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우리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수상자들의 연구업적을 잘 살펴 다음을 기약하자.
올해의 노벨의학·생리학상은 미국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 생화학과의 에드윈 크랩스(Edwin Krebs) 교수와 에드몬드 피셔(Edmond Fischer)교수에게 돌아갔다. 이 두 생화학자는 33년 전인 1959년에 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의 작용을 연구하던 중 근육세포내에 있는 에피네프린의 자극을 받으면 포도당분해효소가 활성화되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 효소의 도움으로 인산화(憐酸化)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이 효소단백질의 14번째 아미노산인 세린에 인산기 (${P0}^{3-}$)가 붙어 단백질의 입체구조에 미세한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기능이 없던 효소단백질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서 이러한 인산화를 일으키는 물질인 단백질 인산화효소를 분리해냈다.
단백질의 가역적 인산화란?
단백질을 구성하고 있는 20개의 아미노산중에서 3개의 아미노산(세린 트레오닌 타이로신)만이 인산기를 받아들여 인산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산기는 왜 단백질에 붙는 것이며 인산화가 되면 어떻게 효소단백질의 기능이 활성화되는가.
앞에서 언급한대로 인산기가 아미노산에 붙으면 단백질의 3차원적인 구조에 변화가 생기게 되며 이 변화로 말미암아 단백질의 기능부위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결국 인산기가 붙거나 또는 일정시간 후에 떨어지는 것 모두가 분자스위치(molecular switch)로서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단백질의 가역적인 인산화란 생체내 중요 단백질의 기능조절을 하는(작동/중지의 기능을 하는) 분자스위치인 셈이다.
생명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환경의 움직임에 민첩하게 대처해야 하며 그 변화에 맞서 세포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생명의 진화는 효율적인 화학반응들로 구성된 대사계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진화의 역사에서 고효율 화학반응들의 출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간에 따른 각 반응들의 선택이다.
아무리 개개의 화학반응들이 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상반되는 두 반응이 최고의 효율로 가동된다면 세포는 결국 지쳐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세포의 한쪽에서는 포도당을 글리코겐으로 저장하는데 다른 편에서는 막 만들어진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해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한마디로 합성이냐 분해냐 하는 명제는 세포에게 있어서 가장 긴박한 질문인 셈이다.
일단 결정을 내린 후에는 가급적 빨리 한쪽을 활성화시키고 다른 쪽의 기능을 정지시켜야 한다. 이때 단백질의 인산화는 각 반응을 담당하는 효소의 분자스위치로서 작용, 너무나 멋지고 우아하게 이 절박한 생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산화가 기본적인 생명의 전략인 점 만큼은 틀림없으나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호르몬작용이 AMP라는 2차전령에 의한다는 사실에 묻혀 그 진가가 발휘될 수 없었다.
그후 1970년대 말, 암세포의 증식에 단백질의 인산화가 관여한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가역적인 인산화반응이 대사의 조절 뿐아니라 세포의 성장 증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인산화반응이 생명의 근본적이고 통일적인 제어 조절방식의 하나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대사의 조절과정에서 인산화는 주로 세린과 트레오닌에 인산기를 붙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 타이로신에 인산기가 붙음으로써 세포의 생장 및 증식조절기능을 떠맡게 된다. 세포내 인산화의 99%는 세린과 트레오닌에 의해 일어나며 나머지 1% 미만이 타이로신에 의해 일어난다. 현재 암세포의 증식메커니즘을 밝혀내기 위해 타이로신 인산화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아울러 인산화와 탈인산화의 균형이 세포의 성장 증식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인산화와 함께 탈인산화(dephosphorylation) 메커니즘에도 연구가 집중되고 있다.
끝으로 30여년의 긴 세월동안 한가지 분야의 연구에만 한결같이 노력해 온 두분의 생화학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특히 학문하는 태도의 진지함을 몸소 실천한 데 대해 존경을 보낸다.
화학 마커스-화학반응의 속도 측정 가능한 이론 유도
금년도 노벨 화학상은 캘리포니아공과대학 화학과에 재직중인 루돌프 마커스교수가 수상하게 되었다. 마커스교수는 1923년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맥길대학에서 이학사 및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유명한 물리화학자였던 라이스교수와 화학반응속도에 대한 이론적 연구를 한 뒤 1951년 미국 브룩클린 폴리테크 공대 교수로 부임했다. 1964년엔 일리노이대학으로, 그리고 1978년엔 다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석좌교수가 되었다. 현재 미국 국립과학학술원 회원이며,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하기 이전에도 여러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생체현상과 관련된 반응속도 측정
마커스교수의 중요 업적은 화학반응의 속도를 예측가능하게 해주는 여러 이론들을 유도한 것이다. 예컨대 용액중에서 또는 전극표면에서 일어나는 전자 및 양성자의 전달반응에 대한 이론, 단일분자의 구조변화나 분해과정의 속도를 산출하는 RRKM이론, 그리고 반응분자간의 충돌현상을 양자역학과 고전역학을 절충한 방식으로 기술하는 이론 등을 들 수 있다.
화학자의 관점에선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 이를테면 생명체의 탄생 성장 번식 사망 소멸이라든가 암석의 생성과 변성 등이 다 미시적인 분자계에서 일어나는 충돌반응 그리고 이동현상의 결과다. 단지 이같은 복잡한 자연현상이 시험관이나 비커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과 다른 점은 그것이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아주 많은 반응들의 결과라는 것뿐이다. 따라서 물리화학자들이 지향하는 목표의 하나는 먼저 간단한 개별적인 반응들을 분자계 차원에서 자세히 이해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생체현상과 같은 복합적인 반응도 수학적인 모형을 통해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화학반응은 크게 두 관점에서 연구된다. 그중 하나는 주어진 화학반응이 과연 일어날 수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반응이 일어난다면 어느 정도까지 진행될 것인가를 예측하는 것이다. 현존하는 과학법칙중 가장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평형열역학은 이같은 문제의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 그러나 열역학은 화학반응 연구의 또다른 문제, 즉 반응이 어느 정도의 속도로 진행될지는 말해 주지 못한다.
열역학에 의해 어떤 반응이 비가역적(非可逆的)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됐다고 하더라도, 그 반응은 실험을 시작한 화학자가 죽을 때까지 심지어는 태양의 수명보다 더 긴 세월이 지나도 전혀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화학반응이 얼마나 빨리 진행될 것인가를 예측하게 해주는 반응속도이론은, 현재의 인류문명을 유지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인간에 의해 합성된 많은 수의 화합물의 생산공정을 설계하고 개선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다.
마커스교수의 업적은 이같은 반응속도이론의 발전에 광범위한 기여를 한 데 있다. 특히 이번에 노벨상 수상업적으로 지목된 전자전달반응에 관한 이론은 분자의 산화 및 환원과정을 비교적 간단한 수학적 모형을 이용, 정량적으로 기술하게 해주는 것이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사이에 발표된 일련의 논문에서, 마커스교수는 분자간의 전자전달속도는 많은 경우 분자구조의 전자전달에 따른 변화속도와 주변 용매분자들의 이완속도에 의해 좌우됨을 보였다. 이는 다른 연구자들의 후속실험을 통해 검증됐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어떤 경우엔 전자전달반응이 비가역적으로 될수록, 즉 열역학적인 반응의 추진력이 증대될수록 오히려 반응속도는 감소할 수도 있음을 이론적으로 예측한 것이다. 이 예측은 오랫동안 많은 화학자들에게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1980년대 말 레이저를 사용한 정밀한 화학실험이 가능해지면서 마침내 사실임이 밝혀졌다. 근년에 들어서 마커스교수는 그의 이론을 광합성이나 신진대사과정 등 생체내에서 일어나는 전자전달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보다 일반화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같은 지속적인 노력으로, 3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그의 이론은 전자전달반응에 관한 실험적 결과를 정량적으로 해석함에 있어 표준적인 골격을 제공해주고 있다.
물리학 샤르팍 -입자물리학의 기본도구인 검출기 개량
올해의 노벨물리학상은 폴란드 출신의 프랑스 물리학자로 유럽핵물리연구센터 (CERN)에서 활동하고 있는 샤르팍(Charpak)박사에게 주어졌다. 샤르팍박사는 입자물리실험학자로서 현대 입자물리실험을 위한 검출기 개발에 있어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그가 1968년에 개발한 멀티와이어 프로포셔널 상자(multiwire proportional chamber)와 드리프트상자(drift chamber)는 현재 거의 대부분의 입자물리 실험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중요한 장비다.
입자물리는 물질을 이루고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소립자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모든 과학이 마찬가지지만 입자물리는 실험과 이론의 상호보완을 통해 발전해 왔다. 특히 입자물리는 실생활에서 볼 수 없는 초미시세계를 대상으로 하므로 실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 물리학자들이 기본입자로 생각하고 있는 쿼크의 크기는 1천조분의 1㎝보다 작다.
이러한 실험에서 측정대상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이므로 이 소립자들이 만들어낸 현상을 가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입자물리실험은 입자를 생성하는 가속기와 이 입자들을 볼 수 있게 하는 검출기의 두부분으로 이뤄진다. 지난 수십년간 입자가속기의 발전은 실로 괄목할만 하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검출기의 발전이 없었다면 입자물리학의 오늘날과 같은 성공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검출기의 기술에는 크게 두번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다. 그 첫번째는 1953년 글레이서(Glaser)에 의한 거품상자(bubble chamber)의 개발이며 두번째가 바로 1968년 샤르팍의 검출기 개발이다.
거품상자는 빠른 성장으로 과포화된 액체에 입자가 입사해 그 궤적을 따라 액체분자를 이온화시키면 이온들 주위에 액체가 기화돼 거품을 만드는데 이때 플래시를 터뜨려 사진을 찍는 것이다. 거품상자는 그 당시 활발해지기 시작한 가속기를 사용한 실험들에 채택돼 많은 새로운 소립자들을 발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글레이서는 거품상자를 개발한 공로로 이미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한편 거품상자를 사용한 실험은 한장 한장의 사진을 일일이 눈으로 조사해 입자들의 궤적을 추적해야 할 뿐더러 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문제점이 있다. 가속기의 개발에 따라 사건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특히 충돌형 가속기를 갖고 실험할 때는 충돌빈도가 매우 높아지므로 거품상자를 가지고는 실험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거품상자의 단점을 보완하고
1968년 샤르팍은 멀티와이어 프로포셔널 상자라는 새로운 검출기를 개발해냈다. 이는 두장의 금속판 사이에 가스를 채우고 한 가운데 가는 금속선들을 2㎜ 간격으로 배열한 상자다. 금속선들에는 고전압을 걸어주었다. 입자가 입사하면 가스의 분자들은 이온화하는데 이들중 양이온의 금속판 쪽으로, 음이온 즉 전자는 금속선 쪽으로 움직여 금속선에 전기신호를 만들어내게 된다. 특히 금속선에 가까워지면 에너지가 증가해 많은 이온쌍을 만들어내므로 큰 전기신호를 얻어낼 수 있다. 이렇게 얻어진 전기신호는 그 당시에 막 개발된 트랜지스터의 덕택으로 소형화된 증폭기를 통과하게 된다. 즉 전기신호는 각각의 금속선에 부착된 증폭기를 거치면서 증폭되고 여기에 이어진 전자장치에 의해 디지털신호로 바뀌어 컴퓨터에 입력된다. 전자들이 금속선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1백만분의 1초보다 작으므로 매우 빠른 반응속도를 갖게 된다.
샤르팍의 검출기는 신호를 컴퓨터에 직접 입력하게 돼 있기 때문에 눈으로 일일이 보지 않고 수치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전자들이 금속선까지 도달하는 시간을 측정, 입자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드리프트상자도 개발했다. 이들 검출기는 그후 거의 모든 입자물리 실험에 채용됐으며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의 발전과 검증에 많은 기여를 했다. 특히 J/Ψ입자와 무거운 매개입자 W,Z의 발견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실험들이다.
한편 이 검출기들은 X선을 검출할 수도 있어 결정분광학 핵의학 생화학 생물학 등에 많이 응용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X선사진을 찍는 대신 화상을 직접 컴퓨터에 입력할 수 있다. 이와같이 샤르팍박사의 검출기 개발은 입자물리실험 뿐 아니라 많은 다른 분야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검출기만 갖고 있으면 설령 입자가속기가 없을지라도 방사성 원소나 우주선(우주에서 날아오는 입자로 사람의 머리만한 넓이에 매초 1개씩 떨어진다) 등을 사용해 입자물리 실험을 할 수 있으므로 가속기가 없는 한국에서는 우수한 성능의 검출기 개발을 통해 입자물리 실험에 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초전도거대가속기(SSC) 등을 활용할 앞으로의 실험들은 실험환경이 현재 실험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검출기 기술에 또 한번의 획기적인 발전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