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날로그 전송방식 하이비전은 오는 97년, 미국의 디지털 전송 ATV는 2008년에 본방송이 시작될 예정이다.
2000년대의 초두 국제 산업경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차세대 TV를 놓고, 세계를 제패하려던 일본의 야심이 좌절 위기에 몰렸다. 지난 70년부터 HDTV 개발에 들어가 이 분야에서는 단연 세계의 선두주자였던 일본이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이 독자적으로 HDTV개발에 들어가면서 일본이 연구해온 아날로그 전송방식 대신 디지털방식을 채택, 세계기술로서는 활용하기 어려워진 것.
일본에서 '하이비전'이라 불리는 HDTV는 지난 91년부터 위성방송을 사용, 하루 8시간씩 시험방송되고 있으며 1997년에는 본방송에 들어갈 예정이다.
HDTV는 화면의 주사선을 현재의 5백 25개에서 약 두배인 1천1백25개까지 늘리고 가로선도 2배로 해 해상도를 4배로 높인 차세대 TV. 화면의 가로 세로 비율(어스펙트비)은 현재의 4:3에서 16:9로 늘어나 현장감을 얻을 수 있으며 지금의 TV 보다 5배의 정보량을 수용할 수 있다.
1970년에 '고품위 TV'라는 이름으로 HDTV 개발을 시작한 일본은 한때 이 분야에 관한 한 독주했지만, 그 뒤 유럽에서 EC통합을 기념하는 프로젝트로 HD-MAC라는 독자적인 HDTV 개발이 시작됐다.
'TV의 모국'이랄 수 있는 미국은 개발에 가장 늦게 뛰어든 셈이 됐다. 그러나 미연방통신위원회(FCC)는 87년부터 차세대방식을 모집하기 시작해 빠르면 93년 중에도 전송방식을 결정하겠다는 빽빽한 스케줄을 세웠고, 지난 5월에는 최종 후보로 남아 있던 3그룹 4방식이 힘을 합쳐 ATV(advanced TV)의 통일 규격개발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올해 2월까지는 미국의 ATV의 후보로 NHK가 제안한 하이비전(MUSE 전송방식)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하이비전은 그 완성도는 인정받았으면서도 낡은 아날로그 방식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 탈락됐다. 미국은 "93년에는 디지털 방송을 개시하고 2008년까지는 본방송을 개시, 현재의 NTSC방식을 완전 대체한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현재의 TV전송방식은 일본과 미국 모두 NTSC방식(유럽은 펄과 시컴의 두 방식이 있다). 그러나 미국은 15년 안에 아날로그 NTSC방식을 버리고 디지털 ATV로 바꾸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
이러한 미국의 동향을 안 EC는 아날로그 전송에 의한 HD-MAC을 검토했던 데서 변경, 디지털 전송의 차세대 TV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자개발을 원칙으로 하되 미국과 협력할 수도 있다는 언급은 있었으나 아직은 사태를 관망하는 움직임이 더 강하다.
CD나 컴퓨터 통신에 이용되는 바를 보면 알 수 있듯, 정보의 다면적인 처리나 복제를 위해서는 '0, 1'의 디지털 신호 쪽이 신뢰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 그러므로 차세대 기술로는 디지털화가 당연한 방향이라 할 수 있다.
NHK에서도 디지털을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도 아날로그 하이비전의 수명은 20-30년은 남아 있다는 입장이다. 하이비전도 전송계 이외는 디지털 방식을 쓰고 있으므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메이커들의 반응이기도 하다.
일본은 현재로서는 97년에 쏘아올릴 예정인 차기방송위성 BS-4 단계에서 하이비전을 시험방송에서 본방송으로 격상시킨다는 계획에 변화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같은 예정의 막후에서는 "앞을 내다본다면 디지털이 당연히 전망이 있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그렇지만 이같은 의견은 정부당국과 NHK가 주도하는 계획에 의해 "디지털 방식을 차세대 TV로 논의하는 것은 금물이며 차세대 TV의 다음세대인 '차차세대 TV'로 취급해야 한다"는 정책적인 압력을 받고 있는 실정.
하이비전 기술과 디지털화 추세에 관해 저변에서 조용히 일어나고 있는 논의의 내용은 "디지털 TV가 예상 밖으로 빨리 실용화된다면 하이비전은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 낡은 기술에 얽매여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이 늦춰지는 것은 아닌가, 국제적으로 고립당하지는 않을 것인가, 일본의 메이커들은 이중의 투자를 강요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등의 우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