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신 슈퍼컴의 심장부에 일본산 화합물 반도체가 채택되면서 갈륨비소반도체는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다.
전자제품을 소형화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반도체는 어디까지 작아질 수 있는 것일까.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이 1945년 만들어졌을때 그 크기는 큰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수많은 진공관들로 회로가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공관은 트랜지스터로, 트랜지스터는 수많은 트랜지스터를 한꺼번에 집어넣은 집적회로(IC)로, IC는 보다 집적도가 높은 LSI(대규모 집적회로) VLSI(초대규모 집적회로)로 차례차례 발전됐다. 이에 따라 요즘 나오는 주머니속에 넣을 수 있는 노트북 컴퓨터조차 애니악보다 훨씬 빠르고 기억할 수 있는 정보량도 많다.
70년대말 퍼스널컴퓨터가 처음 탄생했을 때 반도체의 기억용량은 16KB(킬로바이트) 정도였다. 그후 집적도는 매년 2배 이상 향상되어 현재 4MB(메가바이트) D램이 양산단계에 들어가 있고 얼마전 삼성전자가 16M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후지쓰는 올해초 64MD램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해 세계 각국의 반도체 개발경쟁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 반도체의 집적도는 무한히 향상될 수 있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현재 반도체 제조공정에 쓰이는 금속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 구조로는 0.1μ(${10}^{-7}$m)정도가 한계일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첨단반도체의 트랜지스터 크기는 0.5~1μ 정도. 사람의 머리카락 두께가 1백μ 정도인 점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미세한 기술이다. 더구나 이것은 MOSFET 구조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의 가정이고 더 향상된 제조공정이 도입될 경우 0.01μ까지도 가능하다고 반도체공학자들은 주장한다. 적어도 집적도면에서는 아직 반도체 기술개발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리콘보다 빠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실리콘반도체는 많은 부분 화합물 반도체로 대체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점점 현실화 되고 있다.
화합물반도체란 현재의 반도체가 실리콘(Si) 게르마늄(Ge) 등 하나의 원소로 이루어진데 비해 갈륨(Ga) 비소(As) 인(P) 카드뮴(Cd) 등 여러 원소의 화합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화합물반도체로 가장 각광받고 있는 것은 갈륨비소(GaAs) 반도체, 즉 갈륨비소반도체의 실리콘 반도체보다 우수한 특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갈륨비소 내에서는 신호전류를 운반하는 전자의 속도가 실리콘에서보다 5~6배 빠르다. 따라서 트랜지스터를 만들때 갈륨비소반도체는 실리콘 소자보다 반응속도가 그만큼 빠르게 된다. 더욱이 최근 개발된 이질접합구조의 도핑기술을 이용하면 그 차이는 50배이상으로 늘어난다. 이러한 반도체의 반응속도는 방위산업 분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령 적국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의 위치와 운동궤도를 계산할 때 극히 짧은 순간의 차이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미국의 전략방위계획(SDI)에서 갈륨비소 반도체의 개발이 중시된 점이나 지난 8월 미국 최대의 슈퍼컴퓨터 메이커 크레이사가 최신 슈퍼컴 '크레이Ⅲ'에 일본산 갈륨비소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채택하겠다고 밝힌 점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갈륨비소는 또한 방사능에 대해 실리콘보다 강하다. 따라서 방사능과 접촉 가능성이 큰 우주개발분야에 그 효용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갈륨비소는 빛(光)을 이용하는 반도체 제품에 실리콘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러한 이유로 갈륨비소반도체는 이제까지 화면(display)에 많이 쓰이는 발광다이오드(LED), 컴팩트디스크용 반도체, 광통신장치 등에 널리 이용돼 왔다.
일본기업들이 불붙여
실리콘에 비해 갈륨비소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시장 확대에 대한 전문가들의 기대는 번번이 무산돼 왔다.
이러한 원인은 주로 갈륨비소반도체가 경제성과 제조기술면에서 실리콘 소자에 비해 불리하다는 점이다. 실리콘의 원료는 모래속에 무한히 존재하지만 갈륨과 비소는 흔하지 않을 뿐더러 비소는 독극물로 취급되고 있어서 취급에 큰 주의를 요한다. 또 실리콘은 결함없는 단결정을 만들기가 쉽지만 갈륨비소는 화합물이므로 양질의 결정체를 제조하기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 현재 제작가능한 웨이퍼의 크기도 실리콘의 절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경제성 면에서 갈륨비소반도체는 실리콘보다 15~20배 정도 비싼 편이다.
이때문에 지난 85년부터 미국기업들이 잇따라 화합물 반도체 분야에 손을 댔으나 전문인력 부족과 시장 미성숙 등으로 좌절을 맛보았다. 최근 갈륨비소반도체가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은 그동안 미국에 크게 뒤져있던 일본기업들이 위성방송기기 및 이동체통신시장 그리고 슈퍼컴관련 IC 수요를 겨냥, 생산체제를 크게 강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크레이사가 최신 슈퍼컴에 후지쓰의 갈륨비소반도체를 채택하기로 결정하자 '슈퍼컴의 심장부를 일본 기술에 의존한다'며 미국기업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의 후지경제연구소는 갈륨비소반도체의 세계시장 규모가 지난해 1천5백55억엔에서 오는 93년경 2천6백10억엔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시장조사업체들도 화합물 반도체시장이 연평균 18%의 높은 성장을 계속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형방위산업체를 중심으로 40여개 업체가 갈륨비소 응용제품을 생산중이며 일본의 경우 후지쓰 히다치 등 주요전자업체들이 미래의 전략 산업으로 제품개발을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생산중인 대표적인 갈륨비소반도체로는 위성방송기기용 MEMT, 갈륨비소 FET, 반도체레이저 등이 있으며 최근 슈퍼컴용 S램, 주문형 반도체의 일종인 게이트어레이도 상용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기술 수준은 아직 보잘 것 없다. 삼성 현대 금성 등 반도체 메이커들은 D램 실리콘 소자 위주의 양산체제를 갖추고 있어 다양한 반도체사업 진출이 어려운 형편이다.
그동안 과학기술원과 전자통신연구소를 중심으로 화합물반도체에 관한 기초연구가 진행됐고 최근 해외에서 이 분야를 전공한 과학자들이 잇따라 귀국해 갈륨비소반도체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아직 투자를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코닝과 금성전선이 웨이퍼시제품을 제작하고 있는 수준이며 국제상사가 최근 소자부문에 적극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외에 삼성전자 금성사 한국전자 등도 일부 제품개발에 손대고 있으나 '한 발만 걸치고 있는' 엉거주춤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