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2. 퍼스널 컴퓨터

생산규모는 세계적, 설계기술은 해외의존

 

컴퓨터 시험공정


IBM PC 호환기종을 주로 생산하고 있는 국내업체들은 설계기술이 취약해 비싼 로열티부담을 안고 있다.

컴퓨터를 일반인이 폭넓게 사용하게 된 것은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제2차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펜실베이니어대학에서 세계최초로 프로그램의 변경에 의해 계산을 할 수 있는 컴퓨터 에니악(Eniac)이 탄생했다. 에니악은 대포의 탄도계산을 목적으로 설계된 계산기였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후 컴퓨터는 다른 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미국정부의 회계 및 세금계산에 사용됐는데 민간기업에서의 이용이 활발해짐에 따라 컴퓨터의 시장규모는 날로 확대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컴퓨터의 성능을 개선시켰으며 가격은 반대로 낮아졌다.

IBM과 클론업체

1971년 세계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404의 개발과 1970년 IBM의 8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FDD)개발을 기점으로 하여 컴퓨터 기술은 급변했다. 1977년 미국의 애플사 탠디사 코모도어사에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컴퓨터 산업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컴퓨터에는 모니터 화면이 없었다. 텔레비전과 같은 모니터가 부착된 퍼스널 컴퓨터의 탄생은 컴퓨터 기술에 있어서 가히 혁명이었다. 당시에 FDD와 같은 기억장치가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오디오 카세트를 보조기억장치로 사용하는 퍼스널 컴퓨터는 일부 취미 애호가들에게 대단한 흥미거리였다.

퍼스널 컴퓨터가 인기를 얻게되자 대형컴퓨터위주의 정책을 고집하던 거인 IBM이 1981년 8월 12일 IBM PC5150을 발표하게 된다. 당시의 IBM PC는 애플사나 탠디사의 퍼스널 컴퓨터에 비해서 16배에 달하는 메모리 영역과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기법을 적용한 획기적인 것이었지만 현시점에서 본다면 정말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오디오 카세트를 보조기억장치로 사용한 PC 뒷면의 입출력 포트와 바이오스지원 롬베이직(ROM BASIC), CGA 어댑터, 녹색화면모니터, 5.25인치 FDD 슬롯(현재 사용중인 슬림형의 2배높이) 등이 당시 IBM PC의 구조였다.
이러한 구조의 단점들을 보완하기 시작한 것이 이글 콜롬비아 컴팩 코로나 올리베티 등의 호환기종업체(클론, clone)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IBM과 대적할만한 업체는 컴팩사였으며 IBM의 새로운 모델이 발표할때마다 컴팩은 상위기종을 발표해 경합을 이루었다. 81년 8월부터 84년까지 IBM에서 발표한 PC, PC-XT, PC주니어, PC포터블 4기종은 인텔사의 i8088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사용했다. 이에대해 클론업체들은 IBM에서 옵션품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선트로닉스 프린터포트, RS-232C 시리얼포트, 모니터, 어댑터 등을 본체에 포함하여 IBM PC보다 싼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했다. 퍼스널 컴퓨터 구매자들은 IBM PC보다 많은 기능을 갖고 있으며 가격이 낮은 호환기종들을 선호했기 때문에 불과 수년 사이에 수십개에 달하는 클론업체들이 생겨났다.
 

국내컴퓨터업체들의 최대 약점은 설계기술이 없다는 것이다. 사진은 CAD(컴퓨터이용설계)를 이용한 참설계 화면


「호환기종」을 없애겠다

1985년에 IBM은 XT의 성능을 보완한 16비트 PC-AT(Advanced Technology, i80286)를 발표했는데 이는 7개의 DMA채널, EGA(Enhanced Graphics Adaptor)모니터, 5.25인치 1.2MB FDD, 20MB HDD를 기본 사양으로 하고, 6㎒의 클록 주파수로 XT보다 훨씬 성능이 보완되었다. 클론업체들은 즉시 IBM AT보다 속도가 빠르고 보다 성능이 강화된 호환기종을 발표했다. 이때 미국의 클론업체들은 국내업체들과도 OEM(주문자 상표부착 공급)계약을 했고, 일부업체들은 대만에서 파트너를 찾았으나 대만업체들은 자사브랜드 상품개발에 주력했다.

87년 4월 IBM은 마이크로 채널 아키텍처(MCA)의 PS/2(퍼스널 시스템2) 4기종을 발표하면서, 영어단어의 'compatibles'(호환기종)란 단어를 없애겠다고 클론업체들에게 경고했다. 또한 IBM PC XT와 AT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MS-DOS의 각종 버전과 호환성을 가지며 이용하기가 쉬운 운영체제 OS/2를 추후 공급하겠다던 IBM의 약속이 1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자, IBM은 PS/2 발표시 선언했던 내용을 번복, PC AT3(8㎒)을 다시 시장에 공급해야만 했다.

IBM의 MCA에 대응하는 EISA 컨소시엄이 구성되었으며, EISA 아키텍처는 MCA보다 훨씬 성능이 보강되었으므로 결국 PS/2는 IBM을 심한 경영난으로 몰고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단지 PS/2가 남긴 업적이라면 고해상도 VGA(Video Graphics Adaptor)를 모니터의 표준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90년 4월 IBM은 일보 후퇴하여 보급형 PS/1을 다시 발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IBM은 다시 12월에 5가지의 신형 퍼스널 컴퓨터를 발표했다.

IBM과 클론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 지난 9년동안 컴퓨터 하드웨어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왔다. 종전에 XT, AT를 생산하기 위해 여러개의 LSI(대규모집적회로)를 사용하던 것을 1~2개의 칩세트(ship set, 여러개의 LSI를 1개의 칩으로 모은것)로 압축했다. 컴퓨터의 생산이 훨씬 용이해졌으며, 불량률과 생산수율이 개선되었고, 가격은 급격히 하락했다. 실제로 'PC'(퍼스널 컴퓨터)란 명칭을 IBM에서 사용한 후 IBM은 기본적인 아키텍처만을 제시했을뿐 오히려 클론업체들이 훨씬 기술발전에 기여해 왔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MDA와 CGA의 장점만을 선택한 허큘리스 모니터 어댑터(모노크롬 그래픽이 가능)와 랩톱컴퓨터, 노트북 컴퓨터, 워크스테이션, DTP(데스크톱 출판시스템) 등이 클론업체들에 의해 탄생됐다.

취약한 설계기술

80년대 중반부터 컴퓨터 생산기술의 기반을 다져온 우리나라의 PC호환기종 생산업체(클론업체)들은 컴퓨터 및 주변기기의 기술발전속도에 민첩하게 대응하지는 못했지만 메카트로닉스적인 요소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유연하게 대처해 왔다. 주로 미국 클론업체들의 OEM공급역할을 맡아온 우리나라 업체들은 설계기술이 취약할 수 밖에 없었고, 칩앤드테크사 VLSI사등 칩세트업체에서 거의 완성단계의 마더보드도면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자체기술개발을 할 필요도 없었다. 특히 미국의 PC업체들이 신기종 PC의 완성도면을 2만달러 정도에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컴퓨터업체들로서는 자사의 모델을 개발하기 보다는 설계도면을 구입하는 것이 보다 유리하여 우리의 연구개발기반은 더욱 취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PC의 단순조립 생산수준단계에서 우리나라 컴퓨터업체들은 칩세트, 마이크로프로세서, 롬바이오스 등 핵심부품을 모두 미국 일본 대만 등으로부터 수입하였으며, IBM의 특허침해에 대한 로열티요구(매출액의 1~3%), 바이오스 로열티, MS-DOS라이선스 등에 대한 과다한 비용지출로 실속이 없는 장사를 하고 있다. 특히 최근 국내업체들은 잦은 노사분규와 임금상승 등의 요인으로 인한 생산비 증가로 외국업체들의 OEM주문이 감소하고 있고, 자사브랜드로 시장을 개척하기에는 인력과 경험이 부족하여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업체들이 생산한 PC호환기종들은 IBM에서 옵션품목으로 판매하고 있는 각종 애드온카드들을 마더보드(mother board)에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몇가지 공통적인 문제점을 발생시키고 있다.

첫째 업체별로 마더보드의 크기가 모두 다르며, 시리얼(serial) 패러렐포트(parallel port)의 위치가 다르게 설계되어 있어서 중간재인 어셈블리 카드만으로는 판매가 불가능하고 최종재인 완제품으로만 판매가 가능하다. 따라서 마더보드에 버그(bug)가 있거나 설계가 잘못된 경우에는 주로 수출상품을 내수시장으로 돌려 재고를 없앤다.

둘째 애드온카드를 마더보드에 내장하는 경우에는 각 포트의 인터럽트와 어드레스 변경이 가능해야 LAN용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호환성 확장성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업체의 초기모델들의 대부분이 각 포트의 어드레스와 인터럽트를 고정시켜 설계했기 때문에 반품된 사례가 많았다.

특히 EGA카드를 마더보드에 내장한 PC의 경우 VGA, XGA등의 고해상도 모니터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있으며 FDD 콘트롤러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HDD 콘트롤러를 더 비싸게 주고 구입해야 하는 등 문제점들이 무수히 발생하고 있다.

셋째 컴퓨터 사용중에 고장이 발생하는 주요인으로 주로 입출력포트, 즉 시리얼포트나 선트로닉스포트에서 발생하는 고장을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PC들은 공통적으로 이러한 포트들을 마더보드에 내장하고 있어서 시리얼포트에 단순한 고장이 발생해도 마더보드 전체를 교체해 주어야만 한다. 해외 애프터서비스 전문업체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산 PC의 불량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이밖에도 각 업체별로 한글어댑터부분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고 심지어는 데이터호환성도 없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업체들간에 컨소시엄을 구성해 각 요소를 표준화하고 각 업체별로 중간재를 전문화시켜야만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며 국내에서도 일반인들이 안심하고 구입해서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초기의 컴퓨터^1940년대말의 전산실 광경. 진공관식 컴퓨터가 방안을 가득 채웠지만 성능은 오늘날 PC보다 오히려 뒤떨어진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1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탁승호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전자공학
  • 정보·통신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