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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항문 장착하고 수영도 할 수 있다

대장암 환자에게 희소식, 냄새 부작용 등 없어

같은 암이라도 대장암만은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위장이나 폐, 심장, 뇌종양 같은 병은 아무리 위험해도 질병으로서는 '우아'해 보이지만, 대장암같은 병은 먼저 '지저분하다'는 인상부터 떠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대장암이 급증, 곧 위암을 제치고 암발생률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연구와 대책마련이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개발돼 보급되기 시작한 새 인공항문은 대장암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꿔줄 만한 것이라 주목받고 있다.

대장암은 초기라면 파이버스코프를 항문으로 삽입하여 암조직만을 잘라내면 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면 개복수술을 해 암세포가 퍼진 대장 일부를 잘라내야 한다. 운나쁘게 병소가 잘못 걸리면 항문까지도 함께 잘라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절제한 대장의 끝부분을 복벽(대개 왼쪽 하복부)에 뚫은 구멍에 고정시켜 소화물을 몸 밖으로 배설하기 위한 출구로 삼는다. 시쳇말로 '인공항문'이다. 배설물이 그대로 흘러나가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배설물을 일단은 저장하는 기구를 장치한다. 이 두가지로 직장과 항문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인공항문의 세계공통어는 '스토마(Stoma)'. 스토마는 소화관이나 요도를 몸밖으로 유도하여 만든 인공적인 출구를 말한다. 인공항문뿐 아니라 방광절제 뒤에 만드는 인공방광도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이 스토마들은 그러나 자주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설사나 변비로 고생하게도 하고 틈새로 배설물이나 가스가 새기도 한다. 주위 피부에 염증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때 '새지 않고 냄새도 없으며 피부질환 걱정도 없는' 인공항문이 있다면 구세주와도 같을 것이다.

여기서 최근 새로 개발된 스토마가 진가를 발휘한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왼쪽 옆구리에 찬 채 수영도 가능하다는 이 스토마는 출구의 크기에 정확히 맞는 원형 피부접촉면과 배설물을 저장하는 봉지로 이루어져 있다.

접착면은 강한 점착력이 있으면서도 피부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면 안되는데, 그 소재로는 주로 천현 '카라야검'이 쓰인다. 이 물질은 피부와 같이 약산성 산도(pH4.5-5)를 가지며 피부에 잘 달라붙는다. 또 알칼리성 배설물을 피부 pH와 같게 만들어 세균번식을 억제하는 작용도 한다.

피부접착면에 카라야검이 사용되게 되면서 스토마 때문에 생기는 각종 문제들, 즉 변이 샌다든지 그때문에 피부에 모낭염을 일으키는 일 등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천연재료 외에도 펩틴이나 젤라틴 등을 주재료로 한 합성접착제도 있는데, 이들을 환자의 상태에 따라 나누어 사용한다.

봉지(파우치)는 염화비닐계의 얇고 투명한 필름막으로 만들어진다. 또한 배설물을 그저 저장만 해두는 게 아니라 냄새를 흡착해내는 활성탄 카트리지를 탈착하도록 돼 있으며 촉감도 좋고 버석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는 점까지 세심히 배려되어 만들어졌다.

한개짜리, 두개짜리, 개방형과 밀봉형 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매우 가벼운 소재로 돼 있으며 취급도 간단하다. 사용회수는 개인차가 있지만 대개 일회용으로 평균 가격은 5백엔 정도(약 4천원)라 한다.

현재 일본에서 인공항문을 장착하고 생활하는 사람은 약 10만명을 헤아리는데, 이들 스토마를 사용하는 환자들에게 올바른 사용법과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처하는 방법 등을 지도하는 ET(enterostomal therapist, 스토마요법사)라는 직업도 있다.

이같은 노력들로 이들은 대장암에 대한 일반의 차가운 시선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특별히 거창한 장치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그마한 연구, 즉 환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또다른 의미에서의 '최첨단 의료기술'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국내에서도 인공항문은 생산되고 있는데, 카라야검을 사용한 제품은 아직 없고 수입품이 시판되고 있는 정도라 하니 국내 환자들이 품질 좋은 국산 인공항문을 사용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다.
 

항문을 잃어버린 사람이라도 이 인공항문을 왼쪽 옆구리에 차면 정상생활이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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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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