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회는 1986년 특별법을 제정해 공장에서 다루는 모든 화학물질과 차량이나 선박을 통해 운반되는 위험물들에 대해 시민들이 알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다.
벼락에 맞아죽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천둥치는 날 밤, 문득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한 과학자는 열심히 자료조사를 해서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1년 동안 벼락에 맞아죽을 확률은 대충 1백만명에 한명 정도였기 때문이다.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위험을 확률이라는 분명한 숫자로 나타내 본다는 것은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일지도 모른다. 벼락이라는 것이 죄지은 자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 아니라면, 어느 누구든지 '전기 통구이'가 되는 불상사를 당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확률을 계산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 확률은 상당히 변할 수가 있으므로, 확률만 믿고 안심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 이상 골프를 즐기는 사장님의 경우라면 천둥이 칠 때 골프코스에 있을 확률이 보통 서울 시민보다 높을 것이고, 벼락에 맞을 확률도 보통사람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다.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많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길을 걸을 때나 자동차를 탈때, 음식을 먹을 때, 담배를 피 울때, 자전거를 탈 때, 등산을 갈 때도 위험은 항상 따라다닌다. 위험 추정을 전공으로 삼고 있는 학자들은 모든 일상생활의 위험을 확률로 계산해서 비교해 보고 싶어한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위험성을 가늠해 보는 유용한 줄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60년을 수명으로 생각하면 담배 2개피를 필 때마다 1시간씩 생명이 단축되고, 포도주를 3병 마실 때마다 1시간씩 빨리 죽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탄광에서 일을 하는 광부는 2시간 일할 때마다 진폐증에 걸려 1시간 빨리 죽게 되고, 6시간 일할 때마다 사고로 1시간 빨리 죽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같이 매연이 심한 도시에 사는 사람은 4일이면 1시간 생명이 단축되고, 핵발전소 주변에 사는 사람은 10년이면 1시간 생명이 줄어든다. 비행기를 3천2백㎞ 타는 것과 병원에 가서 X선 사진을 2번 찍는 것, 숯불에 구운 고기를 2백번 먹는 것이 모두 60년에서 1시간씩 수명을 단축시킬 위험이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위험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권한에 속한다. 그것은 개인의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이기 때문이다. 그까짓 몇시간, 혹은 며칠 빨리 죽더라도 인공첨가물이 든 음식을 먹고, 나쁜 공기를 숨쉬고, 더러운 물을 마시겠다는 판단은 스스로가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의 책임이 전적으로 개개인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좀 성격이 다른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해볼 필요가 있다. 자의적인 판단에 좌우되지 않는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23일 광주에서 일어난 LPG 탱크 폭발사고는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그러한 위험의 실례가 될 수 있다. 가스 운반차 운전기사의 과실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가스의 안전관리와 긴급사태에 대처하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가스 저장 시설 1백m 옆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평소에 자신의 위험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더욱 중요한 일이다.
위험을 모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불구가 된 가장 유명한 사고는 인도에서 일어났다. 1984년 12월 3일 이른 새벽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시각. 인도의 보팔시에 있는 '유니언 카바이드'라는 농약 생산공장에서는 메틸아이소시아네이트(${CH}_{3}$CNCO)라는 유독가스의 누출사고가 일어났다. 30t의 유독가스는 북서풍을 타고 보팔시의 새벽거리로 퍼져나갔고, 불을 마시는 것같은 극한적인 고통속에서 2천8백여명의 시민이 죽어 갔다. 세계는 이 엄청난 재앙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달전에 멕시코시티에서 발생한 LPG 저장소 폭발사고로 5백50여명이 죽고 2백여명이 부상한 엄청난 재난이 채 잊혀지기도 전이었다.
세계의 여러나라에서는 화학물질의 누출사고나 폭발사고에 대응하기 위해서 서둘러 법을 만들었다. 미국 의회는 1986년 '긴급사태에 대비한 계획 수립과 시민의 알 권리'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법을 제정한 목적은 공장에서 다루는 모든 화학물질과 차량이나 선박을 통하여 운반되는 모든 위험물들에 대해서 정부와 기업과 시민이 함께 완벽한 정보를 확보하고, 긴급한 상황이 발생할 때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자는 것이었다.
이 법률 덕분에 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몇 ㎞ 떨어진 공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얼마만큼 사용하고 있는지, 혹은 그 공장에서 몇 시에 어떤 화학물질을 어디로 운반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험 요소를 샅샅이 알 권리를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기집 옆 공장에서 발생할 사고에 대해서 대응 계획을 세우는데 참여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정부는 엄청난 예산을 들여서 컴퓨터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고 피해추정을 위한 컴퓨터 모델들을 개발했다. 누구나 컴퓨터를 켜고 자기 동네에 있는 공장의 지도를 모니터에 불러내서 자기집 안방처럼 구경할 수 있고, 컴퓨터 게임을 하듯 사고가 난 것을 가상해서 유독가스가 퍼져나가는 모의실험을 해 볼 수도 있다. 사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도로든 공장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고지역에서 소방관들이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컴퓨터가 판단을 해주고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전문가 시스템이라는 인공지능도 개발되어 방제작업에 이용되고 있다. 그 모든 노력이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를 최소로 줄여보자는 작은 희망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위험추정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계산대로라면 화학물질 사고로 죽을 확률은 하루에 담배 몇개피 피우는 위험정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라면 확률만 믿고 안심할 수는 없다. 우리 주변에는 독성이 강하거나 위험한 화학물질이 너무나 소홀히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77년 이리역 화약폭발 사고로 갯더미가 된 거대한 분화구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낙동강에 황산을 쏟아부은 탱크로리나 여천 공단내 럭키 메탄올 공장의 폭발사고등 크고 작은 수많은 사고들을 기억 속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위험물 표시를 달고 질주하는 트럭을 만날 때마다 도화선이 연결된 거대한 폭탄을 연상하게 된다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안전장치가 빠진 폭발물에 안전핀을 끼우는데는 우리 모두의 큰 결심이 필요하다. 하루하루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날들을 기쁨으로 살아내기 위해 오늘도 살아남을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 한번쯤 꼼꼼히 계산기를 두드려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