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환자 5%가 병원서 새 병 옮는다

병을 고치러 갔다가 오히려 없던 병까지 걸려 왔다면 너무나 억울한 일. 이런 불의의 병원감염을 피하려면?

병을 낫기 위해 가는 병원에서 오히려 병을 얻을 수 있다. 비유컨대 혹 떼려고 갔다가 새 혹을 붙이는 꼴이다. 병원에서 얻을 수 있는 병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병원에 있는 동안 발병하는 감염증인 병원감염이 가장 흔하고 대표적인 것이다.

지금부터 날벼락같은 병원감염에 대해 얘기해 보자. 여기서 감염이란 미생물이 우리 몸속에 침입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병원감염이란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는 환자에게 전혀 없었던 감염증이 병원에 입원해 진료받는 도중에 새롭게 생기는 감염증이라 정의할 수 있다.

전염병이나 병원 그 자체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병원감염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된 것이나, 그 원인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병원감염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1840년대에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활동했던 의사 제멜바이스(Semmelweis)에 의해 이뤄졌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감염증의 원인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병원성 미생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다시 말해 파스퇴르나 코흐가 병원성 미생물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전이었다. 따라서 병원에서 새로운 병이 생긴다는 생각 자체가 매우 혁명적인 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동료 의료인들에게는 무척 충격적인 사실로서,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젬멜바이스는 두동의 산과(産科)병동간의 산모(産母)사망률을 비교한 결과, 매우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산과의사와 의과대학생들이 진료하던 산과병동에서의 사망률은 8%였던 반면, 산파들이 분만을 도왔던 산모들 가운데 불과 2%만이 산후에 감염성 질환을 얻었던 것이다.
 

병원감염은 과거에도 있었으나 비교적 최근에 와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데 병원환경 내에 있는 병원체 감염을 예방하는 일은 비교적 용이한 편이다. 사진은 한 병원의 입원실로 기사의 특정내용과 관련이 없다.
 

처음에는 아무도 믿지 않아

제멜바이스는 이로부터 매우 중요한 사실, 그러면서도 그때까지 의료계나 일반 사람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그때 분만에 관여했던 의사들이 다른 환자나 혹은 사망한 환자로부터 얻은 세균을 고스란히 산모에게 옮겨줬을 것으로 추정했다. 의사가 오염된 손으로 시술함으로써 환자에게 병원체(물론 당시 그가 병원균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지만)를 전파했을 가능성에 착안했던 것이다.

그후 수십년이 지난 후에야 파스퇴르에 의해 제멜바이스의 주장이 사실로 입증됐다. 세균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때문에 산모들이 억울하게 병을 얻게 됐다는게 확인된 것이다. 사실 미생물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1840년대의 사람들이 제멜바이스의 주장을 이해하기는커녕 커다란 반발을 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로부터 1세기 반이 지나면서 미생물은 물론이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기본이 되는 유전자 하나하나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 생명의 마지막 비밀까지도 이제 그 해명이 멀지 않은 지금에 와서는 병원감염의 가능성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병원은 온갖 종류의 병원성 미생물들로 꽉 차 있다. 이러한 미생물에 의해 감염됐거나 혹은 다른 병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러한 병원체들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진단이나 치료를 위해 모여드는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늘 유력한 감염원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병원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질병(감염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안에는 언제나 많은 세균이 존재하고 있지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즉 감염(여기서는 병원감염)이 일어나려면 주변에 저항력이 약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저항력이 약한 사람과 병원체가 만나야 비로소 감염성 질병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병원이야말로 온갖 종류의 환자-각종 원인으로 저항력이 약화된-가 모여드는 곳이 아닌가. 이런 환자와 병원체가 접촉할때 병원감염이 잘 발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여기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환자들을 진료하는 의료인, 다시 말해서 의사 간호사 등의 역할이다. 이들 의료인은 직접 환자를 만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청결의식과 건강상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환자들을 진료하다가 옮은 병원체를 의사 자신이 일시 지니고 있다가 다른 환자에게 전파, 감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균을 직접 환자에게 전파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이러한 병원감염이 큰 문제가 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가.
 

조셉 리스터의 방부법(antiseptic method)은 병원감염을 줄이는데 있어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리스터는 19세기 말에 활약한 영국의 외과의사


현대에 와서 더 많아져

병원감염은 과거에도 있었으나, 비교적 최근에 와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현대에 와서야 이러한 병이 더 많아졌을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병원감염의 증가원인은 바로 의학의 발전 그 자체에 있다. 즉 의학이 발달함으로써 과거에는 오래 살아있을 수 없었던 여러 질병을 가진 환자들-예컨대 백혈병이나 각종 암 만성신부전 재생불능성 빈혈 등-이 현대의학의 덕택으로-예컨대 신장의식 골수이식 항암제치료 면역억제제나 세포독성이 있는 약물 등-삶을 훨씬 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적인 치료는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는 했으나, 환자는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않되게 되었다. 그 대가란 한마디로 말해 저항력의 약화다. 예를 들면 신장이식이나 골수이식수술처럼 다른 사람의 조직이나 장기를 이식할 경우, 부수적으로 반드시 따라오게 마련인 거부반응(拒否反應)을 막기 위해서 우리 몸의 저항력을 떨어뜨리는 약제를 복용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식의 성공을 보장받고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려면 반드시 면역억제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면역억제제는 불행히도 양날을 가진 칼이다. 이것은 이식을 성공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몸의 저항력을 떨어뜨린다. 즉 외부나 내부의 병원체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능력을 저하시키는 것이다. 또 병원에서 환자가 받게되는 각종 검사 처치 수술 등의 조치는 환자치료를 위해서 대부분 불가피한 것들이지만 동시에 환자의 체내에 병원체의 침범통로를 새로 뚫어놓는 역할도 한다.
 

최근에 병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외과적 처치는 철저한 소독하에서 수행되고 있지만 환자의 몸속에 있는 병원체에 의한 병원감염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인 상태다.


손을 자주 씻는 것이 중요

그렇다면 이러한 병원감염은 어느 정도 일어나고 또 어떤 종류가 있는가. 병원의 규모나 모이는 환자의 성향에 따라서 다소 다르나 큰 대학병원의 경우, 퇴원환자의 5% 정도가 병원감염을 일으킨다. 즉 환자 1백명이 퇴원할 때, 그중 5명 정도는 병원에서 새로운 감염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그중 흔한 것을 꼽아 보면 요로감염 창상감염 호흡기감염(폐렴 등) 패혈증 등이 있다.

요로감염은 요로(尿路)에 카테터(catheter)를 꽂는 경우에 흔히 발생하며, 창상감염은 외과수술을 받은 부위에 세균이 침범하면 발생한다.

폐렴 등 호흡기감염증은 위의 두가지보다 비교적 빈도가 적으나 일단 생기면 치사율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역시 중요한 병원감염의 하나로 꼽힌다. 호흡기감염을 원래부터 심한 질환이 있는 환자가 인공호흡기 등을 사용해 가까스로 호흡을 유지하고 있을 때 그리고 항생제나 제산제(制酸劑, 위액의 분비를 억제하는 약)를 주입한 후에 나타난다.

패혈증은 주사기나 카테터와 관련이 있다. 환자에게 정맥주사를 놓거나 카테터를 통해 여러가지 수액을 주입하면 주사기나 카테터에 세균이나 진균(곰팡이) 등이 붙어 몸안으로 함께 유입된다. 이렇게 병원체가 주사기 또는 카테터를 매개체로 삼아 핏속으로 들어오면 패혈증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장치들을 오래 사용하거나 방치해 두면 감염의 위험성이 커지므로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제거 또는 교체해주는 것이 안전한 방법이다.

드물게는 정맥주사용 수액(포도당용액 생리식염수 등) 자체가 오염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훨씬 많은 사람에게 패혈증을 일으키게 된다.
이처럼 환자를 진단 혹은 치료할 목적으로 행해지는 여러가지 처치들이 오히려 병을 옮겨주곤 한다. 특히 카테터나 그밖의 체내용 기구들이 환자의 몸속에 들어가는 경우, 병원감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대폭 커진다.

병원감염의 원인균은 특별히 희귀하거나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생소한 균이 아니다. 오히려 환자 자신의 몸속에 있는 장내세균 등 그람음성간균(대장균 녹농균 변형균 클렙시엘라 세라시아 등)과 피부나 코의 점막에 서식하는 세균(포도상구균 등)등 비교적 흔한 세균이 대부분이다.
때로는 병원의 열악한 환경때문에 생긴 세균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병원의 중앙냉방장치나 샤워장치를 통해 전파되는 레지오넬라, 병원의 벽이나 천정 등을 수리할 때 생기는 먼지 속에 포함된 곰팡이 포자를 통해 전염되는 아스페르질로스증(症)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특히 레지오넬라는 여름철에 에어컨을 잘 청소하지 않은 병원에서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 자신의 몸속에 있는 병원체에 의한 감염일 경우, 이런 감염을 예방하기란 대체로 어렵다. 왜냐하면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원래부터 몸속에 있으므로 인위적으로 이것을 차단하기란 극히 힘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병원측의 철저한 환경관리도 질병발생 예방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에 비해 병원 환경내에 있는 병원체가 일으키는 감염을 예방하는 일은 훨씬 용이하다.

원래 전염성이 강해 옛날부터 이른바 '전염병'이라고 불려왔던 병들 앞에서도 병원측의 환경정화 노력은 빛을 잃고 만다. 따라서 이런 전염병 환자가 입원하면 제일 먼저 격리부터 해야 한다. 예컨대 폐결핵 홍역 수두 장티프스 콜레라 등의 환자가 병원에 들어오면 다른 일반환자와 구별해서 격리 입원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전염병'의 원인균은 일반적인 병원감염의 원인균과는 달리 전염성이 강해서 특별히 저항력이 낮아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전염될 위험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전염병은 공기나 음식물 등 외부적인 인자를 통해서 전파되므로 이러한 경로를 차단하면 예방이 가능하다.

의료인은 병원체를 환자에서 환자로, 혹은 자신의 세균을 저항력이 약한 환자에게 전달해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의사나 간호사 등 환자와 자주 접촉하는 의료인은 손을 항상 깨끗이 씻도록 해야 한다. 손을 깨끗이 씻는 일이야말로 평범하지만, 병원감염을 예방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이며 또한 경제적인 방법이다. 이 점에 관한한 모든 전문가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의료인의 직업병으로 인식돼

한편 최근에는 환자들에게 여러가지 종류의 강력한 항생제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항생제에 내성(저항성)을 가진 병원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녹농균이나 황색 포도상구균은 여러 약제에 대한 내성을 가진 세균들의 대표격이다. 따라서 이 세균들의 감염이 있을 경우, 치료에 어려움이 따르고 높은 사망률을 나타내게 된다.

요즘에는 AIDS나 B형간염 등 혈액을 통해 퍼지는 감염증들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요원들이 특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이들 병원체(바이러스)가 묻은 주사바늘에 찔리거나 다친 경우에는 감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년 전에는 수혈 후에 AIDS 항체양성반응을 보인 사람이 각 매스컴에 보도되기도 했다. 수혈을 통해 잘 전파되는 바이러스로는 홍역 인플루엔자 천연두 등이 있고, 세균으로는 브루셀라와 매독 등이 있다. 또 말라리아와 트리파노소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도 수혈을 통해 전파될 수 있으나 국내의 병원에서 수혈을 통한 이러한 병원감염의 예는 거의 보고되지 않고 있다.

일부 환자들은 "혹시 이 병원에서 AIDS를 옮기는 것이 아닐까"하고 두려워 한다. 한동안 의료인들도 비슷한 공포를 느껴 AIDS환자가 입원했다는 소문만으로 병원의 일부 기능이 마비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환자와 악수를 하거나 포옹을 하거나 화장실 기구를 같이 쓴다고 해서 AIDS에 걸리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병원감염은 환자에게 불의의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측면 뿐만 아니라,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들의 직업적 위험측면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다.

병원감염은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의학의 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대가의 지불이라는 면이 매우 크다. 따라서 예방이 사실상 어려우나, 손을 깨끗이 씻고 각종 시술에 임할 때 무균적(無菌的) 조작을 유지하고 카테터 등의 사용을 최소화하면 상당부분 그 발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적은 편이나 앞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또한 인적 및 물적 투자가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2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최강원 교수

🎓️ 진로 추천

  • 의학
  • 간호학
  • 보건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