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견 무시무시하게만 느껴지는 방사선 피폭은 육종학 분야에서 이미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인체 방사능 피폭의 유전적 영향인데…
편집광적으로 집념이 강하면서도 자신의 연구분야에서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한 과학자가 어느날 실험실에서 방사선에 노출된다. 이 사고로 그는 고릴라 같은 외모와 성격도 포악하게 변해 실험실의 뛰쳐나오고, 이후로 닥치는 대로 사람을 해치면서 대 사건이 벌어진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스토리를 가진 스릴넘친 액션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는 1970년대 공상과학영화의 줄거리로 크게 유행한 바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드라마는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라는 TV 연재물이었다. 이 드라마는 과학자가 자신의 실수로 실험실에서 방사선 피폭을 받은 후 신체 이상이 발생, 극도로 분노한 상태가 되면 지능은 낮고 동물적인 포악함을 가진 헐크로 변한다는 주제로, 국내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렇다면 이같은 이야기는 얼마만큼 과학적 신빙성을 가진 것일까. 과연 방사능 피폭은 인간을 전혀 다른 동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는 있을 수 없다.
방사선에 피폭되면 식물이 거대하게 증식하면서 식인식물이 되고, 우수한 지능의 과학자도 저능아 헐크로 변하는 등의 현상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공상과학 소설 또는 영화가 인간의 상상력을 흥미위주로 최대한 증폭시킨 것이어서 근본 개념은 있을 수 있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즉 방사선에 노출된 생명체는 방사선에 의해 그 자체가 변형되는 것은 아니지만, 보유하고 있는 유전자의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변형된 유전형질을 세포분열에 의해 다음 세대에 넘겨 줄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변형된 형질은 다음 세대에서 모세대와 다른 형태, 또는 기능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를 우리는 돌연변이 혹은 기형이라 부른다.
식물 방사선 육종학의 우주관
방사선 생물학의 한 분야인 방사선의 유전적 효과 연구는 동식물 육종에 관한 연구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광물성 물질의 경우, 예컨대 보석에 방사선을 쪼여 고유의 빛깔을 바꾼다거나 성질을 변경하는 등의 시도는 있으나 그 산업적 효용성이 극히 단순하고 용도가 적어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방사선의 생물학적 효과에 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체 방사선 장해와의 연관성이다. 방사성 물질의 심해투기, 원자력 발전소 건설, 핵폐기 물질 영구보관 시설 건설 등 우리가 최근 겪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와 함께 이른바 그린라운드 등 환경에 관한 국내외적 관심으로 방사선 문제는 이미 우리 피부에 닿아있다. 방서선의 유전적 영향이 인체와 얼마나 관련 되어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과학동아 93년 8월호에는 '우주 토마토 국내에서 첫 재배 실험'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NASA 주관으로 우주로 보내졌다가 90년 콜럼비아호에 의해 회수된 토마토 씨앗이 6년간 우주 공간에 머물다가 돌아왔는데, 이를 세계 각국에서 재배시켜 발아율 성장측정 개화 열매생산 등을 관찰하는 실험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바로 우주선(방사선)에 노출된 식물의 씨앗이 방사선에 의해 어떻게 성질이 변했는가를 보기 위한 실험으로, '식물 방사선 육종학의 우주판'이라 할 수 있다.
방사선 육종학이란 생물의 생식세포가 가지고 있는 유전형질을 방사선으로 변환시켜 형태나 성질이 다른 품종으로 개량하는 연구를 수행하는 학문이다. 식물의 품질개량은 특히 곡물 채소 등 식용식물을 대상으로 해 냉해에 잘 견딘다든지, 수확량이 많게 한다든지, 꽃을 대상으로 꽃술을 크게 또는 색깔을 다르게 한다든지 하는 등으로 변환시킨다. 즉 해충저항성이 높은 유전형질은 구충제 살포 등 화학방제의 필요성을 줄여주며, 온도 저항성이 높은 유전형질은 여름철의 이상저온과 같은 기상재해에 탄력적으로 대처하게 한다. 또 작물의 수량과 질을 높이는 유전형질은 식량 증산에 큰 보탬이 되기도 한다.
유전자 이식으로 탄생한 신품종 동물
방사선 피폭의 유전적 영향은 19230년대 후반 독일 등지의 방사선학자들이 X선을 이용해 식물에 인위적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음을 증명한 이후 많은 연구가 거듭돼 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원자폭탄으로 인한 방사선의 무서움을 직접 체험한 결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특히 강조된 사회적 분위기도 연구를 자극했다. 그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 방사선 및 방사성 동위원소의 농학 분야에 대한 연구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원자력연구소 등에서 이 분야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돼 성과를 거뒀다. 대표적인 것으로 돌연변이 콩의 개발을 들 수 있다. 1972년 강낭콩과 비슷한 큰 콩에 X선 2만4천rad(인체에 비유하면 2천4백만 밀리렘에 해당)을 쪼여 모품종보다 13일이나 조숙하여 15% 다수확이 가능한 신품종을 처음 개발한 이후 1985년에는 모품종보다 30% 다수확성이고 병에 대한 내구성이 훨씬 강한 신품종 '방사콩'을 개발했다. 이 외에 벼 보리 깨 배추 등에서도 방사선에 의한 돌연변이를 일으켜 빨리 자라며 수확량이 많고 병에 잘 견디는 품종으로 개량해 보급하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범국가적인 지원에 의해 방사선 육종연구가 매우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현재 세계 40여개 국가가 방사선 돌연변이 육종에 의한 신품종을 생산하고 있고, 중국 인도 네덜란드 등은 1백 내지 2백종을 개발해 사용하고 있다. 또 일본 미국 소련 등이 50-60종,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이 20여 품종을 개발해 사용 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개발도상국은 주로 식량 자원 개발에 이용하고 있는 데 반해 선진국은 주로 관상식물 품종개량에 더 많이 이용하고 있는 점이다.
동물의 유전형질 변환 기술은 방사선을 이용하기 보다는 동물의 생식세포를 시험관 안에서 유전자 조작 기술에 의해 변환시키는 유전공학적 기법이 많이 사용된다. 동물 생식세포는 방사선에 의해 돌연변이를 얻기가 힘들다. 동물의 생식세포는 방사선에 매우 민감해 형질변환을 일으키기도 전에 훨씬 적은 양의 방사선에도 살아 남지 못한다. 동물 생식세포의 방사선 반치사량은 수십만 밀리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에서 유전공학적 기술을 이용, 유전자 이식으로 신품종을 생산한 대표적인 예는 유전자 이식 생쥐(transgenic mice)다. 이는 어떤 생쥐에다 특수한 유전자를 심어 놓으면 몸 속에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어 우리가 원하는 생체 특성을 유지한다는 것에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이러한 생쥐는 암의 발생 및 치료 연구, 면역계통 연구 등의 실험에 이용된다.
농산물 품질개량을 위한 육종학은 그 목적이 신품종 개발에 있지만 생물이 갖는 고유한 유전적 특성을 방사선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형질변환을 시키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윈의 이론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생물계가 끊임 없이 세대번식을 하며 그 과정에 변이가 있어서 진화가 일어나고, 그 결과 주위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적자생존 현상이 나타남을 알고 있다. 이때 변이의 원인은 자연적인 필요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환경 변화에 의한 자극이나 독소일 수도 있는데, 이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확률적인 것이다.
방사선은 인위적 독소의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그로 인한 돌연변이는 나타날 확률이 낮다. 따라서 특정한 생물이 방사선 처리에 의해 돌연변이가 일어날 것인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단지 육종학자들은 미리 형질변환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선발시험(screening) 기술을 개발해 사용함으로써 성공률을 높일 뿐이다.
방사선이 어떻게 유전형질을 바꿀까? 생물체의 구조나 기능을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주기 위한 독특한 유전적 명령을 가지고 있는 물질을 유전자(gene)라고 하는데, 핵산으로 구성된 유전자는 핵산인 DNA를 구성하면서 얽혀 있는 배열상태에 따라 각기 독특한 유전적 명령을 가진다. 하나의 유전적 명령단위를 게놈(genome)이라 하고 하나의 염색체 내에는 무수한 게놈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염색체 이상이 늘 돌연변이 일으키진 않아
방사선이 세포내를 통과하면서 염색체 속의 DNA구조를 손상시키면 염색체의 구조가 쪼개진다. 그 결과로 얻어진 염색체 조각은 서로 상이한 자리에서 재결합됨으로써 이상 염색체를 만들고, 이상 염색체 내의 유전자 배열 구성상태의 잘못은 유전적 명령의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 세포가 염색체 이상으로 죽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기는 하다. 달리 말해 세포가 죽지 않고 살아 났을 때 유전적 이상이 나타나는 것이라 보면 된다.
또한 염색체 이상이 반드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방사선에 의한 세포 손상으로 돌연변이가 일어날 가능성은 확율적으로 매우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때로는 유전적 이상이 방사선에 의해 발현될 때 특수한 유전자, 예를 들면 발암유전자나 발암억제유전자에 영향을 주면 암이 발생할 수도 있다.
방사선에 의한 유전적 이상으로 기형이 발생하거나 암이 발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체에서도 가능하며 이것이 바로 방사선 인체장해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인체에서는 앞서 말한 공식이 항상 성립되지는 않는다. 세포가 손상을 받더라도 그로 인한 생물학적 이상이 인체에서 질병의 상태로 나타나기에는 그 외에 수많은 요인인 서로 얽혀 작용한다. 결국 인체가 방사선 피폭을 받았을 때 암이나 유전적 이상이 쉽게 발생하기 보다는 단지 그러할 가능성만 이론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동안 실제 방사선에 피폭된 사람들, 예를 들어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 1950년대 핵실험으로 인한 피폭자들,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 등을 대상으로 장기간 조사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피폭자의 자녀가 1백만명이 있을 때 그중 20명(0.02%)에서만 유전적 이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확률계산이 보고돼 있다(유엔 방사선효과 연구위원회 보고, 1988). 방사선과 관계 없는 인체의 자연적 돌연변이에 의한 선천성 기형의 발생률이 1백만명당 약 6만내지 10만명(6-10%) 정도이므로 여기세 방사능 피폭이 추가하는 0.02%의 수치는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방사선 생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 정도의 적은 확률이 몰고올 위험 가능성을 중시하고 방사선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연구를 끊임 없이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