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주의 달라스에서 남쪽 287번 도로를 따라가면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풍광이 펼쳐진다. 이따금 나타나는 공장과 관목숲, 모래 그리고 백묵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이상한 흔적들.
이 흰색의 흔적은 태고에 이땅이 바다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미국 에너지국이 '왁사하치'(Waxahachie 인디언 지명)에 세계 최대, 최첨단의 초전도 거대가속기(Superconducting Supercollider: S. S. C)를 건설하려고 하는 것은 이 지역이 과거 해상(海床)이었다는 사실도 한가지 이유가 된다.
44억달러 들여 둘레 53마일의 가속기들
이곳에 건설하려는 가속기는 무려 44억달러(약 3조원)의 예산을 필요로 한다. 둘레 크기는 53마일 (약 85㎞)이나 된다. 이 가속기를 이용해 과학자들은 아마도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도 심원한 의문 즉 '이 우주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에 대한 해답의 단서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초전도 거대가속기의 건설계획은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3대 대규모 과학계획의 하나이다. 3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전자 연구계획(The Genome Project : 제임스 왓슨박사가 주도)과 2백30억달러짜리 우주정거장 건설계획이 나머지 두개의 계획이다. 이 세가지 모두가 완전 합의되어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반대의견도 강하며 반대의견이 극복된다 하더라도 의회가 얼마만큼의 예산을 배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전체 예산액을 승인한다 하더라도 해마다의 예산안심의 때 금액을 축소시키는 일을 미국의회는 곧잘 한다.
거대가속기의 경우도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장소는 이제 가까스로 물색이 되었지만 한푼의 돈도 아직 배정되지 않았다. 내년에 의회는 '루비콘'강을 건너느냐 마느냐를 결정할 것이다. 계획승인과 예산통과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엄청난 금액이 드는 것은 아니어서 에너지국은 내년에 2억5천만달러를 요구할 것이다. 이중 1억6천만달러는 건설비용이다. 의회의 승인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거대가속기의 건설여부는 다시 논쟁의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과학자들 의견도 양분되어 있다.
가장 목소리 높은 반대이유는 이런 거대 공사는 '과학을 하는 전통적인 방법'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다른 반대이유는 가속기가 실용적으로 많이 쓰이게 될 21세기 초에나 건설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나머지 일부과학자들은 이런 거대사업은 국제적으로 즉 다른 나라의 돈도 끌어내어 건설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보다 작은 세계의 이해에는 보다 강한 에너지가
과학자들은 셔츠를 입었건 스웨터를 입었건 그것이 옷이라기보다 기다란 분자가 약한 힘으로 엉성하게 이어진 물질이라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강철을 보면 강한 힘으로 분자들이 뭉쳐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이래 이제까지 물리학자들은 물질의 근본을 파헤치는 노력을 끈질기게 그리고 정력적으로 추진해 왔다. 물질의 신비는 양파의 껍질이 벗겨지듯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다. 분자에서 원자로, 원자에서 핵으로, 양파껍질처럼 물질의 구조가 벗겨질수록 학자들은 보다 더 작고 보다 단순하며 보다 아름다운 세계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껍질 하나가 벗겨질수록 인류의 생활에 변혁을 초래한 과학·기술의 선물이 있었다. 분자에 대한 지식이 습득되자 예컨대 합성섬유처럼 새로운 종류의 물질이 대량으로 개발되었다.
1930년대에는 원자핵주위에 있는 전자를 이용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현대사회를 크게 바꿔논 혁명을 가져왔고 선진국들에게 수십억달러씩의 이익을 가져왔다. 우리의 전자문명의 핵심인 트랜지스터와 마이크로칩은 전자에 대한 지식과 응용에서 나왔음은 말할나위가 없다. 우리가 집에서 해외여행을 하기 위해 비행기 예약을 한다든가, 장거리 전화를 한다든가, 자동차 실린더에 점화를 한다든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편익이 전자의 응용에서 오게 되었다.
2차대전 후 연구의 촛점은 원자에서 원자핵으로 옮겨졌다. 핵은 양자와 중성자들로 구성돼 있음이 밝혀졌다. 이 핵의 규명은 또다시 진보를 가져왔다. 방사선, 핵반응로, 방사선 동위원소 등이 의료, 농업, 공업, 에너지 등 여러 부문에 이용되었다.
양파껍질의 다음 단계는 핵을 구성하는 입자를 규명하는것이다. 지난 20여년간 물리학자들은 '고에너지' 또는 '소립자'라는 이름이 앞에 붙는 물리학에 촛점을 두어왔다. 그런데 이 최근의 물리학연구는 대단히 강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이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속기(accelerator) 뿐이다. 가속기는 소립자들을 거의 빛의 속도로 가속시켜 서로 충돌(collision)하게 만든다. 이 충돌의 결과를 갖고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기본질서, 물질의 기본구조를 찾아내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까지 물질세계로 뛰어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소요된다. 수백만 볼트의 전압이 필요하다. 1972년 시카고 근교 '페르미'연구소에 미국 최초의 고에너지 가속기가 건설되었을 때 2억4천3백만 달러가 들었고 지난 83년 현대화 개수를 했을 때 다시 1억달러가 들었다.
제네바에 있는 가속기(오는 7월 준공)도 페르미 가속기 건설비의 배가 들고 있다. 유럽 핵연구센터(Center for European Nuclear Research : CERN)가 세운 이 가속기는 14개 유럽국가의 공동비용으로 제작된 것이며 둘레가 17마일로서 미국의 초전도 거대속기가 만들어 질 때까지는 최신의 그리고 최고수준의 것으로 존속될 것이다.
쿼크와 렙톤 그리고 하나의 힘
가속기로 인하여 20여년전에 생각되었던 것보다 우주는 단순하게 보이게 되었다. 수백만가지의 화학 합성물, 1백개 이상의 원소 때문에 복잡하게 여겨졌던 물질세계가 이제 겨우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기본입자, 즉 쿼크(quarks)와 렙톤(leptons)으로 구성돼 있다고 학자들은 믿게 된 것이다. 쿼크는 핵에서 중성자와 양자를, 그리고 렙톤은 핵주위의 전자를 구성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 기본 구성물질의 상호작용도 그렇게 복잡한 것만도 아니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오랜동안 물질세계의 모든 현상은 4개의 다른 힘의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라고 믿어왔다.
네가지 힘이란 중력, 전·자기력, 그리고 이른바 강한 힘과 약한 힘이다. 강한 힘과 약한 힘은 원자핵내에 있는 힘으로 핵을 단단히 묶고 있는 것이 강한 힘이며 방사성붕괴에 책임이 있는 것은 약한힘이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최근에 이르러 이 네가지 힘은 단 하나의 힘의 여러 측면에 불과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 기본적인 한개의 힘이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풀어주는 열쇠라는 게 물리학자들이 확고하게 갖고 있는 신념이다.
이른바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은 여러힘이 결국 하나의 힘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한 노력으로 기원은 1920년대와 30년대의 아인슈타인의 여러 시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속기는 이런 이론적 시도에 실험적 기초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최근 가속기는 표준모델(standard model)이라고 불리워지는 방정식, 즉 기본입자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표준모델에 따르면 전·자기와 약한 힘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에너지에서 하나로 통일이 되었으며 몇개의 이론들은 W와 Z입자의 발견으로 증명이 되었다. W와 Z입자는 약한 힘을 전달하는 것으로 CERN에서 지난 83년에 발견한 것이다. 표준모델은 우리가 우주의 기본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발달된 그리고 최신의 이론이다.
물리학자들이 물질의 깊은 속을 파헤치면서 표준모델을 보다 발전시킴에 따라 그들은 결국 천문학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즉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우주천문학자와 같은 의문을 갖게 된 것이다. 물리학자가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작은 것을 찾아 나서면서 가장 큰 것의 생성원인을 규명하려는 우주 천문학자와 같은 것을 찾아 헤맨것이 된 것이다.
여러 힘은 시간의 시발점 아주 짧은 순간(물질이 나타나기 이전 상태 즉 쿼크와 렙톤만 존재)에 통일되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우주의 탄생은 물질의 기본을 이해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현대의 물리학이 우주 창조의 비밀에 거의 근접했다면 무엇때문에 막대한 돈과 노력을 들여 가속기를 만들고 있는가?
이제까지 만들어 낼 수 없었던 빠른 속도로 입자들을 충돌시켜 힘들이 통일되는 메카니즘을 알기 위한 것이 S. S. C의 건설이유이다. S. S. C는 완전한 통일장이론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며 이곳에서 네가지 힘은 함께 존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S. S. C는 현대 물리학이 걸어가야할 바로 다음 단계인 것이다.
빅뱅 순간과 비슷한 조건
물리학자들은 이제 전자기와 약한 힘의 결합에 이어 여기에 강한 힘을 통일시키는 이론 즉 대통일장이론(grand unified theory : GUT)에 도전하고 있다. 네가지 힘의 결합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초 끈 이론(superstring theory)도 이런 시도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W와 Z입자가 발견되었을 때 전자기와 약한 힘의 통일을 낮은 에너지에서 보았다. 올해 들어서 스탠포드 대학 선형가속기에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Z입자를 만들어 내었다. 곧 대량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면 Z입자의 자세한 내막을 연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W,Z입자들이 생산에 관여한 힘의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며 S. S. C는 이 필요에 응할 것이다. S. S. C는 빅뱅의 순간과 엇비슷한 조건을 생성시킬 것이다. 보다 실제적으로는 현재의 이론들이 갖고 있는 모호한 부분을 명확히 해결하며 동시에 다음세대의 물리학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시사해줄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로는 왜 모든 입자들은 질량이라고 불리우는 형태로 에너지를 갖고 있는가 하는 신비스런 물질의 성질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는 데이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S. S. C의 건설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은 선배들이 걸어왔고 또 미래의 학자들이 걸어야할 길고 험난한 길의 한스텝을 자기네가 디디고 있다는 자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또 44억달러에 달하는 건설비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 88년도 노벨상 수상자이며 페르미연구소 소장인 '레온 레더만'박사는 S. S. C건설에 적극 찬동하고 있으며 대변인 역할도 맡고 있는데 "나는 S. S. C건설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끼는 한편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실제적 이익을 상상할 때 무척 흥분이 된다"고 말한다.
4천개 이상의 자석가진 두개의 터널
그러나 일년에 수천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있는 연방정부예산에서 44억 달러라는 액수는 아주 적은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맨하탄섬을 한바퀴 도는 둘레인 85㎞의 터널은 지하 약 45m에 뚫게 된다.
터널에는 두개의 고리가 있는데 각기 4천개 이상의 자석이 들어가게 된다. 자석들은 양자를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자석은 15m정도의 크기로 모두 액체 헬륨에 집어 넣어진다. 그러면 자석온도가 -450F˚까지 내려간다.
자석은 매우 값이 비싸 큰 것 하나가 최고급 승용차값인 10만 달러나 나간다. 이 자석들은 초전도체로서 에너지의 손실없이 전류를 통과시킨다.
기계(S. S. C)가 가동되면 양자들은 작은 고리에 집어넣어지고 가속되면서 큰 터널로 나뉘어 다시 넣어지는데 이때 두개의 빔으로 쪼개져 하나의 빔은 시계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그 반대방향으로 돌게 된다. 이 두개의 빔은 보다 강력한 힘을 받아 거의 빛의 속도로 질주하게 되는데 이때 한 지점에 양자들이 모아지고 서로 충돌하게 된다. 이 충돌순간에는 지상의 모든 발전소가 낼 수 있는 것 이상의 에너지가 동원된다. 또 이 순간에는 온도가 우주탄생 직후(${10}^{-16}$)의 온도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다음부터 거대한 전자탐지기로 쪼개진 입자들을 기록함으로써 물리학자들은 어떻게 힘들이 통일되는지, 우주의 시초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단서를 얻기를 바라는 것이다.
'레온 레더만'박사는 "이 거대가속기는 현대 물리학이 가야할 논리적인 다음 단계이며 우리가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테스트하는 가장 치밀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보다 실용성 있는 연구에 지장준다는 비판도
S.S.C와 같은 거대계획의 추진에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수십억 달러의 돈이 S.S.C에들어가면 연방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보다 실용적이고 산업에 즉각 이용할 수 있는 연구에 해가 된다는 것이다. 돈이 한쪽으로 쏠린다는 얘기이다.
미국의 대학 지하를 걸어 보면 연달아 조그만 실험실이 꽉 들어찬 것을 보게 된다.
각개의 실험실에는 연구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교수나 선임연구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작은 과학'(small science)의 연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페르미'연구소의 경우처럼 가속기에는 수백명의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참여해 각기 거대연구사업의 작은 한 부분을 맡아 일하고 있다.
전체 연구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지도학자는 과학을 하기보다는 관리기능과 여러가지 번잡스런 사무처리에 매달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대과학(big science)의 부정적인 측면이다.
작은 과학의 옹호자들은 서양의 과학은 개별적인 고독한 연구자들에 의해 하나씩 쌓여진 업적의 결과라고 말하면서 전통을 파괴하는 빅 사이언스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들은 "미국의 과학은 거대주의 때문에 죽어갈 것이다"라고까지 말한다.
필자 역시 S. S. C의 건설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취재를 하면서 현대물리학이 가야할 필수적인 다음 이정(異程)이 S. S. C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S. S. C의 건설에는 약 8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만약 예산책정에서부터 준공까지 모든일이 순조롭게 된다면 2010년경에 우리는 기본입자와 힘의 원리 그리고 우주의 비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힘을 우리의 실용에 쓰는 방법도 알게 될지 모른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어떤 것이며 또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는 현재로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으며 심지어 상상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