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가 세포에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복제시키고 증식하기 위해서는 단지 세포내에 들어갈 때를 기다리고 있어서만은 안된다. 세포 안에 잘 들어갈 수 있는 책략이 없으면 자신의 유전자를 늘릴 수가 없다.
미국 하버드대 D. 와일리 연구진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감염대상 세포의 저지공격을 거꾸로 이용, 교묘하게 침입할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정학적 방법으로 밝히고 이를 '네이처' 9월1일자에 발표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세포에 감염할 때 주역이 되는 것은 적혈구응집소단백질(HA)이라 불리는 3가지 분자가 이어진 단백질이다.
먼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유전자를 감싸고 있는 외피단백질에서 HA를 135Å(1Å는 ${10}^{-10}$m) 정도 내밀어 그 단백질의 고리 부분을 표적이 되는 세포의 막에 있는 수용체에 결합시키고 대기한다. 잡힌 세포는 세포막을 움푹 들어가게 하여 주머니를 만들고 그 속에 바이러스 입자를 집어넣은 뒤 막에서 산을 내어 pH를 5-6으로 낮추고 바이러스를 잡으려 한다. 이 장치는 진핵생물 세포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그런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pH가 낮아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와일리 등에 따르면 성숙하여 준비를 마친 바이러스는 pH가 낮아지면 HA가 약 5분의 1을 남기고 꺾여진다. 부분에 따라서는 1백80도 방향전환을 하는 등 구조를 대폭 바꾼다.
그 결과 바이러스의 외피단백질이 오히려 1백Å 정도 표적의 세포막에 가까워져 침입하기 쉬워진다 한다. 이같은 성질이 모든 바이러스에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비슷한 사례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