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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의학상 수상자'레비―몬탈치니'여사 시련 속에 핀 과학의 꽃

레비-몬탈치니 여사


"실험을 하고난 달걀이 귀중한 식량이 되곤 했다"
 

노벨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던 날 '레비―몬탈치니'는 하루 종일 이탈리아의 라디오와 TV보도진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1901년 처음 시상되기 시작한 노벨 의학상의 네번째 여성 수상자가 된 그녀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20분 전 스톡홀름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너무 너무 놀랐어요. 바로 어제 그곳에서 열린 신경학회의에서 발표하고 돌아왔거든요 그때 모든 사람들이 친절히 대해 주었지만 노벨상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지요"

성장인자를 발견한 공로로‘스텐리코헨’과 같이 과학자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안게된'레비―몬탈치니'. 그러나 그녀의 성공까지의 여정은 순탄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그토록 어려운 여건에서 성공의 싹을 틔운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것이다.

그녀는 이탈리아 북부도시 '토리노'의 유태계 집안에서 자라났다. 그녀는 의과대학을 가고싶었지만 허락을 얻기 위해서는 완고한 아버지와 몇 년간을 '싸워야'했다. 하지만 졸업을 하자마자 뜻을 펼쳐볼 틈도 없이 비(非)아리안계 활동이라는 명목 아래 유태인 탄압을 받아야 했고, 이어서 2차대전이 발발했다.

그녀의 침실은 실험실로 개조되었다. 대학시절의 교수였던 '쥬세페 레비'가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도 유태인이었으며 대학에서 쫓겨났던 것이다. 좋지않은 여건이었지만 그들은 병아리의 배(胚)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자세히 연구했다.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규명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토록 커다란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연구에 몰두했던 나 자신이 이해가 안될 정도예요. 내가 존경하던 모든 가치가 산산히 부서지고 있을 때 조그마한 신경 발생학적 과제에 매달리던 게 말입니다." '레비―몬탈치니'는 1982년 당시를 회고하며 이렇게 썼다. 노벨상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연구대상으로 병아리의 배(胚)를 택했던 것은 지극히 실제적이었다. 달걀은 비교적 쉽사리구할 수 있었고, 종종 그들은 실험을 하고 난 것들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혹한 상황에서도 그녀는 값진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고 벨기에의 학회지에 게제했다. 그러나 독일의 입김이 이탈리아에까지 미치게 되자 그녀는 가명을 하고 지하에 은둔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끝나자 비로소 그녀의 연구생애는 활짝 나래를 펴게 된다. 그 계기는 미국 워싱턴대학의 동물학과 학과장이었던 '빅터 햄버거'가 그녀를 공동연구팀에 초청한 것이었다. 1947년 그녀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를 보다 나은 환경에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이렇게 마음껏 연구할수 있는 것은 '더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리하여 그녀는 신경성장인자(NGF)를 발견했고, '코헨'과 함께 표피성장인자(EGF)도 발견하여 의학계에 선구자적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이다. 노벨상과 함께 주어지는 거액의 상금을 "연구비가 필요한 젊은 과학자들을 위해 쓰겠다"고 밝힌 것은 젊은 시절에 고난에 찬연구생활을 경험한 '레비―몬탈치니'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미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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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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