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로 접어드니 이제 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네요. 저, 우경식 교수가 오늘 찾은 곳은 경북 청송의 주왕산! 매년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을 보러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몰려드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 산에 정상이 없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산꼭대기가 너무 평평해서 정상을 찾을 수 없다나요…?
주왕산 정상은 둥글둥글 평평하게 생겼다?
주왕산은 해발고도 722m로, 경상북도의 북동쪽에 있어요. 경관이 아름답고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죠. 전설에 의하면 옛날 신라 시대, 중국에서 반역을 일으켰다 패배해 도망친 ‘주왕’이 이 산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합니다.
동네 뒷산부터 명산인 지리산까지 대다수의 산은 봉우리가 뾰족해요. 물론 화산분화로 꼭대기에 호수가 생긴 한라산도 있지만요. 산꼭대기가 뾰족한 건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것도 지질학자의 연구 대상입니다. 왜 산꼭대기는 뾰족할까요?
산이나 산맥이 만들어질 때는 한 지역의 고도가 상승하는 융기 현상을 겪습니다. 이렇게 융기한 지역에 비가 내리면 암석으로 이루어진 표면이 비를 맞아 풍화되고, 토양과 암석 조각들이 빗물에 쓸려 하천을 만들어 계곡을 따라 낮은 고도로 흘러가지요. 계곡은 시간이 흐르면서 침식되어 V자 모양의 계곡이 됩니다. V자 계곡이 여러 방향으로 생길수록 산 정상은 점점 뾰족한 모양으로 변하지요.
주왕산은 제주도 한라산처럼 화산폭발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한라산은 물론, 전국 여느 곳의 산과도 다르게 생겼습니다. 바로 봉우리가 뾰족하지 않고 평평하다는 겁니다. 주왕산은 큰 기둥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으로 생겼습니다. 주왕산 정상은 기둥 윗부분처럼 평평하지요. 실제로 주왕산에 올라가면 어디가 정상인지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상을 알리는 비석을 봐야 그 위치를 알 수 있을 정도지요.
기둥 형태의 지형 때문에 주왕산에는 또 다른 지질학적 특징이 생겼는데, 평범한 V자 계곡 대신 수직 절벽 밑 깊은 곳으로 계곡이 흐른다는 거지요. 그래서 주왕산은 여름에도 등산하기 좋아요. 계곡이 깊어 온종일 그늘이 지거든요.
주왕산, 어떻게 화산재 속에서 태어났을까?
기둥 모양 정상의 비밀은 응회암!
그렇다면 주왕산은 어떻게 이런 독특한 기둥 모양 지형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우리나라의 다른 산들과 달리, 주왕산은 화산재가 쌓여서 굳은 암석인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왕산 근처의 지질을 조사하면 응회암만 발견돼요. 거기다 깊은 계곡에서부터 주왕산 정상까지의 고도 차이를 생각하면 예전에 주왕산 부근에서 엄청나게 큰 규모의 화산폭발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지질학자들은 분화구에서 폭발해 나온 엄청난 양의 화산재가 화산의 옆면을 타고 흘러내려 무려 400m의 두께로 쌓였다고 추측합니다.
이 화산재가 식으면서 주왕산을 이루는 응회암 지대가 만들어졌습니다. 화산재가 식는 속도는 지표에서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지는 화산암보다도 훨씬 빨라요. 화산재의 이런 급속한 냉각은 두 가지 결과를 낳지요.
첫 번째로, 응회암이 풍화에 매우 약해집니다. 응회암에는 작은 크기의 유리질 물질인 ‘화산유리’가 들어 있어요. 화산유리는 화강암 내부 광물과 화학적 조성이 비슷하지만, 너무 빨리 식는 바람에 튼튼한 결정 구조를 만들지 못했지요. 그 결과 응회암은 빗물에 쉽게 깎입니다.
두 번째로, 화산재가 빠르게 식으며 부피가 줄어들어 갈라진 틈인 절리가 만들어집니다. 수직 방향으로 갈라진 ‘수직 절리’가 생기지요. 이 절리를 따라 풍화가 진행되면서 응회암 지대가 기둥 형태로 깎인 겁니다. 그래서 주왕산이 수직으로 길고 위는 평평한 기둥 모습으로 빚어진 거지요.
이렇게 주왕산이 지질학적으로 매우 특별하다 보니, 2017년에 청송 지역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주왕산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산에 갈 충분한 이유가 된답니다.
필자소개
우경식(강원대학교 지질지구물리학부 지질학 교수)
해양지질학을 공부하고 1986년부터 강원대학교 지질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제동굴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IUCN 세계자연유산 심사위원으로 세계의 지질유산을 심사하고 있다.