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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非)과학 속의 과학─천하도

조선식 수레바퀴지도의 실상과 허상


천하도(여지도)^ 이 지도에는 동서북방의 방위를 나타내는 나무가 그려져 있다. 대륙과 해안선을 가는 선으로 나타냈으며 나라의 명칭도 다수 적혀 있다.


조선 지도책의 맨 앞장에 수록되었던 천하도. 이 속에는 실재와 상상의 세계가 혼재돼 있다.

배를 타고 몇시간 바다로 나가면 멀리 보이는 수평선이 둥글게 떠오른다. 시야에 들어오는 푸른 바다가 원반(圓盤)의 반조각처럼 선명하다. 돌아서 보면 그 쪽도 둥근 선이다. 눈에 보이는 바다는 분명히 둥근 원을 그리고 있다.

며칠전 '올림피아 88'호라는 한일 국제페리를 탔을 때도 나는 새삼스럽게 바다 한가운데서 옛사람들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적어도 눈으로 보는 지구는 거대한 원반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오사카(大阪)를 떠나 17세기에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일행 수백명이 오가던 뱃길을 따라 부산으로 향했다. 세도 내해(內海)와 대마도(쓰시마) 앞바다를 통과해 현해탄을 건너오는 내 머리 속에는 한 장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해동제국기'(海東諸國紀)에 신숙주가 그린 지도. 그리고 17세기에 통신사들이 그렸다는 해차도(海槎圖)라는 지도. 그것들을 포괄한 세계지도인 천하도(天下圖)의 둥근 원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달에는 이 지도에 대해 써야 하겠다. 그 얘깃거리 많은 지도 이야기를.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T-O 지도의 출현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120~170년 활약)가 제작한 고대세계에 대한 과학적 지도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 지도가 출현한 이후, 유럽의 지도학에는 이른바 대단절(大斷絶)이 있었다. 과학적 지도학은 종교적 우주지(宇宙誌)의 흐름 속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세계는 몇개의 구획선에 의해 큰 대륙으로 나뉜 평평한 원반으로 표현되었다. 또 대륙을 가로지르는 하천과 산맥은 형편없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지도는, 중세의 용어를 쓰면, 맙파에문디(mappaemundi)는 6백 종류나 제작되었다.

우리는 이런 지도를 흔히 '수레바퀴 지도' 또는 'T-O지도'라고 부르고 있다. 지도의 전체적인 인상이 수레바퀴 같아서 그렇게들 부른다. 또 원(圓)안에 그어진 선의 디자인에 T라는 글자가 몇개 섞여 있는 것 같아서 T-O라고도 했다.

이런 지도들은 분명히 종교적 우주관을 반영한 것인데 끈질기게도 17세기 경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나 15세기 무렵부터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관은 분명히 부활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메르카토르(G. Mercator, 1512~1594)의 대세계지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제작된 오르텔리우스(Ortelius)의 지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현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7세기 조선에는 두가지 세계지도가 출현하고 있었다. 1402년의 세계지도에 이어 예수회 선교사가 중국에서 그린 흔히 곤여전도(坤輿全圖)로 통하는 세계지도가 선보였다. 또 천하도(天下圖) 천하총도(天下總圖)라고 일컬어지는 조선식 수레바퀴지도가 등장했다.

성립 시기와 배경, 그리고 제작수법이 전혀 다른 이 두 지도가 기묘하게도 같은 시기에 나타나고 있다. 이 점은 학자들의 호기심을 일찍부터 자극했다. 서유럽의 지도학사 연구자들에게도 그것은 흥미진진한 과제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그에 대한 만족할만한 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만든 1602년의 세계지도는 서유럽의 지리학적 성과를 집약한 과학적인 지도로 유명하다. 그 지도를 재빨리 수용한 조선학자들이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그려졌을 것으로 보이는 T-O지도류의 천하도를 목판으로 수없이 찍어냈다는 사실은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1402년에 제작한 그 당당했던 세계지도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하기야 유럽에서도 T-O지도가 17세기까지 제작되고 있었으니, 그 무렵 조선에서 T-O지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그 천하도 형식의 세계지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특히 동아시아 여러 나라중 조선에서만 제작되었고 판을 거듭해 나갔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우리 과학사에 나타나는 전통의 계승과 단절, 그리고 조화와 공존의 병행이 첨단지식을 과감히 수용하는 과정에서 큰 마찰없이 전개돼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천하도와 곤여전도의 공존. 어떤 면에서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까지 할 수 있는 공존 앞에서 우리 과학사의 도도한 물줄기를 엿보게 된다. 한국 고지도(古地圖)의 대표적인 유물이면서 가위 환상적이라고 할만한 천하도를 굳이 소개하려는 뜻이 여기에 있다.
 

서양의 수레바퀴지도^서양 중세의 전형적인 수레바퀴지도. 영국의 헤리퍼드(Hereford) 대성당에 소장돼 있다.


환상적으로 그려져

17세기 경부터 조선에서 출판된 목판 지도첩의 첫장이나 마지막 장에는 거의 예외없이 천하도(天下圖)라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다. 조선 후기의 지도첩은 천하도 외에 중국도 일본국도 유구국도 등 외국지도와 조선전도 팔도분도(八道分圖) 등 우리나라 지도들로 구성돼 있다. 이를테면 그 당시 사대부에게 가장 널리 보급되고 있던 지도첩의 첫장을 장식한 세계지도가 천하도였다. 어째서 더 정확한 세계지도들을 제쳐놓고 환상적으로 그려진 둥근 세계지도가 지도첩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정확한 사연은 아직 알 수 없다.

천하도의 한가운데에는 중국 인도 아라비아 조선을 포괄하는 대륙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중앙대륙을 둘러싸고 있는 고리모양의 대륙이 나타나 있다. 또 그 두 대륙의 사이에 위치한 내해(內海)에 떠있는 수많은 섬들이 그려져 있다. 동쪽과 서쪽에는 커다란 나무가 그려진 유파산(流波山)과 방산(方山)이 자리잡고 있다.

지리학자 이찬(李燦)교수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가장 널리 보급된 판본에는 모두 1백44개의 지명이 수록돼 있다고 한다. 세분하면 나라 이름이 89개, 산 이름이 39개, 하천(河川)이 5개, 소택(沼澤)이 5개, 나무가 3개, 그밖의 것 3개가 명기돼 있었다. 개중에는 나라 이름만 1백68개나 기록된 천하도도 있다고 한다.

이중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의 이름은 대부분이 중앙에 위치한 대륙에 표기돼 있다. 내해와 고리모양의 대륙에는 상상의 나라들이 그려져 있다. 일목국(一目國)이 있는가 하면 삼신국(三身國)이 있고, 여인국(女人國) 대인국(大人國) 화산국(火山國) 등이 있다. 모두 상상의 나라들이고 전설의 나라들이다.

산(山)도 그렇다. 태산(泰山) 숭산(崇山) 화산(華山) 등은 이른바 중국의 오악(五岳)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산들이다. 그러나 내해(內海)에 위치하는 광야산(廣野山) 여농산(麗農山) 광상산(廣桑山) 등은 모두 가상적인 산들이다. 곤륜산(崑崙山) 만이 실재하는 산이다.

왜 이런 상상의 나라와 가상의 산이 실재하는 나라와 산과 함께 이 지도 속에 존재하는 것일까. 천하도에는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天地之間相距)가 4억2천리(里)이고, 동서남북은 2억3만5천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것도 사실상 상상의 거리다. 이런 지도들이 한참 출판되었던 17~18세기의 조선지리학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오랜 기간 축적된 관측자료와 서유럽의 지리적 발견의 성과를 수용, 지구상의 여러나라들과 행성들에 대한 천문·지리학적 지식을 거의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 때에 11세기 이전의 내용을 담은 천하도가 출현했다는 것은 정말 뜻밖이라고 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일본의 지리학자 나카무라(中村拓)교수는 중국의 옛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과 연결시켜 천하도를 평가하고 있다. 그는 천하도가 '한서'(漢書)와 '당서'(唐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나카무라교수는 이런 지도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한(漢)나라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인도를 중심으로 한 불교세계를 그린 천축국도(天竺國圖)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카무라교수는 또 이 지도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뒤 16세기경에 이룩한 조선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널리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초야의 선비들이 제작해

사실 천하도와 같이 추상화된 지도, 즉 상상적인 미지의 세계를 그린 지도의 표현방식은 고려나 조선학자들의 지도제작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지만 이 지도가 관료학자들이나 조선정부의 지도제작자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선비들이 천하도를 주로 만들었다. 그들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세계와 환상의 세계가 추상화된 지도의 그림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도책의 첫머리에 이런 지도를 끼워넣은 사람은 초야에 묻혀 유유자적했던 조선선비들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6세기 말에 저술된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나 18세기 초 이중환(李重煥)이 쓴 '택리지'(擇里誌)에 담긴 지리적 사상과 세계관을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추상화된 세계지도와 현실적인 지도를 함께 포용하고 있는 조선조 지도제작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찬교수는 이렇게 쓰고 있다.

"천하도의 내용이 중국 고대의 세계관을 나타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없다. 또 산해경(山海經)과 유사한 지도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전적으로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천하도는 그 독특한 지도책과 더불어 한국 고유의 것이며, 중국과 일본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세계지도다. 재래의 천하도에 서구에서 도입된 지식을 적용 또는 첨가해 가는 과정을 통해 볼 때 천하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진화 발달해 온 것이다. 중국적인 세계관을 수용해 한국에서 지도화(地圖化)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천하도의 한 가운데 있는 대륙은 1402년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만들어지기 전에 존재했던 중국 중심의 전통적인 세계지도와 비슷하다. 이것은 천하도에 담긴 내용이 11세기 이전의 것이라는 견해와 일치한다. 천하도에는 한국인이 살고, 다녀보고, 알고 있었던 세계를 둘러싼채 저 멀리 존재하는 환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섬과 산 그리고 이상의 땅에서 자란 거대한 나무들로 세상이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소박한 세계관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환상의 세계를 담은 천하도가 지금도 우리의 관심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튼 서양의 중세에 그렇게 흔했던 수레바퀴지도가 사라진 17~18세기에 유독 조선에서만 널리 퍼지고 있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를 둥글다고 생각한 조선시대 학자들에게는 원(圓)속에 추상화된 세계지도가 오히려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른다. 20종류나 될 만큼 조선시대에 가장 많이 만들어져서 널리 퍼진 세계지도이긴 하지만, 천하도는 조선시대의 지리학적 지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위도 경도가 나타나

서양사람이 만든 세계지도를 그대로 베껴 제작하지 않은 또 하나의 지도가 18세기에서 19세기 초에 조선에서 목판으로 인쇄되고 있었다. 여지전도(輿地全圖)가 그것이다.

96㎝×62㎝ 크기를 가진 격조높은 목판본 세계지도인 이 여지전도는, 말하자면 1700년대의 구대륙지도다. 16세기에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되고, 신대륙이 그려진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1602년)가 조선에 들어온지 2백년 가까이나 지난 시기에 당당히 출현한 구대륙 세계지도인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천하도의 경우처럼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여지전도는 오히려 1402년의 세계지도와 더 가깝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보면 옛 전통이 되살아난 듯한 느낌이다.

여지전도가 서유럽의 근대 세계지도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그대로 그린 것도 아니다. 유럽의 지형이 더욱 정돈되고 영국이 나타나 있으며, 조선반도와 일본의 지형,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 등의 모양도 종전과는 다르다. 남태평양의 여러 섬들과 남쪽 대륙도 나타나 있다. 어떻게 보면 이 세계지도는 마테오 리치와 페르비스트의 곤여전도(坤輿全圖)와 혼일강리도, 그리고 전통적인 중국중심의 동양지도를 절충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지도의 지명(地名) 표기는 김정호의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와 비슷하다. 그리고 흑해(黑海)의 모양과 흑해가 내해(內海)로 돼 있는 것도 지구전후도와 같다. 지구전후도는 1834년에 간행된 세계지도의 목판본인데 페르비스트의 곤여전도를 비롯한 여러가지 자료를 참고, 그 나름대로 만든 동서 양반구(兩半球)의 지도다.

여지전도 여백에는 여러가지 자료들이 기록돼 있다. 서울과 각도 감영의 위도와 경도, 중국 각 지방의 위도와 경도가 적혀 있다. 그것은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誌)의 기록과 일치한다. 그리고 서문으로 미루어 중국의 지리책인 '직방외기'(職方外記)와 '곤여도설'(坤輿圖說)도 참고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여지전도는 그 당시의 서유럽과 동아시아의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것을 서양식으로 그리지 않고 조선식으로 그린 점이 이 세계지도의 특징이다. 최신의 정보와 지도학의 지식을 전통의 도가니 속에서 용융시켜 만든 것이다. 이 융합은 하나의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없다.

이런 양면성을 조선의 세계지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또한 조선지리학의 중요한 성격중 하나다.
 

여지전도^조선 영정조시대에 제작된 이 지도에는 신대륙이 나타나있지 않다. 그래서 1700년대의 구대륙지도로 통하고 있다. 이 지도의 지명표기는 김정호의 지구전후도와 비슷하다.
 

199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전상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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