 끄는 첫번째 매력 포인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광고를 통해 홍보되고 있는 컴퓨터 가격이 실제 구매가격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광고를 그대로 믿었다가는 손해를 보기 십상이다.

모니터 부가세 별도란 항목은 기본이고 무려 30만원의 애프터서비스비용이나 포맷비용 설치비 배달비 등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업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실제 구입비가 광고문구에 표기된 것보다 20-30% 이상 높아지게 보통이다.

이같은 현상은 컴퓨터 분야에 대규모 양판점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업체간의 경쟁국면이 가격전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컴퓨터유통사들이 컴퓨터 가격파괴 경쟁을 벌임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은 크게 옵션사항의 증가, 시스템 질의 저하, 컴퓨터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 등으로 요약된다.

컴퓨터 유통사들이 주도하고 있는 가격파괴는 일반 소비재를 대상으로 하는 창고판매에서의 가격파괴와는 분명 다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컴퓨터는 가격과 성능이 밀접한 관계를 갖는 장비이며 박스단위로 거래되는 소비재와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재고 위험부담을 벗어나는 것만으로 원가 이하에 제품을 판매할 수는 없는 법. 어디에도 노마진이란 있을 수 없다. 남는 것이 없는 사업을 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전략에 기초한 특정품목에 국한된 노마진은 있을 수 있다. 현란한 광고로 도배라도 할 듯 연일 노마진이라고 선전하지만 유통업체들이 챙기는 마진폭은 변함없이 줄어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PC 한대를 생산했을 때 메이커가 얻는 이익은 제품가격의 약30%선, 그리고 일반적인 유통마진은 최소한 20%를 넘어선다.

문제는 유통시장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없이 PC처럼 다수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제품을 무턱대고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은 자칫 가격파괴가 아닌 '품질파괴'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가격 및 유통구조를 고수한 채 벌어지는 가격인하풍조는 메이커나 유통단계 중 어느 한곳도 경영합리화·체질개선을 통해 생산가격을 인하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일이다. 생산원가나 유통마진을 줄일 수 없는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제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Apple

'가격파괴' 제품은 모두 품절?

한대의 PC는 메인보드, 모니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각종 보드 등 다수의 모듈로 구성된다. 모니터 하나만 예를 들더라도 17인치의 경우 33만원에서 1백만원 이상에 이르기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비단 모니터 뿐만 아니라 다른 부품들까지 이같은 가격 차이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저가의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 판매가를 가장 손쉽게 낮출 수 있는 방법이다.

현재의 PC 유통에서는 '옵션'이 많다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양판점들이 이 옵션을 통해서 컴퓨터의 제값받기를 실현하고 있다.

펜티엄 90MHz PC를 1백50만원대에 판매한다는 광고의 경우 부가세와 모니터 가격을 제외한 가격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부가세 10%와 14인치 컬러 모니터를 합칠 경우 최소 30만원에서 40만원 정도를 합친 가격이 실제구매 가격.

특히 원가에 근접한 가격으로 PC를 판매하기 때문에 AS쿠폰(30만원 상당)과 배달비를 옵션으로 판매하는 업체도 상당수에 이른다. AS쿠폰을 구입하지 않는 경우에는 설치 이외의 AS를 일체 받을 수 없어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AS쿠폰을 별도로 구입해야 한다. 이외에도 일부 업체에서는 프로그램 설치비와 하드디스크 포맷 비용에 대한 공정가격표까지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비교적 점잖은 편. 일부 유통사에서는 홍보에 이용한 제품을 소비자가 요구할 경우 재고물량이 없다고 하거나 다른 제품을 권유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소비자들이 발길을 돌리기 일쑤이며 예산 이상의 지출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제품의 가격만을 고집할 경우에 당할 수 있는 피해(?)들은 많다. 부품의 사양은 단일 가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컨트롤러 드라이브 램 모니터는 기종과 용량 사이즈에 따라 가격편차가 심하다. 따라서 가격의 하락 폭 만큼이나 부품의 성능도 떨어진다는 것을 많은 전문 딜러들이 경고하고 있다.

차이가 있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이들 업체의 가격파괴는 일면 합리적인 요소도 찾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백화점, 쇼핑몰, 주택가의 소매점 등 각종 유통채널의 예에서 보듯 같은 상품을 취급하더라도 가격이 일률적이지 않고, 다소 비싸게 구매하더라도 소비자들은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즉 컴퓨터를 잘 모르는 소비자들의 경우는 용산 등 전문상가에서 일일이 품목을 맞춰 구입하는 것보다 한곳에서 몰아서 구입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용산의 대부분 매장은 한글 윈도 95 대기 수용에 몰려 '개점 휴업' 상태다.

"비싼 만큼 그 값을 한다"

컴퓨터는 일반 생필품과 달리 싸게 구입한다고 해서 만사가 해결되는 제품이 아니다. 컴퓨터를 일단 구입해 관심을 가지고 쓸모있게 사용하려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컴퓨터와 인연을 맺고 싶어하는 초보자들은 무턱대고 저렴한 가격만을 선호하기보다는 충분한 지식을 쌓은 다음에 자신에 맞는 제품을 구입해도 때늦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그리고 초보 소비자들이 현혹되기 쉬운 가격파괴바람은 전체적인 소비자 가격을 끌어내리는데 적지않은 역할은 했지만 내세우는 광고만큼 저렴하지 않다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결국 가격위주의 컴퓨터 유통은 사용자들에게는 '저가에 구입하면서도 속는 것 같은' 불신감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맹목적인 가격파괴 경쟁에 초연한 업체들도 상당수 늘어나고 있다. 용산상가의 일부매장에서는 3백만원은 넘음직한 시스템을 소비자들에게 권장하고 있다. 이 시스템들은 앞으로 전개될 윈도95 환경과 소프트웨어들의 성능 향상폭을 수렴한 제품. 이들의 주장 역시 간단하다. "비싼만큼 값어치를 한다."

아무튼 이같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주된 이유의 원인제공자는 결국 소비자에게 있다. 자신에게 필요한 컴퓨터의 사양을 파악하려 하지는 않은 채, 최고의 제품만을 구매하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양판점 판매담당자들은 최고의 기능에 최하의 가격을 제시하는 구매 희망자들의 문의 받을 때 가장 답답함을 느낀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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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정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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