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주행시험장은 자동차가 설계대로 제작됐는지, 어떤 특성과 성능을 가졌는지를 조사하기 위한 자동차의 종합시험코스. 주체가 되는 고속주회로에서는 최고 시속 2백㎞까지 달리며 각종 테스트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주행중 한번쯤은 엉뚱한 공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차가 잘 달리다 갑자기 한쪽 바퀴라도 빠져 달아나지는 않을까, 또 브레이크나 핸들이 작동되지 않아 큰 낭패를 당하지는 않을까, 느닷없이 엔진이 폭발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이러한 공상은 자동차주행시험장에서 각종 시험을 거치고 있는 자동차들을 지켜보면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새로 개발된 자동차는 이 주행시험장이라는 마지막 혹독한 관문을 아무 이상없이 거뜬히 통과했기 때문이다.
48˚비탈길도 거뜬히 달려
자동차 주행시험장은 말 그대로 자동차의 여러 주행성능을 실험 입증하는 시설이다. 이곳은 자동차가 주행중에 조우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도로조건을 한곳에 집약시켜 종합적으로 그 성능 및 안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울산시 명촌동 태화강 하류쪽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한쪽에 자리잡은 자동차 주행시험장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다. 부지 총면적 약 24만평 가운데 실제 시험로가 차지하고 있는 면적 18만평은 온갖 자동차들이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19종류의 기본시험로 가운데 고속주회로(高速周回路)는 단연 압권이다. 최고 주행속도 200㎞/h까지 가능하며 한 바퀴가 2.6㎞인데, 코너링을 할 때에는 최고 경사각 48˚를 달린다. 이 경사도는 사람이 평지에서 가속을 붙여 달리다 오르기 시작해도 오를 수 없을 만큼 급하다. 자동차도 정지상태라면 당장 옆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경사도를 달리노라면 오금이 저리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 고속주회로를 달리며 자동차는 속도계보정(補正)·주행저항 측정·가속성능·연료소비율 측정·제동시험·실내 소음수준 측정·창틀소음(wind noise) 등을 평가받는다.
노폭 50m 전장 8백50m인 범용 시험로(汎用 試驗路)는 슬라롬(slalom·회전활강) 성능·타이어 안전시험·브레이크 계통의 결함시험·조향 계통의 안정성 시험·시계성(視界性)을 평가한다.
이 가운데 슬라롬 시험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직선도로에 파일런(pylon)이나 막대(pole) 등의 장애물 6개를 직선상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 놓고 그 사이를 고속으로 질주하는 시험이다. 차의 속도나 장애물의 간격을 바꿔가며 얼마나 쉽게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가를 평가한다. 동승자는 안전벨트를 매고 손잡이를 잡고 있어도 좌우로 몸이 쏠리는 바람에 정신이 나갈 정도다. 또 자동차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타이어에서 나는 굉음도 질려버리게 만든다.
이 슬라롬 코스를 달리며 자동차는 추종성·안정성 ·사고회피성 등을 평가받는다.
24가지 도로상황의 크로스 컨트리 시험로
내구시험로(耐久試驗路)로는 벨기안(Bolgian)도로와 브레이크로 및 팟홀(pot hole)로, 크로스 컨트리로가 있다.
벨기안 도로는 요철 포석(凹凸鋪石)이 깔린 도로를 달리며 차량 및 각종 부품의 내성(耐性)·강도 및 피로내구력을 평가하는 곳이다. 벨기안이라는 이름은 옛날 벨기에에 설치한 포석도로가 지금까지도 튼튼하게 유지되고 있는 데서 따온 것인데, 이곳을 시험하는 차량은 마치 뜨거운 냄비바닥에서 콩이 튀듯 몹시 털털거리며 통과한다.
브레이크로 및 팟홀로는 콘크리트 슬라브에 총 1천8백86개의 콘크리트 블록을 두 종류로 나누어 묻은 곳이다. 승용차와 상용차는 각각 높이 25㎜, 50㎜ 블록을 통과해야 한다. 이 도로는 벨기안로에서 시험할 수 없는 가장 가혹한 조건을 부여하는 내구시험로다.
크로스 컨트리로는 내구시험로 가운데 유일하게 실제 도로조건을 그대로 살린 도로다. 포장로(1.6㎞)는 아스팔트 포장로와 시멘트 포장로로 구분돼 있다. 비포장로(1천94㎞)는 호박돌을 묻은 험로, 자갈길, 모래길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처럼 포장로와 비포장로가 유기적으로 배합된 크로스 컨트리로는 도로 곳곳에 총 24가지의 온갖 도로상황을 부여해 차량의 경년변화(經年變化), 장거리 주행 때의 문제점을 조사한다.
이밖에 수밀시험로(水密試驗路) 염수부식로(鹽水腐蝕路) 선회시험로(旋回試驗路) 빨래판길 등판시험로 하천로 진흙펄길 등판시험길로 먼지터널로 등이 있는데, 이는 밀폐성 내식성(耐蝕性) 시계확인(視界確認)등을 시험하는 곳이다.
수밀시험로는 시간당 3백60㎜의 강우량을 재현한 폭 5.5m 길이 1백20m의 터널을 통과하며 차체의 물유입과 전장품의 방수성을 테스트한다. 먼지터널도 폭 5.5m 길이 60m 터널을 통과하며 차체의 먼지유입과 에어 필터의 성능을 시험한다.
폭 6.8m 길이 50m의 염수부식로는 바닷물을 통과한 다음 부식상태를 시험하는데, 이는 수출차량에 한하고 있다. 하천로와 진흙펄 길은 도강성(渡江性)과 내수성(耐水性)을 시험하며 빨래판길은 소음과 진동시험을 한다.
폭 1백m, 길이 1백m의 선회시험로는 자동차가 계속 원을 돌며 차체의 조정성과 안정성을 시험하는 곳으로 빙빙 도는 차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정도다.
등판시험로는 비탈길을 오르며 등판능력을 시험하며 주차 브레이크의 성능도 함께 테스트한다.
빛 못보고 사라지는 충돌시험장의 새 차
주행시험장 옆에는 충돌시험장과 시험연구실 환경시험장이 있다. 충돌시험장은 자동차를 정면 측면 후면 등 각 방향에서 충돌시켜 탑승자의 안전도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곳.
주요 장치로는 ① 시험차를 최고 100㎞/h로 일정하게 견인할 수 있는 전자구동장치 ② 시험차를 정면으로 충돌시키는 고정벽(固定壁) ③ 후방 및 측방 충돌용의 움직이는 벽 ④ 충돌 후 시험차를 3백60˚회전시켜 연료유출량을 검사하는 장치 ⑤ 충돌순간을 촬영하기 위한 카메라탑 ⑥ 고속 카메라 ⑦ 시험데이터를 측정 기록하는 장치가 있다.
완성된 차량에 2천만원 상당의 마네킹 2개를 태우고 마네킹의 머리 가슴 허벅지에 각종 센서를 장치한 후 충돌시험을 하는데, 컴퓨터를 장치하는 데에만 48시간이 걸린다. 국제시험규격의 마네킹에는 면내의를 입히고 구두도 신긴다.
대시보드에는 각종 색상의 백묵으로 채색해 1백70m 전방에서 와이어에 의해 시속 30마일 혹은 35마일 속도로 달려오던 차가 충돌할 때 마네킹이 부딪치는 위치를 체크한다.
주행시험장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충돌테스트를 하고 일생을 마치는 자동차를 보고 있으면 아까운 생각이 간절하다.
시험연구실에서는 부품시험장치를 갖추고 윈도와이퍼 방향지시등 스타트모터 도어 도어유리 헤드램프 등에 대해 수많은 반동작동을 통해 제품의 내구성을 테스트한다.
이밖에 환경시험장에서는 영하 40℃에서 영상 60℃까지의 혹한 혹서에서 제반 성능을 테스트한다.
새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신형차는 세상에 등장하기까지 주행시험장에서 수많은 시련을 거친다. 여러 단계의 시작차(試作車)에 대한 제반 성능을 엄격히 실험해야 완벽한 차를 만들 수 있다.
신차 개발은 프리프로토카(Preproto Car·기계적 기능 위주의 시작차) 프로토카(Proto Car·시작차) 파일럿카(Pilot Car·선행양산차) 양산차의 4단계를 거친다. 각 단계마다 5대, 40대, 1백대, 50대 가량의 차를 만들어 제반성능을 테스트한다.
이 차들은 2백만㎞를 달리며 1천개 항목의 테스트를 거쳐 성능상 거의 완벽하다고 인정받아야 세상에 태어난다. 따라서 운전자는 자동차의 성능만큼은 안심하고 운전해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