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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력의 본질을 알아낸다는 것은 인류 공통의 희망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약 1.4ℓ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신비한 기억의 메카니즘을 알아본다. 이글은 본지특약'사이언스86'과 '쿼크'지에서 요약 정리한 것.
 

기억력이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다. 기억력이 모자라 괴로왔던 경험은 누구나 적지않게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기억력이 좋아지길 바라며 또 가능해지는 방법이 없을까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초인적인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감히 보통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뛰어난 기억력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20세기 최대의 발명인 컴퓨터를 고안해낸 수학자 '폰 노이만'은 여덟살 때 전화번호부를 한참 본 후, 거기에 실려있던 전화번호를 하나도 빼지않고 정확히 재현했다고 한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긴 나폴레옹 역시 대단한 기억력의 소유자로 그 기억력으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제국을 쌓아올렸다고 한다. 전기작가에 의하면 그는 프랑스 해안에 설치한 대포의 종류며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했으며 부하들이 올린 보고서에서 잘못을 바르게 고쳐 많은 사람을 놀라게할 정도였다고 한다. 음악가에게도 기억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다. 멘델스존이 17살때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의 초연을 듣고 집에 와서 그 전곡을 악보에 옮겨적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기억력 연구에는 천재들의 연구와는 별도로 보통사람들을 조사하는 방법도 있다. 그중 하나가 카네기 멜로 대학에서 실시한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이것은 극히 평균적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2년 이상, 하루에 1시간, 일주일에 2∼5일, 기억학습을 시켰다. 학습은 일정 자릿수의 숫자를 기억하게 하고 복창시켜 모두 따라할 수 있으면 다음에는 한 자릿수를 늘이는 방법을 택했다. 그결과 최종적으로는 80자릿수 이상의 숫자까지 자유자재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들 학생이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증거로 처음에는 불과 7자릿수밖에 외우지 못했다고 한다.(그림1)

대체로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기억력도 뛰어나다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기억력이 뛰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머리가 좋은것은 아니다. 예를들면 자동차나 비행기 등의 이름은 물론 몇년도 형인지, 어느회사 것인지 훤하게 기억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본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교실에서는 평범한 학생들이다. 또 단순한 계산조차 못하는 학생이 외국어의 장시를 정확한 발음으로 외는 학생도 있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같은 연령의 주준에서도 왜 이같은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오랫동안 기억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어디에 저장되는가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기억이란 우리의 인간성의 기초이고 우리의 지식, 개념, 발전의 토대이다. 우리는 기억을 상기해서 다른 사실이나 감정과 결부시키고 그것을 이용하여 공상세계를 창조하고 과학의 미지(未知)분야를 개척해왔다.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지금은 기억과 행동을 연구하는 황금기다. 분자차원에서의 연구로 인해 우리는 한 신경이 다른 신경에 항구적인 변화를 일이키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알게 되었고 따라서 기억의 물질적 본질을 알게되었다."

 

(그림1) 보통의 기억력을 가진 대학생들은 처음에는 7~8자릿수 밖에 기억을 못했지만 2백일 후에는 80자릿수까지 기억했다.


기억의 2가지 형태
 

획기적인 이론적 성공 중의 하나는 기억에 최소한 2가지 형태가 있음을 밝힌 것이다. 이 개념은 기억상실증을 심리학자가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1950년대에 등장했다. 1953년 간질병으로 심하게 고생하던 H.M.이란 남자(27세)를 치료하던 의사들은 성과가 별로 없자 해마(海馬, hippocampus)와 편도핵(扁桃核, amydala), 주위의 피질(皮質, cortex)을 포함한 뇌의 일부를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간질발작이 약화되는 바람직한 결과를 얻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H.M.은 더이상 새로운 사실을 학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몇번이나 일러줘도 의사 이름을 잊어버리고, 삼촌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고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충격을 받으며 수수께끼를 풀고서도 풀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다.
 

H.M.의 기억상실형태는 뇌의 여러 부위가 각기 기억의 다른 형태와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첫째로 선언기억(declarative memory)은 사실, 즉 이름 주소 날짜 등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에 보내져 선언될 수 있는 기억이다.
 

둘째로 처리기억(procedural memory)은 해마와 편도핵을 제거해도 영향을 받지 않는 기억이다. 자전거를 타는 등의 기능을 포함해서 반복된 훈련이나 조건반사로 얻어진 기억을 말한다.
 

미국 국립건강연구소의 신경심리학 과장 '미시킨'(Mishkin)은 '리서스'(rhesus) 원숭이로 실험한 결과 시각기억구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해마와 편도핵임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서로 보완하면서 또한 독특한 기능을 한다.
 

해마를 제거하면 두 물건이 공간적으로 어떻게 관계되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즉 골목에서 자기집이 어느 것인지는 기억하지만 옆에 어느 집이 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편도핵은 정서적 연상과 관련된 정보를 저장한다. 이것을 제거하면 고향을 기억할수는 있지만 고향에서의 생활과 관련된 다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기억은 정서적 분위기와도 연관된다. 슬플 때 본 것은 슬픈 분위기에서 잘 기억된다.
 

또한 편도핵은 선언기억의 다른 측면에서 역할을 한다. '미시킨'은 여러가지 물건을 원숭이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어두운 곳에서 처음 물건을 만져보게만 하고 시각만으로 새 물건을 구별하게 했다. 그랬더니 해마를 제거한 원숭이는 잘 구별했지만, 편도핵을 제거한 원숭이는 아무거나 집어냈다. 확실히 편도핵은 시각과 촉각기억을 통합하는 데 필요했다. 사실상 다른 연구를 통해 오감은 각기 편도핵에 이르는 신경연결을 갖고 있음이 밝혀졌다. 촉각자극을 받으면 편도핵이, 같은 대상의 시각표상을 축적한 피질의 일부를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스탠퍼드대학의 정신생물학자 '톰슨'(Ricahrd F. Thompson)은 토끼를 사용하여 처리기억이 선언기억과는 달리 소뇌(cerebellum, 머리 뒷부분의 피질 아랫쪽)에 저장됨을 밝혔다. 조건반사 등 처리기억을 학습할때 소뇌의 특정부분에서의 높은 전기적 활동이 있었다. 토끼의 소뇌를 제거하면 조건반사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해마를 제거하면 조건반사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았다. 이것은 또한 다른 형태의 기억이 뇌의 다른부분에 저장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시킨과 톰슨 등의 연구는 기억의 물질적 본질(기억이 형성될 때 뇌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가)을 연구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하여 신경학자들을 흥분시켰다. 기억이 뇌의 어느 부위에 저장되는가를 알기만 하면 항구적으로 기억하는 뇌의 능력을 설명할 수 있다. 결국 많은 학자들은 그 부위의 뉴런(neuron)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뉴런에 촛점을 맞춰 관찰하게 된 것이다.

 

마술의 숫자7
 

1주일은 7일이고 무지개도 7색, 전화번호도 7자리, 음악에도 7음계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반복학습으로 단시간 기억할 수 있는(단기기억) 한계량이다. 단기기억이란 전화번호를 찾아서 그것을 다이알할 때까지 기억하고 그 직후에 잊어버리는 것처럼 단시간(20초 정도의) 기억이다. 그에 비해 장기간에 걸쳐 기억하는 것을 장기기억이라고 하는데, 우리의 기억에는 이렇게 2가지 종류가 있다고 생각된다.
 

실은 이 생각은 기억장애자나 뇌손상자를 관찰하여 얻은 것이다. 가령 알콜중독으로 비타민 B₁이 결핍되어 생기는 코르사코프(Korsakov) 증후군이라는 정신장애가 있는데,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자신의 과거는 기억하지만 조금 전에 알았거나 행동한 것은 잊어버린다. 식사를 하고서도 식사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신문을 보고도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는 경우다.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기억을 잃은 경우에도 오랜 과거의 기억일수록 잊기 어렵고, 또한 기억회복도 옛 기억부터 이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시험 전날 당일치기로 공부하여 무조건 외워서 시험을 치르고 시험장을 나오면 완전히 까먹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단기기억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턱대로 암기하는 것도 몇번이고 계속하면 어느 사이엔가 장기기억으로 뇌에 새겨진다. 심리학에서 이런 기억모델을 널리 인정하고 있다. 눈, 귀 등 오관에서 들어온 정보는 우선 감각등록기에 의미없는 정보로써 일시적으로 수집된다. 다음에 이것을 의미를 가진 기억으로 바꾸어 단기기억으로 보낸다. 이것을 패턴(pattern)인식이라고 하는데 반복연습되는 동안은 그 정보를 잃지 않는다. 게다가 이 정보는 장기기억되었다가 필요에 따라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델일 뿐이고 기억이 뇌의 어딘가에 저장된다면 물질적인 원인이 있어야 한다.

 

단기기억의 자리를 찾아서
 

일본 교토대학 영장류(靈長類)연구소의 '미카미 아키치카'는 색에 관한 단기기억의 뇌내부 구조를 연구했다.
 

원숭이에게서 색이 있는 빛을 보여주고 3∼16초 뒤에 다시 빛을 보여주어 앞의 것과 일치하는지를 가려내도록 했다. 그동안에 색을 기억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기기억에 해당된다.
 

뇌는 뉴런(신경세포와 거기서 나온 신경섬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빛이 뉴런을 자극하면 약한 전류가 흐른다. 전류는 한 뉴런에서 차차 다른 뉴런으로 흘러 최후로는 처음 뉴런으로 돌아가 닫힌 회로를 이룬다. 그리고 잠깐은 이 전류가 게속 흐르지만 시간이 지나 자극이 없어지면 전류도 사라진다. 이것이 단기기억이다. 이에 반해 장기기억은 거듭되는 전류강화가 작용하여 세포에 물질적 변화가 일어나 전류가 통하기 쉬어진다는 생각이다.

 

'할머니세포'가설
 

도쿄 신경과학종합연구소 '이와이 에이이치'는 '기억뉴런'을 발견했다. 그는 원숭이의 뇌에 작은 전극을 집어넣고 특정한 기호를 보여주었을 떄 자극을 내는 뉴런을 탐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1종류의 기호에만 반응하고 다른 기호에는 반응하지 않는 뉴런을 발견했다. 가령 '+'기호라면 크거나 작거나, 회전하여 '×'가 되거나 상관없이 반응한다. 이것은 뉴런이 범주화, 즉 어떤 주형을 갖고 있어서 그와 비슷한가를 확인하는 것으로 그 주형은 바로 기억이다. 기억뉴런이라고 할 수 있는데 뉴런의 5∼10% 정도가 기억뉴런이다. 게다가 더욱 흥미있는 것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얼굴뉴런'이란 세포를 발견했다. 이것은 인간의 얼굴이나 원숭이 얼굴에 반응한다. 사진이나 초상화에도 반응하지만, 눈이 없는 얼굴이나 옆얼굴, 90˚회전하여 옆으로 된 얼굴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단순한 형태뿐 아니라 얼굴같은 복잡한것까지 기억하는 세포가 있다면, 뇌에는 예쁜 꽃에만 반응하는 세포, 맛있는 음식에만 반응하는 세포도 있을지 모른다.
 

이것은 '할머니세포'가설로서 어린 아기가 할머니를 보고 웃으면 아기 뇌에 있는 '할머니세포'가 신호를 내고 있다는 것인데, 아기가 할머니를 자꾸 본 뒤 세포에 정보가 집약되면 차차 '할머니세포'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파고들어가면 인간의 정신이 단 하나의 뉴런에 집약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할머니세포 가설에 대립하여, 몇 만개 뉴런의 집단으로 어느 한작용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기기억의 구조
 

(그림 2) 어디에 기억이 자리잡는가?


캘리포니아 대학의 신경학자 '린치'(Gary Lynch)와 '보드리' (Michael Baudry)는 신경자극이 시냅스(synapse, 뉴런 사이의 연결부, 1/10만mm의 틈으로 되어 있다)를 통과하여 다음 뉴런에 도달되는 과정을 해마 뉴런으로 연구했다. 전기자극을 통과시키기 위해 신호를 보내는 뉴런은 선경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이라는 화학물질을 방출한다. 신경전달물질은 시냅스를 가로질러 발산되면서 다음 뉴런의 돌기에 있는 수용기(受容器, receptor)와 결합한다. 신경전달물질은 수용기를 활성화하여, 충전된 입자가 두번째 뉴런을 관통해 흐르면서 신경자극을 전달한다. (그림3)

린치와 보드리가 해마뉴런에 전기자극을 주어 장기기억을 유발시켰을 때 그들은 다음 뉴런에 칼슘이 몰려들어서 칼페인(calpain)이란 잠복효소를 활성화시키는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다. 이 효소의 주요 역할은 몇가지 단백질을 분해하는 것이다.
 

이 단백질 중 포드린(fodrin)은 뉴런의 돌기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이다. 칼페인이 포드린을 분해하면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glutamate)를 위한 특별 수용기가 노출되는데 이것은 다음 뉴런이 앞 뉴런에서 나오는 글루타메이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단백질조직이 계속 분해되므로 뉴런은 형태를 변화시키게 된다. 이것은 영구적이므로 기억구조를 해명하는 단서가 된다. 게다가 이것은 뇌에서 선언기억과 관련된 부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칼페인이 생물의 기억을 형성하는데 관련되어 있음을 증명하기 전에는, 이러한 칼슘―칼페인―포드린 관계는 해마뉴런에서 발생한 흥미있는 하나의 생화학 과정에 불과하다.
 

여기서 린치는 선언기억에서 칼페인의 역할을 증명하기 위해서 루펩틴(leupeptin)이란 화학물질을 이용했다. 루펩틴은 칼페인이 포드린을 분해하는 과정을 억제한다. 그는 쥐의 뇌에 루펩틴을 주사했다.
 

어떤 쥐도 먹고 마시고 자는 행위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 기억할 수 있었던 쥐가 주사 후에는 더 이상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해마와 편도핵이 제거된 쥐도 마찬가지였다. 쥐는 통상적으로 열심히 하고 빨리 배우므로 미로찾는 것이 뚜렷이 진전되지만, 루펩틴을 주사한 쥐는 진짜 바보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칼페인과 칼페인이 초래하는 뉴런 변화가 선언적 지식을 획득하는 데 중요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면 처리적 지식은 어떠한가? 처리기억이 형성 될 때는 뉴런이 단백질을 새로 합성한다고 생각되어 왔다. 따라서 린치는 쥐의 한 집단에는 단백질합성을 억제하는 아니소마이오신(anisomyocim)을, 다른 집단에는 루펩틴을 주사했다. 처리적 임무인 충격피하기 학습에서는 결과가 정반대였다. 루펩틴을 주사한 쥐가 잘 한 반면, 아니소마이오신을 주사한 쥐는 형편이 없었다.
 

칼페인 효소는 선언기억에서 탁월한 역학을 하는 데 반해, 단백질 합성을 필요로 하는 일련의 결과는 처리기억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두가지 화학물질의 성질은 각각 두가지 행위구조의 성질에 적합하다. 생화학현상이 관계되는 한 단백질 합성은 매우 늦은 과정이므로 처리기억은 형성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반대로 선언기억은 빨리 형성되고 생화학적 단위에서 칼페인―포드린 반응은 상당히 빠르다.
 

린치는 말한다. "기억형태의 분자적인 기초에 합리적인 가설을 전개한 것은 만족스럽지만, 나의 모델은 학습하고 생각하는 방법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

 

(그림 3) 어떻게 기억이 형성되나?


시냅스에서 발견된 스위치기구
 

우리는 운동을 연습하여 차차 잘하게 된다. 즉 학습과정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몸에 기억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학습을 통한 기억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단지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느끼지 못할 뿐이다.
 

도쿄대학 의학부 '이토'는 소뇌의 기억 메카니즘을 계기로 대뇌의 기억메카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소뇌를 연구하는데 전력했다.
 

소뇌의 피질에는 5종류의 세포가 있는데. 1970년경 이들 세포와 시냅스 분석이 진전되어 소위 설계도가 발견되었다고 소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의미, 즉 작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거기서 소뇌는 기억장치라는 가설이 제창도었고 여러 사람이 연구한 결과 시냅스에 일종의 화학적 스위치 기구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소뇌 피질에 1층으로 배열된 커다란 세포(퍼킹에 세포)는 소뇌로부터의 신호를 밖으로 보내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세포에는 2종류의 시냅스가 있는데 하나는 작은편으로 세포 1개당 8만개 정도가 있고, 또 하나는 크고 단 한개만 있다. (그림 4)

한편의 신경섬유에서 '틀렸다'는 신호가 전달되고, 동시에 다른 편에서 전류가 와서 퍼킹에세포에서 마주치면 간섭이 일어난다. 그러면 시냅스가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켜 스위치가 끊어지는 형태가 되고 전류통과가 어려워진다.
 

이 '틀린 신호'란 도대체 무엇인가? 가령 운동연습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대개 실패한다. 따라서 틀렸을 때 그 신호가 소뇌로 보내지면 시냅스의 스위치가 끊어진다. 소뇌의 시냅스는 처음에는 엉성하게 연결되어 있다가, 틀린 배선을 계속해서 끊어내므로 옳은 배선만이 남는다. 연습을 거듭하여 차차 기능이 세련되는 것은 이런 과정이다.
 

그런데 스포츠든 피아노든 같이 연습해도 잘하고 못하는 실력차이가 난다. 그러나 그것은 소뇌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뇌는 미조정(微調整)을 하여 사물을 정확하고 원활하게 움직인다. 잘하고 못하는 것은 프로그램의 문제이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대뇌이므로 대뇌의 성능이 문제가 된다. 대뇌의 기억메카니즘은 또한 소뇌와는 조금 다르다.

 

(그림 4) 소뇌의 신경세포와 운동의 기억과정


시냅스의 발아가 기억을 보존
 

대뇌에 접근하여 대뇌의 기억메카니즘을 다룬 사람이 오사카대학 기초공학부의 '스카하라'이다. 그도 또한 기억의 흔적을 뇌세포의 분자속에서 집요하게 탐구했다.

그런데 인간의 구조는 왜 복잡한가?
 

플라나리아 등 생명이 짧은 생물은 기억을 보존하는 기간이 짧다. 그런데 인간의 수명은 1백년이나 되므로 기억도 그만큼 보존해야 된다. 따라서 새로운 구조가 첨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복잡한 것을 다룰 수 없으므로 '스카하라'는 단순한 것에서 출발, 대장균을 조사하여 연구를 발전시켰다. 여기서 얻어진 단기 기억모델을 토대로 고등동물 연구에 돌입한 것이다.
 

최근 뇌에는 2종류의 시냅스가 있음이 밝혀졌다. 하나는 한번 연결되면 반영구적으로 고정되는 것이고, 또하나는 조건에 따라 새로 연결되거나 없어지거나 자유자재로 변하는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발아(發芽)라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건강한 뇌에서도 생겨난다.

즉 학습이나 기억이 뇌에서 이루어질 때 마다 새로운 시냅스가 만들어진 다는 것은 새로운 회로가 창설되어 장기기억으로 보존된다는 것이다. 하나의 기억마다 뇌에서 회로가 하나씩 생겨날 수 있는가?
 

한개의 뉴런에서 시냅스가 1만개에서 8만개까지 붙어 있으므로 이것을 정보량으로 환산하면 ${10}^{14}$∼${10}^{15}$(bit, 2진수의 1자리에 해당하는 정보량의 단위)다. 인간이 일생동안 받아들이는 정보량이 모두 기억된다면 ${10}^{16}$비트정도라고 한다.
 

결국 기억량이 증가할수록 시냅스가 증가하고 회로망도 늘어난다. 마치 미로에 빠져든 느낌이지만 뇌속의 신경전류가 누전이나 합선을 잘 일으키지는 않는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있는 실험이 있다. '페닐케톤'요증(phenylketonuria)이란 정신박약을 유발하는 병이 있는데, 이 병은 페닐알라닌을 분해하는 효소의 결핍으로 그것이 몸안에 점점 쌓여서 생겨난다. 이것을 쥐에게 먹이면 지능 발육이 나빠져서 전혀 학습 할 수 없게 된다. 쥐의 뇌를 해부하여 조사해보면 어떤 쥐도 신경섬유의 수초(髓鞘)가 품질이 악화돼있다. 특히 대뇌에서 더욱 그렇다.
 

뉴런은 신경섬유라는 하나의 긴 돌기와 수상돌기라는 여러 갈래의 가늘은 돌기를 갖고 있다. 그리고 신경섬유의 대부분은 외부에 수초라 불리는 칼집 모양의 것으로 덮여 있어서 '신경전선'의 절연막이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전류의 누전이나 합선이 생기지 않는다.
 

여기서 수초의 품질이 학습, 기억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발아현상은 대뇌, 뇌간(腦幹,대뇌와 소뇌를 빼고 간뇌, 뇌수, 연수 등을 포함한 부분), 해마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 스카하라는 중뇌의 적핵(赤核, 한 쌍의 불그스름한 회백질 덩이, 운동계통의 중심을 이루는 것 중 하나)이란 부위에서 여러 각도로 발아현상을 연구했는데, 이미 대뇌로부터 적핵으로 뻗친 시냅스에서 그것이 생겨나는 것, 그리고 발아가 일어날 때는 시냅스의 전위(電位)가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세포수준의 현상을 학습이라는 행동수준의 현상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에 촛점이 모아져서, 동물을 조건반사(일종의 학습·기억)시키면 시냅스에 전위변화가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즉 우리가 학습이고 기억할 때 발아현상이 일어나 장기기억되는 것을 의미한다.
 

발아 이외에도 기억의 메키니즘으로서 발생하는 요소가 현재 3가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는 신경전달물질의 증가이다. 이에 따라 시냅스에서 신호가 통하기 쉬워지는 현상이 해마에서 발견되었다.
 

둘째는 전달물질을 받아들이는 수용기의 증가.
 

세째는 수상돌기의 앞에 붙은 시냅스를 가시라고 하는데, 이 가시가 기억할 때 수축되지 않는가 생각된다. 가시는 작은 구조를 하고 있으므로 전기저항이 대단히 크지만 수축되면 저항이 낮아져 전류가 잘 흐르게 된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증명되었다.
 

하여튼 시냅스의 화학작용으로 정보가 전달 될 때 시냅스에서 생기는 변화가 기억의 열쇠라고 해도 그것이 전기적, 화학적 변화일 때는 장기간 고정될 수 없다. 따라서 시냅스에는 반드시 구조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스카하라의 생각이다.
 

이렇게 지금은 많은 부문의 학자들이 '기억'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기억구조를 풀어헤치는 흥미도 누리면서 그것을 계기로 인간의 정신, 마음의 불가사의에 손을 대보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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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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