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여행 0을 찾아서!


 
“하…, 하늘에서 거…, 대한 물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 밖에 한 번 나가 보시죠?”
기원전 340년 아테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 구조물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이 광경을 지켜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들은 매우 놀라 넋이 나가는데….
“스승님, 이 거대한 구조물은 신이 내린 선물일까요? 벌일까요? 이런 물체는 본 적이 없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 내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서 살펴보마.”
그런데 이게 웬일? 아리스토텔레스가 구조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몸이 안으로 쏙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마는데….

Part 1 0의 발견, 수 체계를 완성하다!

윽…, 정신을 얼마나 잃은 거지? 대체 여기가 어디야? 사람들의 옷차림도 주변 환경도 모두 낯선데…. 이 요상한 물체 왠지 꺼림칙했는데, 결국 이런 사단을 냈군! 대체 날 어디로 데려온 거지?
그런데…, 이렇게 발달된 문명을 이룩한 나라가 있단 말인가! 우리 그리스와는 비교도 안 되잖아!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수 배워서 돌아가야겠는걸.

1999년 0년 없는 달력, 논란을 만들다!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다투는 거야? 대체 새천년이 언젠데? 뭐라고? 지금이 1999년? 에이, 말도 안 돼! 거짓말이지?


지난 1999년, 새천년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2000년에 시작되느냐, 아니면 2001년에 시작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우리가 쓰는 그레고리력에 따라 2001년이 새천년의 시작이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1999에서 네 자리 숫자가 한꺼번에 바뀌는 2000년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이 벌어진 이유는 바로 0년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0년이 있었다면 0년부터 999년까지가 천년이 되기 때문에, 1000년과 2000년이 새로운 천년의 시작점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1년부터 세기 때문에 새천년의 시작이 1001년과 2001년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연대를 이렇게 세도록 만들었을까? 기원전과 기원후로 연대를 처음 나눈 사람은 6세기 무렵 로마의 주교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다. 그는 예수가 태어난 해를 ‘우리 주’라는 뜻의 ‘Anno Domini’의 머리글자를 따서 AD(기원후) 1년으로 정했다.

그런데 사실 디오니시우스를 나무랄 수가 없다. 당시에는 0의 존재 자체를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달력에 사용된 수는 서수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0년이나 0월, 0일이 없다. 서수란 몇 번째인지 순서를 나타내는 수를 말한다. 즉 여기서 1, 2, 3, 4, …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0번째란 의미가 없다.

1997년 바다 한복판에 배가 멈춰선 이유는?

에쿠, 발을 헛디뎌 괴상한 물체에 몸을 싣고 말았네. 이번엔 날 또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1997년 9월 21일, 미국 버지니안 해안을 따라 순항하던 미국의 항공모함 요크타운호가 굉음과 함께 갑자기 멈춰섰다. 어뢰의 공격이나 폭발에도 끄떡없도록 설계된 항공모함이 옴짝달싹도 못하게 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그 이유는 꼬박 이틀에 걸친 전문가들의 조사가 이뤄진 후에야 밝혀졌다. 바로 0 때문이었다!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 프로그래머는 컴퓨터가 어떤 수를 0으로 나누지 않도록 꼼꼼히 따져야 한다. 만약 컴퓨터가 0으로 나누기를 실행할 경우, 오류가 발생해 엔진이 멈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컴퓨터는 곱셈을 할 때는 덧셈을, 나눗셈을 할 때 뺄셈을 반복해서 처리한다. 그 이유는 덧셈의 원리를 이용한 논리연산자를 사용해서 사칙연산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0으로 나누기를 하면 0을 빼는 일을 반복해야 하는데, 0을 아무리 빼도 값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뺄셈을 무한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엔 계산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겠다고 선언하고 멈춰 버린다.

조사결과, 사건 발생 며칠 전에 요크타운호의 컴퓨터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한 프로그래머가 나누기 실행을 하는 알고리즘에 0을 남겨두는 실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알고리즘에서 0을 없앤 뒤에야 요크타운호의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0이 소외된 이유는?

뭐야? 0을 사용해서 논쟁을 벌인 거야? 쯧쯧쯧…. 내가 예전부터 0은 쓸 필요 없다고 누누이 말했잖아. 0은 수의 규칙에서도 어긋나고, 0을 인정하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는 거라구.

이유 1 0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하지 않다?!


현재 우리는 0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컴퓨터는 0과 1로 이루어진 이진법으로 연산을 하고, 운동경기에서 누가 더 빠른지 기록을 잴 때에는 0초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수’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할 무렵에는 0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내가 가진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헤아리기 위해 수를 세기 시작했는데, “창을 한 개, 두 개, 세 개 가지고 있다”고 말할 기회는 많았지만 “창을 0개 가지고 있다”고 말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창을 갖고 있지 않으면 단지 “난 창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하면 됐다.

이유 2 0은 수 체계를 무너뜨린다?!

세월이 흘러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과 같은 연산을 하게 됐을 때에도 사람들은 0이 일반적인 수의 규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보통 수라면 어떤 수에 자기 자신을 더하면 다른 수가 된다. 예를 들어 1+1=2가 되고, 2+2=4, 3+3=6이 된다. 하지만 0+0=0이다. 즉, 다른 수와 달리 0은 애초에 아무것도 더하지 않은 것과 같아진다.

곱셈에서도 마찬가지다. 대개 어떤 수에 곱하기 2를 하면 그 수의 2배가 되고 0.5를 곱하면 0.5배가 된다. 즉, 곱한 수만큼 배로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0은 어떤 수에 곱해도 항상 0을 만들어 버린다.

특히 0으로 나누기를 하면 더 이상한 결과가 발생한다. 나누기는 곱하기를 취소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6÷3×3을 계산하면 그 값은 6이 된다. 그런데 6÷0×0을 계산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6÷0을 a라고 해 보자. 그러면 6÷0×0=a×0=0이다. 그런데 나누기가 곱하기를 취소하는 역할을 한다고 하면 답은 6이 된다. 즉, 6=0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식이 생기고 만다.

이유 3 0을 인정하면 신성모독죄!

수학과 천문학이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0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리스인들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인 ‘무(無)’와 0이 같다고 여겨 0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기원전 350년경의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모든 것은 신이 완벽하게 창조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진공은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그리스인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뜻하는 0마저 거부했다. 우리는 공기가 없으면 진공 상태라고 부르지만, 고대 그리스시대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진공이라고 불렀다.

사실 그 당시에도 진공을 인정하는 부류가 있었다. 하지만 진공과 0을 인정하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과 연결되었다. 따라서 진공을 인정하지 않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그리스의 사상을 지배했다.

이런 사상은 로마 제국까지 이어져 서양에서는 약 1000년간 진공과 0을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이후 로마제국이 멸망했지만 과학의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시대가 1000년간 이어지면서, 결국 2000년 넘게 진공과 0을 거부하게 된다.

628년 0의 여정, 인도에서 유럽까지

0이 왜 필요없는지 이제 좀 알겠지? 그런데 0을 대체 언제부터 사용한 거야? 누가 쓰게 했냐구? 그리스인들은 신을 믿기 때문에 섣불리 그런 짓은 못했을 거고. 그렇다면…. 맞다! 인더스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무(無)를 믿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설마 그곳에서?

0, 인도에서 꽃피우다!


고대 그리스에서 거부당한 0은 기원후 7세기경 인도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그리스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0을 거부했지만, 인도인들은 종교 때문에 오히려 0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인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종교는 힌두교다. 그런데 힌두교에서는 우주가 무(無)에서 생겨났고, 그 크기가 무한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인도인들은 무와 무한을 성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특히 힌두교의 주요 신 중 하나인 시바신을 무(無) 자체로 여겨, 만물의 창조와 파괴가 모두 가능한 존재라고 믿었다. 결국 인도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기 위해 무(無)와 무한을 연구했다. 그 결과 ‘0의 발견’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사실 0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누구인지, 언제 발견했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628년 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브라마굽타가 쓴 천문학책 <;브라마스푸타시단타>;에 소개된 내용을 0을 사용한 최초의 기록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원전 300년경에 0의 기호를 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브라마굽타의 천문학책을 0을 사용한 최초의 기록으로 보는 걸까?

그 이유는 0의 역할 때문이다. 0에는 크게 세 가지 역할이 있다. 첫 번째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계산기에서 새로운 계산을 시작할 때 0으로 만드는 것이 이 기능이다. 두 번째는 자리 기호로서의 역할이다. 우리는 수를 쓸 때 일의 자리나 십의 자리, 백의 자리 등 어떤 자리가 비었을 때 0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2014는 백의 자리가 빈 경우다. 마지막으로 0은 2+0=2, 3×0=0처럼 연산의 기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기능을 모두 알고 0을 사용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바로 브라마굽타의 책이다.

이슬람으로 전해진 0, 아라비아 숫자의 탄생

인도에서 탄생한 0은 8세기경 이슬람으로 전파된다. 당시 이슬람 왕조는 인도와 알제리까지 영토를 확장했는데, 그 과정에서 강탈한 문화유산들과 수학, 과학책이 이슬람의 중심지인 바그다드로 모였다. 이때 많은 책들이 아랍어로 번역됐는데, 브라마굽타의 <;브라마스푸타시단타>;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슬람인들은 그리스인들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에 0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0의 사용을 두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서로 편을 나눠 싸울 정도였다. 하지만 11세기 무렵 이슬람 철학자 알 가잘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따를 경우 사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선포하면서 0을 사용하게 된다.

사실 이슬람인들은 다른 나라와의 교역을 활발히 했기 때문에 수 계산에 민감했다. 따라서 계산하는 데 편리한 0을 포함한 인도의 기수법은 빠른 시간 안에 퍼졌다. 그리고 인도 숫자는 점차 쓰기 편리하도록 변형되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다.

0, 유럽에 전파되다!

13세기 무렵 유럽에서는 기독교 때문에 0을 거부했다. 그런데 당시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은 잦은 이슬람과의 교역으로 계산에 편리한 아라비아 숫자와 0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당시 유럽의 상인들은 이슬람 계산법을 공부해야만 했다. 이슬람의 수학자 알콰즈미가 쓴 산술책 <;알자브르 왈 무카빌라>;가 유럽 상인들의 요구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될 정도였다.

13세기에는 이탈리아의 상인 레오나르도 피보나치가 이슬람인에게 배운 계산법을 <;주판서>;라는 책을 통해 소개했다. 결국 상인들을 중심으로 0과 아라비아 숫자가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된다.
 

1648년 0, 서양에서도 승전보를 울리다?!

0을 사용하면 수 계산에 빠르단 말이지. 근데 어떤 철학도 없이 사용하는 게 말이나 돼? 0을 인정하면 진공은? 신은? 어떻게 할 건데? 그러고 보니 이 괴상한 물체, 신기하게도 내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날 데려가네. 혹시 이번에도?

종교 미술을 통해서 전파된 0


중세 유럽에서는 상인들을 중심으로 0을 사용하긴 했지만 왕족이나 종교인, 학자들이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0을 거부했고, 심지어 사탄으로 보기까지 했다. 그런데 화가들이 0에 매료되면서 종교 미술을 중심으로 0이 전파되게 된다. 어떻게 된 걸까?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는 기독교가 주를 이뤘다. 따라서 신이 창조하지 않은 무의 상태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다. 결국 중세 시대에도 0이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중세 시대가 끝이 나고 르네상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종교 미술 깊숙이 0이 파고들게 된다. 당시 종교 미술은 대개 평면적이고 생기가 없었다. 당대 최고의 거장의 그림도 지금 보면 밋밋하다고 느껴진다. 그 이유는 바로 원근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15세기 초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원근법을 고안하면서 그림을 사실적으로 그리게 된다. 원근법은 종교 미술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종교인들마저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 원근법에는 0의 의미가 담겨 있다. 원근법의 기본 원리 중 하나가 소실점이기 때문이다. 소실점이란 평행한 두 직선이 멀리 가서 한 점에서 만나는 것처럼 보이수학동아는 점으로, 차원의 개념에 따라 정의하면 0차원이 된다. 점은 높이와 너비는 물론 길이도 없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는 원근법에 0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사용한 것이었다. 결국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0이 종교 미술을 통해 퍼지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주, 파스칼의 실험으로 풀리다!

0이 원근법으로 종교의 벽을 허물고 있을 무렵, 과학자들은 진공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종교보다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과학자들이 진공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진공의 존재를 인정하는 과학자들이 점점 더 늘어났고, 실험을 통해서 탐구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획기적인 결과를 낸 사람이 이탈리아의 과학자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과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이다.

결국 토리첼리와 파스칼의 실험으로 자연에는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깨졌다. 하지만 이것이 인정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 학계에서는 유리관 속 수은주 위의 빈 공간을 진공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공에 관한 여러 논란 끝에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토리첼리와 파스칼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토리첼리와 파스칼의 진공 만들기!

1643년 토리첼리는 진공을 만드는 실험을 했다. 먼저 약 1m 길이의 한쪽이 막힌 유리관에 수은을 가득 채운 뒤 마개를 막고, 수은이 담긴 그릇에 거꾸로 세운 뒤 마개를 열었다. 그러자 수은주가 내려가기 시작했고, 높이가 76cm가 되자 멈췄다. 공기 압력과 수은주의 무게가 평형을 이루면서, 유리관 속 수은주 위의 빈 공간이 진공 상태가 된 것이다.
이후 1648년 9월 9일 파스칼은 토리첼리의 실험을 평지와 높은 산에서 해 보고 비교하기로 했다. 그 결과 산꼭대기에서 잰 수은주의 높이는 평지보다 8.25cm 낮았다. 공기가 희박한 높은 곳에서는 공기의 압력이 낮아져, 수은주가 평지보다 덜 밀려 올라가게 된 것이다.

Part 2 0과 무한의 만남, 강력한 무기를 만들다!

정말 말도 안 돼! 내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긴 실험까지 해서 보여 주니 할 말이 없군. 그렇다면…, 무한에 대한 내 생각까지 잘못된 걸까? 사실 0과 무한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 덧셈과 뺄셈, 곱셈과 나눗셈처럼 항상 짝지어 다닌다고.

1640년 0과 무한은 찰떡궁합?


서양에서도 0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0과 무한이 만나 새로운 연구의 싹이 트게 된다. 사실 0과 무한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수를 $x$로 나눠 보자. 이때 $x$가 0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몫은 무한히 커지게 된다. 반대로 $x$를 아주 큰 수로 나눈 다음 그 몫과, 이보다 더 큰 수로 나눈 다음 몫을 비교해 보자. 그러면 $x$가 커지면 커질수록 몫이 0에 가까워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0과 무한은 한쪽이 늘어나면 한쪽이 줄어드는 서로 반대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수학자들은 이런 0과 무한을 조합해 ‘0에 무한히 가까운 수’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냈다. 바로 ‘무한소’★다. 무한소가 중요한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수학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게 만든 학문인 미적분학의 주요 원리이기 때문이다. 즉 0과 무한의 만남을 통해서 인류 최대의 무기인 미적분학이 탄생한 셈이다.

지금부터 미적분에서 무한소의 개념이 어떻게 쓰이는지 살펴보자.

무한소★란 한없이 0에 가까워지지만 0이 되지 않는 양을 뜻하는데,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수학적으로 정의된다. 이전까지는 수학적 증명이 없이 사용됐다.

포도주의 통의 부피, 무한소로 구한다!

적분에 대해 알아보기에 앞서 아래의 문제를 풀어 보자.



이 문제는 1/2을 시작으로 1/2씩 곱한 수를 모두 더하라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작은 수라도 무한히 더하기 때문에 답은 무한히 큰 수가 나올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수를 하나씩 더해 보면 아무리 더해도 수가 커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1에 가까운 수가 될 뿐, 1이 넘지는 않는다. 따라서 답이 1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17세기 수학자들도 이와 같은 생각을 했다. 실생활 문제의 경우 ‘답이 이렇지 않을까’라는 추측으로 풀었을 때 옳은 답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즉 몇몇의 수학자들은 증명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어림짐작으로 문제를 풀었다.

1612년 독일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선술집에서 태어난 그는 오래 전부터 통 속에 집어넣은 막대가 젖은 길이로 포도주의 양을 구하는 것이 과연 정확한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새로운 방법을 고안하기로 했다.

케플러는 포도주 통을 무한히 얇은 모양의 원반이 쌓인 것으로 간주하고, 원반의 부피를 구해 모두 더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때 원반의 부피는 원반을 아주 얇게 잘랐기 때문에 원의 면적이나 다름이 없다고 가정했다. 이렇게 구한 결과 그는 언제나 옳은 답을 구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수학자 카발리에리도 케플러와 같은 방법으로 도형의 면적이나 부피를 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카발리에리의 원리’라고 불리는 수학 원리를 발견했다.

카발리에리 원리란, 두 입체를 평면과 평행인 평면으로 잘랐을 때 잘린 부분의 면적의 비가 항상 m : n이면 부피의 비도 m : n이 된다는 것이다. 이 원리를 확장하면 단면의 비가 일정하면 단면을 합한 부피도 일정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입체를 잘게 쪼개서 부피를 구해도 된다는 걸 의미한다. 카발리에리의 원리는 부피를 잘게 쪼개어 적분하는 ‘구분구적법’의 시초가 됐다.
 

➊ 17세기 당시 유럽에서는 포도주 통에 막대를 넣어서 포도주의 양을 구했다.
➋ 케플러는 다른 방법으로 포도주의 양을 구하기 위해서 포도주 통을 원반 모양으로 여러 번 잘랐다.
➌ 원반을 무한 번 잘라 높이가 무한소가 되도록 만든 뒤, 원반의 부피를 모두 더해 포도주의 양을 구했다.

1674년 무한소로 나눈다?! 미분의 탄생

그러니까 적분은 무한소끼리 더한다는 의미구나. 그렇다면 미분은? 미분이란 뭐고, 무한소란 개념이 어떻게 쓰이는데?


미분이란, 순간의 변화율을 의미한다. 즉 찰나 동안 물체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움직였는지를 뜻한다. 자동차의 속도를 예로 미분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시간 전의 위치와 100km 차이가 나는 자동차가 있다. 이 자동차의 현재 속도를 시속 100km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시속 100km라는 건 1시간 동안의 평균 속도다. 100km라는 거리를 1시간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순간 속도를 알고 싶다면 1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1분, 1분보다는 1초, 0.1초, 0.001초처럼 현재와의 시간 차이가 아주 짧게 나도록 기준을 바꿔야 한다.

다시 말해 시간을 무한히 작은 간격으로 나눠 0에 가까운 수로 만든 다음, 거기에서 생기는 차이를 비교하면 순간의 속도를 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분이다.

미분법을 고안한 건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 뉴턴과 수학자 라이프니츠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독자적으로 미분법에 대해 연구했는데, 서로 자신의 연구를 상대방이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죽을 때까지 싸웠다.

그렇다면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연구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었을까?

우선 뉴턴과 라이프니츠 모두 무한소의 개념을 이용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무한소의 정확한 수학적 정의를 알고 사용한 건 아니었다. 다만 ‘0에 무한히 가까이 갈 때’라는 가정을 이용했다. 사실 무한소가 수학적으로 정의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두 번째 공통점은 미분과 적분을 하나로 연결했다는 점이다. 미분과 적분은 덧셈과 뺄셈, 곱셈과 나눗셈처럼 반대되는 역관계에 있다. 즉 어떤 함수를 미분한 뒤 적분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반대로 적분한 뒤 미분을 해도 원래 함수가 된다. 이 때문에 미분과 적분을 합쳐 미적분학이라고 부른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연구의 가장 큰 차이점도 무한소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뉴턴은 수학을 도구로 자연 현상을 탐구하는 물리학자였기 때문에, 시간의 변화에 대해서만 미분법을 연구했다. 즉 무한소로 보내는 대상이 항상 시간이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는 수학자답게 시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우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일반 변수 x에 대한 변화까지 연구하고 일반화했다. 즉 라이프니츠는 무한소로 보내는 대상이 시간도 될 수 있고, 거리도 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미분에 관한 용어와 기호는 모두 라이프니츠가 고안한 것을 사용하고 있다.

미적분학의 탄생을 두고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역사를 바꾼 혁명적인 일이라고 추켜세운다. 그 이유는 약 2000년 동안이나 수학자들을 괴롭혀온 무한소의 개념을 제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건축부터 각종 기계, 자연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활용되고 있고, 무엇보다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이 있어서다.
 

0과 무한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던 점이 있어. 왜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면 안 되는 거야? 이것만 가능했다면 0은 훨씬 빨리 발견됐을 것 같은데…. 그리고 0과 무한대랑 곱하면 0이 되는 거 아냐? 이렇게 말했다가 수학자한테 혼쭐이 났다고. 0과 무한을 둘러싼 오해에 대한 진실을 밝혀 줘~!

오해 1÷0=∞?

진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면 무한대가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수학에서는 0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나눗셈의 역할을 알아야 한다. 앞에서도 살펴봤듯이 나눗셈은 곱셈의 역연산이다. 즉 a÷b=c라는 식이 있다면, 이것은 c×b=a라고 바꿔 쓸 수 있다. 그런데 b가 0이라고 하면 a÷0=c가 된다. 이는 c×0=a로 바꿔 쓸 수 있는데, 만약 a가 1이라면 c×0=1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식이 생겨 버린다. 어떤 수에 0을 곱하면 항상 0이기 때문에 절대로 1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때 c의 값은 절대 구할 수 없다. 이는 애초에 0으로 나눌 수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오해 ∞×0=0?

진실

우리는 어떤 수에 0을 곱해도 항상 0이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무한대(∞)만은 예외라니, 어떻게 된 것일까?
이건 무한대에 관한 오해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한대가 하나의 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수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무한대는 수가 아니다. 단지 제한 없이 무한히 커진다는 걸 의미한다. 즉 무한대는 1, 2, 3, 4, …처럼 1씩 무한히 커지는 수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때로는 2배씩 커지는 수열, 제곱의 형태로 커지는 수열 등 무한히 커지는 수의 나열을 의미한다. 따라서 $∞$×0이라는 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0과 무한이 이렇게 중요한 줄 정말 몰랐어. 내가 살던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서 수학의 역사를 바꿔놓고야 말겠어. 타임머신~, 기원전 340년 고대 그리스로 출발~!
“푸싱 피용~.” 어? 왜 안 움직이지? 설마 타임머신이 0이 되어버린 거야? 으아악~! 난 이제 어떡하라고?!

시간여행+ 0과 미적분학의 활약상

지금까지 0과 무한에 대한 우여곡절 역사에 대해 살펴봤다. 그렇다면 많은 수학자들의 노력을 거쳐 발견된 0과 무한은 오늘날 어떤 활약을 하고 있을까? 우주부터 실생활까지 다양하게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1. 우리는 컴퓨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0이 없었다면 0과 1로 이루어진 수로 연산하는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도 개발되지 못했을 것이다.

2.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은 우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특별한 존재를 예언했다. 바로 부피가 0이고 밀도가 무한대를 향해 수축하는 블랙홀이다. 그런데 0과 무한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지금까지 블랙홀의 존재를 알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3.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건물이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는 최대 무게를 구해야 한다. 이때 미분이 쓰인다. 미분을 이용하면 어떤 함수의 최댓값과 최솟값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비행기의 제동거리는 미분을 이용해 구해진다. 비행기의 속도와 가속도를 미분 계산을 통해 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동거리란, 브레이크가 작동할 때부터 완전히 멈출 때까지의 이동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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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1월 수학동아 정보

  • 조가현(gahyun@donga.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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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제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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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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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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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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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BOOK OF NOTHING>, <THE INFINITE BOOK>, <무의 수학, 무한의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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