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은 동양인이 개발해 낸 탁월한 도료다. 아름다운 광택 뿐 아니라 수천년의 세월을 견뎌내는 견고성도 자랑거리다. 옻칠과 함께 '금칠'이라 불리기도 하는 우리 고유의 도장도료 '황칠'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우리 민족이 옻칠(漆)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청동기 시대부터로 알려지고 있다. 충청남도 아산군 신창면 남성리에 있는 B.C. 3세기 경의 청동기 유적지에서 옻칠막의 파편을 찾아낸 일이 있다. 황해도 서흥군 천곡리와 전라남도 함평군 초포리 유적에서도 옻칠유물이 발견되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경상남도 창원군 동면 차호리에서 발견된 B.C. 2세기경의 옻칠을 한 공예품들이다. 여기서는 제기류 문방구류 무기류 등이 나왔는데, 제기류로는 방형고배를 비롯 원형고배 통형제기, 문방구류로는 붓대 부채대, 무기류로는 청동검 칼집, 칼자루 활 봉 등이 있었다.
주로 정제한 흑칠(黑漆)과 주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는데, 주칠은 밑칠로 사용한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이보다 더 오래된 옻칠공예의 흔적은 중국에서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에 해당하는 절강성 여요성 하모도(浙江省 余姚縣 河姆渡) 유적에서 발견된 완전한 모습을 갖춘 주칠목완(朱漆木匋)이 그것이다. 이 유적은 기원전 5005±130년과 기원전 3380±30년의 것으로 추정돼 고고학계는 물론 산업도장공예학계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나무백골(木質柏骨, 옻칠을 하기 전의 목기나 목물)의 주발(匋)은 백골표면에 옻칠의 밑바탕인 골해(骨骸)를 매긴 후 표면에 다 엷은 주칠(朱漆)을 입혔다. 칠의 일부가 떨어져 있으나 발견 당시에는 완전한 작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주발을 발견한 뒤 세척작업 과정에서 옻칠의 표면이 깎이거나 떨어져 나간 것으로 믿어진다.
아직 남은 부분은 광택이 완연하여 갓 칠한 것같이 보이는데 화학적 분석과 스펙트럼 분석을 해본 바에 따르면 한대(漢代) 작품인 마왕퇴(馬王堆) 묘에서 발견된 옻칠그릇의 표피를 실험한 결과와 비슷한 옻칠로 감정되었다고 한다.
하모도 유적에서 발견된 옻칠공예품은 위의 주칠목완 외에도 전등멸주칠목통(膂藤蔑朱漆木筒), 감옥고병주칠배(嵌玉高柄朱漆杯)가 있다. 이들 3점의 옻칠 자료 중 감옥고병주칠배는 발견 당시부터 보존상태가 좋지 못했지만, 전등면주칠목통과 주칠목완은 완전한 것으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옻칠 공예품으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옻칠공예품은 수천년의 세월을 견딜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나다. 이는 옻칠과 그릇의 상호작용으로 내구성이 향상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반면 현재 개발되고 있는 도장도료가 과연 앞으로 몇천년을 지탱할 도료로 남을 것인지 궁금하다.
옻칠(漆)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수액(樹液)의 일종이다.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에서 예로부터 금속이나 목공 도장용으로 가장 소중히 여겨 특히 칠기류에 많이 사용했다.
칠액의 주성분은 우루시올이며 기타 수분과 소량의 고무질 및 함질소물을 함유하고 있는데, 조성은 산지에 따라 다르다.
옻칠의 주성분인 우루시올은 경도가 높고 아름다운 광택을 가진다. 그래서 페인트나 에나멜에 비해 깊이가 있고 무게있는 예술성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나전칠기는 우리나라 고유의 공예품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공업용 약용으로 활용
채취한 옻은 오래 저장해도 변하지 않으며 산이나 알카리 또는 70℃이상의 열에 대해서도 변하지 않는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다른 색소와 섞어서 여러 기구 및 기계의 도료로 쓰이며 목제품의 접착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생산량이 적고 값이 비싸 주로 미술공예품 등의 용도에 사용된다. 의약용으로는 통경 구충 진해 등에 사용된다.
옻은 완전히 굳으면 황산이나 초산, 염산에서도 녹지 않으며 타지도 않는 강하고 견고한 피막을 형성한다. 때문에 고급공업용으로도 쓰인다.
또한 병기인 함포에 칠하면 가스찌꺼기가 붙지 않으면 군함이나 배밑에 옻칠을 하면 조개류가 붙지 않아 항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고급섬유에 옻칠을 배합한 것이 있는데, 이 섬유로 만든 의류는 고가의 옷으로 귀하게 여겨진다고 한다.
현대에는 높은 전기저항과 내열성을 가지므로 전기절연도료 내산도료로도 사용된다.
옻나무의 원산지는 히말라야 산맥 서북쪽에 위치한 고원지대로 밝혀지고 있으며 분포지역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에 걸쳐 있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 미얀마 베트남에서 생산된다.
옻칠은 생칠인 성칠과 화칠(火漆)로 구분되며 성칠은 공예용과 공업용으로 주로 쓰인다. 화칠은 약용으로 쓰인다. 생옻을 따 놓으면 발효하게 되는데 발효된 칠을 쓸 때마다 옻칠 속에 함유된 불순물과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옻나무의 표피에 상처를 내면 상처로부터 유회백색의 유액상 수지를 분비한다. 이것을 생칠(生漆)이라 한다. 생칠을 그대로 도료로 칠하면 광택이 나쁘고 산화효소 라카아제의 작용으로 건조가 너무 빠르다. 그러므로 용도에 맞추어 가공할 필요가 있다.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에 생산되는 옻을 정제칠이라고 한다. 정제되지 않은 옻칠을 사용한 작품은 수명이 길지 못하며 발색도 좋지 않다. 그러므로 정제칠은 생칠과 투명칠로 구분된다. 정제과정에서 철분을 첨가하게 되면 흑칠이 생성되는데 이 칠을 일반적으로 정제칠이라 부르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명칭이기 때문에 고쳐져야 한다.
생칠은 용기 내에서 상온으로 교반한 후 38-45℃에서 수시간 보존하면 빛깔이 검게 변한다. 이 공정을 소흑목이라 하며 공정 중의 주반응은 산화와 탈수라고 생각된다. 이밖에 기름을 가하거나 안료를 첨가하여 정칠이라고 하는 최종제품을 얻게 된다.
정제과정에 의해 생산된 칠은 생칠 투명칠 흑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투명칠은 광택칠과 무광택칠로 구분하게 된다. 투명칠에 안료인 무기성 석채(石彩)를 배합한 색깔칠인 화칠(畵漆)이 있다.
영사를 배합한 주칠도 화칠에 들어가며 백토나 호분을 배합한 흰칠, 금분을 배합한 금칠, 청석을 배합한 청칠 등도 화칠이다.
한국 대표적 옻칠공예 나전칠기
백골에 어떠한 칠을 입히느냐에 따라 명칭이 붙는 반면 백골의 재질종류에 따라 명칭이 붙기도 한다.
재질에 따라서는 나무를 소재로 삼은 목심칠기, 질그릇을 백골로 삼은 와태칠기, 대나무나 버드나무를 사용한 남태칠기, 가죽을 바탕삼은 피태칠기 거칠 등이 있으며 전복껍질이나 소라껍질인 패각을 이용하여 무늬장식을 한 나전칠기, 신라시대에 쓰였던 평탈기법에 따른 평탈칠기 등이 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다호리(茶戶里)에서 여러 종류의 옻칠공예가 있었으며 초기 철기시대의 작품으로는 한나라의 작품인 소위 낙랑칠인 칠화칠기를 비롯해 삼국시대의 백제지역과 신라지역에서 칠화칠기가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청자와 상감청자에 버금가는 나전칠기가 있다. 나전칠기는 한국을 대표하는 옻칠공예로서 그 전통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계승돼 오고 있다.
중국은 칠화칠기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나전칠기, 일본은 마키에(諅繪漆器, 금분화)가 있어 동양삼국의 특색을 드러내보이고 있다.
이상과 같이 동양삼국이 독특한 옻칠공예를 발전시키고 있다. 옻칠이 오래 보존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는 옻칠의 특수한 도막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밑일에 쓰이는 재료에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은 호분, 한국은 골분인 골해(토분)를 쓰며 일본은 규조토(도노코)를 사용한다. 일본의 도노코는 아메바의 유체로 많은 구멍을 갖추고 있으므로 옻칠이 각 구멍 속으로 스며 들어가 서로 얽혀 옻칠막을 안전하게 보호하게 된다.
옻칠나무는 낙엽수로 5·6월에 꽃이 피며 10-11월에 열매가 익는다. 옻을 따는 시기는 7월에서 10월중이라고 알려진다.
옻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란다. 그중에서도 현재 옻을 따고 있는 곳은 강원도 원주시 칠악산 지역과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리 지역이다.
질이 좋은 옻은 원주 칠악산과 충청북도 협천군, 북한에서는 평안북도 태천군,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채취되는 것이 유명하다.
태천칠은 강한 것이 특징이고 함양지방에서 채취되는 칠은 연하며 원주산은 강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아 중간에 해당되어 주로 일본으로 수출되는 형편이다.
옻칠의 성분은 원주산은 수분 16.16%, 우루시올 72.53%, 고무질 7.87%, 함질소물 3.47%이다. 옥천산은 수분 11.18%, 우루시올 83.41%, 고무질 3.82%, 함질소물 1.58%이고 태천산은 수분 9.64%, 우루시올 85.06%, 고무질 3.71%, 함질소물 1.58%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우루시올이 많은 것은 태천산이고 고무질은 원주산이 많다. 함질소물은 3.47%가 함유된 원주산이 많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목질칠완의 주칠은 투명칠에다 결명주사(決明朱砂)인 영사(靈砂)를 배합한 칠인 것으로 추정된다. 영사는 일찍이 약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허준의 저서 동의보감에 따르면 '성온하고 미감하며 무독하다'고 하였다.
일절의 냉증과 염증을 다스리고 기력을 더하며 혈맥을 통하고 심장의 정중을 진정시키므로 오래 먹으면 마음이 영명해진다고 밝히고 있다.
건칠(乾漆)과 생칠은 약으로 쓰고 있는데 동의보감 탕액편 목부조에 의하면 건칠은 성온하고 맛이 매우며 유독하다고 한다.
옻나무는 정식한 후 4년째에서 10년째까지 수액인 옻을 채취한다. 옻나무 줄기 외피에 상처를 수평으로 내어 흘러나오는 수액을 받는 방법을 쓴다. 이것을 채취한 것을 생옻이라 한다. 이를 건조시켜 굳은 것을 마른 옻이라 한다.
옻을 채취하는 데는 상처를 적게 줘 나무가 죽지 않게 매년 조금씩 채취하는 방법과 상처를 많이 내어 최대한으로 옻을 채취하고 나무가 죽으면 베어버리는 방법이 있다.
7월에서 10월 사이에 옻나무에 V자형으로 상처를 내어 이 V자형 상처의 기부에서 아래쪽으로 용기를 연결시켜 수액을 받아낸다. 보통 10년생 나무에서 2백 50g정도의 옻을 생산할 수 있다.
금빛 찬란한 황칠
옻칠공예는 우리 민족이 많이 쓴것이기는 하나 고유의 것이랄 수는 없다. 반면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칠이 최근 복원되고 있다. 황칠공예(黃漆工藝)가 그것이다. 황칠은 금칠이라고도 한다.
황칠공예는 근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취를 감추었지만 옻칠과 쌍벽을 이루는 한국고유의 칠이다.
황칠에 관한 자료는 현재 박물관은 물론 어느 곳에도 없다. 문헌자료에 근거를 두고 십여년에 걸쳐 복원재현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를 개발하게 되면 세계유일의 도장재료가 될 것이다.
황칠에 관한 문헌자료로는 삼국사기와 책부원구(册府元龜)를 비롯, 당서동이전해동역사 선화봉사 고려도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서 동이전에 의할 것 같으면 '백제에는 삼도(三島)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황칠이 난다. 6월에 나무에 흠집을 내어 진을 얻으며 빛깔은 금빛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해동역사에 의하면 '백제 서남쪽 바다 속에 섬 세곳이 있는데 거기에는 황칠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는 작은 종려나무와 비슷한 것으로 6월에 즙을 채취하여 그릇이나 물건에 칠하면 황금과 같아 그 빛깔을 본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한다'고 하였다.
한편 계림지(鷄林志)에 따르면 '고려의 황칠은 섬에서 나는데 6월에 채취하며 색깔은 금빛과 유사한 것으로 햇빛 아래서 말린다. 원래는 백제에서 나는데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사람들은 신라칠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에서도 황칠공예품이 제작되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또한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조에 '당나라에 사절단을 보낼 때 밝은 빛을 내는 갑옷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본기 보장왕조에 따르면 '백제가 금칠을 한 갑옷을 바쳐와 칠로 무늬를 장식한 갑옷을 졸병들에게 입혔더니 갑옷의 광채가 하늘에 빛났다'고 밝히고 있다.
또 당나라 군사가 백암성을 함락하고 말 5만필 소 5만두 황칠갑옷 1만령(領)을 노획해갔다는 기록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에서 황칠을 고구려와 당나라에 바쳤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주목되는 점은 통전에 따르면 '당대에 토공으로서 임해군에서 금칠 5승(升)3합(合)을 지금의 대주로부터 징수해갔다'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황칠을 많이 징수해가지 못한 것은 황칠이 풍족하게 생산되지 못하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황칠나무는 일반 옻칠나무인 낙엽교목과는 구별되는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이다. 이 나무의 특징은 잎이 세갈래인 삼지창 모양과 다섯갈래 모양, 넓다란 타원형 모양의 세가지가 있다는 점이다. 한 나무에 세 종류의 잎이 달려 있어 희귀한 나무로 여겨진다.
황칠나무에서 채취되는 황칠은 모든 재료의 백골에 칠할 수 있지만 바탕색이 없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백골자료는 은, 섬유류로는 삼베와 모시 등이다.
은에 황칠을 하면 순금보다 더 찬란한 황금색과 적금색을 발하게 된다. 황칠은 적외선에 강하며 매우 유연하여 고체와 연체류에도 칠할 수 있는 만능도료라 하겠다. 즉 옻칠은 자외선에 약해 음지에서 보관할 것이 요구되지만 황칠은 환경에 구애되지 않는 편리한 도료인 것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에서는 황칠이 생산되지 않았다.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생산되는 식물성 옻칠이다. 이 황칠나무가 자생할 수 있는 곳은 한국에서도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 이남 3도인 완도 보길도 진도, 그리고 제주도 등이다. 황칠나무는 거의 멸종단계에 이르고 있으므로 정부에서 육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믿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