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자동차 가전기기 등 현대과학의 산물은 모두 통신망에 접속된다. 이를 통해 현대인은 구태여 멀리 가지 않고도 지구촌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 수 있다.
교통이 막히면 통신이 뚫린다? 우연의 일치라고도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교통체증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와 통신이 고도화되기 시작한 시기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한 시점이라는 면에서 묘하게 일치한다.
전국의 자동차 수가 1백만대를 돌파한 것은 1985년, 1988년과 1990년에 각각 2백만대와 3백만대를 넘어섰고 올해에는 4백만대를 돌파할 전망이다. 따라서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교통체증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곳곳에서 교통사고가 빈발해 정형외과와 보험회사가 갈수록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통사고 발생건수를 연도별로 보면 1980년 하루 평균 2백29건에서 1983년 3백29건, 1985년 4백2건 그리고 1987년4백81건으로 비교적 완만히 늘어나던 것이 1988년 6백17건, 1989년 7백1건 등 갑자기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망자 및 부상자 수와 재산피해도 1988년을 기점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반면 전국 전화시설이 1천만회선을 넘어 선 것은 1987년으로 1990년에 1천5백만회선 을 돌파했다. 이에 비례하여 실제 가입자 수는 1981년 3백26만명에서 1984년 5백60만명, 1987년 8백63만명의 추세로 늘어났으나 1988년부터 크게 증가하기 시작해 1천만명을 넘어서고 1989년 1천3백35만명을 기록했다. 또 1987년에 통화권 광역자동화사업, 섬마을 전화자동화사업 등이 완료되어 전국 자동즉시통화체제가 실현됐다. 이와함께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차량전화, 주파수 공용통신 등 이동통신과 무선통신이 허용되고 팩시밀리와 컴퓨터의 보급이 크게 늘어 이른바 VAN(부가가치통신망)이라는 용어가 생소하지 않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교통과 통신, 원래는 하나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교통은 막히고 통신은 뚫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는가. 간단하게 교통과 통신의 관계를 상상해 보자. 가다가 교통이 막히면 사람들은 대개 전화를 걸어 늦겠다든가 못가겠다라고 연락한다.
이러한 교통체증을 여러번 겪게 되면 사람들은 아예 먼 거리를 이동하지 않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이 방법이 바로 통신이다. 전화만으로 여러가지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팩시밀리나 컴퓨터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또 이동통신이나 무선통신과 같은 편리한 수단을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교통이 막히면 통신은 뚫린다는 관계가 일단 성립한다고 볼 수 있다.
교통(交通)과 통신(通信)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먼저 '通'자가 눈에 띈다. 이 '通'자는 '망'(網, network)을 전제로 한다. '通'은 '網'을 통해 그 속에서 무엇이 활발하게 이동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곧 교통은 교통망을 통해 사람이나 물건이 이동하는 것이며 통신은 통신망을 통해 정보가 이동하는 것이다.
교통과 통신은 처음에는 하나였다. 봉화와 같은 특별한 통신수단을 제외하고 통신을 하려면 교통수단으로 직접 이동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편은 교통수단을 이용한 통신수단이다. 따라서 산업사회 이전의 시대에서는 말이나 마차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교통수단이고 또 통신수단이었다.
18세기말 증기기관차의 기적소리와 함께 시작된 산업혁명은 철도를 타고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배를 타고 새로운 대륙을 발견하고 자동차를 몰고 세계의 구석구석에 산업혁명의 복음을 전했으며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정복하고 지금은 우주에까지 도전하고 있다. 산업혁명은 수공업의 기계공업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교통수단을 만들어내고 교통 수단이 이동하는 길, 곧 교통망을 확장시켰다는 데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통신은 주로 교통수단과 교통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산업사회가 진척되면서 교통과 통신은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했다. 1837년 모르스가 전신을 발명하고 1875년 벨이 전화를 발명하면서 통신은 독자적인 망과 수단을 갖게 되어 교통수단에 의한 우편을 부분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독자적인 영역을 넓혀나갔다. 지금도 통신선로가 철도나 도로를 따라 설치돼 있지만 통신은 전화와 전신의 등장으로 교통과는 분리된 별도의 수단과 망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교통이 막히면 통신이 뚫린다는 논리가 교통과 통신의 발달과정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20세기 들어 교통수단의 발달이 어느 정도 한계에 이르자 통신수단이 크게 발달하기 시작했다. 1920년에 라디오가, 1937년에 TV가 등장하면서 방송은 또 하나의 통신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또 아마추어무선과 같은 무선통신수단과 무선전화기와 같은 이동통신수단이 생겨났으며 팩시밀리가 나타나 음성뿐아니라 문자와 그림을 전송할 수 있게 했다. 이와 함께 컴퓨터가 통신망에 매달릴 수 있게 되면서 통신은 드디어 VAN의 영역으로 발전하고 ISDN(종합정보통신망)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가 바로 산업사회와 구분되는 정보사회인 것이다.
하드패스와 소프트패스
교통은 인류의 공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어떤 공간을 얼마만큼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으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산업사회는 대륙뿐아니라 바다 하늘에 이어 우주에까지 진출하려는 인류의 공간에 대한 도전으로 특징지어진다. 공간에 대한 도전은 하드패스(hard pass)로 규정된다. 곧 마차 기차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의 교통수단과 교통망은 모두 사람이 직접 이동해야 하는 하드패스인 것이다. 이러한 하드패스 곧 교통의 발달은 사람들을 공간적으로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에도 하루만에 갈 수 있는 1일생활권의 시대를 연 것이다.
반면 통신은 인류의 시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어떤 정보를 얼마만큼 빠르고 편리하게 전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사회는 공간을 이동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면서 유한한 시간을 얼마만큼 보람되게 보낼 수 있느냐 하는 인류의 시간에 대한 도전으로 특징지어진다. 홈쇼핑이나 홈뱅킹을 비롯해 재택근무니 재택교육이니 하는 정보사회의 단면들은 모두 가능한한 불필요한 공간의 이동을 줄이고 남는 시간을 보다 유익하게 향유하려는 시간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시간에 대한 도전은 소프트패스(soft pass)로 규정된다. 곧 전화 텔렉스 라디오 TV 무전기 팩시밀리 컴퓨터 등의 통신수단과 통신망은 모두 사람이 이동하는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가 이동하는 소프트패스인 것이다. 이러한 소프트패스 곧 통신의 발달은 사람들을 시간적으로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의 소식을 곧바로 안방에서 알 수 있고 화상전화를 통해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할 수 있는 지구촌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통신은 한 사람이 자기가 가진 정보를 어떤 수단을 통해 멀리 떨어져있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행동을 말한다. 따라서 통신은 정보를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어떤 수단 곧 미디어가 필요하다. 미국의 화가였던 모르스는 1832년 유럽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문자나 숫자를 점과 선으로 된 부호로 표시한 뒤 이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구리선을 통해 보내고 이를 수신하여 다시 문자나 숫자로 변환하면 통신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상을 하고 연구에 착수하여 5년만에 전신기를 만들어냈다. 또 농아학교의 교사였던 미국의 벨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음성이 상대방의 귀에 전달되는 과정을 연구하다 음파를 전기 신호로 바꾸어 구리선을 통해 보내고 이를 다시 음파로 재생하면 통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개발에 착수하여 전화기를 만들어냈다. 이같은 원리를 응용하여 지금은 영상을 전기신호로 바꾸어 전송하여 이를 수신, 재현하는 TV와 팩시밀리 화상전화 등의 통신미디어가 실용화되고 있다.
모든 것은 ISDN으로 통한다
컴퓨터는 어떤 정보든지 0과 1의 이진법으로 표현하여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는 정보처리장치다. 미국 펜실베이니어대학의 에커트와 모클리는 1946년 미국 국방부의 맨하탄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탄도계산에 사용되는 에니악(ENIAC, Electronic Numerical Integrator And Calculator)을 개발하여 컴퓨터 시대의 막을 열었다. 1만8천8백개의 진공관을 사용한 에니악은 50만개의 배선을 일일이 손으로 하나씩 납땜하여 만든 전자계산기로서 1초에 1천만번 이상의 연산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30t의 무게에 길이가 30m로 작은 체육관 크기였으며 그 발열량은 6층 건물을 충분히 난방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에니악은 원래 조사용으로 개발된 것이어서 오랫동안 실용화되지 못했다. 1951년 상용 컴퓨터인 유니백이 등장하여 본격적인 컴퓨터 시대를 선언했다. 이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유니백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의 개인용 컴퓨터가 개발되어 작은 책상 위에서 성능을 발휘하고 있으며 가방크기인 랩톱컴퓨터에 이어 공책크기인 노트북 PC와 지갑크기인 팜톱 컴퓨터까지 등장하고 있다.
컴퓨터는 본래 통신기기가 아니었다. 컴퓨터는 전화기나 전신기처럼 정보전송을 목적으로 개발된 장치가 아니라 대량의 정보를 손쉽게 처리하기 위한 정보처리기기였다. 처리된 정보를 다른 곳에 간편하게 전송하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컴퓨터는 비로소 모뎀을 통해 통신망에 매달리게 됐다. 이로부터 정보 통신이니 VAN이니 하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했다.
ISDN(종합정보통신망)은 단말기로 무엇이든 매달 수 있는 통신망을 말한다. 컴퓨터를 비롯하여 팩시밀리 프린터 복사기 등 사무기기를 ISDN에 매달면 사무자동화(OA, Office Automation)가 된다. 또 로봇을 비롯하여 공작기계 컨베이어시스템 자동창고 등 각종 기계장치를 ISDN에 연결하면 공장자동화(FA, Factory Automation)가 되며 TV 전기밥솥 냉난방장치 등을 접속하면 가사자동화(HA, Home Automation)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건물내의 공조장비 냉난방장비 조명장치 경보장치 승강기 등을 하나의 망으로 구성하면 건물자동화(BA, Building Automation)가 되고 가게의 금전등록기 경보장치 창고 등에 이용하면 가게자동화(SA, Store Automation)가 되는 것이다.
통신망과 아무런 관계가 없던 기계장치들이 최근 들어 하나씩 통신망에 매달리고 있다. 예를 들면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자동차도 통신망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컴퓨터가 모뎀을 통해 통신망에 참여하게 되었듯이 자동차는 최근 카폰을 달게 되면서 저절로 통신망에 매달리게 됐다. 또 앞으로 무선으로 주변의 지도를 화면으로 제공하는 도로정보시스템이나 교통량에 따라 신호주기를 자동으로 조절하는 교통관제시스템이 등장하면 자동차는 아무리 피해다녀도 결국 ISDN에 매달리게 될 것이다. 비행기 선박 우주선 등 덩치가 큰 교통수단의 통신망 의존도는 자동차보다 더 심하다. 가정에서는 커튼이나 창문까지 ISDN에 매달아 필요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 열고 닫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미래의 ISDN이 가져다줄 만능의 세계다.
어떻게 「대형」을 막을 것인가?
인간은 육체적인 행동반경에 따라 관심의 범위, 곧 정신적인 행동반경의 범위가 달라진다. 닭의 행동반경을 두 다리를 축으로 하여 부리가 닿는 곳까지 그린 둥근 원으로, 또는 닭장을 기준으로 뒤뚱거리며 돌아다닐 수 있는 약간의 공간으로 규정한다면 인간의 행동반경은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까.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행동반경은 거주하는 생활 주변으로 국한됐다. 살고있는 마을을 중심으로 기껏해야 말이나 마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였다. 따라서 사람들의 주된 관심거리도 마을 주변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농경사회에서 인간의 행동 반경은 작은 점차원의 부락공동체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행동반경은 도시 및 국가의 차원으로 넓어졌다. 산업혁명으로 철도가 전국으로 뻗어나가면서 사람들의 행동과 관심도 철도를 따라 도시를 비롯하여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또 자동차 배 등 교통 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인간의 행동반경은 철도를 따른 선(線)으로 부터 철도가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확장됐다. 따라서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행동반경은 면(面)차원의 국가공동체로 넓어진 것이다.
20세기 들어 비행기와 우주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행동과 관심은 입체적인 모든 공간으로 부풀었다. 이로부터 인간의 행동반경은 지구촌, 곧 3차원의 세계공동체로 확산된 것이다. 또19세기말에 등장한 전기통신수단으로부터 빠른 속도로 성숙한 정보혁명으로 인간의 행동반경은 시간의 영역까지 넘보게 됐다. 따라서 정보사회에서 인간의 행동반경은 국가를 넘어 세계로, 공간을 넘어 시간의 영역으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인류의 시간에 대한 도전은 드디어 동시대(同時代, real time)의 차원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정보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동시대의 특권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 안방에 앉아서 지구 반대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련 쿠데타의 현장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영국 증권시장의 가격동향을 직접 알아볼 수 있으며 미국 국회도서관의 서적도 뒤져볼 수 있고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예술품도 감상할 수 있다. 모두가 통신혁명이 가져온 동시대의 혜택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통신혁명이 세계사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 다니엘 벨이 그의 저서 '이데올로기의 종언'에서 예언했듯이 공산주의의 시대는 마감되고 있다. 정보는 굳게 닫힌 이데올로기의 벽을 넘어 동독으로 밀려들어가 결국 스스로 문을 열게 만들었다. 또 도미노막대기가 연달아 넘어지듯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등 주변의 공산권국가들이 잇따라 민주화되면서 결국 종주국인 소련의 철의 장막마저 밀려드는 '제3의 물결'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앨빈 토플러가 '권력이동'에서 갈파한대로 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의 중심이 농경 사회의 물리력에서 산업사회의 자본력을 거쳐 정보사회의 정보력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신혁명은 결코 인류에게 장미빛 미래만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산업사회를 밀어내고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통신혁명은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20세기 들어 두 종류의 전체주의를 체험했다. 나치즘과 공산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나치즘은 민족주의의 광기로부터 돋아나고 공산주의는 이데올로기의 광기로부터 출발했다. 다음은 과학기술의 광기로부터 태동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가 등장할 것이다. 새로운 전체주의는 정보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묘사했듯이 서서히 다가오는 대형(大兄, Big Brother)의 검은 그림자를 본다. 현재의 과학자들은 다가오는 대형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